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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럇 세벨로 가십시오 (삿 1:12~15, 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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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럇 세벨로 가십시오 (삿 1:12~15, 3:7~11)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들어가 땅들을 정복하고 정착하던 어느 날 헤브론에 있는 갈렙의 집에서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그 날은 갈렙이 딸 악사를 시집보내 는 날이었습니다. 그의 사위가 되는 사람은 옷니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갈렙은 어떤 사람이며, 옷니엘은 어떤 사람입니까?

먼저 갈렙부터 생각해 봅시다. 갈렙은 이스라엘의 영웅이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낼 때 갈렙은 나이 사십 세로서 한창 때였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모세는 열 두 명의 정탐꾼을 뽑아 가나안으로 보낸 일이 있습니다. 이들 열 두 명은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선발된 사람들로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었습니다. 갈렙과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도 그 중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갈렙은 처음부터 뛰어난 인재였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갈렙이 빼어난 인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 후 그의 진가가 더 잘 드러납니다. 정탐꾼들은 사십 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돌아와서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입니다. 우리가 가져온 열매들을 보십시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 땅에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곳의 성들은 하늘을 찌를듯하고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게다가 거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 기골이 장대한 아낙 자손들인데, 우리는 거기에 비하면 메뚜기처럼 보잘것없습니다. 여기서 포기해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올라간다면 그 땅은 우리의 무덤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통곡을 하였습니다. 보고대로라면 자신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백성 모두가 깊이 절망하면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바로 이 때 나선 두 사람이 다름 아닌 갈렙과 여호수아입니다. 이 두 사람은 정반대로 보고했습니다. 그들의 보고가 민수기 14장 8절 이하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이로 볼 때 갈렙과 여호수아는 믿음에 있어서 으뜸가는 인물들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정탐꾼들은 모두 하나님의 진노 중에 죽었고, 하나님께서는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에게 복을 주셔서 이들만 살아서 가나안 땅에 발을 디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갈렙은 이처럼 젊었을 때부터 믿음의 대장부였습니다.

그 후 광야에서 사십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광야 생활이 끝나고 가나안에 들어갈 무렵 갈렙의 나이는 팔십 세였습니다. 그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하늘같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두 사람은 출애굽의 모든 과정을 직접 경험하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사십 년 광야 생활을 온 몸으로 견딘 사람들이었으며,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 중에 가나안에 들어간 단 두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와 함께 온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후 갈렙은 팔십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 년 동안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팔십 오 세가 되었을 때 여호수아에게 <헤브론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헤브론은 일찍이 모세가 살아 있을 때 갈렙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땅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허락했고, 갈렙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헤브론의 아낙 자손, 거인의 자손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그 후 갈렙이란 이름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나고 갈렙만 남았을 때 그는 온 백성이 우러러보는 이스라엘 최고의 원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갈렙의 집에 결혼잔치가 열린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결혼식이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결혼식이 화제가 된 것은 단순히 갈렙의 딸의 결혼식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결혼식에 이목이 집중된 것은 갈렙이 사윗감을 고르는 방식이 특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갈렙은 공개적으로 사윗감을 구했습니다. 오늘 말씀 중에 1장 12절을 보십시오.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라고 되어 있지요. 갈렙은 기럇 세벨을 정복하는 사람을 사위로 맞이하겠다고 공언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은 가슴이 뛰었을 것입니다. 기럇 세벨을 점령하면 영광스럽게도 갈렙의 사위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때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옷니엘이었습니다. 옷니엘은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기럇 세벨을 점령했습니다. 한 성을 점령하는 것이 간단한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옷니엘은 그 일을 해냈고, 갈렙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옷니엘이 기럇 세벨을 향해 올라가던 마음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을 점령하는 전쟁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왜 이처럼 위험한 일에 도전한 것일까요? 몇 가지 짐작 가능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쩌면 갈렙의 사위라는 명예를 바랐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또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갈렙의 딸 악사가 절세가인이었다면 남자로서 욕심이 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럇 세벨을 점령하는 일로 인해 옷니엘이란 이름이 온 이스라엘에 유명한 이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 옷니엘이란 이름은 무명의 이름이었습니다. 아무도 그 이름을 몰랐습니다. <옷니엘? 그가 누구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그늘에 묻혀 사는 젊은이에 불과했습니다.

