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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데스다 (요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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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 (요 5:1~9)


1. 헤밍웨이의 단편 모음집 중에 이런 짤막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페인에 어느 엄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 아들과 사사건건 충돌합니다. 아버지의 시각으로 볼 때에 그 아들이 하는 일은 못마땅합니다. 계속 충돌하는 나머지 이 아들은 집을 나가 버립니다. 가출을 해서 몇 해 동안 방황을 합니다. 아들을 내보내고 나서 아버지는 괴롭습니다. 그래서 항상 가슴 아파합니다. 

아들을 용서하지 못한 아버지는 절대로 편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용서하기로 굳게 결심하고 신문광고를 냈습니다. 짤막하게 "파코", 그 아들의 이름이 파코입니다. "파코! 화요일 정오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다 용서했다. 아빠." 신문광고를 냈습니다. 예정된 시간, 정오에 호텔에 가보았더니 무려 800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모였더랍니다. 파코라는 이름이 아주 흔한 이름이라서 파코라는 이름으로 집나간 아이들이 이렇게 많았던 것입니다.

용서받고 싶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습니다. 남편에게 용서받지 못한 부인들, 아내에게 용서받지 못한 남편들, 부모에게 용서받지 못한 자녀들, 형제 자매에게 용서받지 못한 분들, 친구에게 용서받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분들, 오늘 주님께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죄책감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의 집, 자비의 집인 성전에 올라오셨으니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오늘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2.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양문 곁에 베데스다란 연못에 가셔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기적의 사건입니다. 베데스다는 히브리어로 “자비의 집, 은혜의 집” 이란 뜻입니다. 이곳에 천사가 가끔 내려와서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그 때 맨 먼저 물에 뛰어든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다 낫게 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전설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맨 먼저 들어가는 사람만 병이 낫는다면, 이것은 천사가 할 일이 아니지요.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입니다. 물이 움직일 때, 들어가면 누구나 나아야 하지 않습니까? 금메달을 목에건 1등만 스폿라이트를 받는 세상과 무엇이 다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가 아닙니다. 자비의 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보세요. 이 베데스다에 있는 병자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 요즘 말로 뇌졸중 환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물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하거나, 보아도 빨리 뛰어들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좀에 걸린 사람이나, 코 높이는 성형수술이 잘못되어 코에 염증이 생긴 환자나 빨리 뛰어들어갈 수 있겠지요. 

이 집은 자비의 집, 은혜의 집이 아니라, 경쟁의 집입니다. 은혜는 선물입니다. 실력없어도 그냥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못 난 사람, 세상 사람들에게 다 손가락질 받는 사람도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베데스다, 이 연못은 1등만 은혜를 받습니다. 이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습니다. 칼국수에 칼이 없습니다. 빈대떡에 빈대가 없습니다. 
베데스다, 은혜의 집, 자비의 집에 은혜가 없습니다. 
베데스다, 이곳에는 경쟁에 뒤쳐진 낙오자들, 실패자들이 모인 곳, 로또를 사고 대박이 터지기를 바라는 막장 인생들이 모인 곳입니다. 베데스다야말로 은혜의 집, 자비의 집이 아니라 절망의 집입니다. 

3. 이 베데스다에 38년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말이 38년이지 얼마나 긴긴 세월입니까? 태어나서 이 병에 걸렸어도 38세가 되었을 것이요, 십대에 걸렸다면 50세가 넘었을 것입니다. 일평생 병에 시달려온 사람입니다. 매일 베데스다에 출근하지만 허탕입니다. 한 달, 두 달, 일 년, 2년, 10년, 20년, 30년이 넘도록 대박이 터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병고치려고 나오기보다 여기 연못에 나오는 것이 습관이 되어 매일 나오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이 병은 고칠 수 없어. 하나님도 어쩔 수 없어. 내 병을 고쳐주지 않는 거야.” 라며 자포자기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사람의 문제가 우리 문제입니다. 우리는 병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고생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세월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갖고 괴로워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세월 기도해왔지만, 아직 응답받지 못한 분들도 계십니다. 교회를 수십년 다니고 매일 기도하였지만,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들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38년 병은 어쩌면 우리의 나쁜 습관일 수도 있습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고. 어릴 때 생긴 나쁜 습관을 수십년간 회개하며 눈물 흘리며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4. 그런데 놀라운 소식,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이 베데스다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 많은 병자 중에서 38년동안 고생하던 이 병자를 만나주셨습니다. 왜 38년된 병자를 만나주셨을까? 주님은 큰 고통에 처한 사람일수록 더욱 불쌍히 여기십니다. 자신의 힘으로, 의지로, 실력으로, 도무지 극복하지 못하는 문제에 고통당하는 여러분들을 주님은 더욱 불쌍히 여기셔서 오늘 만나주시러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은 우리의 누운 것, 우리의 질병, 우리의 고민을 보십니다.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주님은 우리의 병, 우리의 문제를 잘 아십니다. 할렐루야.
주님께서 보시고, 주님께서 아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내 딸이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잘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여러분을 그냥 내버려두시지는 않습니다. 결코 그대로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오늘 이 확신을 갖기를 바랍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어리석은 질문이 아닙니까? 
병낫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질문은 낫고자 하는 꿈이 있느냐, 희망이 있느냐, 그의 회복의지를 테스트하는 말씀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마음에 간절한 꿈이 있어야 이루어집니다. 마음에 꼭 해결해야 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해결됩니다. 

