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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의 차원 (단 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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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차원 (단 6:1~10)


유명한 발명왕[토마스 에디슨]을 우리는 잘 압니다. 어느 날 여행을 하게 되는데 기차 안에서도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그만 약병 하나가 떨어지면서 이게 화학작용을 일으켜서 불이 났습니다. 그 동안에 연구해 왔던 자료가 몽땅 타버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몸도 위험하게 됐을 때 차장이 달려와서 그를 차창 밖으로 밀어버립니다. 결국 생명은 보전했습니다만 그때 다쳐서 귀가 멀고 맙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평생 많은 연구를 했고 많은 발명을 해서 발명왕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많은 연구를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귀머거리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나는 듣지 못하기에 내가 하는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가 문제입니다.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감사가 되기도 하고 원망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잘 산다고 무조건 복이 아니지요. 가졌다고 그 모든 것이 복이 아닙니다. 출세했다고 다 복은 아닙니다. 형편이야 어떻든지, 가졌든지 못 가졌든지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하면 바로 그것이 복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다니엘의 감사기도가 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할 때 포로로 끌려 간 사람입니다. 역사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젊은 사람 오만 명이 포로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다니엘]도 있었는데 비록 포로였지만 지혜가 있고 워낙 총명해서[느브갓네살]왕이 그를 정치가로 삼아 자기 곁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제국이 무너지고 메대의[다리오]왕이 바벨론을 치리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리오]왕 역시도 [다니엘]의 총명과 지혜를 귀하게 여겨서 정치가로 쓸려고 합니다. 그런데 [다리오] 왕이[다니엘]을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로 임명하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다니엘을 헐뜯고 갖은 음모로 모함하는데 오늘 본문에 올무를 걸었습니다.  

7절에 나옵니다.“이제부터 30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금령에 다리오 왕의 도장을 찍게 했습니다. 바로 다니엘을 겨냥한 음모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보면 다니엘은 그 사실을 알고도 집에 돌아가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것은 늘 다니엘이 하던 일이었습니다. 10절 말씀을 보면“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다니엘은 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진실 되게 살았습니다.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충성되게 살았는데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된다면 원망거리가 충분히 있는 사람입니다.“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진실 되게 살았는데 왜 이렇게 죽어가야 하는 것입니까?”하고 원망할 만하지요. 

그러나 다니엘은 그러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죽음이 눈앞에 있습니다. 기도 하는 것 잠깐만 쉬면 목숨을 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쩌면“죽는 것은 아무 상관없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산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하는 생각으로 늘 살았던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담담합니다. 사람이 이 상황을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되려면 평소 그 마음에 얼마나 감사하고 기도하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폴 틸리히]라고 하는 신학자는<존재의 용기>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신앙이란 용기”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이성적 비판이나 판단, 상황 모두 다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고 떨치고 일어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용기, 여기에 다니엘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다니엘의 감사 내용을 가만히 보면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는 체질화 된 감사였다는 사실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10절 말씀을 보면“전에 하던 대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무엇을 의미합니까? 어느 날 갑자기 감사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가 체질화 된 다니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감사라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감사는 체질이 되어야 되고 성품이 되어야 됩니다. 보세요, 이런 것입니다. 오랜 동안 같은 행위가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오래가면 성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번 감사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감사하지 않는 게 체질화 되어서 영영 감사하지 못하고 맙니다. 

그러나 작은 일 하나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감사가 체질화 되어서 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감사는 어느 순간에 돌발적으로 있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일에도 원망 없이“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할 줄  알아야합니다. 이게 체질화되게 하는 훈련입니다.

요즘 가끔씩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차원을 보게 됩니다. 어른이 무엇을 주면 꼭“고맙습니다.”혹은“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라고 시키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인사 안 하면 주지 못하게 합니다. 참 독하다 싶지만 저는 이거 참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감사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감사는 체질화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이건 올바른 교육입니다. 

그렇게 감사가 체질화 되어 있는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주는 사람도 기분 좋게 합니까? 배꼽에 손을 모아서 대고는“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그러면 그런 아이들 보고 누가 또 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어른이 뭘 주면 한손으로 쑥 뺏어가듯이 하면서 얼른 도망갑니다. 그 앞에서는 뭐라 못합니다만 대부분의 어른들이 순전히 속으로만‘어미 애비가 교육 참 더럽게도 시켰다.’그럽니다. 주면서도 기분이 상쾌하지 않습니다. 감사가 체질화 되어야 언제든지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다니엘은 감사가 체질화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 다니엘의 감사는 일상화된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10절을 보면“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그랬습니다. 시간을 정하고 꼭 그 시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감사하는 것을 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365일 새벽기도회 한번도 빠뜨리지 않고 참석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여기서 또한 다니엘의 훌륭한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조건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조건에 따라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결단으로 일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정해놓았다는 것은 조건에 따라 바꾸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할 만한 조건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무조건 감사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조건으로 말한다면야 지금 다니엘이 감사할 일이 아니지요. 죽음이 눈앞에 있는 걸 알면서 당당하고 비굴하지 않게 공개적으로 하루에 세 번씩이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까? 

조건으로 따지자면 이 보다 더한 악조건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니엘의 감사는 조건에 의하여 달라지는 감사가 아니라 신앙으로 일상화된 감사였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일상화된 감사가 있어야합니다. 이래서 감사하고 저래서 감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일상화된 감사가 있어야합니다. 말하자면 무조건적인 감사입니다. 

[앤드류 마리아]라는 사람이 쓴 <이야기 속에 담긴 진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천국에 도착하자 예수님의 수제자이었던[베드로]가 그를 맞았습니다. 베드로는 천국을 두루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첫 번째 방으로 들어간 베드로는 걸음을 멈추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여기는 접수부라네.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온갖 청원들을 이곳에서 접수한다네.” 많은 천사들이 지구 도처 사람들이 보내온 두툼한 분량의 종이에 적힌 온갖 청원들을 분류하느라고 대단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방에 들어갔습니다. 이곳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천사들이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설명해 주었습니다.“여기는 포장 및 발송 부라네. 사람들에게 보내 줄 은총과 복된 선물들이 이곳에서 포장되어 지구에 있는 사람들에게 발송되는 거지.” 정말 지구로 보낼 선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리고 둘은 가장 후미진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부서로 가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이곳은 단 한 명의 천사가 한가롭게 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설명했습니다.“이곳은 확인 부라네.”, “그런데 어째서 이곳은 조용하고 일거리가 없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해 주었습니다. “서글픈 일이지. 이곳은 지구에 있는 사람들이 기도로 부탁한 선물들을 받았다는 확인서를 접수하는 곳인데 확인서를 보내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 

궁금해진 이 사람이 물었습니다.“하나님의 선물을 받았다는 확인서는 어떻게 보내는 건데요?”하고 묻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아주 간단하다네. 그저‘주님, 감사합니다.’하면 되는 거지. 그런데도 확인하는 사람이 그렇게 없다네.”하고 슬픈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봅시다. 의의 세계, 믿음의 세계를 생각하고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또 받게 될 은혜를 생각하십시다. 세상을 보면 원망합니다. 이웃을 보면 불평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보고 모든 것을 볼 때 오로지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 감사가 체질화되고 일상화 될 때 다니엘처럼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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