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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 (창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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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 (창 20:1~7)

(창20:1-7)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아니한 고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 

1. 다윗은 인간의 부패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14:1-4)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렘 17:9)이라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 150-225)은 ‘은혜(grace)는 부패한 것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패한 인간의 마음’, ‘인간의 죄’를 아무런 대가(代價)없이 제거해주시는 것이 바로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자 부르실 때 아브라함에게 어떤 조건이나 자격 유무, 또는 그의 행위를 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기에 자랑할만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롬4:1-2)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사도 바울의 에베소서 1:3-6 말씀대로 ‘신령한 복을 주시되 창세 전에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으로 거저 주시는 은혜’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죄의 본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2.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 똑같은 죄를 거듭 반복하므로 믿음의 조상으로서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랄 지방에 가서 잠시 머물 때였습니다. 이 곳은 팔레스타인 남쪽, 애굽과의 경계선인 네게브 사막지역입니다. 아브라함이 이곳으로 이주한 이유는 헤브론 지역에 침입한 헷 족속으로부터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헤브론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입니다. 

그런데 헷 족속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약속의 땅 헤브론 떠나 “황무지”라는 뜻을 가진 네게브, 그 이름대로 황무지인 네게브로 이주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주인 없는 땅이 아니라 그릴 왕 아비멜렉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곳에 이주하면서 아내 사라에게 자신을 ‘하니’(Honey), ‘여보’라고 부르지 말고 ‘오빠’라고 부르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당시 그 지역 통치자는 어떤 처녀라도, 심지어는 그 땅의 일시적인 방문자일지라도 마음에 들면 후궁으로 취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갖고 있다는 관습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는 뺏길지라도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잃지 않기 위해 위장(僞裝)한 것입니다. 비겁하게 거짓말하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랄 왕은 아브라함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소개하고 사라는 아브라함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사라를 아내로 취했습니다. 

사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의 미모에 반하여 사라를 아내로 취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 사라의 나이가 90세였는데 아무리 동안(童顔)이라도 그 나이 할머니를 두고 왕의 후궁으로 삼을 리는 없습니다.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한 이유는 정략 결혼을 통해 자기 영토권내로 이주한 부유하고 강력한 족장 아브라함과 동맹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된 후 지난 25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거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창12:20-13:2)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래서 그랄 왕이 사라를 아내로 취해 아브라함과 혈맹(血盟)관계를 맺어 세력 확장을 꾀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이 사라를 아내로 맞은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셔서 ‘네가 데려온 이 여자 때문에 너는 죽게 될 것이니라. 그녀는 이미 결혼한 유부녀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비멜렉은 아직 사라를 가까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여, 죄 없는 사람을 죽이시겠습니까? 그는 나에게 이 여자를 자기 누이동생이라 하였고 이 여자도 그를 자기 오빠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 일을 깨끗한 마음으로 했으니 나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라고 항변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깨끗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것을 나도 알고 있느니라. 그래서 내가 너를 막아 나에게 범죄하지 않도록 그 여자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니라. 그가 너를 위해 기도하여 네가 죽지 않도록 할 것이니라. 그러나 만일 네가 그 여자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너에게 딸린 자들이 다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아비멜렉이 다음 날 아침 일찍 아브라함을 불러 말합니다. ‘당신은 어째서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하였소? 내가 당신에게 무슨 잘못을 하였기에 나와 내 나라에 이런 큰 죄를 불러들였소? 당신은 나에게 해서는 안될 짓을 하였소. 도대체 당신이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이오?’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 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내 아내를 탐내서 나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녀는 내 이복 누이동생이었는데 나와 결혼하여 내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고향에서 내어 보내 방랑 생활을 하게 하실 때에 내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당신은 나를 오빠라고 하시오. 이것이 나를 사랑하는 길이오’ 라고 변명합니다. 그러자 아비멜렉은 양과 소와 종들을 아브라함에게 주고 또 그의 아내 사라도 돌려 주며 ‘당신 앞에 보이는 것이 다 내 땅이오. 아무데서나 살고 싶은 곳에서 사시오’하고 또 사라에게 ‘내가 당신 오빠에게 은화 1,000개를 주어 그것으로 당신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당신이 깨끗하다는 증거로 삼겠소. 사람들은 당신이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비겁하게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자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죄를 범했음에도 1) 약속의 아들을 낳을 사라를 보호해주셨고, 2) 전화위복이 되게 하여 이전보다 더욱 더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시고 그에게 약속하신 말씀, 즉 언약 때문에 베푸신 것입니다. 