여러분, 그늘에 묻혀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제가 대학 2학년이 되었을 때, 걸출한 야구 선수가 입학을 했습니다. 그 선수는 여러분이 너무도 잘 아시는 부산 경남고 출신의 투수인 최동원 선수입니다. 캠퍼스에서 최동원 선수가 지날 때마다 학생들이 모두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야, 저기 최동원이 지나간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저는 그 때 야구광이어서 수업까지도 빼먹고 야구를 보러 다니곤 했습니다. 경기만 보러 다니는 게 아니라, 선수들이 연습하는데도 자주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선수들은 두 그룹으로 나뉩니다. 나와서 연습하는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가 있습니다. 연습을 하지 않는 선수들도 유니폼은 입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일은 따로 있습니다. 물 떠오는 일, 공 줍는 일, 연습 끝나면 장비 챙기는 일이 그 일입니다. 

이들도 선수는 선수인데, 사 년 내내 제대로 경기에 출전해 보지 못합니다. 어쩌다 일년에 한 두 번 대타로 한 번 나오는 게 고작입니다. 거의 사 년 내내 심부름만 합니다. 여러분, 이런 선수들을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묻어 온 선수>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최동원 같은 선수를 데려오려고 하면 그 고등학교에서 조건을 내겁니다. 스타 선수를 데려가려면 함께 졸업하는 다른 선수 몇 명을 함께 데리고 가 달라는 것입니다. 대학에서는 스타 선수를 뽑기 위해 맘에도 없는 선수들을 몇 명씩 함께 입학시킵니다. 그 선수들은 스타 선수 덕에 대학졸업장을 받게 됩니다. 이런 선수들을 <묻어온 사람>이라고 합니다. 동그랑땡 만들 때 알맹이를 밀가루 위에 굴리면 가루가 묻지요? 바로 그런 셈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 년 내내 묻어온 선수로서 그늘에 묻혀 사는 선수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겠습니까? 최동원이란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묻어온 사람들은 이름 없는 익명의 선수입니다. 사 년 내내 다녀도 학생들은 그들을 모릅니다. 그렇게 대학생활이 끝납니다. 서글픈 이야기지요? 

처음엔 옷니엘도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그 누구도 옷니엘을 알지 못했습니다. 옷니엘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했을까요? 누가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옷니엘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옷니엘이 자신을 소개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었습니다. 

<예 저는 옷니엘이라고 하는데, 위대한 갈렙의 조카입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래 옷니엘은 갈렙의 조카입니다. 13절을 보면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옷니엘입니다>라고 하면 아무도 모르고, <갈렙의 조카>라고 하면 <아, 그래요? 그 위대한 영웅 갈렙의 조카라니 부럽습니다.>라고 한다면, 그래서 자기 이름으로가 아니라, 큰아버지 갈렙의 이름을 빌려야 행세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서글픈 인생입니까? 이게 바로 남의 그늘에 묻혀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습니다. 그는 큰아버지가 <기럇 세벨을 정복하는 자를 사위로 삼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도전했습니다. 당시에는 사촌간에도 결혼을 할 때였습니다. 그는 갈렙이란 큰 그늘에서 벗어나길 원했습니다. <갈렙의 조카>로 살지 않고 <옷니엘>이란 자기 이름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건 도전 끝에 기럇 세벨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에서 가장 성대한 결혼식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세기의 결혼이라고 하면서 텔레비전에서 생중계를 했을 것입니다.

그 날 이후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옷니엘이란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갈렙의 조카나, 갈렙의 사위로 기억하기 보다는 <기럇 세벨을 정복한 영웅, 미래의 지도자>로 그를 바라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새로운 스타, 장래의 민족 지도자가 태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옷니엘의 인생에 있었던 이런 변화가 우리에게도 있길 기원합니다. 남의 그늘에서 살지 말고,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 ~ 의 아들, 딸>로만 알려지고 마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제는 우리 각자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한 조건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럇 세벨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에게도 기럇 세벨을 정복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 때 우리도 기럇 세벨로 올라가 정복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의 존재를 세워 나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럇 세벨로 올라가지 못합니다.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은 갈렙의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뛰었겠지만 포기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두려웠기 때문이지요. 

