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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의 삶을 선택하십시오 (신 30: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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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을 선택하십시오 (신 30:19~20)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오늘은 2009년 추수감사주일이자, ‘내 생애 마지막 한 달’ 캠페인을 시작하는 주일입니다. 추수감사절과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은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절기는 한 해의 결산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결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바로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의 캠페인입니다. 2009년을 결산하는 이 추수감사절에 인생의 결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죽음과 마주쳐 보셨습니까?
   
저는 14년 전, 제 스스로 느끼기에 하나님이 저를 부르시는구나하고 느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정신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이 느껴지고, 온 몸에 열이 펄펄 끓고 흐르는 땀은 요를 적셨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야지’ 하니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마음이 편안해 지니 주변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담임하고 있던 교회였는데 교회는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과 동시에 장로님들이 네 분이나 계시니까 알아서 하시겠지 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눈에 들어 온 것은 저의 유일한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책 몇 권이었는데 제가 신학을 공부한 모교에 기증하면 깨끗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즈음 몇 주간 동안 미국을 방문 중에 있던 아내가 생각이 났는데 아직 젊으니까 재혼해야지 하는 생각에 편안해 졌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2학년과 4학년짜리 두 아이가 딱 떠오르는데 무슨 대책이 없더군요. 그래서 “하나님, 아직 안되겠습니다. 차마 저것들이 불쌍해서 못 죽겠습니다. 살려주세요.”하며, 누워 있다가 간신히 몸을 뒤척여 안간 힘을 써서 엎드려 살려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사명까지, 아내까지 하나님께 맡겼는데 자식은 못 맡기고 자식 때문에 못 죽겠다고 살려달라고 기도했던 못난 사람입니다. 

모세는 삶의 마지막 순간 이스라엘 지파들을 불러 모아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그들이 지켜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이 구약성경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긴 말씀을 선포한 후 결단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애굽의 종살이를 마치고 광야에서의 방황과 연단을 통과하여 드디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선택은 너희들에게 달려있다. 그 선택의 결과는 생명 아니면 죽음. 복 아니면 저주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두셨습니다. 무엇을 선택하여야 하겠습니까? 
   
우리 모두에게 분명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그것은 우리는 태어났다는 것과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출생과 죽음 사이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출생과 죽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절대 권한에 두셨지만 이 사이를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한 달간 벌이는 ‘내 생애 마지막 한 달’ 캠페인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바른 선택을 하도록 돕는 훈련의 기간입니다. 함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적용함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선택하여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19절 말씀입니다.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여기에서 우리는 모세의 무엇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그의 열정입니다.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약간은 흥분한 모세의 모습이 아닙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모세의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 소리를 듣습니다. 나이 120 세의 모세입니다. 애굽의 궁중에서 보냈던 40년,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서 보냈던 40년 그리고 이스라엘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지난 지 40년. 이제 마지막 40년의 끄트머리에 서있는 모세입니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뜨겁게 뛰고 있었습니다.

1. 열정적으로 사는 것을 선택하십시오.
   
열정적으로 사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어렵고 심오한 진리 중에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을 접어버리고 믿음으로 발을 내딛는 것을 멈춰버림으로 꿈은 식고, 삶은 거칠어졌고, 상처는 깊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점점 바쁘게 돌아가고 있지만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열정적으로 사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신약 성경 요한복음 10:10 말씀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 10:10)
   

이 말씀은 “내가 온 것은 그들로 진정하고 영원한 삶을 얻게 하고 그들이 꿈꾸었던 것보다 더 나은 삶을 얻게 하며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The Message)는 뜻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의 열정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더 풍성히 얻게 하시기를 원하였습니다. 예수님뿐만 아니라 도둑도 도둑질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냥 보통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더욱 하는 열정으로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이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서 의기소침해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자신이 삶이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면 남은 생의 불꽃을 살라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을 최선을 다하여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삶,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열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한 열정이어야 합니까? 무조건 열심히 사는 사람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까?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노력한 것만큼 손해입니다.
   
20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20a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모세가 백성들에게 권하는 생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선택하여야 하는 복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선, 여기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은 신명기 6:5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실 때의 그 사랑[bh'a/아하브]입니다. 깊은 애정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정을 불태우며 살기를 선택하고 드디어 불태워야 할 것은 미움이나 원한이나 불평이 아니라 온전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2. 온전히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십시오.
   
온전히 사랑하기 시작할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들리지만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기 전까지는 전혀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미워하며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22:37-39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태 22:37-39)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두 구절로 요약해 놓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의 통장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있는지, 얼마나 많은 상을 받았었는지, 얼마나 많은 목표를 이루었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 순간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했는가, 우리가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이 땅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워야 할 일은 온전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8, 13)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지금 이 한 달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내게 될 마지막 한 달이라면, 우리에게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날이 딱 한 달 남았다면, 하나님을 좀 더 가까이 하고, 가족, 친구,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오래 동안 남겨질 무언가를 하여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성공적인 삶을 넘어서 행복한 삶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 앞에서도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사랑하십시오. 지금 사랑하기를 선택하십시오.
   
사랑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기를 선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 자신을 점검하여 봅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사랑하는 것이 정말로 쉬워야 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전쟁터이기 쉽습니다. 더욱이 진정으로 사랑하기란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못 올라갈 나무를 쳐다보라고 하신 것입니까?
   
