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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도자는 만들어진다 (요 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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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는 만들어진다 (요 13:12~17)


역사는 사람을 기다리고, 사회는 지도자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지도자의 손에서 일어납니다.  그 민족이나 집단의 앞날과 삶의 질은 바로 지도자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멸망하는 사회는 저주받은 지도자들이 만들고, 혼탁한 세상은 혼탁한 지도자들이 만듭니다.  기업의 질도 그 기업체 사장의 질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시대 그 사회의 정신을 누가 형성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도자만이 형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지도자만이 그 사회를 도덕적으로 단결시키는 상징적인 구심점의 역할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지도자만이 그 사회를 생명력 있게 하나로 묶는 응집된 가치관을 제시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지도자만이 국민의 편협한 선입관이나 분열과 갈등에서 헤어날 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잠 29:2)

놀랍게도 우리 인간은 지도자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창조되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흔히 자신의 진영에 있는 장군의 장막 안에서 결정된다고 합니다.  강이 오염되면 물고기는 자기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다 떼죽음을 당하고 맙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지도자는 보이지 않고 타락한 지도자들만 우글거리는 사회는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는 불행하게도 그런 타락한 지도자들이 폐수처럼 흘러 다니고 있습니다.  환경오염으로 사라져 가는 생태계처럼 어지러운 사회 환경, 타락한 사회 환경을 누가 만듭니까?  이 모든 것이 다 타락한 지도자들의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 이 땅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내 나라, 우리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기업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교회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지도자의 복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중의 복입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의 복을 받은 지도자나 왕이나 선지자를 가진 나라는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지도자를 가진 나라는 고난과 역경을 겪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를 잘 만나는 것이 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해야만 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의로운 지도자들이 많이 일어나도록 기도하셔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세계와 집단은 지배자가 아닌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지배자 홍수의 시대에 지도자 빈곤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도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지도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지도자, 하나님의 복을 그 집단 속에 불러들일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도자는 끊임없이 변화를 주도해야 합니다.  변화가 일어나도록 동기 부여를 해야 합니다.  그 조직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흠모할만한 감동과 감화력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길과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 거룩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변화나 개혁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이 변해야 합니다.  믿음은 변하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변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변하지 않으면 역사 속에서 도태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변해야 하지만 변질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변화와 변질은 구분해야 됩니다.  우리는 거룩하게 변해야 하지만 변질되면 안됩니다.  변질이 무엇입니까?  고유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래적인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변해야 한다고 하면서 복음의 본질을 왜곡하고 세속적으로 변하는 것은 변화가 아니라 변질입니다.

반면에 변화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전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거룩한 복음의 본질 안에서 내가 변하는 것입니다.  내 가치관이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고, 삶의 내용이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거룩하게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변질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변하십시오.  변화를 싫어하거나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역사 속에서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는 참된 개혁만이 살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에게 오늘까지 3주간에 걸쳐서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쓰임을 받는 지도자가 되자고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의미 없이 왔다가 그냥 가는 구경꾼이 아니라 역사의 한 도구가 되어서 역사의 주역이 되는 지도자가 되십시오.  다른 사람들보다 한 발 앞서 나감으로써 내 가정과 사회에 희망을 주는 지도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지도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떤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까?  한 주간 동안 말씀을 준비하다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참된 지도자, 교회가 필요로 하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른 지도자는 어떤 지도자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그 대답을 확실하게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 받는 교훈은 크고 감동적인 사건이 많습니다.  특별히 그의 죽음을 앞두고 행하신 두 가지 사건은 우리들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께서 제자들과 성만찬을 나누신 일이요, 두 번째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이었습니다.  평소에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돌보시고, 불쌍한 자를 위로하시며, 굶주린 백성들에게 빵을 먹이셨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최후의 순간에는 그들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 중요한 순간에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행하셨던 두 가지 일, 그러니까 최후의 만찬과 주님께서 대야에 물을 담으시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신 후에 제자들의 발을 하나 하나 씻겨주신 일은 우리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그 손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겼습니다.  이것은 "내가 너희들을 끝까지 사랑한다"는 표적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의 풍습을 따라서 포옹을 한다든지, 악수를 한다든지, 안수를 한다든지, 아니면 입맞춤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때묻고, 냄새나는 제자들의 발을 만지시면서 씻어주셨던 것입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의 신발은 바닥만 있는 샌들을 신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러운 먼지가 발에 끼어서 발은 언제나 냄새가 나고 더럽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수시로 발을 씻어야만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잔치에 초대를 받았을 때 종들이 먼지 묻은 발을 닦아주면 방 안에 들어가서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런데 대개 발을 닦는 사람들은 종들이었습니다.  종들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천한 신분의 종들이었습니다.  낮은 신분의 미천한 종들이 발을 닦아주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 만찬 석상에는 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 중에 한 사람이 나서서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분위기가 "누가 큰 자냐?" 하고 서로 다투던 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선생님이신 예수님의 발을 닦아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친히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하나 하나 씻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나는 죽음으로써 너희들의 발을 씻는다."  이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너희들의 발을 씻어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발에 묻은 먼지를 닦기 위해서 씻은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피 흘리셔서 우리들의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와 주님이 상관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로 씻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기의 죽음으로 섬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를 죽여야만 남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자기를 죽이지 않고는 절대로 남을 섬길 수 없습니다.

