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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가진 것으로 감사하세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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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으로 감사하세 (마 25:14~30)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미국개척의 역사는 청교도들의 눈물의 감사로 시작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은 항해술이 발달되지 않았던 1620년에 오직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을 향해 출항했습니다.

146명을 실은 180톤의 메이플라워호는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 117일간의 험난한 항해 끝에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추위와 식량부족, 그리고 전염병까지 돌아 다음 해 봄이 되기 전에 그들 중 44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더군다나 신대륙의 기후와 토양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씨앗을 뿌려 첫 농사를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원주민 인디언들이 어려운 처지에 있던 청교도들을 도왔습니다.
인디언 추장인 사모세트는 몇 가지 씨앗과 재배기술을 알려주었습니다.
다음해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들의 햇곡식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에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것이 신대륙에서의 첫 추수감사절이 된 것입니다.

그때 청교도들은 일곱 가지 감사의 제목을 고백했습니다.
첫째, 180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이지만 그 배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둘째, 평균 시속 2마일로 항해했으나 117일간 계속 전진할 수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셋째, 항해 중 두 사람이 죽었으나 한 아기가 태어났음을 감사합니다.

넷째,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감사합니다. 
다섯째, 여자들 몇 명이 심한 파도 속에 휩쓸렸지만 모두 구출됨을 감사합니다.
여섯째, 인디언들의 방해로 상륙할 곳을 찾지 못해 한 달 동안 바다에서 표류했지만 결국 호의적인 원주민이 사는 곳에 상륙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곱째, 고통스러운 3개월 반의 항해 도중 단 한명도 돌아가자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음을 감사합니다.

청교도들이 처음 감사의 예배를 올렸을 때 그들은 풍성한 수확과 좋은 환경에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넘쳐나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옥수수와 감자 몇 개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때에 하나님께 감사했던 것입니다.
황무지이지만 씨앗을 뿌렸을 때 용케도 싹이 나게 하신 하나님, 심한 추위가 몰려왔을 때 바람이 스며드는 통나무집이지만 몸을 은신할 수 있는 집을 주신 하나님, 생명을 위협하는 인디언들 가운데서도 농사법을 가르쳐준 착한 원주민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없는 것 중에서 있는 것을 애써 찾아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 정신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유명한 달란트 비유의 말씀입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각각 한 사람에게는 5달란트를, 2달란트를, 1달란트를 주었습니다. 
달란트란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은사, 재능, 역량’등을 말하는 것이지요.
달란트는 각각 그 재능대로 주어졌습니다. 

학문에 재능이 있는 사람과 재능이 좀 부족한 사람, 사업에 재능이 있는 사람과 재능이 좀 떨어지는 사람, 기술에 재능이 있는 사람과 손재간이 없는 사람, 예술에 재능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활동적인 사람과 사색적인 사람 등 사람마다 그 재능이 다르고, 그 소질이 다르고, 그 관심 있는 분야가 다릅니다. 

그것에 따라서 달란트가 주어졌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이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달란트의 크고 작음이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인으로 우리 마음에 확실히 새겨두어야 합니다.
달란트가 많다고 귀한 사람이고, 달란트가 적다고 천한 사람이 아닙니다. 

달란트가 많다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고, 달란트가 적다고 살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달란트가 많다고 뽐낼 일이 아니고, 달란트가 적다고 사기가 죽을 일도 아닙니다. 
수년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회계합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칭찬을 받았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책망을 들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오늘의 설교는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 집중하고자 합니다. 

1.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달란트를 땅에 묻은 사연

 본문 마25:18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을까요?
그 이유를 생각해봅니다.

①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열등감에 무너졌습니다. 
“왜 나만 이렇게 적게 주는가?”
“다른 사람은 성격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능력도 있고, 얼굴도 잘 생겼고, 남편도 잘 만났는데 왜 나만 이럴까?” 
열등감은 우리의 삶을 시들게 하는 사탄의 장난입니다. 
열등감은 나를 괴롭히고 파괴하고 불행하게 만듭니다. 
암이 우리의 육체를 파괴한다면 열등감은 우리의 정신을 파괴합니다. 
아주 무서운 정신적인 암입니다.

40대가 되면, 열등감에서 어느 정도 해방됩니다. 
무감각하게 되거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하지요. 
그러나 10대, 20대, 30대에는 얼마나 열등감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지 모릅니다. 
공부 때문에, 외모 때문에, 가정환경 때문에, 친구 때문에….
저의 사촌 누님이 했던 얘기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그 누님은 공부는 잘했는데 얼굴은 보통이었습니다. 
하루는 자기보다 예쁜 친구하고 어디를 가는데 앞에 초등학교 동창인 남자친구가 가더랍니다.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척을 했는데 그 남자 친구가 뒤를 돌아보면서 자기 옆에 있는 예쁜 여학생한테 눈이 고정되더라는 것이지요.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그냥 집으로 뛰어왔다고 했습니다. 
여자 교우 여러분! 그 심정 이해하시겠지요?
청년부 수련회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청년들한테 물어보았습니다. 
“여러분, 이제까지 지내오면서 열등감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 한번 손들어 보세요?” 
한 사람도 손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열등감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랬더니 거의 대부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이런 고통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우리 부모들은 조금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② 본문을 보면, 이 열등감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발전했습니다.
24절에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말합니다.
“…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수전노’라는 말씀이지요. 
‘나도 남들처럼 주시지…. 구두쇠처럼....... 그게 그렇게 아깝습니까?’ 이런 얘기지요. 
주인을 향한 원망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렇습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부모를 원망하고, 선생님을 원망하고, 친구를 원망하고, 가족들을 원망하고, 환경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입을 열면 감사하다는 얘기는 한마디도 없고 그저 원망뿐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지요!
여러분,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의 입에 감사를 더 많이 담았습니까 아니면 원망을 더 많이 담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열등감에서 벗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비로소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수요예배 때 말씀 들렸잖아요.
저는 강원도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시골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후 성령께서 얼마나 큰 비전을 주셨든지 가슴이 벅찼습니다. 
저의 눈에 그 높은 백두대간이 높지 않았으며, 그 넓은 동해 바다가 넓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그 인상이 강열했으면 지금까지 기억하고 말씀드리겠습니까?
열등감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는데........
하나님이 저의 아버지신데........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열등감에 무너졌습니다. 
열등감 때문에 죽고 싶은데 장사할 의욕이 났겠습니까? 
그러니까 땅속에 묻어둘 수밖에!
열등감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2. 가진 것으로 감사하세

