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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義)의 옷을 입으라 (창 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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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義)의 옷을 입으라 (창 3:7~21) 


여러분, 혹시 의상치료(衣裳治療 Fashion Therapy)에 관해 들어 보셨습니까? 요즘 다양한 치료 방법이 등장하고 있죠. 음악치료, 미술치료, 독서치료, 심지어 놀이치료까지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의상치료입니다. 의복을 통해 정신 질환을 치료하거나 혹은 성격을 개조하는 보조적 치료방법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지독한 개구쟁이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 아주 좋은 신사복을 사 입히는 겁니다. 그러면 행동이 조신해지고 성격도 온순해진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사람이 옷에 맞춰져 변화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신 겁니다. 과연 그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인간의 범죄와 그 결과 : 죄의 삯은 사망

먼저 창세기 3장 앞부분에 나오는 인간의 타락 사건을 살펴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습니다. 에덴은 ‘기쁨’이란 말인데, 그 이름대로 쾌적한 환경에 기쁨이 충만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향유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자유의지를 주신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어디까지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인간에게 한 가지를 요구하셨습니다. 선악과 금지 명령입니다. 

창2:16~17 “ ...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you will surely die)” 모든 것을 다 허용하지만, 선악과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맺어주는 최소한의 장치였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는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나눠주신 겁니다. 그러나 구별점이 있죠. 하나님만 무제한적인 자유의지(절대적 자유의지)를 갖고 계신 분입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제한적인 자유의지(상대적 자유의지)만 허용됨을 인식시키시려고 선악과 금지 명령을 내린 겁니다. 말하자면 자유의지의 허용범위를 전해 준 겁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과 미성년 자녀의 관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녀에게 자유를 주지만, 허용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금주와 금연을 명령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자유에는 제한 범위가 있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뱀(사단)이 여자에게 다가와 유혹했고, 여자는 선악과를 따먹습니다. 그 후에 아담에게도 줍니다. 그들이 결정적으로 선악과를 따먹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같이 되어 ... ”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유혹에 넘어간 겁니다. 그러니까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상대적 자유의지가 아니라 절대적 자유의지를 가지려고 한 겁니다. 부모를 무시하고 갖다 버리는 패륜아와 똑같은 셈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됐나요? 정말 사단이 말한 대로,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절대적 자유의지를 소유하게 됐나요? 하나님처럼 됐나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7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coverings)로 삼았더라” 여기서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범죄한 결과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됐다는 뜻입니다. 그 고통이 너무 커서 어떻게든 죄를 가려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coverings), 다시 말하면 덮개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의복입니다. 

하지만 이런 옷으로 죄를 가릴 수 있나요? 죄를 없앨 수 있나요? 절대 불가능하죠. 죄는 죄값을 치르기 전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속죄 받지 못하면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됩니다. 16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의 저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자는 임신과 해산의 고통이 있게 되고, 부부 갈등이 생기고, 남자는 평생 노동의 수고를 해야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게 됩니다. 19절.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 ”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범죄의 결과인 죽음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실을 가리켜 롬6:23은 뭐라고 단언합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요 ... ” 그런데 여기서 사망은 단순히 육체의 죽음만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죽음에는 3종류가 있게 됩니다. 영적인 죽음, 육적인 죽음, 그리고 영원한 죽음입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육적인 죽음만 말합니다. 호흡이 끊어졌다, 심장의 박동이 끝났다 등 ...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분리’ 현상을 말합니다. 반면 생명은 ‘연합’입니다. 육체가 살아 있어도 인간이 하나님이 죄로 인해 이미 영적으로 죽어 있습니다. 영적인 죽음인데, 영혼이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적인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육체가 안락할 때조차 영혼이 불안하고 허무한 겁니다. 

