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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가 주는 행복 (합 3: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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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가 주는 행복 (합 3:17~19)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 이하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행복은 하나님의 소원이시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제일 가는 소원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누우며 정말 열심히 자신의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지혜입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은 어디서 오는지를 아는 지혜가 우선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행복을 얻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행복하십니까? 저는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무성할 때 행복합니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맺힐 때 행복합니다. 감람나무에 소출이 많을 때 행복합니다. 밭에서 먹을 것이 넘치도록 수확 될 때 행복합니다. 우리와 외양간에 양과 소가 넘쳐날 때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 우리의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무화과와 포도나무와 감람나무는 언제나 소출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풍년이 들 때도 있지만 흉년이 들 때도 있습니다. 때문에 어쩌다 행복할 수는 있지만 항상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은 늘 풍년이 들어도 사람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우리 나라 처럼 빠르게 그리고 많이 성장한 나라가 세계에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50년대는 그만두고 60년대 초와만 비교해도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거의 300배 정도 성장하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 중에 하나였습니다.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풍성할 때 행복하다면 세상에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행복해야 할 사람이 없습니다. 60년 초보다 우리는 300배 행복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먹고 남을 만큼 무화과 열매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보다 더 많은 열매를 맺는 나무와 비교하며 만족하지 못하며 늘 불만 가운데 불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이와 같은 기막힌 고백을 하는 사람의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의 기자가 행복한 까닭은 어디에 있다고 여러분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것이 감사할 줄 아는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의 기자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감사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가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사람은 감사할 때 행복합니다. 감사는 자신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 즉 감사의 대상이 되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알고 감사할 때 부모는 무엇보다도 행복해 합니다. 그런데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알고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알면 부모도 부모이지만 자신이 먼저 행복해 집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 이하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기쁨과 감사는 같은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면 항상 기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감사에 서툽니다. 그것은 우리의 감사가 무화과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사가 무화과에 한정되게 되면 결국 우리는 언제나 감사할 수 없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으면 그 때문에 감사할 수 없고, 무화과 나무에 늘 열매가 많이 맺혀도 늘상 그러는 것이니 새삼스럽게 감사하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일 년에 한번 드리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절기를 좇아 감사주일이라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나오신 분들이 아마 대부분일 겁니다. 정말 넘치는 감사를 가지고 나와 감격적인 예배를 드리시는 분이 우리 중에 몇 분이나 될까요? 특히나 올해는 금융위기를 격고 있는 해이니 더더군다나 감사가 많이 퇴색되었을 것 같습니다.

본문의 기자가 행복했던 까닭은 그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데 에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감사의 조건이 무화과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과 그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가 무성한 물론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많이 맺히는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입니다. 밭에 소출이 많고 우리와 외양간에 소와 양이 가득한 것도 말할 것 없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입니다. 그러니 그럴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큰 풍년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고 ‘내 영혼아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자’라고 하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땅에서 누구보다 부자였지만 하늘에서는 누구보다도 가난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그런 어리석은 부자가 있을는지 모릅니다.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마 많을 겁니다. 아마 많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일 겁니다. 부자의 대부분은 어리석은 부자들입니다.

그러나 부자만 어리석은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대부분 똑같이 어리석습니다. 받은 보다 큰 은혜와 축복을 헤아리지 못하고 받지 못한 보다 작은 은혜와 축복만을 헤아리며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어리석은 가난뱅이들입니다.

부자라고 행복한 것 아닙니다. 부자도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도 불행합니다. 그것이 정답입니다. 세상을 보면 누구나 그 정답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저 부자가 되려는데만 온 정신을 다 쏟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기자와 같은 소수의 사람들만 빼고 말입니다.

지난 주 높은 뜻 하늘교회에서 설교하면서 하였던 이야기를 다시 하려고 합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제 설교를 들으시는 분들은 복습하는 마음으로 다시 들으시기 바랍니다.

제 아내가 한 달 정도 미국에 있다가 그제 돌아왔습니다. 둘째 손녀 돌 때문에 갔다가 온 것입니다. 아내가 없는 집에서 한 달을 살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참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아내에게 빨리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중요한 연습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내와 헤어지는 연습입니다.

아내는 제 행복과 감사의 첫째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내가 있기 때문에.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아내의 사랑을 늘 받고 살기 때문에 저는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내는 저와 늘 함께 영원히 이 땅에서 함께 살 수는 없습니다. 제가 먼저 가면 좋겠지만 아내가 먼저 갈 수도 있습니다. 얼마가 될는지 모르지만 아내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 때 잘못하면 저는 마치 하나님 없는 사람처럼 한 없이 불행해 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짧은 한 달이었지만 (물론 제게는 긴 한달이었습니다) 저는 그 기간 동안 아내 없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고 연습하였습니다.

