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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말 감사합니까? (욥 6: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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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합니까? (욥 6:2~10) 
 

1. 복은 어떤 사람에게 오는가?

하는 일마다 다 잘 되고, 별다른 어려움이나 사고나 질병이 없어서, 그래서 행복을 느끼고 감사의 마음을 가진다면, 행복해 하는 사람이나 감사하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는 것이 잘 되는 일이나 좋은 일이나 웃을 일보다는 그 반대의 일들이 더 많기 때문이고,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들까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心理學者이자 哲學者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년~1910년)는 이와는 전혀 반대되는 주장을 했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고,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 즉 웃을 일이나 행복을 느낄 일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웃을 일이나 행복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먼저 웃으면 행복은 따라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인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와 같은 뜻의 주장을 한 것이죠.

“현대 미국의 양심”이라고 불리는 ‘노먼 커즌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원래 유명한 잡지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기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생존율 0.2%밖에 안 되는 不治病에 걸렸습니다. 0.2%라고 하는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할 것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그가 主治醫의 도움을 얻어 아주 색다른 치료법으로 자신을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소위 “웃음 치료법”이었습니다. 그는 ‘웃음이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고서는 각종 코미디 영화와 유머집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배를 잡고 웃었고,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서 하루 종일 웃었습니다. 그 결과 진통제와 수면제 없이도 편히 잠을 잘 수 있었으며, 나중에는 병이 완치되었습니다. 이렇게 웃음의 효과를 체험한 그는 “웃음은 유효기간이 없는 최고의 약”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웃음의 치유력>이라는 책으로 出刊했습니다. 

이 “웃음”의 기독교적인 표현은 “감사”입니다. 웃는 것은 감사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나는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상황에 있다’고 하시거나, ‘지금의 처지에서는 도저히 감사할 수 없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지금 말씀드린 대로 한다면 그런 분들은 앞으로 웃을 일도 행복해 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과 오늘 여러분 모두는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의 주인공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최악의 상황에서 한 감사가 최고의 복으로!

1) 그의 감사의 이유

우리가 읽은 <욥기>라는 성경은 ‘욥’이라는 實存 人物의 일생 가운데 가장 어두웠던 때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러한 욥기를 읽다보면, 묻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이렇게 교회 다니며 신앙생활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 이 질문을 먼저 던진 존재는 사탄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향하여 대들고, 성도들을 고소하면서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요, 여러분들을 이 세상과 삶의 현실 속에 파묻혀 삶의 복을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그가 욥에 대해서 시비를 걸었습니다. 왜냐하면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기 때문입니다(1). 

이것은 하나님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이었습니다. 사탄은 바로 이것에 대해 시비를 걸었습니다. 9절,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이어서 10절,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소유물이 땅에 넘친다”는 말은 ‘재산이 너무 많아서 차고 넘친다, 감당할 수가 없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增殖하고 있다’는 뜻이며,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울타리와 담이 되어서 욥과 그의 가정과 많은 재산을 보호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즉 욥이 하나님을 향하여 신앙생활을 잘 하고, 또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존경 받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財物의 복을 주셔서 재산이 많게 하셨고, 지금도 계속적으로 재산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친히 보호해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욥이 하나님께 잘 하고 사람들에게 잘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사탄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탄의 이런 주장에 반대하셨습니다. 욥이 복을 받아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사람들에게 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탄은 ‘욥이 재물의 복을 받아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의 모든 재산을 한 번 없애보십시오. 그러면 알 것 아닙니까?’라고 했습니다. 욥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도록, 빈털터리가 되도록 만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이 입증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욥이 남들보다 더 많은 복을 받아 부자가 되어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서 “정 그렇게 못 믿겠다면 그러면 그의 소유물을 한 번 없애보라”고 하셨습니다(12). 

