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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마 8: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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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마 8:28~34)


갈릴리 바다에 큰 놀이, 곧 큰 물결이 일어났을 때, 제자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곤히 주무시는 예수님을 다급하게 깨우면서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포에 떠는 제자들을 향하여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라고 책망하신 후, 바람과 바다를 향하여 꾸짖으시니, 즉시 광풍노도가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그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제자들은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면서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말씀 한 마디로 잔잔케 하신 것은, 주님께서 바로 창조주 하나님인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기적이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외에는 어누 누구도 바람과 바다를 명하여 잔잔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다라 지방의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갈릴리 바다에 일어난 큰 물결이 자연계에 일어난 광풍을 잔잔케 하신 기적이라면, 오늘 본문의 사건은 사람 속에 있는 광풍을 잔잔케 하신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고 하시면서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께서 가다라 지방의 귀신 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은, 예수님께서 귀신들보다 훨씬 더 강하신 자,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주신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악령들에게 붙잡힌 한 영혼을 주님께서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역사적으로 지나가버린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계시의 사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죄 아래 있는 인간은, 그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 사탄과 악령들의 세력 아래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요일 3:8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1. 가라다 지방의 귀신들린 자들 

가라다는 갈릴리 바다에서 약 10 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케르사로 추정을 합니다. (그림 1-가다라 지방) 가다라 지역에는 호수를 향한 가파른 언덕이  있고, 주위에는 고대의 무덤이 흩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무덤 중의 일부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귀신들린 자의 거처로 사용된 것으로 보여 집니다. 한편 오늘 본문에는 귀신들린 자가 두 명으로 기록된 반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순이 아닙니다. 마가와 누가는 귀신들린 두 사람 가운데 두드러진 행동을 하였던 한 명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기록한 반면, 마태는 두 사람이 그 장소에 같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1)귀신들린 자들은 무덤에 거하고 있었다. 

귀신들린 자들의 거처가 무덤이었다는 것은, 사악한 심령과 어두운 환경이 서로 상응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두운 심령을 가진 사람은 어두운 환경을 만듭니다. 세상의 모든 어두운 환경들은 어두운 심령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인간은 환경을 밝게 함으로 어두운 심령을 밝게 하지는 못합니다. 귀신들린 자들에게 아무리 아름다운 주택을 준다고 해도 그들에게서 귀신들이 물러가지 않습니다. 아니 그들에게 주어진 깨끗한 주택도 조만간 무덤과 같이 바뀌고 말 것입니다. 귀신들린 자가 사는 곳은 어디든지 그 곳은 음산한 무덤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악령이 쫓겨 가고 성령이 내주하시면, 무덤과 같은 어두운 심령도 밝은 집과 같은 심령으로 바뀌게 될 줄로 믿습니다.  

2)귀신들린 자들은 대단히 사나왔다.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 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자기를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감정이든지 욕구이든지 무엇이든지 악령의 영향입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양심, 도덕, 법률, 종교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어 정욕, 물욕, 명예욕, 권세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나운 귀신들린 사람들을 무수히 만나게 됩니다. 어떤 취미나 오락에 사로잡혀 있고, 악한 습관에 빠져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오늘날 가정에는 자식들이 부모의 책망과 애원의 쇠사슬도 끊어버리고, 제멋대로 빗나가는 사나운 귀신들린 자식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 까지도 누구의 권고나 설득도 뿌리치고 제 고집대로 나가는 사나운 귀신들린 신자들이 있습니다. 대학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수들의 권고도 부모들의 애원도 아랑곳없습니다.  국가의 경찰력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는 말씀에 유의해야 합니다. 

즉 이 말은 사나운 귀신들을 제어함에 있어서, 인간의 수단 방법은 완전히 무능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신보다 더 강한 자가 와서, 강한 자들을 결박해야 그들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을 빼앗아 낼 수 있습니다. 삼상 17장에 보면 사자와 곰이 양들을 물고가면, 다윗이 가서 그것들의 수염을 잡고 그것들을 쳐 죽이고 양들을 빼앗아 내는 기사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만이 귀신들을 쫓아내고, 그들에게 사로잡힌 인생들을 구원해 내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3)귀신들린 자들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다. 