베데스다 연못에서는 물이 끓어오를 때, 먼저 뛰어든 사람이 나음을 받았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물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열정으로 끓어올라야 나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 이 병은 반드시 고침받을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 주님은 내 문제를 잘 알고 계시므로, 반드시 이 문제를 풀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병이 오래면, 낫고자 하는 의지도 퇴색해버립니다. 그냥 그대로 삽니다. 고치면 좋고, 못 고치면 그대로 살다가 죽지뭐. 이런 식입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 스무번 실패하고, 넘어지면, 이제 좌절합니다. 낙심합니다. 포기합니다. 이게 보통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물으신 것입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제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대답하십시오. 진실로 대답하십시오. 정말 고치고 싶습니까? 정말 해결하고 싶습니까? 

5. 이 병자는 뭐라고 대답합니까? 7절을 보십시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그냥 “네 낫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제발 나를 좀 도와주세요.’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는 뜻으로 대답한 것입니다. 자신이 아직까지 낫지 못한 것을 남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가족도 버렸고, 친구도 버렸습니다. 아무도 그를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이게 불만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환경을 탓하고, 조상 탓하고, 친구 탓하고, 돈이 없다고 탓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장희씨가 부른 노래 가사가 생각납니다.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다.” 이런 태도가 문제입니다. 

이 사람의 대답에서 알 수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누군가 자기를 도와주기만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많이 있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어느 마을에 신앙이 독실한 의사가 있었습니다. 이 의사는 하나님께로부터 남다른 은사를 받아서인지 명의로 소문이 나있었습니다. 잠시 진찰만 해도 어디가 아픈지 알아냈고 처방도 잘해서 많은 환자들이 나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몸이 아프면 이 의사를 찾아가서 치료를 받곤 했답니다.
그런데 이분이 나이 많아 세상을 떠나게 됐습니다. 목사님과 가족들 그리고 교우들이 임종을 하게 됐습니다. 

이분이 모인 사람들에게 유언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보다 훨씬 훌륭한 의사 세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소식(小食)’, ‘수면’, 그리고 ‘운동’입니다. 음식은 위의 75%만 채우고 절대 과식하지 마십시오. 잠을 충분히 주무십시오. 그리고 열심히 걸으십시오. 그러면 웬만한 병은 다 나을 수 있습니다.”
이분이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 의사는 다음 세 약을 함께 복용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더욱 귀를 쫑긋 세우고 그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바로 ‘말씀’, ‘기도’, 그리고 ‘사랑’입니다. 말씀 약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평생 꾸준히 복용해야 합니다. 기도 약은 부작용이 없는 약이라 많이 복용할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사랑 약은 상비약입니다. 늘 준비했다가 수시로 복용하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였습니다. “육체의 건강은 반쪽건강입니다. 영혼이 건강하면 육체의 건강은 따라옵니다. 먼저 영혼이 건강하고 그리고 육체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병 고치는 약은 이렇게 다양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의 병, 영혼의 병을 고쳐야 합니다. 자포자기의 병, 좌절의 병, 절망의 병, 안 된다는 부정의 병, 어떻게 하다 보면 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의 병, 누구 때문이라는 남 탓하는 병, 할 수 없다는 불가능의 병, 이 병부터 먼저 고쳐야 합니다. 

6. 이런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38년동안 누워지내온 이 병자가 일어난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라는 뜻입니다. 가만히 누워만 있지말고, 뭔가를 시도해보라는 뜻입니다. 할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믿음으로 발을 내딛으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 던져 오늘 그가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 보라 
주의 말씀 의지하여 믿음으로 그물 던져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 없네”말씀, 그 자체에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믿고 나아갈 때, 고침받습니다. 살아납니다. 회복됩니다. 

일찍이 미국에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 생활한 김춘근 장로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가 쓴 란 책에 그의 간증이 실려 있습니다. 그는 나이 37세에 악성 간경화에 걸리게 되어 1년 밖에 살 수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하나님, 하필이면 왜 접니까?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이국 만리에서 애쓰고 고생하면서 공부해서 박사학위 받고 이제 교수가 되어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왜 저에게 이 비극적인 저주의 병이 생겼습니까?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복수가 차서 퉁퉁 부은 배를 안고 로스엔젤레스의 <빅 베어 마운틴> 기도원에 올라가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갑자기 그에게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네 핏속에 독이 있어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네 영혼 속의 독 때문에 죽는다."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간경화로 죽어가는 줄 알았는데 내 영혼이 병들어 죽어간다는 게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나간 모든 죄를 활동사진처럼 보여주셨습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 교만했고, 사람 앞에 교만했다. 너의 죄는 바로 교만이다. 네가 남보다 좀 더 똑똑하다고, 공부 잘했다고, 남보다 지식을 쌓았다고 너는 얼마나 인생을 교만하게 살았느냐? 너같이 교만한 사람은 죽어야 된다.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는 자기 자신이 '교만'이라는 죄를 지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기도 도중 자기를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세상 바라보던 시선이 주님을 향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자신을 위해 큰 비전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이제 기도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Why me! 하나님 왜 저 같은 것을 그토록 사랑하십니까? 왜 하필 저 같은 것을 찾아오셨습니까?" 물론 병도 치료됐고 그 이후 미국의 청소년과 청년들을 영적으로 무장시키는 사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베데스다, 이곳이 은혜의 집이 아니라, 예수님이 바로 은혜의 집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고침받고, 회복되고, 해결되어 새로운 인생을 사는 은혜의 역사가 오늘 여러분에게 일어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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