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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 주여 나는 어찌하오리까? (출 1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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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주여 나는 어찌하오리까? (출 14:1~14)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들이 장막 친 데에 미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야훼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애굽기 14장 1∼14절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진퇴유곡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뒤로 물러갈 데도 없고 앞으로 나갈 곳이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파멸에 이릅니다. 이럴때 우리는 “주여 나는 어찌하오리까?”땅을 치며 탄식하게 됩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도전과 응전”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개인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해서 큰 상처를 입고 주님 앞에 뒹굴며 “주여 나는 어찌하오리까?”라는 외침을 통해 그 고난을 잘 이겨나가면 더 나은 생활을 하게 될 것이요, 지면 더 비참하고 패배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정신의학자 칼 메닝거는 위기에 대해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위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위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탄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엘리 비젤 박사는 유대인으로서 귀한 증언을 했습니다. 그가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감금됐을 때, 마침 강제수용소 발전소가 폭파되는 사건이 일어나 세 사람의 용의자가 체포되었습니다. 그 중 두 사람은 성인 어른이었지만 한 사람은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성인 두 사람은 교수대에 올라가서 목을 매달았고 체중의 무거움 때문에 곧 숨이 끊어졌습니다. 그러나 어린 소년은 몸이 야위고 못먹어서 가벼웠으므로 교수대 줄에 매달린채 30분 이상을 발버둥쳐 고통만 길어졌습니다. 더 큰 고통을 당하고 숨이 끊어졌습니다. 그때 그 광경을 보던 유대인들은 “하나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이렇게 처참하고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울부짖었으나 비젤 박사는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는데 “하나님도 지금 저 교수대에 매달려 버둥거리며 고통받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죽어가는 인생, 죄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끝까지 참고 인내하셨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이 고통당하는 것을 외면하실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고통당하고 있는 현장에서 항상 함께 계십니다. 어떤 고통을 당하던지 그 현장에 하나님은 함께 고통을 당하며 구원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정말 죄 많은 나를 용서 하실까요? 나는 죄를 너무 많이 지었습니다”라는 질문을 합니다. 성경 이사야 55장 7절에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야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회개하고 죄를 저버리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보시고 용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하나님은 용서하셔서 버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았습니다. 아프리카 정글 속 깊은 곳에 세상 문명과 떨어져 사는 원주민이라도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형상이며, 눈속에 사는 에스키모족도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은 이중에 한 사람도 버림받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C.S. 루이스는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 “우리가 아무리 여러 번 넘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때마다 툴툴 털고 일어난다면 넘어지는 것 때문에 파멸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넘어진 탓에 우리는 더러워진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집에는 훌륭한 목욕탕이 준비되어 있고, 수건이 걸려 있으며 깨끗한 옷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가 더럽다는 것을 느낄 때 뚜렷하게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우리는 “이 어려운 환경속에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어 주실까요?”라고 질문합니다. 마태복음 22장 32절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일본에서 유명한 신학자입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우찌무라 간조 선생을 찾아와 “선생님, 성경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기적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었다는 것이라던지, 죽었다가 부활하셨다던지, 이런 것은 이성으로 도무지 해석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기적을 다 빼버리고 진리만 공부하면 어떻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우찌무라 선생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성경에 사람의 이성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적들을 다 제한다면 꼭 두 가지만 남는데 성경 앞의 앞뒤 표지밖에 남지 않는다”고 답변했습니다. 성경을 펼치면 모두 ‘기적’인 것입니다. 기적이 없는 기독교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사랑의 이야기이자 하나님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교회가 서대문에 있었던 시절, 한국에서 12년 동안 동역한 헨리 스웨인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는 한국 전쟁에 참여해서 1개 대대가 중공군 1개 연대와 싸워서 다 죽고 한분대만 남았습니다. 일곱명의 사병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구사일생으로 후퇴해서 본부에 오니까 본부에서는 크게 격노하며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 고지를 탈환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명령에 모두다 눈물을 흘리며 어쩔줄 모르고 있는데, 그 가운데 스웨인 한 사람만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스웨인은 동료들에게 “울지마라. 구약성경에 보면 기드온이 300명의 용사로 수만명의 적군을 물리친 적도 있다. 기적이 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회개하고 결단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나가자”고 격려했습니다. 이래서 모두가 예수를 믿게 되었고 고지탈환을 위해 중공군의 총알을 피해가며 돌진했습니다. 마침 구멍뚫린 철조망이 있었고, 일시에 그 철조망을 뚫고 들어가자 중공군과 마주쳐 육탄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아군 중 한 명이 죽어있던 적군의 총을 빼앗아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적을 향해 난사하는 순간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쫙 펼쳐졌습니다. 

그러자 중공군들이 그 무지개를 보고 손으로 가리키며 당황하고 달아나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군이 사용하던 기관총을 빼앗아 연대 이상의 적군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1개분대 병력으로 연대병력의 적군을 물리친 기적이었습니다. 승리후에 스웨인 목사는 하나님께 무릎 꿇고 “주님, 주님께서 나를 죽음에서 한국에서 살려주셨으니 남은 삶은 한국에 속한 것입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선교사로서 우리 교회에서 저와 함께 12년을 같이 일했습니다. 그는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주의 종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 하나님께 진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위해서 싸워주십니다.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성경은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리라”고 말씀합니다. 부르짖어야 하나님은 대답을 하십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것이라.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과부와 재판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밤에도 부르짖고 낮에도 부르짖고 하나님 앞에 몸부림치고 하나님의 옷자락을 잡고 놓지 않을 때 하나님은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인들이 너무 편안해져서 결사적인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1장 5절로 8절에는 예수님이 밤중에 찾아온 친구에 대한 이야기 중에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꾸준함과 인내력은 기도 응답의 비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5절로 6절에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고 말씀합니다. 여름 바닷가 해변에 가면 구조대원들이 높은 곳에 의자를 마련하고 앉아 수시로 해변을 관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난을 당해서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사람들을 구조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살겠다고 발버둥을 치면서 구조대원의 발을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 경우라고 합니다. 