가다라 지방의 귀신들린 자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소리쳤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처음 고백한 것은, 제자들이 아니라 귀신들이라는 것을 유념해야합니다. 제자들 중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사람은, 이때로부터 훨씬 후인 베드로가 처음이었습니다. 이처럼 귀신들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제자들보다 먼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귀신들은 사단과 함께 타락한 졸개들이기 때문입니다. 귀신들도 전에는 다른 천군천사들과 함께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후에는 오직 사단만을 왕으로 섬기며 주님께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 중에는 이 귀신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지식으로는 그 누구 못지않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지만, 주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일은 아주 괴로워하고 불순종하는 이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귀신의 믿음과 비교하여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 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약 2:19-20)고 했습니다. 

오늘날 주님을 알고 믿되 주님과 상관없이 행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구원받은 성도들이라고 하면 마땅히 주님께 헌신해야 하건만, 자기 일만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거룩한 생활 대신 정욕을 따라 방탕과 향락을 추구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평소에는 아주 독실한 그리스도인처럼 행하지만, 상황이 불리해지면 이웃에게 손해를 입히고 상처를 주면서, 자기 이익만 챙기는 이들도 주님과 상관없이 행하는 귀신의 신앙을 가진 자들입니다. 참된 신앙이란 머리와 입으로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전인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고, 하나님의 어떠한 섭리이든 순종하며, 진리를 행하는 자가 참된 신앙인인 것입니다. 

4)귀신들은 자기들의 종말을 알았다. 

귀신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귀신이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정확히 간파한 것으로서, 이 고백 속에는 예수님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귀신들린 자가 말한 ‘때’는 세상의 종말을 말하며, 그 때에 그리스도는 재림하셔서 마귀를 심판하며 불 못에 던지실 것입니다. 계 20:10절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귀신들은 자신들이 영원히 멸망할 때가 올 것임을 알고, 예수께서 종말의 때 심판주가 되실 것도 알았습니다. 

5)귀신들린 자들의 간구 

31-32절에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가로되, 만일 우리를 쫓아내실진대 돼지 떼에 들여보내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귀신들이 예수님께 간구한 데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마귀의 활동도 결국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보여주며, 마귀조차도 예수님의 권세를 인정한 것을 가르쳐줍니다. 귀신들의 간구의 목적은 가다라 지방 사람들의 귀중한 재산인 돼지 떼를 몰사시킴으로 해서,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미워하고 배척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고자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귀신의 간구는 이기적이며 파괴적입니다. 결국 악한 자는 악한 일만을 꾀하고, 더불어 악한 결과만을 낳습니다.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 많은 간구를 올립니다. 그러나 그 간구가 모두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간구뿐이라면, 귀신의 간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여 아름다운 결과를 맺는 선한 간구만을 하나님께 올리는 귀한 믿음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간구는 하나님께서 흠향하실만한 아름다운 제물과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2. 주님은 귀신들린 자를 찾아 오셨다. 

귀신들린 자는 너무나 사나왔기 때문에, 아무도 그 앞을 지나갈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곳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어두운 곳, 그늘진 곳, 슬픔이 있는 곳, 공포가 있는 곳, 위험이 있는 곳, 이런 곳을 모두 피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바로 그러한 곳을 찾아오셨습니다. 거칠고 사나운 마음, 사악하고 추악한 마음, 외롭고 고독한 마음, 갈등과 혼동으로 흔들리는 마음, 성결하며 정결하지 못한 나와 여러분의 마음에도 사랑의 주님은 찾아오시며, 우리가 마음을 열어 영접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흔쾌히 들어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종교의 비극은 스스로 거룩하다고 생각하고, 추한 곳에 가면 자기가 부정하게 된다고 생각하여, 신앙인이 가야할 그 자리를 피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7:37-38에 보면, 죄인 된 한 여인이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예수님께 와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붓는 기사가 있습니다. 그 때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보고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만일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죄인을 멀리함으로서 자신들의 거룩함을 보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죄인들과 접촉함으로서 오히려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가까이 못할 만큼 추한 죄인은 없습니다. 