우선 인간적으로 볼 때 저는 제법 성공한 사람입니다. 큰 교회를 목회하기도 하였고 무엇보다도 교회를 개척하여 짧은 기간에 제법 크게 성장시킨 사람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에게는 일이 행복입니다. 제 행복과 감사의 둘째 조건은 목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목회가 행복하기 때문에 늘 불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목회에서 내려와야만 하는 날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언젠가는 목회의 현장에서 은퇴해야만 하고 언젠가는 사람들이 나를 더 이상 주목하지 않고 스포트라이트가 나 아닌 다른 후배에게도 집중되는 것을 보아야만 할 초라한(?) 날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준비 없이 은퇴하게 되면 그때 저는 은퇴 후 시간을 불행하게 지낼 것입니다. 그 시간이 평균적으로 그다지 짧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마지막 시간을 불행으로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은퇴한 후에 일없이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연습을 했습니다. 그것이 안식년이었습니다. 저는 안식년 동안 지금하고 있는 일들을 손 놓고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연습하였습니다.

저는 운동을 위하여 남산을 잘 걷습니다. 차가 다니지 않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경치가 아름답고 적당한 굴곡이 있어서 걷기 운동에 참 좋은 곳입니다. 차가 다니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많이 오셔서 운동들을 하십니다. 시각장애인들이 많으시지만 중풍병에 걸리신 분들이 운동하러 나오시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중풍에 걸려 걸음이 부자유하신 분들을 보면 표정이 대개 어둡습니다. 얼굴은 굳어 있으시고 시선은 땅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으십니다. 자신이 중풍에 걸려 걸음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속상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밝게 웃으시면서 그 아름다운 길을 걸으시는 분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길을 제법 빠른 걸음으로 걷습니다. 저는 아직 건강하여 제법 힘든 운동도 잘 합니다. 아름다운 남산 길을 씩씩하게 걸으며 이런저런 운동을 즐기며 저는 아직 제게 남아있는 건강을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행복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또한 늘 내게 있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은행을 까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아내와 함께 앉아서 은행 까는 일을 도와 주었습니다. 일을 다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전처럼 벌떡 일어나지지 않았습니다. 노인처럼 허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일어났습니다. 아내가 보고 웃었습니다. 제게도 점점 노화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지금처럼 씩씩하게 걷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당뇨 관리가 지금보다 어려워 질 겁니다. 그러다가 건강을 잃고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남산을 걸으며 장애들을 마주칠 때마다 저는 매우 중요한 연습을 마음으로 합니다. 원치 않는 일이지만 만에 하나 나에게 저런 일을 당한다고 하여도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다짐하며 연습합니다.

같은 마음으로 저는 자주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씩 가난을 연습합니다. 돈이 없지 않지만 마치 돈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며칠 정도를 살아봅니다. 저는 가난해지기 싫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싫은 것은 만에 하나 가난해 졌을 때 그것 때문에 세상이 다 망한 것처럼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저는 가난해져도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 외에 영원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부요함도, 건강함도, 형통함도 다 불완전합니다. 그것은 수시로 흔들립니다. 내 인생을 그것에 의존하고 살면 언제나 바람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기뻐하며 늘 행복하게 이 땅에서나 저 하늘에서 구원 받은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려면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며 그 대화 중에 하나님과 연애하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리고 사소한 것이라고 흘려 보냈던 작은 것들 하나 하나를 은혜로 느끼며 감사하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께 감격할 줄 아는 것을 연습해야만 합니다.

김남조 시인의 밤 기도 라는 시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그 시 속에 나타난 그분의 삶을 부러워 합니다.

하루에 분주한 일들 차례로 악수해 보내고
밤 이슥히 먼데서 오는 듯만 싶은 주님과 나만의 기도시간.
주님. 단지 이 한 마디에 천지도 아득한 눈물.
날마다 끝 순서에 이 눈물 예비 하옵느니
오늘도 내일도 나는 이렇게만 살아지이다.
깊은 밤에 눈물 한 주름을 주께 바치며 살아지이다.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오늘 본문의 하박국 선지자처럼 비록 무화과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어도 밭에 먹을 것이 없어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기막힌 삶을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제 가족들을 사랑하지만 저들에게 집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는 성공한 일과 그 일을 하게 하는 자리를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거기에 연연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부요한 삶이 좋지만 너무 거기에 빠져들어 바보처럼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건강한 삶이 좋아 건강을 위하여 노력하며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 건강을 잃었을 때에 모든 것을 다 잃은 사람처럼 우울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비록 아내가 먼저 내 곁을 떠난다고 하여도
은퇴하여 소위 뒷방 늙은이가 된다고 하여도
돈과 건강을 잃어 사람 보기에 초라한 사람이 된다고 하여도
하나님 때문에 즐거워하고
하나님 때문에 감격하며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내 삶의 모든 순간을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천국을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함께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감사가 주는 행복을 누리며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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