마치 엄마 품에서 떨어진 어린아이의 심리 상태와 같은 것이죠. 육적인 죽음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겁니다. 보통 말하는 생물학적 죽음에 해당되는데, 일반 생물학에서는 영혼이 육체에서 떠나는 것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죽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천국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지옥에 가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태어나고(原罪 original sin), 죄 가운데 살다가(自犯罪 personal sin) 육적인 죽음을 넘어 영원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2] 하나님이 입혀주신 가죽옷 : 의(義)의 옷

다행히 하나님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접지 않으셨습니다. 범죄한 후 죄책감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피했던 인간을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그게 바로 ‘가죽옷’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이미 영적으로 죽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 ” 이 말씀은 뱀(사단) 에게 하신 저주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축복의 메시지(복음)입니다.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겁니다.(치명상)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겁니다.(경상) 이것은 십자가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복음을 처음 언급한 겁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가리켜 흔히 뭐라고 하죠? 원시복음(原始福音 Proto-Evangelium)입니다. 성경에서 처음 나오는 최초의 복음이란 뜻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말씀을 들은 아담의 반응입니다. 20절.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아담이 아내의 이름을 뭐라고 지었나요? 하와입니다. 본래는 여자로 불렀는데, 이때부터 하와라는 이름을 사용한 겁니다. 성경에서는 흔히 사람의 이름이 신앙고백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와라는 이름의 뜻이 뭔가요? 한 마디로 말하면 생명(life)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죄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데, 이제 여자의 후손으로 인해 ‘영원한 생명의 길’이 열린다는 약속을 믿는 신앙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믿음을 보시고 어떤 조치를 내리십니까?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가죽옷을 입혀주었다는 것은 죄를 가려 주었다는 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 전에 무슨 옷을 입고 있었다고요? 무화과 나뭇잎 치마인데, 그것으로는 죄를 가릴 수 없습니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인「맥베스」(1606) 이야기입니다. 맥베스는 마녀로부터 왕이 된다는 예언을 듣습니다. 야망에 불타는 맥베스의 아내가 부추깁니다. 맥베스는 망설였지만 아내의 다그침에 못 이겨 마침내 덩컨 왕을 살해합니다. 그리고 정적도 살해합니다. 그는 왕이 됐지만 죄책감이 시달립니다. 아내도 극도의 죄책감에 고통을 당합니다. 계속 손을 씻습니다. 아무리 씻어도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자살합니다. 그 후 맥베스마저 정적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방법으로는 아무리 수를 써도 스스로 죄를 가릴 수 없습니다. 죄값을 치르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피 흘려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히9:22 “ ...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피 흘려 죽어야 죄가 해결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찌합니까? 죄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말 아닙니까?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누가 대신 죽어주면 됩니다. 여기서 대속의 원리(Redemption, Atonement)가 나오는 겁니다. 21절에서, 하나님이 가죽옷을 입혀주신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원어 히브리어로 속죄한다는 단어가 ‘카파르’(כפר)인데, 무슨 말인가 하면 ‘덮어 가리다’(cover over)는 뜻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셨을까요? 짐승을 죽였을 겁니다. 무죄한 짐승이 인간의 죄를 덮어주기 위해, 속죄해 주기 위해 대신 피 흘려 죽은 겁니다. 대속의 제물이 된 짐승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구약 시대에 계속 짐승 제사 제도가 시행된 것은 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무죄한 분, 의로운 분이지만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피흘려 죽은 겁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조금이라도 느껴보십시오. 아프리카 등지에는 무서운 황열병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국가에 입국하려면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고 증명서를 지참해야 됩니다. 그 백신이 만들어진 유래가 있습니다. 1927년 서부 아프리카 ‘아시비’라는 토인이 황열병 병균 접종을 받았고 그 피에서 백신을 얻어냈습니다. 그 한 사람의 희생의 피가 많은 사람들을 살린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피는 이보다 더 귀하고 귀한 것입니다.

이런 대속의 복음을 믿는 자는 죄 씻음을 받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가죽옷을 입은 것처럼 예수님의 피로 깨끗해진 흰옷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는 겁니다. 계7:9 보면, 하나님 보좌 앞의 광경이 나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보좌 앞의 영광스런 모습입니다. 흰옷(의인이 되었음 의미) 입고 종려나무가지(승리의 상징)를 흔드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십자가 대속의 피를 믿으십니까? 그러면 저와 여러분도 흰옷 입은 성도가 된 줄로 믿습니다. 이게 바로 의의 옷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가죽옷도 죄를 가려주는 ‘의의 옷’입니다.


[3] 의의 옷을 입은 사람 : 하나님 자녀로서의 특권과 책임 

의의 옷은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상징합니다. 사람의 신분에는 앙면성이 있죠. 하나는 신분에 따르는 특권이고, 다른 하나는 책임입니다. 