발을 씻는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허물을 씻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서 낮은 곳, 허물진 곳, 더러운 곳을 밟는 것이 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발을 씻기시면서 "내가 너희 허물을 씻노라.  내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노라.  내가 너희의 더러운 것을 씻어 의롭게 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허물을 의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피 흘림을 통해서 의로워질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의로운 사람만이 남을 의롭게 할 수 있습니다.  남의 허물을 덮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여 줌으로써 상대를 의롭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생동안 사도들이 해야 할 일이며,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상대방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도자는 상대방의 허물을 파헤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도자는 상대방의 모든 허물과 잘못을 덮어주고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발을 씻는다는 것은 사랑의 표시입니다.
발은 가장 낮은 곳에 있습니다.  발을 만져주므로 가장 낮은 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표시입니다.  작은 자를 사랑으로 돌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세상에서 소외되고, 버림당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씻어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허물을 씻어주고,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억울한 한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어야 합니다.

지도자는 결코 높은 자리를 바라보면 안 됩니다.  지도자는 안락한 자리, 편한 자리, 마른 자리를 찾아서는 안 됩니다.  지도자는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더 험하고 궂은 일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아무도 찾지 않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그곳에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세 번째로, 발을 만졌다는 것은 주님의 겸손입니다.
낮은 곳을 만져주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고 섬겨야 합니다.  꼿꼿이 선 채로는 결코 발을 만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발을 섬기기 위해서는 자기가 무릎을 꿇고 발 밑으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최상의 겸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른 사람을 의롭게 만들어주고, 인정해 주고, 높여주려면 자기가 죽어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친히 자기 죽음을 통해서 남을 의롭게 하고, 높여주고, 자기 자신이 겸손해지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발처럼 살라고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머리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발 정신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지체가 다 중요하지만 발은 더욱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천지를 주관한 손으로 제자들의 머리를 안수하지 아니하고 제자들의 발을 만졌다는 사건은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대개 안수는 머리에 합니다.  구약 시대에 제사장을 세울 때 머리에 안수했기 때문에 그 전통을 이어 2천년 교회사에서 사도를 세울 때는 머리에 안수해서 세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도들을 세울 때 머리에 안수한 적이 없습니다.  발에 안수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신비한 일을 많이 하셨지만 그 가운데 첫째는 왕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린 왕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죄패에 "유대인의 왕 예수 그리스도"라고 썼습니다.  그것을 본 당시에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빌라도에게 와서 "총독이시여, 우리는 저 사람을 우리의 왕으로 모신 일이 없습니다.  자칭 왕이라고 써 주십시오."라고 할 때 빌라도가 "나의 쓸 것을 썼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왕이 됩니다.  자기가 죽어서 왕이 됩니다.  모든 왕들은 자기가 살고자 남을 죽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억압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를 죽여서 십자가에 달려 왕이 됩니다.  모든 왕들은 머리에 금 면류관을 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머리에 가시관을 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시로 찌르는 저주와 고통과 눈물과 아픔과 한을 내 머리에 씌워라.  나는 죽음으로 왕이 되노니 나를 왕으로 삼아 너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서 자유하라."
예수님은 친히 십자가에 달려 왕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왔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러 왔다.  너희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의 종이 있습니까?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종이 있습니까?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의 종은 없습니다.  한 주인을 섬긴다든지, 한 집안을 섬기는 종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종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너희가 왕처럼 으뜸이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을 섬기려고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큰 자는 섬기는 자입니다.  땅에 속한 것은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것은 내려오려고 합니다.  자기가 땅에 속한 자는 올라가려고 교만하고, 시기하고, 계속해서 인간적인 경쟁을 합니다.  그런데 하늘에 속한 자는 하늘로부터 내려올 수밖에 없습니다.  더 올라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땅을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섬기는 왕을 말합니다.  