사실 기럇 세벨을 정복하는 것은 난제였습니다. <기럇 세벨>은 성경에서 <드빌>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성읍은 갈렙이 정복했던 헤브론에서 남서쪽으로 20여 킬로 떨어져 있습니다. 이 지역은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유명한 구약학자인 <올브라이트, W.F.Albright>에 의해 발굴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 곳도 갈렙이 정복한 헤브론과 마찬가지로 아낙 자손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낙 자손은 기골이 장대한 거인족이었습니다. 거기 비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작았습니다. 칼을 휘두르며 맞붙어 싸우는 당시의 전쟁을 생각해 보면 등치 크고 힘센 사람을 이기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기럇 세벨을 정복하는 자에게 딸을 주겠다>, 갈렙은 적어도 자신처럼 강한 남자를 사위로 맞이하고 싶었던 게 아니겠습니까?

많은 젊은이들이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아낙 자손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옷니엘은 도전했고, 정복했고,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영웅들의 계보에 올렸고, 그 날부터 온 이스라엘에게 유명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 날부터 <나는 옷니엘이요>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갈렙의 조카>라고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했을 때 옷니엘을 택하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본문 3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리사다임의 지배를 받으면서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옷니엘을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옷니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최초의 사사였습니다. 그는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수많은 이스라엘 남자들 중에서 옷니엘을 선택하셨을까요? 그는 이미 민족의 구원자가 될 만한 인물로 온 백성의 가슴에 남아 있었습니다. <기럇 세벨을 점령하고 갈렙의 사위가 된 인물이라면 갈렙 보다 못할 게 없다. 그런 인물이라면 충분히 우리의 지도자가 될 만하다!> 모든 백성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처음에 옷니엘은 평범한 젊은이요, <갈렙의 조카>로 알려진 인물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기럇 세벨을 점령한 영웅이요, 이스라엘 최초의 사사요, 구산리사다임에게서 백성을 구원한 인물로서 여호수아와 갈렙의 계보를 잇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 되었고, 무명한 사람이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인생도 지탱하기 힘들어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들, 온 나라를 건지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남의 그늘 아래서 살던 사람이 이젠 자기 인생을 바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런 복을 받게 되길 원합니다. 다른 교회와 수많은 영혼들을 세워주고 인도하는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부산과 영도 복음화를 위해 다른 교회와 성도들이 하지 않는 특별한 도전을 해야 합니다. 땀과 눈물과 시간과 물질을 쏟아야 합니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이 부상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듯이, 우리도 힘든 싸움을 각오해야 합니다. 열심을 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비전에 도전하고자 합니다. 부산의 창고교회가 되기 위해 더 우리를 헌신할 것입니다. 다음 주일에 착공하는 비전 센터는 부산 크리스찬들의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 부산 복음화를 위한 요긴한 공간이 될 것입니다. 이 건물이 영도의 관문인 부산대교 옆에 우뚝 서서 부산과 영도를 향해 복음의 빛을 비추게 될 것입니다. 제가 먼저 옷니엘처럼 앞장서도록 하겠습니다. 교우 여러분 모두가 저와 함께 기럇 세벨로 올라가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 개개인도 옷니엘처럼 되시길 기원합니다. 특별한 그리스도인, 유명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것을 위해 도전하십시오. 위험도 무릅쓰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기럇 세벨을 향해 올라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헌신의 기회가 올 때 놓치지 마십시오. 고달프고 힘든 섬김에 여러분을 바쳐 도전하십시오. 

땀도, 눈물도, 고난도, 수고도 두려워하면서 가만히 앉아 현실에 안주한다면, 결코 우리는 신앙의 영웅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가만히 계시다가 우리의 구주가 되신 분이 아닙니다. 가만히 계셨는데 우리의 왕이 되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기럇 세벨은 십자가였습니다. 골고다 언덕이 예수님의 기럇 세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곳에서 사단의 세력, 죄악의 세력, 죽음의 세력을 정복하셨습니다. 사단과 죄와 죽음은 예수님이 깨뜨린 아낙 자손이었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요, 왕이 되셨습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은 다른 이들의 인정받은 일군이 될 수 없습니다. 특히 주님의 인정을 받기 힘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기럇 세벨을 향해 나서야 합니다. 땅 속에 파묻어 놓은 달란트처럼 여러분의 인생을 파묻어 놓지 마시고 여러분에게 주시는 기럇 세벨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승리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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