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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히려 물으시는 하나님 (욥 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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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물으시는 하나님  (욥 38:1~7)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선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복을 받기 위해서 착한 일을 많이 합니다.
내가 선한 일을 하면 나도 복을 받고 내 가족과 내 이웃들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세상을 사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게 잘못된 생각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욥의 경우는 그런 생각이 완전히 빗나간 것 같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의인이었습니다. 그는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사탄의 시험으로 욥은 받은 복 모두를 잃게 되었습니다.
가진 재산 모두가 날아갔습니다. 열 남매나 되는 자식이 하루 아침에 다 죽었습니다. 몸은 병들어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쑤시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마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고 그의 곁을 떠나갔습니다. 또 사랑하는 친구들이 찾아와서 위로한답시고 말하는 것이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위로의 말이 오히려 모욕처럼, 저주처럼 가슴을 파고들어 그를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욥은 도대체 자신이 왜 이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알고 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르고 당했습니다. 그런 욥에게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잘난 척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죄를 지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솔직히 고백하고 회개해라"
친구들의 주장은 욥이 당한 고난은 그의 죄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자기의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욥기 23편 2절 말씀입니다.
"오늘 또 이 억울한 마음 털어놓지 않을 수 없고, 그의 육중한 손에 눌려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하겠구나"(공동번역)
욥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아내와 친구들에게서조차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수 없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며 몹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시던 하나님께서 입을 여셨습니다. 당연히 욥의 억울한 사정이 밝혀질 줄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질문에 대해서도 시원하게 대답해 주실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에게 반문하셨습니다.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욥 38:2)
무슨 말입니까? 간단히 말해서 '너는 누구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토록 끈질기게 묻고 있는 고통의 원인에 대한 대답 대신 그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먼저 깨닫도록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아픔과 슬픔 등 자신의 문제에만 집착하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온 우주 만물과 인간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먼저 들여다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즉 좀 더 근본적인 것을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자신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우주의 신비를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사실 욥은 그 동안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입장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하여간 그는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따지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아야 했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그는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날 줄을 몰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갇혀 있는 알을 깨고 나올 줄을 몰랐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누구냐?'의 문제를 '왜?'의 문제보다 앞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욥 38:3)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앞에 응답자로 바로 설 것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모든 질문에 다 대답해 주실 것을 기대하고 또 요구합니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먼저 '너는 누구냐?'고 물으십니다. 물론 욥은 사람들 앞에서는 정직하고 온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도 또한 불완전한 존재요 극히 제한적인 존재인 피조물에 불과했습니다.

질문에 대해서 바르게 대답할 것을 요구하신 하나님께서는 본격적으로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를 욥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그를 꾸짖으셨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그를 교육하셨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 38:4)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욥 38:5)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욥 38:6)

그 질문들에 대해서 그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겸손하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욥기 40장 4절, 5절 말씀입니다.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왜냐 하면 모든 질문들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창조 행위는 인간이 판단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질문들을 들으며 그는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존재 근원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경솔하게 하나님의 주권에 해당되는 것들에 대해서 항의하고 불평했음을 알았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피조물 중의 하나인 인간에게 일일이 모든 것을 해명해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그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안고 살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인류가 공동으로 부담해야 하는 전쟁과 기아, 환경 문제에서부터 개인사의 해결되지 않는 상처와 실패의 경험까지 다양합니다. 어떤 문제는 때가 되면 그 이유를 알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적절한 대답을 얻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립니다.

때문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의인의 고난에 대해서 하나님께 그 대답을 들으려고 합니다.
그 옛날 욥이 줄기차게 물었던 것처럼...
"내가 왜 이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너무나 부당한 처사인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도 줄기차게 질문을 던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그런 태도는 옳지 못한 태도입니다. 그토록 울부짖던 욥이 뒤늦게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의 원인을 아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과연 어떤 존재인지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너는 누구냐?’고 오히려 물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결코 하나님보다 의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욥은 인정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것이지 결코 그 어떤 대가를 기대하고 해서는 아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역사가 토인비가 한평생 세계 역사를 연구한 후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를 자세히 보면 몇 가지를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아무리 노력하고 수고해도 사람의 뜻대로 안 되더라는 것이다."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수고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은 철없는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뜻대로는 안 됩니다. 그것을 먼저 인정해야 됩니다.

두 번째로 그는 아주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하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그가 아주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현실이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의미 없는 사건은 없다."
잠깐 볼 때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지나고 보면 뭔가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옛날 욥은 심한 고난을 당하면서 처음에는 그 까닭을 알 수 없어서 하나님께 따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만난 후 그는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좀 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고난은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 옛날 사도 바울도 옥중에서 분명히 말했습니다. 극심한 고난을 당하고 옥중에 갇혀 있는 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빌립보서 1장 12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비록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지금 오히려 '너는 누구냐?'고 물으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의 존재 의미를 좀 더 분명히 깨닫고 그 주님의 구원 역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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