자,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만약 여러분이 행복을 느끼고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도 사탄은 저와 여러분을 바라볼 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이거나, 신앙생활을 잘하면 복을 주실 것이라고 기대하고서 그런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오늘 주제대로 한다면, 만약 여러분이 감사를 표현한다면, 다 그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할만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지 그런 것이 없이는 결코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탄의 주장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탄의 주장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저는 이러한 사탄의 주장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있을 것 있고, 가질 것 가지고, 원하는 것 얻고, 그래도 조금 나아진 것이 있어서 …, 최소한 그런 것들에 대해 감사의 조건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2) 욥의 불행

‘욥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자!’ 했던 사탄의 주장이 욥에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욥은 자신의 집에 있었고, 10남매의 자녀들은 장남의 집에서 다 함께 모여 잔치를 벌이고 있었으며, 종들은 소떼, 나귀떼, 낙타 떼, 양떼 등을 돌보는 일로 바빴습니다. 

➊ 그런데 그때 갑자기 하인 중 한 사람이 급하게 달려와 보고했습니다. ‘스바 사람’이라고 ‘페르시아-아라비아’ 쪽에 살고 있는 유목민들이 욥의 일군들이 5백 겨리의 소와 5백 마리의 암나귀 떼를 치고 있는 곳에 쳐들어와서는 그것을 모두 탈취하고 종들을 다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천 마리의 소떼와 5백 마리의 암나귀 떼를 몽땅 강탈당해 갔다는 것과, 그것들을 치고 있던 종들까지 모두 죽였다는 悲報였습니다. 

➋ 이 종의 다급한 보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종이 헐레벌떡 들어왔습니다. 그는 ‘난데없이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7천 마리의 양과 그것을 치던 종들을 다 태워버렸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불은 ‘소돔 고모라’에 내렸던 것과 유사한 것이거나, 아니면 ‘갑작스럽게 발생한 화산폭발이었지 않을까’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➌ 그런데, 이 보고 역시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종이 들이 닥쳤습니다. 후에 바벨론 제국을 세우게 되는 ‘갈대아인들’이 3천 마리나 되는 욥의 낙타를 다 빼앗고 종들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 急報는 욥의 그 많던 모든 재산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욥은 거의 동시에 모든 것을 잃었다는 말이지요. 

➍ 그러나 욥의 불행은 이것으로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18절, 19절,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아마 여러분들은 미국 동남부에서 자주 일어나는 “토네이도”라는 회오리바람 때문에 온 마을과 한 지역이 삽시간에 엉망이 된 것을 TV 등을 통해서 보셨을 것입니다. 욥의 자녀들이 잔치하고 있던 곳에 그와 같은 회오리바람이 불어 집이 무너지고 10남매 모두 집 더미에 깔려 압사하고 말았습니다. 욥은 자신의 자녀들을 특별하게 사랑했습니다. 

혹시 그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마음으로라도 죄를 범하였을까봐 염려하여 그들 한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매번 번제를 드릴 정도였지요(5). 그렇게 사랑하던 자녀들이 한꺼번에 죽었습니다. 여러분, 열 명의 자녀를 한꺼번에 잃은 욥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대학시절, 함께 충청도로 농촌 봉사를 갔던 한 해 아래 후배가 물에 빠져 익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진해에서 급히 올라온 후배의 부모님이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으면서 몸부림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명도 아니고 열 명 모두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욥의 충격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 많던 재산을 잃은 것도 견디기 힘든 일이겠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사랑하는 자녀들과 가족들이 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힘을 합하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하던 자녀를 다 잃음으로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욥의 불행은 너무나 “갑자기(15,17)”, 숨 쉴 틈 없이 연속적으로(“그가 아직 말할 때에”, 16~18), 그리고 철저하게(“나만 홀로 피한 고로”, 15~17,19) 임했다는 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확 돌아버리지 어떻게 정신을 차릴 수 있겠습니까?

3) 욥의 반응

그런데요! 이처럼 불행이 갑자기, 숨 쉴 틈 없이 연이어서, 그리고 철저하게 닥친 것보다 더 놀라운 사실을 오늘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생각대로라면 지금이야말로 욥이 신앙을 포기하여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늘을 향하여 저주를 퍼부을 순간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20절부터 22절, “…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이 엄청난 일을 당하고서도 욥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그 가운데서 감사의 조건을 찾았습니다. 사단의 판단은 틀렸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남다른 복을 받아서, 가진 것이 많아서 신앙생활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욥의 고난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이 가장 괴롭고 견디기 힘들 때가 어떤 때일까요? 가장 절망스러울 때가 언제일 것 같습니까? 욥은 재산 전부와 자녀 모두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아직도 자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 한스러웠겠지만, 그래도 마지막 희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건강하다는 것, 사랑하는 아내와 친지들과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사탄도 이것을 알았습니다. 

