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추수감사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욜 2:21~27)

  • 잡초 잡초
  • 439
  • 0

첨부 1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욜 2:21~27)


시작하는 말 

2009년 추수감사주일을 맞는 모든 교우들에게 우리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복이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내리시는 평안함이 온 교우들에게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삶이 여간 고단하지 않습니다. 쉴 새 없이 문제에 문제가 생기고 고통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았습니다. 세상살이에 아무리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셨고 도우셨으며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있을 것은 있게 하셨고, 없을 것은 없게 하셨습니다. 감사와 찬송으로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선지자 요엘이 활동하였던 포로기 이후 시대에도 이스라엘에 환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메뚜기가 온 땅을 뒤덮어 푸른 것은 모두 먹어치웠고, 뒤를 잇는 극심한 가뭄은 그나마 남은 초목들을 완전히 말려 버렸습니다.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사람이 무엇인가 손을 써 볼 수 있는 여지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절망적입니다. 이때 선지자가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고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외칩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12-14)라고 선포합니다. 

선포되는 말씀 앞에서 이스라엘이 회개합니다. 온 백성이 시온에 모여 금식하며 울며 여호와 하나님 앞에 탄식합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의 중심이 이스라엘을 향한 긍휼하심으로 뜨거워지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회개하고 애통하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일하시려 하십니다. 그리고 선포하시기를 두려워 말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는 우리들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이런 저런 문제들과 고통만을 보고 두려워하거나 겁낼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몸  말 

오늘 말씀의 메시지는 그 첫째가‘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은 “땅이여 두려워 말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시고, 22절도 “들짐승들아 두려워 말찌어다.”라고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에 큰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메뚜기 재앙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할 때, 하나님이 자연을 들어 애굽을 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로 애굽을 무섭게 징치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애굽을 떠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재앙이 지금 이스라엘에 임하였습니다. 두 번 다시 생각하기 싫은 재앙입니다. 메뚜기 떼는 순서대로 왔습니다. 메뚜기, 늣, 황충, 팟종이...... 그들은 마치 항오를 벌이고 전진하는 기병같았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산꼭대기에서 뛰는 병거소리 같았습니다. 강한 군사들이 항오를 벌이며 싸우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강하기는 마치 사자의 어금니 같고 암사자의 어금니 같았습니다. 그들이 지난 곳은 모든 수목이 말갛게 벗겨져서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습니다. 두려운 군대입니다. 

그 뒤를 이어 가뭄이 왔습니다. 불이 앞을 사르고 그 불길이 뒤를 태웠습니다. 그나마 남은 나무가 다 말라 비틀어졌습니다. 그나마 남은 풀이 말라 먼지가 되었습니다. 땅은 먼지만 일으킬 뿐 소성의 기미가 사라졌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생명을 이어갈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삶에 고난이 없는 때는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생활고 문제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하셨습니다.(마6:31) 사람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의식주 문제요, 이 문제로 사람들은 고통에 빠집니다. 바울선생 당시에는 신앙의 핍박이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선생은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자.”(딤후2:3)고 하였습니다. 

그 고난이 현재는 세계 각 곳의 재난으로 닥치기도 합니다. 근년에, 북한에는 사상 최대의 기근이 닥치고, 미얀마엔 대 홍수가 있어서 약12만 여명이 죽거나 실종되었습니다. 중국의 쓰촨성에도 대 지진이 있어서 약 10만 여명이 죽거나 실종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이 재난 투성이요, 우리나라도 끊이지 않는 자연재해와 인재(서해안 기름유출 등....)로 끊임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인생에 닥치는 이런저런 일들이 또한 고통을 일으킵니다. 그 문제들은 두려움을 일으키고 걱정하게 합니다. 어리석은 인생들은 사람의 방법으로 그것을 막아보려 하고, 또 어떤 신의 힘을 빌려 이겨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부적을 붙이고, 무당을 찾아 굿을 하고, 우상을 찾아 빌어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당면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고통은 더 심해질 뿐입니다. 

여러분, 두려움을 일으키는 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두렵게 하는 고통에 속지 말아야 하고, 위협하는 문제들에도 겁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움을 일으키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아울러 그 두려움에서 헤어나게 하실 이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 뿐이십니다. 요엘서 2장 1절을 보십시오. 선지자 요엘은 이스라엘에 여호와의 날을 선포하셨습니다. 이 날은 크고 두려운 날이 될 것입니다. 전무후무한 두려움이 이스라엘에 임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입니다. 앗수르가 침범하여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크고 두려운 날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예고된 여호와의 날은 있습니다. 그날은 심판의 날인데, 심판의 날은 주께서 강림하시는 날입니다. 온 세상을 심판하시게 될 것입니다. 세상 나라를 멸망시키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시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주의 날을 경고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 같은 두려움을 일으키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직도 회개치 못한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제라도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어서 손을 들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라 하십니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긍휼하심을 구하라 하십니다. 두려운 일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재난, 전쟁, 그리고 의식주 문제는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쉬지 않고 두려움을 가져올 것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질병과 늙어감도 무시할 수 없는 두려움입니다. 인간의 죄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고통을 야기합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다스리시는 이를 보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이 간섭하시기를 바라고, 일어나 일하시기를 바라야 합니다. 우리에게 두려움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아니됩니다. 12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 두려움 앞에서 회개하며‘이제라도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씀에 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는 두려움이 가득한 우리의 현실속에 하나님이 직접 일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은“땅이여 두려워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라 여호와께서 큰일을 행하셨음이로다.”라고 말씀하며 두려워 않고 기뻐할 수 있음이 하나님이 큰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두려움에 빠져있게 하시지 않습니다. 친히 일하실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큰일을 행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임한 재앙을 막으셨습니다. 크고 두려운 메뚜기 떼를 바다로 몰아넣으셨습니다. 그들로 상한 냄새와 악취를 풍기며 멸망하게 하셨습니다. 뒤를 이은 극심한 가뭄을 멈추셨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큰 재앙을 막으셨습니다. 땅으로 다시 회복되게 하셨습니다. 들에는 풀이 나게 하셨습니다. 