그런 경우 같이 빠져 죽게 됩니다. 몸을 맡겨야 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 가운데 문제를 만나면 주님께 내어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고 주님이 도와주실 것을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유명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 목사는 “인간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이처럼 내 생각, 내 고집을 다 버리고 온전히 주님께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직접 일하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릴 때 우리집은 과수원과 농사를 지었는데 고구마를 심을 때 제가 부모님께 졸라 고구마 한 줄을 제것으로 얻었습니다. 그리고 고구마 줄기를 심었습니다. 물을 주면 나중에 뿌리가 나와서 고구마가 열립니다. 그런데 저는 물을 주고 난 다음 학교 갔다와서는 그것을 파고서 고구마를 들어보고 또 심어놓고, 또 그 다음날 학교갔다 와서는 또 얼마나 자랐는가 들어보고 반복하다보니 몇 주만에 다 말라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우리 아버님이 심은 고구마는 아버님이 한번 심어놓고 돌보지도 않습니다. 물줄 때 물만 주자 때가 이르니까 굵직굵직한 고구마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맡기니까 땅이 고구마를 열게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바이런 자니스는 어렸을 때 교통사고를 당해 손에 심한 신경통과 신경마비 증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때는 열 손가락 중에 왼손 중지 하나만 제대로 움직이고 새끼손가락은 완전히 마비된 적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오른쪽 손목은 40퍼센트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었습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 중에 “여러 의사들도 수고했고, 침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기도로 가능했습니다. 제가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싸울 용기를 주셨습니다. 나에게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가 나를 정복하지는 못하고 내가 그 문제를 극복할 믿음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3. 참고 기다려라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다다랐을 때 애굽 군대가 뒤쫓아오지 않습니까? 백성들이 발버둥을 치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때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었으면 하나님께 맡기고 가만히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5년을 기다려 100세가 되어서야 아들 이삭을 낳게 되었습니다.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오스왈드 샌더스는 위대한 업적을 이룬 400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업적을 이룬 연령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 중에 35%가 60대, 23%가 70대, 6%는 80대가 넘어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즉 위대한 일을 이룬 사람의 64%가 60대 이후에 그 일을 이룬 것입니다. 70대 나이의 사람이 23%나 위대한 일을 이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도 많은 역작을 남겼는데, 대부분 88세 이후에 쓰여진 것이었다고 합니다. 88세 이후에 적은 경영학 책이 위대한 책이었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고 힘이 없다고 해서 미래에 대한 희망도 품지 않고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나의 형편과 상황이 너무나 힘들고 어렵더라도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며 모든 것을 맡기면 하나님 역사하심이 나타나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려움을 당해서 몸부림 칠 때 가장 경계해야 될 것은 두려움입니다. 마음의 두려움은 우리를 파멸시킵니다. 욥도 고통을 당할 때 “내 무서워하던 것이 내게 임했고 내 두려워 하는 것이 내 몸에 미쳤다”고 탄식을 했습니다.

‘크리스천 비즈니스맨의 리더십 개발’이라는 책을 보면 두려움이 우리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네 가지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첫째, 두려움은 우리의 잠재력을 마비시킵니다. 둘째, 두려움은 우리의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셋째, 두려움은 우리가 누리는 행복을 방해합니다. 두려움이 있을 때 우리는 결코 행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 넷째, 두려움은 우리의 성공을 방해합니다.

두려움은 우리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이 뒤를 따르는 바로의 군대들과 앞에 가로막힌 홍해를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모세를 원망하고 탄식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고만 있었으면 파멸됐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마음속으로 바라보십시오. 그리할때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고 우리에게 승리를 반드시 가져다 주시는 것입니다.

라이놀드 G. 그린 목사는 “인생의 가장 좋은 일들은 슬픔이나 고난의 보자기에 싸여서 온다”고 말했습니다. 미국대통령 취임식에서 연설도 했던 한 목사님은 죽어가는 유방암 걸린 아내를 보며 “인생에 좋은 일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일도 함께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헨리 워드 비처는 “우리는 날마다 두 개의 손잡이를 잡고 살아간다. 하나는 두려움의 손잡이며 다른 하나는 믿음의 손잡이다”고도 말했습니다. 신앙이란 고난을 통해 장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절망적 고난에 처하게 될 때, 두려움의 손잡이를 잡고 물러설지, 아니면 믿음의 손잡이를 잡고 앞으로 나아갈지 우리가 결정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거짓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인생 가운데 절망적인 일을 당하여 “오 하나님이여 나는 어찌할까요?”라고 하면 하나님은 “나를 찾으라. 대답은 내 안에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문제에 대한 응답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 곁에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살면서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고난이 있으면 축복도 따라옴을 믿습니다. 우리의 고백가운데 “오 하나님이여 나는 어찌해야 합니까?”라는 고백이 있게 하시고 하나님께 나아가 응답받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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