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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항상 있어야 할 세 가지 (고전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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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있어야 할 세 가지 (고전 13:13)


공부 잘 하는 학생이 상을 받듯 예수를 열심히 잘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사입니다. 은사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대로 방언이나 예언 그리고 신유와 잘 가르침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은사는 어떤 방면의 탁월함을 의미합니다. 남이 못하는 것을 받으며 사람이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을 뛰어넘는 능력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으면 그리고 그 은사를 잘 활용하여 살면 삶이 형통해지고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제 평생에 제가 제일 열심히 잘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를 열심히 다닌 것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무슨 설문지를 작성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설문지에 취미와 특기를 묻는 난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두 난에 모두 ‘교회 다니기’라고 써 넣었습니다. 장난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써 넣었습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기는 제 취미였고 특기였습니다. 

교회가 좋아서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에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았습니다. 은사를 받았습니다. 제가 스스로 이렇게 이야기하면 교만할 수 있지만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은사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와 함께 어렵고 힘든 일을 쉽게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은사도 받은 것 같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어린아이에게 예수님의 십자가가 어떻게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전도사 시절 실제로 그렇게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안식년을 하던 재작년은 제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예배당으로 사용하던 학교 강당을 비워 달라는 공문은 제게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참 풀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쉽게 그리고 잘 풀었다고 저는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잘해서 교회를 굳건히 발전시켜야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위기 때문에 높은 뜻 교회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겨우 무너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보통의 교회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일들을 경험하며 건강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문제를 쉽게 이해하고 풀어내는 은사 덕을 저는 보았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얻기 위하여 힘쓰고 노력하고 특별히 공부한 적이 없었으니 만일 그와 같은 은사와 재능이 제게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제게 주신 상 즉 은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제 삶이 이만큼 형통하고 목회가 이렇게까지 분에 넘치게 풀리게 된 이유도 그 은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은사이기 때문에 자랑할 수 없습니다. 제게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은사를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성으로 예수를 믿지 마시고, 부담없이 교회 다니지 마시고 예수 믿는 일에 한번 열심을 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적극적으로 예수를 한번 믿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gifted) 은사를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풀리지 않고 무겁고 힘드시다면 그 까닭은 세상을 여러분의 힘과 능력만으로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일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덧입어 세상을 살아간다면 세상은 생각처럼 그렇게 힘들고 어렵지 않습니다. 세상이 힘들고 어렵고 안 풀리면 세상에 힘쓰지 마시고 하나님께 힘쓰기를 바랍니다. 은사를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사를 받은 후 그 은사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일을 한다면,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그 은사를 활용한다면 여러분은 힘든 세상에서도 승리하고 성공하는 사람이 되실 수 있으실겁니다.

자신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고, 돈과 권력을 의지하고 살면 풀리는 듯 싶다가 더 꼬이고 어려워 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면,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 살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를 받아 그 힘과 능력으로 살면 태산과 같은 일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고 하여도 힘들고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게서로다.> 아멘. (시 121편)

대학교 수업 중에 선택과 필수가 있듯이 은사에도 선택과 필수가 있습니다. 선택은 모든 사람이 꼭 들어야만 하는 과목은 아닙니다. 그러나 필수는 모든 사람이 꼭 들어야만 하는 과목입니다. 은사는 다양한데 사람마다 다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은사를 또 어떤 사람에게는 저런 은사를 주십니다. 한 사람이 모든 은사를 다 받아야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이런 저런 은사를 한꺼번에 몰아주시지도 않습니다. 여러 가지 은사가 다 필요하지도 않고, 또 만일 그렇게 된다면 교만하여 질 수 있어서 위험합니다.

선택과 같은 은사는 그냥 하나님을 열심히 믿다가 하나님이 주시는대로 받으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잘 활용하기만 하면 됩니다. 은사를 받고도 은사를 활용하지 못해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과 직업을 택할 때 은사를 좇아 택하지 아니하고 욕심을 좇아 자기의 은사와 맞지 않는 일을 택한 경우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음악의 은사를 주셨는데 음악이 큰 돈이 되지 않는다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예를 들자면 미술과 같은 일을 욕심으로 선택하게 된다면 그는 평생 고생하며 살게 될 겁니다. 저는 목회를 선택한 것이 평생에 가장 잘 한 일입니다. 그것이 제 은사와 꼭 맞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일 은사를 좇지 않고 욕심을 좇아 제 전공과 직업을 택했다면 아마 평생 고생하고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은사에도 필수와 같은 은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라고 되어 있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나 항상 있어야만 하는 필수적인 은사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방언의 은사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나 다 예언의 은사를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누구나 다 병고치는 은사를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와 같은 은사는 항상 있어야 할 은사는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의 은사와 소망의 은사와 사랑의 은사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항상 있어야만 하는 은사입니다. 이 은사는 사모하여야만 합니다. 그 은사는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라도 받아야만 하는 은사입니다. 우리가 욕심내야만 하는 은사입니다.