왕은 모든 백성을 다스리고 모든 백성을 도와주는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에 속한 자가 되십시오.  내가 하늘에 속한 자가 되면 그때부터 자기 존재는 섬기는 자가 됩니다.  낮은 것은 올라가려고 하지만 하늘에 속한 것은 올라갈 것이 없습니다.  내려올 것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자기 존재를 위대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가장 큰 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발처럼 사십시오.  우리는 발처럼 살아야 할 주님의 중요한 가르침을 받습니다.  발은 우리 지체의 모든 것을 홀로 담당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중한 모든 지체를 발이 버텨주고 있습니다.  무거운 짐 나 홀로 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겠다.  너희는 자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가정에 돌아가서 자기 존재는 발처럼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가족들을 편하게 해야 합니다.  셀리더가 되었을 때는 무거운 짐 나 홀로 지고 셀가족들을 자유하게 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무거운 짐은 나 홀로 지고 모든 교인들을 자유하게 해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발처럼 살라는 주님의 절대적인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발처럼 낮아져서 모두를 높여 주어라"  발은 가장 낮은 곳에 있으면서 모든 지체를 다 높여줍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들어가므로 말미암아 모두를 높여주어 다른 사람들을 다 신성한 자존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일,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 된 지도자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가정에 돌아가면 남편을 높여주십시오.  자녀들을 하늘 높이 세워 주십시오.  만나는 친구들을 하늘 높이 세워주고 자신은 낮아지십시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낮아질 것이 없습니다.  낮아지고 낮아져도 내가 낮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철저하게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찾습니다.  조그만 권력이라도 생기면 그것을 휘두르고 남을 억압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도 세상 가운데 살아가면서 거기에 오염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똑같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고, 시간이 지나면 어느 새 의무는 잊어버리고 권리만을 찾으려고 합니다.  섬김을 받고, 대접받으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도자로 세움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평신도 지도자로 세움을 받으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접받으려고요?  아니면 섬김을 받으려고요?  사람들 앞에서 어깨에 힘을 주려고요?  자기 권리를 주장하려는 사람은 결코 지도자가 되어는 안 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세상의 추악하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그 모든 것들을 다 몰아내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철저하게 낮아져서 발처럼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분들을 섬기십시오.  우리 교회 안에서부터 먼저 섬기는 연습을 해 보십시오.  험하고 궂은 일은 내가 해야 합니다.  그 자리가 지도자가 서 있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야 섬기는 아름다운 영향력을 미치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여러분의 발을 만져주셨습니다.  이것은 신앙고백입니다.  십자가에 죽기 전에 여러분의 발을 닦아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발은 주님이 만진 발이며, 주님으로부터 안수 받은 발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만진 발로 땅을 디디고 서십시오.  당당하게 서십시오.  그리고 하늘을 가슴에 품고 들어가는 곳마다 모든 사람들을 만져주십시오.  모든 사람들을 높여주십시오.  모든 사람들의 허물을 덮어주십시오.  상처 나고 아픈 마음들을 싸매어 주고 저들을 격려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존재로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위대하게 만드신 거룩한 손길을 따라 지도자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영광이며, 주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막노동꾼입니다.  아주 멋드러지게 옷을 차려입고 도도한 듯이 폼을 잡고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이 아니라 옷소매를 걷어올리고 땀흘려 헌신하는 막노동꾼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이 막노동꾼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의 지도자는 막노동꾼이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들도 너무 많습니다.  일은 하지 않고 폼만 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결국 이들 때문에 사회가 거짓과 탐욕으로 혼탁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면 그들은 섬기는 자가 아니라 섬김을 받으려는 지배자가 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믿음의 사람입니까?  막노동꾼입니다.  우리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낮아져라.  섬겨라.  겸손하라.  먼저 대접하라.  자기 십자가를 져라!"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에 실천적인 삶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입술로만의 고백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섬기는 자로서 막노동꾼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무엇보다도 지도자는 지금 일하고 있는 그 조직에서 활력을 불어넣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조직이 활력을 잃어버리면 금방 무너집니다.  망하는 조직은 조직원들이 활력이나 재미를 잃었는지에 대해서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직이 일어나고 부흥하려면 활력이 넘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원들이 활력이 있어야 됩니다.  

