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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계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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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계 4:1~1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며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나님을 부르게 하시고는 이어서 여섯 가지 청원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 청원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기를 비는 청원입니다. 원문을 직역하자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가 아니라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관습은 하나님을 2인칭으로 해서 “당신”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3인칭으로 해서 “당신”이라 할 때는 극존칭이 되지만 2인칭으로 해서 “당신”이라 하면 하대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부르고 나서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종종 하나님을 가리켜 “당신”이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문에서의 “당신”이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주기도문에서는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라는 기도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라는 말 가운데 이름의 문제를 생각해보고, 그 다음은 거룩함의 문제를 생각해봅니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의 문제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그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이름을 지닌 사람의 존재나 인격이나 본성, 또는 직분이나 사명 같은 것을 예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종종 어떤 사람의 이름이 바뀔 때는 그의 신분이나 삶에 결정적인 변화가 함께 하곤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뀔 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창세기 1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아브라함으로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하나님의 엄숙한 선언이 있었습니다. 그 언약의 표로 온 아브라함 집안의 모든 남자들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실 복과 영원한 언약의 표시로 백 살이나 된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도 사라라고 이름을 바꾸게 하시며 아들 이삭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고기 잡던 시몬이 사람을 낚는 사도 베드로가 된 것이나,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사울이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 된 것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의 인물들의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와 본성과 인격, 또는 직분이나 사명 같은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자신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33편의 기자는 “...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시33:21)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의지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언자 이사야도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사24:15) 말함으로써 여호와와 여호와의 이름이 하나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존재이시면 그의 이름도 거룩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이름을 속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레22:32에서는 “너희는 내 성호를 속되게 하지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하고, 십계명 중의 제3계명을 말하는 출20:7에서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하며, 레24:16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했습니다. 

다음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라는 말 가운데 거룩함의 문제를 생각해봅니다. 성경은 도처에서 수없이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이란 말은 하나님에 관련시킬 때에는 기본적으로 우리들 인간이나 피조물과는 근본적으로 전혀 다르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거룩함을 가리키는 히브리어의 낱말은 본래 “분리됨”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 외의 모든 다른 존재와는 분리된 하나님만의 고유하고 가장 내면적인 본성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 중 8-11절을 다시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했습니다. 여기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첫째로, 8절에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하듯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의미 속에는 그의 “전능하심”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외의 모든 존재는 다 그 능력의 한계가 있으나 하나님은 홀로 전능하십니다. 

둘째로, 역시 8절에서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또 9절에서는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이”라 하듯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의미 속에는 “영원하심”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 이 세상에 스스로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영원하시고 다른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영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11절에서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듯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의미 속에는 그의 “창조주이심”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스스로 계신 이시고 천하 모든 것은 다 그에 의해 지으심을 받고 그의 뜻에 따라 존재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홀로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경배와 권능을 받으실 이이심”을 의미합니다. 9-11절을 다시 봅니다: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다섯째로, 성경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언급하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촉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모든 사람이 경외해야 할 하나님이심”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사8:13) 했습니다. 

여섯째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그의 윤리적 특성, 즉 그의 “공의로우심”과도 긴밀히 연관됨을 봅니다. 이사야는 또 말하기를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사5:16) 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결국 “거룩하심”이란 말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리키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는 것”, 즉 “하나님께 돌려져야 할 것들이 온전히 하나님께 돌려지는 것”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라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바로 알고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인정하게 해주시기를 청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전능하시고 영원하시며 만유의 창조주이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으로 알고 그를 경외하며 그에게 모든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경배와 권능을 돌려드리게 해주시기를 비는 것, 그것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라는 기도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가 배은망덕과 불의와 악행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모든 불경한 사람들을 물리치시고 그들의 방자함과 신성모독으로부터 그의 거룩한 이름을 수호하시고 만인이 그 이름을 경외하게 하시기를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모든 불신앙과 불경함이 소멸되고 존엄하신 하나님께서 영화로워지게 되시기를 기원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벧전1:14-16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한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로 하나님 앞에서 그 신앙을 바로 지키지 못할 때 그의 이름이 더럽혀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레18:21, 19:12, 겔36:20-23). 따라서 그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진실로 원한다면 우리는 온갖 종류의 우상숭배로부터 돌아서고 바른 믿음을 지켜가려는 단호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붙잡히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가 다가오자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당신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들을 아뢰는 가운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17:6, 26) 우리가 하나님께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기를 비는 기도는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 즉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신 일이 이 땅에서 지속되기를 구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도를 가르치시며 그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이루실 구원과 하나님나라 회복의 사역을 제자들이 이해하고 기억하며 계속해서 갈망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복음전파의 사역의 일군들이 되게 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하시며”라는 청원의 의미를 정리해봅니다. 이 청원은 하나님을 우리의 창조주요 공의로우신 섭리주이시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아버지로 바로 알고 그를 경외하며 순종하고 성결한 삶을 살며 찬양과 경배의 삶을 살고 하나님나라의 일군 되기를 진심으로 열망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다” 또는 “거룩히 여김을 받다”라는 말과 “영광을 받는다.” 또는 “영화롭게 된다.”는 말이 종종 나란히 또는 교호적으로 쓰인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홍해를 건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노래하며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자신이 하나님을 목도한 광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6:1-3)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과 “영화롭게 된다”는 말이 사실상 같은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하며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주시기를 청원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도할 때마다 우리 자신의 삶이 거룩해지기를 또한 기도하며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우리가 됩시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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