믿음은 은사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 하였습니다. (엡 2:8) 믿음의 은사를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하나님이 안 믿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안 믿어집니다. 이해가 되지 않고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믿고 따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은사를 받으면 믿어집니다.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믿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것 이상의 축복은 없습니다. 세상의 가장 큰 축복 중의 축복은 하나님과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어지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분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몸은 교회에 있으나 믿음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믿음의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하나님을 닮지 못하고 세상을 닮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름만 교회지 세상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교회가 세상에는 참 많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은사는 필수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라도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은사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믿음의 은사를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은사를 받게 되면 여러분은 딴 세상을 경험하시게 될겁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가끔씩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은사를 받으면 믿는대로 되는 놀라운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딴 욕심 부리지 마시고 믿음을 욕심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소망은 은사입니다. 소망이 은사인 까닭은 세상이 절망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소망적이라면 소망은 은사일 수 없습니다. 키에르케고르라고 하는 철학자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언제나 절망적입니다. 우리는 그 절망을 피하여 살 수 없습니다. 절망이 언제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은 더욱더 절망적인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이어 자살을 하여 세계는 우리나라를 자살 공화국이라고 부릅니다.

절망의 상황은 믿는 사람에게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상황은 똑 같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소망의 은사를 받는다면 절망의 상황은 아무 의미도 없게 됩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

절망이 죽음에 이른 병이라면 소망은 생명에 이르는 약입니다. 탈북자를 위한 공장을 세우고 한 달에 몇 천 만 원씩의 적자가 나고 있을 때 가장 많이 마음으로 불렀던 찬송은 260장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 저녁까지 씨를 뿌려 봅시다’라는 찬송이었습니다. 참 마음에 와 닿았던 가사는 ‘씨를 뿌릴 때에 나지 아니할까 슬퍼하며 심히 애탈찌라도’라는 가사였습니다.

어느 때는 제가 인간적으로 참 한심해 보였습니다. 그런 애타는 마음 없이도 얼마든지 편히 잘 지낼 수 있는데 누가 시키지도 않는 일을 저질로 놓고 이렇게 애가 타서 쩔쩔매는 제가 저도 참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마음에 와 닿는 가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중 예수께서 칭찬하시리니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라는 가사였습니다. 지금은 나지 아니할까 슬퍼하며 심히 애타지만 나중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될 것이고 그것을 예수님께서 칭찬하실 것이라는 내용의 가사는 제게 소망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제게는 꿈이 있습니다. 비전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된다고 하고 불가능하다고 하여도 탈북자들에게 투자하여 기업을 이루고 저들이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을 재건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저들이 북한을 복음화하는데 쓰임받는 좋은 토양이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세 공장 중에 두 공장은 흑자로 전환 되었습니다. 나머지 한 공장도 곧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룬 성공은 살얼음판 같은 성공입니다. 이게 언제 뒤집혀 또 어려움이 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이끌고 나가는 힘은 좋은 상황에서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소망의 은사에게서 옵니다. 소망은 은사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다 이 소망의 은사를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망의 은사를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도 은사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여러 가지 은사를 받고 어느 은사가 큰 은사인가를 가지고 실갱이할 때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 제일 큰 은사는 사랑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장 큰 은사 즉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라면서 그 유명한 고린도전서 13장을 쓴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사람 뿐 아니라 온 세상이 다 그렇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있습니다. 큰 범고래를 조련시켜 춤추게 하는 힘이 칭찬 즉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사랑의 능력이 부족합니다. 죄 때문입니다. 죄의 뿌리는 이기적인 욕심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셨는데 죄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게 합니다. 사랑에 반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은 은사입니다. 사랑의 은사를 받지 못하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랑하는 부부가 서로 이혼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여 결혼까지 하였지만 사랑의 은사가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할 수 없게 되어 서로 상처만 주다가 이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의 자식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본능적으로 사랑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은사를 받지 못한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를 사랑할 줄 모릅니다. 안타까운 것은 저들은 자기가 자식을 사랑할 줄 모른다는 것을 모릅니다. 사랑할 줄 몰라 자녀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면서도 자기는 자식을 사랑한다고 확신합니다.

사랑할 줄 모르기에 사랑 받을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외로워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은사입니다. 사랑은 은사 중에 가장 큰 은사입니다. 우리가 사모해야만 할 은사입니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알게 되고, 세상을 사랑할 줄 알게 되고, 자연을 사랑할 줄 알게 되고, 동물과 식물을 사랑할 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할 줄 알게 되면 그 어디나 하나님 나라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은사를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사 없이 맨 힘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피곤한 일입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상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교회에 열심인 사람들에게 그 상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힘들고 어려울 때 세상에 힘쓰기 보다 하나님께 힘을 쓰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힘들고 어려울 수록 더 교회와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열심히 예배하고, 더 열심히 교회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고 공부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상인 은사를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은사를 최대로 활용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쉬워 지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항상 있어야만 하는 필수적인 은사를 사모하십시오. 믿음의 은사를 사모하십시오. 소망의 은사를 사모하십시오.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십시오. 그리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떠한 상황이 된다고 하여도 그것과 전혀 상관없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승리의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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