① 특권 - 자녀의 권세 :

의의 옷을 입은 사람의 특권은 하나님 자녀로서의 권세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오죠.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당겨서 타낸 후 가출합니다. 몽땅 탕진하고 돼지 먹는 쥐엄열매도 먹지 못할 정도로 비참한 신세가 되자 그때서야 회개하고 아버지에게 돌아옵니다. 동구 밖에 나가 기다리던 아버지가 영접하고 어떻게 하죠? 

눅15:22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여기서 ‘제일 좋은 옷’을 입혔다는 것은 아들의 신분을 회복했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그는 아들로서 아버지 품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보호를 받고, 풍성한 축복을 누리고 ... 그런 겁니다. 이게 바로 자녀의 권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고 의의 옷을 입게 된 것은 하나님 자녀의 권세로 온갖 특권을 다 누리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인간 차원에서도 자녀의 특권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저의 딸아이가 가끔 제 휴대폰으로 전화합니다. “아빠, 지금 어디야?” “왜?” “집에 들어올 때 oo 좀 사오라고. 알았지?”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딱 끊습니다. 돈을 맡겨놓은 것도 아니고, 감히 나를 심부름 시켜? 인간적으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참 이상합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사실 딸아이가 저하고 친하니까 그렇지, 아빠를 싫어하면 그런 전화를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시키는 대로 다 사다줍니다. 이게 바로 자녀의 특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믿는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우리는 자녀의 특권을 이미 소유하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담대히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풍성히 누리시기 바랍니다. 


② 책임 - 증인의 삶 :

자녀의 특권을 누리는 것은 좋지만, 여기서 그치면 곤란하죠. 신분에는 항상 책임이 뒤따릅니다. 특권만 챙기고 책임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가리켜 뭐라고 하죠? 얌체! 가끔 보면 얌체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곤란합니다. 하나님 자녀의 책임을 감당해야 마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녀답게 사는 삶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증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롬13:12~14 보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은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금세 되지만, 하나님 자녀가 된 후에는 마땅히 책임을 감당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것은 ‘예수 유니폼’을 입으라는 겁니다. 무슨 뜻일까요? 그 옷은 성도의 신분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겁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입은 대로의 사람이 된다.” 군인들에게 제복을 입힘으로 많은 효과를 본 나폴레옹의 말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입은 옷에 어울리는 행동거지를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유니폼이 사람을 만든다는 겁니다. 

남자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예비군복을 입으면 사람들이 이상해집니다. 사회에서 나름대로 지위와 체면이 있는 분들도 함부로 행동을 합니다. 아무데나 털썩 주저앉고,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리고, 침도 아무데나 뱉고, 잡담하며 떠들고 그럽니다. 그런데 현역 군복을 입고 있었을 때는 어땠나요? 군기가 들어가고 훈련을 받으면서 늠름하고 절도 있는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군대 예절에 따라 비가 오더라도 우산을 쓰지 않고, 겨울에는 아무리 손이 시려도 장갑을 낄지언정 호주머니에 손 넣지 않습니다. 옷이 사람의 행동을 좌우합니다. 

학창 시절 교복을 입으면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학생답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교복을 벗고 사복을 입으면 방종하게 됩니다. 다방에 출입하고, 미성년자 입장금지 극장을 드나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정말 꼴불견은 교복을 입은 채로 건들거리며 다니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담배를 꼬나물고 다니면 정말 봐 줄 수 없었습니다. 너무 볼썽사납습니다. 그런 학생들을 보면, 사람들이 그 학교를 가리켜 뭐라고 불렀죠? 똥통! 학교 망신시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라는 것은 의의 옷을 입으라는 것이고, 그 옷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공인의식(公人意識)을 가지라는 겁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된 겁니다. 그래서 내가 잘못 살면 나 혼자 욕먹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나 때문에 예수님도 욕을 보시고 하나님 영광 가리고, 교회 욕먹게 하고, 동료 성도들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여러분, 이미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 되셨나요? 오늘 신앙 고백을 하고 학습과 세례를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으면 의의 옷을 착용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자녀의 확신으로 풍성한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가 입은 옷에 어울리는 인격과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가죽옷을 입혀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부디 우리가 입은 가죽옷, 의의 옷에 합당한 삶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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