꽃이 피어 씨를 맺게 하셨습니다. 나무들로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특히 과목들 즉 무화과나무로 무화과가 열리게 하시고 포도나무로 힘을 내어 포도송이를 맺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비를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파종기에 이른 비를 내리셨습니다. 땅으로 뿌려진 씨앗들을 품게 하시고 움을 틔우게 하셨습니다. 늦은 비를 흡족히 내리셨습니다. 추수기가 이르기 전 열매들로 무럭무럭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의 백성들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들의 백합화에게도 화려한 옷을 입히십니다. 솔로몬이 입은 옷이라도 그보다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공중의 새들을 먹이시는 분이십니다. 새들이 굶어 죽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의 백성들에게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궁핍을 아시고,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풍족히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전에 메뚜기가 먹던 햇수대로 갚아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메뚜기로 입은 손해를 넉넉히 덮을 만큼 거두게 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마당엔 밀이 그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포도주가 넘칠 것이며, 기름이 풍성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간섭하심으로 내려지는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은 주께서 주신 것을 풍족히 거두고 하나님을 찬송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그의 백성들이 애통하며 회개할 때, 직접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그의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풍족하게 하십니다. 넉넉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그의 백성들로 더 이상 염려가 없게 하십니다. 그러니 두려워 마십시오.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십시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이 일하실 기회를 드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손으로 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하나님이 일하실 기회를 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직접 일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십시오. 그 숫한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큰일을 행하셨습니다. 감사함으로 예배하는 시간이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미래를 약속하십니다. 본문 27절은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고 하시며 우리에게 오셔서 같이 계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오로지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이실 것입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분만이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만이 자기 백성의 고통을 풀어버리고 은혜 안에 있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수치를 당치 않게 하실 것입니다. 더 이상 재난은 없다는 선언입니다. 오히려 있을 자리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자기 백성들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바울선생도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다.(딤후2:6)고 말씀하였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수고할 때, 더 큰 은혜를 입히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매 더 이상 염려할 것도 없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염려는 이방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염려로는 결코 키를 한 자나 높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직접 먹이고 입히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적음을 꾸짖으시며 염려하지 말고 믿으라고 촉구하십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서 미리 염려하지 말고 오직 주께 맡기라 하십니다.(마6:34) 

우리의 할 일은 한 가지 뿐입니다. 세상에 다른 이가 없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 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알고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 하였는데, 하나님을 믿는 길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우리 앞서 행하시며 우리보다 먼저 일하실 것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항상 시끄러운 어떤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엔 두 철학자가 살고 있었는데, 하나는 유신론자요, 하나는 무신론자였습니다. 둘 다 얼마나 논리가 정확하고 말을 잘하는지 여기서 들으면 이 말이 맞는 것 같고, 저기서 들으면 저 말이 맞는 것 같고, 동네 사람들은 헷갈렸습니다. 그래서 그 동네는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동네 사람들이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두 철학자를 불러 한 사람씩 자기주장을 말하게 해서, 무신론이든 유신론이든 동네가 하나로 통일하자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후에 집회가 열렸고,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둘다 언변이 기가 막혀서 사람들은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새벽녘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유신론자는 무신론자의 얘기가 감동이 되어 무신론자가 되었고, 무신론자는 유신론자의 말에 설득을 당해 유신론자가 되어 벼렸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은 시끄럽기가 매한가지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의 존재를 머리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세상가치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추수감사절에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풍성함을 누리며 감사의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요, 은총입니다. 더욱 큰 소리로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움은 던져버리십시오. 우리들의 주변에 수많은 고통들이 우리를 위협할지라도 하나님이 그 두려움을 막으실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주시며 방패가 되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것입니다. 재난을 막기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제는 다시 소성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땅이 풀을 내고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삶의 구석구석이 회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포로 된 자가 돌아오고, 병든 자가 낫고, 풍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의 삶을 간섭하실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유일하신 분이심을 스스로 보이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더 이상 수치나 염려가 없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로 주님의 나라와 의만 찬송케 하실 것입니다. 도우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이 강단을 통하여 다시 강조합니다. 믿음으로 받아 말씀대로‘두려워 말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성도들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