사탄은 욥이 전 재산과 자녀들을 다 잃고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은 이유가 욥에게 아직 희망을 걸 것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마지막 한 번 더 욥을 걸고넘어지려고 했습니다. 2장 5절, “이제 …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욥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 그의 건강을 빼앗아버리는 것을 시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몸뚱이 하나 건강하면 그것을 밑천으로 뭐든 새로이 출발해 보겠다”고 다짐하던 욥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욥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온 몸을 ‘악창’이라는 피부병이 뒤덮은 것입니다. 이 악창은 소위 “바그다드 부스럼”이라는 피부병인데요. ‘Aleppo button’, ‘피부 레이쉬마디아(Cutaneous Leishmania)’, 혹은 ‘동양종기’라는 學名을 가진 병으로 중동지방에서 발병률이 높은 것입니다. 

이 병에 걸리면 처음 두 주간은 피부가 자주 빛으로 변하다가 점차 검게 되고, 상처 부위에 단단한 껍질이 앉게 되며, 심한 가려움증이 동반됩니다. 병이 進展되면 피부뿐 아니라 입, 코, 목구멍 안에까지 轉移되어서 호흡이 곤란해지고 거기서 고름이 나옵니다. 밖으로 노출된 상처에는 파리 등이 알을 낳아 피부를 썩어들게 만들어 기왓장으로 긁어도 시원치가 않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종기 자체도 무척 아프지만, 고열이 나고, 가려워서 견딜 수 없으며, 얼굴이 상하여 허물어지고 일그러져서 친구들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며, 점점 식욕이 떨어지고 기력을 잃으면서 죽어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괴로워했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욥의 부인입니다. 그녀는 하루아침에 그 많던 재산이 다 없어져 거지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이 하루 한 날 한꺼번에 죽은 참상을 겪었습니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그나마 이성을 잃지 않고 의연하게 버티어내는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마저 이 엄청난 병에 걸려버렸습니다. 밤낮으로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온 몸을 벅벅 긁고 있는 남편의 모습, 점점 새까맣게 말라 들어가면서 죽어가는 남편을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 동안 그렇게 “하나님 하나님” 하더니, 도대체 그 하나님은 뭐 하시는 분입니까?’ ‘당신처럼 순종하고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쩐다고 이런 일을 만나게 한답니까?’ 그러면서 남편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2:9). 그렇게 하고서 욥의 부인은 잠시 남편의 곁을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욥에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부인이 떠났고, 친척들과 친구들, 이웃들이나 그동안 욥에게 도움을 받던 사람들까지 모두 떠나버렸습니다. 정말 남은 것, 남은 사람 하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사탄은 욥의 재산이 다 없어지고, 자녀들을 다 잃고, 건강을 잃고, 가정이 깨어지고,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리면, 그때 욥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버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정말 사탄의 생각대로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신앙을 버렸을까요? 

놀랍게도 욥은 그런 상황에서도 신앙을 놓지 않았고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1장 20절, 21절, “욥이 …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2장 10절,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엄청난 실패나, 처절한 아픔이나, 혹은 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나타나는 증상은 ‘분노’라고 합니다. 

그런 입장이 되면 누구나 그 누군가를 향하여 저주하면서 울분을 터뜨립니다. 사탄이 볼 때 욥이 드디어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그의 신앙을 버릴 때가 되었다고 할 바로 그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남은 것이 하나도 없이 전부를 잃은 그 순간, 사탄의 기대를 져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욥은 신앙을 포기하기보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감사했습니다. 결국 사탄은 패배했습니다. 사탄의 생각이 틀린 것입니다.

욥의 그 다음 기록은, 이렇게 처절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신앙을 져버리지 않았기에, 욥은 자신이 잃은 것보다 두 배의 복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과 하나님을 향한 신뢰, 그리고 감사를 잃지 않으면 결국은 승리하고 성공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죠. 