어느 조직이든 활력이 철철 넘치지 못하면 그곳에는 불신과 불만과 권태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다시 활력이 살아나면 불만도 불평도 권태도 없어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생명력이 있고 부흥하려면 성령님이 역사하고 지도자들이 활력이 넘쳐야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철철 넘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몸된 교회 안에 창조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긍정적이고 생명력이 넘치는 분위기 메이커가 되십시오.  교회의 부흥은 나로부터 시작되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교회 부흥에 걸림돌이 아니라 교회 부흥에 디딤돌이 되고, 그 부흥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가 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지도자는 모든 조직 안에 있는 사람이 굳어지는 것을 막아야 됩니다.  우리 몸 속에 있는 피가 굳어지면 뇌출혈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조직이 굳어지면 그 조직은 서로에게 상처만 준 채 결국에는 무너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자기 스스로가 굳어지지 않으려고 힘쓰고 애를 써야 됩니다.  어떻게 하면 조직의 굳어짐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먼저는, 조직의 내부 갈등을 치유해야 합니다.
내부의 갈등은 그 조직의 활력을 죽어가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에 갈등이 일어나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디를 가든, 어느 조직이든 거기에는 나름대로 그들만의 문턱은 다 있습니다.  문턱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이 문턱을 다른 말로 하자면 소위 기득권이라고 할 것입니다.  인간이 사는 모든 곳에는 기득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턱이 높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먼저 온 자는 그 문턱을 최대한 낮추려고 힘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뒤에 오는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고 좀 더 쉽게 조직 안으로 넘어 올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온 사람은 그 문턱 앞에서 절망하고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문턱을 넘고자 하는 수고를 하셔야 합니다.  그 조직 속에서 하나가 되고자 하는 자기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노력이 없다면 그 조직은 활력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비난과 분열과 어둠의 그림자들이 난무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영적인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내부의 갈등은 인간적인데서 옵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가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이기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육신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이 갈등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역사가 일어나야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더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종교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는 영적인 사람들이 함께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절대적으로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교회 안에서 인간적인 방법들이 활개를 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쓰시는 참된 지도자는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불나방처럼 돌아다녀서는 안 됩니다.  참된 지도자는 내가 선 그곳에서 자기 목숨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렇습니다.  지도자는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자기가 죽어야 하는 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죽지 않으면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아름다운 꽃이 핍니다.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세 번째로, 그 조직의 굳어짐을 막기 위해서는 사명과 꿈과 비전이 있어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대는 갑니다.  역사도 가고 사람도 흘러갑니다.  그러나 어떤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가졌던 꿈은 영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교회가 갖고 있는 사명과 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과 꿈을 내 것으로 붙잡고 일어나야 합니다.  그 사명과 꿈에 끝없이 미쳐 살아야 됩니다.  그 사명과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전 존재를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사명과 꿈을 이루기 위해서 후회 없이 살아보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그가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지도자는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모든 조직도 결코 완성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꾼들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순종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지도자는 된 사람이 아닙니다.  되어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지도자적 자세는 끝없이 배우고 익히는 겸손함과 순종이 있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지도자는 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리더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일을 돕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지도자는 자기 철학과 자기 방법을 그 조직에 심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목사가 교회에서 목회를 보다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지도자를 세운 것도 사도들이 목회에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지도자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조직에게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다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것을 내 것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조직의 분위기가 일어나고 부흥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영웅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영웅을 조련한 조련사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멘토라고 말합니다.  멘토의 역할은 첫째, 코치입니다.  코치는 어떤 수준을 제시하고 거기까지 가도록 하고, 그 수준이 됨에 있어 본을 보이고 그 지경을 넓혀주어야 합니다.  둘째, 카운슬러입니다.  그 수준까지 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조언을 해주는 것입니다.  셋째, 인도자입니다.  모든 일에 강점과 약점을 끝없이 이끌어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위대한 사람의 배후에는 훌륭한 멘토가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모델로 끝나지 말고 멘토가 되어야 합니다.  한 번 자기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내가 키운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를 말입니다.  지도자는 내 주변에 나와 함께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팀을 만드는 데 생명을 걸어야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지도자를 바로 세우고 지도자를 든든하게 할 수 있도록 함께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팀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세도 아론과 훌이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예수님도 열두 제자라는 팀이 있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도 팀을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위대한 역사는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디를 가든지 팀을 만드는데 생명을 거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지도자는 일시적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주역들은 계속 바뀝니다.  새로운 세계를 자꾸 전승하는 것입니다.  결국 지도자란 팀을 만들어주고 끝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싹쓸이 시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나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겠다는 독불장군식의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혼자서 할 때보다 더불어 합력해서 일할 때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함께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만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방법만을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자세는 결코 바람직한 지도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자기 방법만을 고집하려는 사람은 지배자는 될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결코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도자는 다양성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꽃동산이 아름다운 것은 꽃의 크기와 모양과 색깔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저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다양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협력할 때 아름다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도, 인간들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멋진 작품은 바로 이러한 차이점을 통해서 완성할 수가 있습니다.

그 차이점을 섬길 수 있는 마음,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 마음, 차이점을 존경할 수 있는 마음, 그 차이점을 통해서 배우려는 마음, 그 차이점을 통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역사의 새로운 시대에 도전하고, 그 차이점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를 열려고 하는 마음, 그런 겸손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의 앞선 한 발이 내 집안의 운명을 바꾸십시오.
나의 앞선 헌신이 내 아이들에게 꿈과 사명을 붙잡게 하는 통로가 되게 하십시오.
이 교회에서 자라난 여러분의 아이들, 우리의 아이들이 훗날 세월이 흘러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 이곳에서 우리들이 몸부림치며 신앙생활 했던 그 흔적들을 볼 수 있게 하십시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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