마25:29절에 주님께서 달란트 비유를 마치시면서 결론적으로 한 말씀이 나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말씀은 얼른 들으면 오해하기 쉬운 말씀입니다. 
“이기적인 사람도 없는 사람에게는 더 주고, 있는 사람에게는 덜 주는데, 사랑이 많다는 하나님께서 없는 사람에게 더 줘야지 없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 있는 사람에게 더 준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나님은 균등분배도 모르시나?”
“성경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이런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뜻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지금 가진 것을 고마워하고 감사할 때에는 하나님이 더 축복하셔서 그 삶이 더 풍요로워지고, 사람이 지금 가진 것을 알지 못하고 없는 것에 집착하여 불평하고, 원망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없어져서 그 삶이 메말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가진 것으로 감사하세’입니다.

민 11:4-6절에 보면, 중얼거리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무엇 때문에 중얼거리느냐 하면, 저들이 애굽에 있을 때에는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었는데 지금 광야에는 그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황량한 광야에서, 밭 한 떼기 논 한 마지기 없는 곳에서, 하나님이 만나를 주셔서 먹고 살게 하신 것을 생각하면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런데 그들은 손에 쥔 만나를 감사하지 않고 손에 없는 부추, 파, 마늘을 생각하면서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이때 중얼거리던 사람이 광야생활이 끝날 때까지 중얼거립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겠어요? 
그들은 중얼거리다가 광야의 모래밭에 다 묻히고 말았습니다.
단 한사람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현재 있는 것으로 감사하고, 현재 가진 것으로 고마워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감사할 수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모자람을 따진다면, 부족함을 찾는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될까요?
‘내 인생에 부족함이 없다.’라고 말할 때가 인생 중에 있을까요?
천만에! 
그런 때는 없습니다.

부족함을 채워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하여 부족함을 채우려고 한다면 우리는 평생 헉헉거려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거지의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지금 없는 것에 생각이 집중되고, 지금 없는 것 때문에 원망하고, 지금 갖지 못한 것에 마음을 더 쓰는 것을 거지의식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허우대가 멀쩡해도 정신적으로 거지입니다.
거지는 “이제 됐습니다.”라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 
거지는 자기 깡통에 밥이 철철 넘쳐도 손을 내밉니다.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거지 의식에 사로잡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지의식에 사로잡히면 90만원이 있더라도 90만원이 있다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100만원을 채우자면 10만원이 더 있어야 할 텐데.......’ 하고 속상해합니다. 
또 9,000만원이 있으면 9,000만원이 있다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1억이 되자면 아직 1,000만원이나 모자라는데........’하고 전전긍긍합니다. 
여러분의 의식을 한번 분석해보십시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거지의식을 가지면 삶은 삭막해집니다.
3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는 말은 행복하고는 거리가 멀지요?
가진 것을 보고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여러분, 한국의 첫 우주인 이소연씨를 아시지요?
그는 훌륭한 크리스천인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서 생존하려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숨 쉬는 일, 밥 먹는 일, 화장실 가는 일, 심지어 앉아 있기 위해서도 압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어마어마한 돈과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하지만 지구에서는 그런 비용이 필요 없잖아요. ‘지구는 정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귀한 선물이구나!’라는 감사의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어마어마한 지구를 공짜로 주셨는데 사람들이 ‘이것도 안 주시네. 저것도 안주시네.’라고 불평만 하는 것을 들으신다면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실까요? 

지금 가진 것, 지금 있는 것으로 감사합시다! 
자식이 잘 되는 일이라면 어떤 희생도 기쁘게 감당하시는 부모님이 계심을 감사하십시오. 가족과 가정을 위하여 새벽에 나가 땀을 흘리는 남편이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가족의 건강을 위하여 식탁에 반찬 하나라도 더 올리려는 아내가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아침에 일어나 신선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실 수 있는 생명이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날이 밝으면 나가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가족들이 한데 모여 오순도순 살아가는 보금자리가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이러쿵저러쿵 하지만 그래도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이웃이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이렇게 아름다운 예배당이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가진 것이 있음을 알고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더 풍족한 삶으로 축복해주십니다.

복음성가-모든 것 감사

(우리가 자주 부른 찬양입니다. 익숙하다고 건성으로 부르지 말고, 가사를 생각하면서 고백합시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 자신을 살펴보나 주변을 둘러보면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입을 것도 풍부한데 감사하는 마음은 점점 더 줄어가고 있습니다. 
말세의 특징 중의 하나가 “감사치도 아니하는 것”인데, 정말 말세가 되어서 그런지 가는 곳곳마다 원망과 불평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감사한 마음으로, 감사의 말을 하며, 감사의 보답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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