3. 감사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

목포 찬양교회의 한 여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감사의 기도를 해야 기도가 응답되고,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집사님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남편은 매일 같이 술에 만취되어 늦게 귀가하는 술고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나도 남편 문제로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안타까워했습니다. 그 날도 人事不省이 되어 집 앞에 쓰러진 남편을 힘들게 끌어다가 겨우 자리에 눕혔습니다. 

그런 남편을 곁에 두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하려던 집사님은 갑자기 자기 신세가 얼마나 처량하든지 기도인지 팔자타령인지 분간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하나님, 나는 어쩌다가 이런 남자와 결혼해서 이 고생을 해야 합니까?” 그러면서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 어떤 경우에도 감사의 기도를 해야 응답이 온다”는 목사님의 설교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조건을 찾으려고 해보았습니다만, 도무지 감사할 것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다못해 “하나님, 감사조건 없는 것을 감사드립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억지로 감사하다보니 갑자기 옆에서 코 골며 자고 있는 남편 생각에 ‘그래도 혼자보다는 둘이라서 낫고, 언젠가는 좋은 남편이 될 가능성이 있어서 감사하고, 저토록 술에 취했어도 다른 데 안가고 집을 찾아오니 감사하고, 토요일은 술을 더 많이 마셔서 주일 날 집을 지켜줘서 감사하고, 주일 날 계속 잠만 자니 내가 교회 가는데 불편하지 않아 감사하고 ….’ 이런 감사를 하다 보니 웃음도 나왔습니다. 

그렇게 집사님은 하나 하나 감사의 제목을 찾아가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자다가 갈증을 느낀 남편이 일어나서 자기 부인이 웃으면서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을 본 남편이 고함을 쳤습니다. “한밤중에 잠은 안자고 미친 사람처럼 뭐하는 거야? 뭣 때문에 그렇게 싱글싱글 웃는 거지?” 그러자 눈을 뜬 집사님은 “당신하고 사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그래요.” 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기도했던 감사의 조건을 다 말했습니다. 

그것을 듣고 있던 남편이 무겁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힘들었어? 그래, 내가 예수 믿는 게 그렇게 소원이라면, 오늘부터 예수 믿어 줄께!” 이 무슨 말입니까? 남편에게, 그 가정에, 억지로라도 감사의 기도를 올리던 그 집사님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10년 동안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던 소원이 단 한 번의 감사기도로 이루어 졌다”고 그 집사님은 간증했습니다. 

여러분! 욥의 감사는 ‘플러스’이기 때문에, 남고 넘치는 인생이기 때문에 한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하다못해 ‘현상유지’라도 되어서 한 감사도 아니었습니다. ‘마이너스’에서 한 감사! 사실 ‘마이너스’도 아니죠. 전 재산과 자녀를 모두 잃고, 자신은 병으로 죽어가고, 아내와 친구들과 친척들이 모두 떠나버린 가운데 한 감사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교회 다니며 신앙생활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추수감사절인 오늘,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감사하십니까? 이제 여러분은 욥을 통하여 그 답을 찾으셨습니까? 욥은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서, 혹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거저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살아서 숨 쉬고 있는 그것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시비를 걸어올 사탄에게도, 이 세상과 여러분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요? 그들은 모두 ‘신자들이 하나님을 신앙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신자들이 감사하는 이유가 있다.’고 하면서, 그 이유와 조건을 다 빼앗아버리면 하나님을 신앙하지 않을 것이고 감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신앙생활을 합니까? 오늘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감사하십니까? 조건이 있어서, 이유가 있어서,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고 감사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신자의 감사가 아니며 참된 신앙도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이 조건을 걸고 신앙생활을 하고, 조건에 의해 감사를 표시한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욥에게 바라셨던 그 성숙된 신앙을 오늘 여러분에게도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이 創造主이시고 내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인생으로서 그를 믿고 섬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여기에 와 있고, 감사하는 것!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렇게 감사할 때, 주님은 여러분을 기뻐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아무런 조건이 없어도 감사하는 사람, 아니 다 없어지고 실패하고 병들고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사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지금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놀라운 은혜와 복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그 어떤 경우에라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감사가 가져오는 기적을 경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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