20절 전반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20a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을 따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온전히 사랑할 수 없을지라도 온전히 사랑하려는 마음은 가질 수 있습니다. 온전히 사랑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따르기를 선택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겸손히 배우는 것입니다.

3. 겸손히 배우는 것을 선택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를 더 많이 닮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인격을 변화시키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로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푹 빠져드십시오.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함께 교제하고 시간을 보내며 그분의 말씀을 읽고 연구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을 바꿀 것입니다. 좀 더 하나님을 닮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을 닮아가게 마련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닮는 방법은 사랑의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실제적인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언 3:6 말씀을 읽습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6)
   
잠언 3:6 말씀은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우선순위에 두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네 길을 지도하시고 너의 노력을 성공으로 보상하시리라.(사역)”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는 구체적인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매주의 첫날을 드리는 것을 배우십시오. 
일요일을 한 주간의 끝, 주말의 한 날인 일요일이라고 부르지 마시고 한 주간의 첫날 주님의 날, 주일이라고 부르십시오. 주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작은 부활절입니다. 이 날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함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함께 드리는 공동예배에 반드시 참석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을 겸손히 배우는 첫 걸음입니다.
   
하나님께 매일의 첫 번째 시간을 드리는 것을 배우십시오. 
갑자기 매일 새벽 기도회를 나오라는 말은 여러분의 삶을 뒤헝클어놓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힘써 보십시오. 그러나 정말로 어렵다면 새벽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매일 15분에서 20분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느낀 점을 기록하고 자신의 계획에 대해서 기도하는 시간으로 구별하십시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이라는 책의 부록으로 나와 있는 ‘후회 없는 삶을 시작하는 30일 새벽 기도’와 같은 책을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시작은 훌륭합니다. 이것은 매일 겸손히 배우는 것입니다. 
   
수입의 첫 번째 부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배우십시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를 위하여 배우기 시작하여야 할 중요한 내용 중에 하나입니다. 수입의 첫 부분인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만일 하나님이 자신의 재정에 우선순위가 아니면 그분은 인생에 있어서도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시험거리가 되어 여러분의 신앙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여러 가지 형편으로 당장 실시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재정 운영도 겸손히 배워야 합니다.
   
모든 결정의 첫 생각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배우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사소한 일에 관해서도 우리가 이야기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사업이나 가정, 관계에 있어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과 더욱 자주 이야기하는 것은 그 사람을 더욱 깊이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따르기를 배워갑시다.

우리가 이상의 것들을 정말 잘하였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칭찬을 듣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금 서툴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는 서툴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기를 겸손해 배워가야 합니다.

우리가 열정적으로 살되 온전히 사랑하기를 선택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는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하여 또 기억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20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20b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모세가 이 말을 할 때 그에게 비장감이 흐르지 않았겠습니까? 그는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애굽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백성들은 곧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모세는 가나안으로 못 들어갑니다. 모세에게 이 세상을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도 욕심이 있었습니다. 미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깨끗이 포기하고 백성들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담대히 떠나는 것을 선택하십시오.
   
우리는 영생을 누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원을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두셨다고 하셨습니다(전 3:11). 우리 모두는 자신이 영원을 위해 지어졌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압니다. 무신론자조차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영원을 위해 지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살 집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젠가 떠나야 합니다. 떠나야 한다면 우리는 모세처럼 담대히 떠나는 것을 훈련하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25:23을 읽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마태 25:23)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오직 단 한가지만이 중요할 것입니다.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잘 하였다’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잘 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고등학교 축구 선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나이 어린 후보 선수였습니다. 그는 자기 팀이 월등히 앞서가거나 약한 팀과 경기할 때만 출전했습니다. 그런 그가 경기를 앞두고 다급하게 “코치님, 이번 경기에 저를 전반전부터 뛰게 해주세요. 오늘 경기에 제가 처음부터 뛸 수 있게 해주세요.”하고 요청했습니다. 
   
코치는 경기 일정표를 보면서 가능하다고 싶어 허락하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수는 경기에 들어가자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습니다. 상대선수의 거친 경기에도 불구하고 몸을 사리지 않고 적극적인 경기를 펼쳤습니다. 그는 팀이 승리하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경기가 끝나자 코치는 경기장에서 달려오는 이 선수를 붙잡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린 학생이 땀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치님, 코치님은 저희 아버지를 아시죠? 그리고 제 아버지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요. 저희 아버지께서 어제 밤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동안 시각장애인이셨던 아버지는 제 경기를 보지 못하셨지만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아버지를 위해 경기를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위해 뛴 것이었어요.”
   
이 어린 선수는 시각장애인인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이제는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믿음에서 최선을 다하여 뛰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뛰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까? 정말로 유일하게 중요한 한 분은 바로 우리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우리를 만들고 경기에 출전시키신 그 코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분만이 유일하게 중요한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에게서 듣는 ‘잘 하였도다.’라는 말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아직 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까? 오늘밤 죽게 된다면 천국으로 갈 것이라는 것을 확신합니까?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거칠 것이 무엇입니까? 죽을 줄 알고 사는 사람은 정말로 멋있게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생명과 사망 중에서 생명을 선택하고, 복과 저주 중에서 복을 선택하고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열정으로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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