본래 무덤은 율법에 의하면 닿기만 해도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귀신들린 자는 사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광인이 있는 곳에 가까이 한다는 것은 부정함과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거기를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우리들에게 중요한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기를 피하는 자리, 다른 사람이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자세로 대하는 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3. 예수님의 권능 

귀신들은 예수께 간구하기를 “만일 우리를 쫓아내실진대 돼지 떼에 들여보내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의 의도를 간파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귀신들의 간구를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귀신들의 소원을 들어주셨다거나, 공연히 인간들의 재산에 피해를 끼치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것은 모두가 주님께 속한 것으로서, 자신의 마음대로 하실 수 있다는 주권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귀신들이 실제로 그 사람에게서 나갔다는 눈에 보이는 증거로, 그리고 나음을 받은 두 사람의 믿음을 확고히 해주기 위한 의도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악령의 세계도 지배하십니다. 32절에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권능 앞에는 귀신도 떨면서 복종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귀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권능을 가지고 계신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메시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권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과 싸우실 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4. 사단의 종노릇 하고 있는 인생 

33-34절을 보면 참으로 비극적인 일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즉 가다라 동네 사람들이 돼지 떼가 죽게 된 일을 고해 듣고 몰려와, 주님께 속히 떠나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그림 2-가다라지방 사람들의 반응) 그들은 눈에 보이는 돼지 떼를 주님보다 더 중시했고, 영원한 생명보다 정육점이 주인이 주는 돼지고기를 더 가치 있게 여긴 것입니다. 특히 그들이 간구한 내용은 귀신들의 간구와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은 귀신들이 그리스도의 정체와 권능을 알고 두려워했으나 “우리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하면서, 주님 곁을 떠나 돼지 떼에게 들어가. 특히한 것과 같이, 가다라 지방 사람들은 주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해 듣고 속히 다른 곳으로 떠나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이는 결국 무덤 사이에 거했던 광인뿐만 아니라, 가다라 주민 전체가 사단의 종노릇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사단이 행하는 악한 짓 중에 사람으로 귀신들리게 함으로써, 일상적인 생활을 못하게 만드는 일은 그리 무서운 일이 나닙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만 영접하면 자연히 치유가 됩니다. 그러나 가다라 사람들처럼 겉으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듯하지만, 그 의식에 불신앙을 심어주는 사단의 역사가 가장 무서운 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개구리를 끓는 물에 넣으면 즉시 튀어 나옵니다. 

그러나 찬물에 넣고 서서히 온도를 올리면, 죽음에 이르기까지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가다라 동네 주민들이 바로 이와 같이 사단이 서서히 죽이는 계략에 말려든 자들인 것입니다. 무덤 사이에서 발광하던 귀신들린 자들은 쉽게 사단에게서 해방이 되었으나, 서서히 불신앙의 깊은 늪에 빠진 주민들은 생명의 주님을 몰아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귀신들린 자들보다 더 무섭고 깊은 귀신들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가다라 지방의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그들을 온전케 하신 이적을 살펴보았습니다. 귀신들은 단 번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은 예수님께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오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오셨나이까?” 하면서, “만일 우리를 쫓아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주소서” 라고 간구했습니다. 지금도 이런 자들이 우리 주변에 허다합니다. 

주님을 알고 믿고 섬기는 일을 귀신처럼 괴로워하고, 주님의 계명 지키기는 일을 싫어하며, 주님이 그저 멀리 있어 주기만 원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주님 대신 맘몬 신, 즉 돈이라는 우상을 더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이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도라는 겉모습만 지니고 그 속에는 불순종과 주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일을 괴로워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꺼려하는 마음은 없는지, 스스로를 점검해보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사단의 세계를 다스리시는 권세도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사단도 귀신들도 예수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의 머리 털 하나라도 상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가다라 지방의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주신 그 예수님이 우리의 심령, 우리의 가정, 우리의 교회, 우리나라와 민족에게서 모든 귀신들을 쫓아내주시고, 우리의 주인이 되셔서 항상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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