(창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25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당시 아브라함(하나님께서 약속의 자녀 이삭을 낳으리라는 약속으로 언약을 확실히 하시면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개명-창 17:5)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약속의 땅에 이르게 되었지만 그 가나안 땅에 심한 흉년이 들어 애굽으로 가서 살려고 그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애굽에 가까이 갔을 때 자기 아내 사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여자요. 애굽 사람들이 당신을 보면 당신이 내 아내인 줄 알고 나를 죽이고 당신은 살려 줄 것이오. 그러니 당신은 그들에게 내 누이라고 말하시오. 그러면 당신 덕택에 내가 죽임을 당하지 않고 좋은 대접을 받게 될 것이오’ 이렇게 자기 하나 살겠다고 거짓말하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애굽 왕 바로는 사라를 보고 후궁으로 삼고자 아브라함을 후하게 대접하고 엄청난 재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일로 바로와 그의 집안에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 ‘네가 어째서 나에게 이런 짓을 하였느냐? 그 여인이 네 아내라고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어째서 네가 그녀를 누이라고 하여 내가 그녀를 데려다가 내 아내로 삼게 하였느냐? 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데리고 가거라’면서 나라 밖으로 내보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25년 후에도 똑같은 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죄의 본성에서 벗어나기가 그렇게 쉽지 않은 것입니다. 창세기 26장에 가보면 아브라함의 독자 이삭도 아버지 아브라함과 동일한 죄를 범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죄를 범했던 바로 그 장소, 그랄 지역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곳 사람들이 미모의 아내 리브가를 탐내 자기를 죽일가 두려워 이삭은 아내를 누이라고 하고 자기를 오빠라고 부르게 했던 것입니다. 부전자전이었습니다. 죄의 본성이 그대로 유전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곳 블레셋 왕이 이삭이 그의 아내 리브가를 껴안고 있는 것을 창문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이삭을 불러 ‘그녀가 분명히 당신의 아내인데도 어째서 당신은 그녀를 누이동생이라고 하였소?’하고 따져 물었습니다. 이삭이 ‘그녀를 내 아내라고 말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하자 왕이 ‘당신은 어째서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하였소? 하마터면 내 백성 중 하나가 당신 아내를 가까이하여 당신 때문에 우리가 죄를 지을 뻔하였소’라고 말하면서 모든 백성들에게 ‘이 사람과 그의 아내를 괴롭히는 자는 누구든지 죽임을 당할 것이다.’ 고 경고합니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 아브라함과 똑같은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축복들을 취소하거나 재산을 감하시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할 정도로 더욱 축복하셨습니다.

(창26:12-14)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아브라함이 범했던 똑같은 죄를 그 아들 이삭이 범했음에도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신 것을 취소하거나, 축복의 약속을 취소하지 아니하시고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더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죄가 거듭되는 가운데 ‘믿음의 조상’의 면모를 이루어가도록 날로 믿음이 자라게 하셔서 마침내 ‘믿음의 조상’으로 믿음의 정상에 이르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을 때, 원망 불평하거나 하나님 말씀에 전혀 의심하지 아니하고 말씀하신대로 행했습니다. 이를 보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창22:16-18)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3.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의 거듭되는 죄, 세월이 바뀌어도 하나도 변하지 아니하는 죄의 본성, 믿음의 조상으로 기대하기에는 너무나 미흡한 믿음없는 그의 행태(行態)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값없이 선택하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기 위해 아브라함의 죄를 하나 하나씩 지워 가시면서 값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아래 있는 약속의 자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마침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믿음의 정상에 이르게 하여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갈대아 우르의 하층 천민 ‘히브리 족’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여 많은 나라를 이루어 그 후손들 가운데 많은 왕들이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창17:2-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창 18: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이를 베드로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행 3:2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그리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부름받은 사도 바울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모든 복을 받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갈3:8-9)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십계명(언약)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 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그러므로 예수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말씀) 아래 있기만 하면, 우리의 거듭되는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거듭되는 실수와 실패, 그리고 좌절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변함없이 그리고 값없이 은혜를 베풀어 마침내 성공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고 마침내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누구든지 예수 믿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끌고 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이 여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의 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눈에 가시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고소할 조건을 찾고자 한 것입니다. 만약 예수께서 간음한 여인을 구약법에 따라 돌로 치라 하면 당시 로마 식민지 통치를 받는 이스라엘에게 사형집행권이 없었기 때문에 로마법 위반자로 고소할 것이고, 만약 돌로 치지 말라고 하면 구약 율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이스라엘 최고 의회기관인 산헤드린에 고소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유죄를 선언하도록 하자는 심산이었습니다. 그간 끝없는 용서와 사랑을 가르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진퇴양난에 빠뜨리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그 여자를 돌로 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 돌로 치려고 몰려들었던 군중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하나 둘씩 모두 가 버리고 예수님과 그 여자만 남았습니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요8:10-11)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고 물으십니다. 그 여인이 ‘주여, 없나이다.’고 하자 예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수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끌려왔든 나오기만 하면 정죄(定罪)하지 아니하시고 용서하십니다.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도 용서하시고 사랑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신 말씀,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다시 죄를 범할 가능성,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 여인이 범한 간음죄는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이겠습니까? 인간이 지은 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담당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여인의 간음죄와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값을 치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망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죄의 세력을 이기시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죄 사함받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죄를 범하지 아니하고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인류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도 예수께서는 예수 앞에 나오는 사람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십니다. 

죄에 대해 연약한 인간의 본성을 익히 아시고 예수 앞에 나오기만 하면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시고 마침내 아브라함의 복을 함께 받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믿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음에도, 거듭되는 실수와 실패, 그리고 거듭되는 죄에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심성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여전히 약속의 말씀 가운데 거하면 변함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위대하고 영원한 복을 받게 된 것은 자신의 실수와 실패, 그리고 거듭되는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을 맞을지라도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삼하7:29)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있을 때 함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 고모라에 갔을 때 그는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이 둘 있습니다.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과 사라를 통해 낳은 ‘이삭입니다. 이스마엘은 종의 자식이고 이삭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종의 자식은 쫓겨났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받은 자녀는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낳은 이삭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자는 이삭입니다. 

(갈4:30-31)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십니다. 

(요1:14-16)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범사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생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생활로 은혜 위에 은혜가 충만한 하나님의 복된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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