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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낳고 살다가 죽었더라 (창 5: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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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고 살다가 죽었더라 (창 5:15~27)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건강장수를 희구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간혹 “그만 살고 싶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는 게 고달프고 괴롭다는 푸념일 뿐입니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산정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죠. “9988234!” 무슨 말인가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죽자!” 그런데 최근에 수정된 새 버전이 나왔습니다. “9988238!” 무슨 말일까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2~3일 앓고 다시 일어나 팔팔하게 살자!” 우리의 심리를 잘 표현한 신조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것은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러므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죽음’입니다. 죽음은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곧 나 자신에게 닥쳐올 ‘나의 이야기’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은 인생을 왜곡되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변치 않는 사실은 평범한 것 같지만 가장 중요한 인생의 진리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도 그런 엄연한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창세기 5장은 인류의 시조 아담부터 노아까지의 계보 기록입니다. 그 당시는 ‘장수 시대’였습니다. 평균 수명이 912세였으니 대단하죠.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을까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과학자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해가 갑니다. 그 중 하나는 이런 겁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는 하늘 위에 물층(water canopy)이 존재했다는 겁니다. 

이로 인해 인체에 해로운 유해광선은 차단되고 인체에 유익한 광선만 투과되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지구 전체가 마치 비닐하우스와 같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최적의 기후 조건에서 장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아 홍수로 물층이 사라지면서 유해광선이 마구 비춰지고 환경이 악화되어 수명이 급감하게 됐다는 겁니다. 

그러면 본문을 통해 당시 인간들이 얼마나 오래 살았으며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기록을 살펴보시죠. 먼저 15절~17절을 봅니다. “15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16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7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마할랄렐이 895세를 살았는데, 어떻게 살았다고요? “낳고 살다가 죽었더라”입니다. 

또 18절~20절을 보시죠. “18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19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0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야렛은 962세를 살았는데 역시 “낳고 살다가 죽었더라”입니다. 이렇게 죽 읽어가다 보면, 인류 역사상 최장수 인생을 만나게 됩니다. 누구죠? 므두셀라입니다. 27절에 의하면, 그는 969세를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 기록이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역시 “낳고 살다가 죽었더라”입니다. 

그들은 정말 오래 오래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록은 단순히 “낳고 살다가 죽었더라” 이게 전부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인생은 아무리 길게 사는 것 같아도 결국은 죽고, 그 인생은 영원의 시간에 비하면 마치 점(點)과 같이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일찍 죽은 사람은 작은 점, 오래 살다 죽은 사람은 큰 점으로 모든 인생이 점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하루하루 동분서주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지만, 지나놓고 보면 별게 아닙니다. 한 마디로 인생무상입니다. 

그러면 과연 인생에서 중요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인생의 길이가 아니라 인생의 내용입니다. 물론 장수는 분명히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보다 어떤 인생을 살았느냐 하는 내용(콘텐츠)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본문을 잘 보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기록을 남긴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누구인가요? 에녹! 그도 다른 사람처럼 자식 낳고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21절~23절.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그는 365세로 인생을 마감합니다. 당시 평균 수명에 비하면 젊은 나이에 요절한 셈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뭐가 다릅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충설명이 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Enoch walked with God)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동행한다’는 단어는 ‘함께 걷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친밀한 삶을 살았다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며 살았던 겁니다. 이런 그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홀연히 그는 천국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는 육신의 죽음도 통과하지 않고 직접 하늘나라로 올라간 겁니다. 성경에 보면 인류 역사 상 딱 두 사람만 이런 특이한 경험을 했죠. 에녹과 엘리야! 그래서 창세기 5장 가운데 유독 에녹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는 겁니다. 신약 성경 히브리서를 보면, 에녹의 인생을 또 이렇게 설명합니다. 히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다시 정리하면 이런 말씀입니다. “그렇다. 인생은 얼마나 오래 사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는지로 판명된다.”(코리 텐 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까요? 과연 무엇을 남겨야 할까요? 비유해서 우리 인생의 바구니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하는 게 중요합니다.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을 남기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인생에서 제거할 것을 비워야 합니다. 

[1] 인생에서 비울 것 : 죄악 

우리는 인생의 바구니에서 죄악된 것들을 비워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후회할 것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에녹에 관한 성경 기록이 본문과 히브리서 외에 한 군데 또 있죠. 유다서입니다. 그 중에 유16절을 보면, 에녹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그들은 불만불평하고 욕망대로 행하고, 교만하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는 거짓을 밥 먹듯이 했습니다. 한 마디로,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았습니다. 

여러분, 요즘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매한가지입니다. 아니, 더욱 악해졌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죄의 노예입니다. 욕망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돈과 권세, 명예, 그리고 세상의 향락을 향해 마치 100미터 달리기 하듯 경쟁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살아서 행복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이 세상에서 승리하고 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 이겁니다. 천만의 말씀이죠. 

한번은 sbs-TV에서 ‘돈과 행복도’를 주제로 특집 방송(‘그것이 알고 싶다’의「돈 나라 사람 나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 일리노이대 심리학과 교수 에드 디너가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미국 내 400위까지 부자들의 행복도가 아프리카 케냐의 초원 지대 원주민과 비슷하다”는 겁니다. 연평균 1만불 소득 이상이 되면, 소득이 늘어나도 행복도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현상이 어디 돈뿐이겠습니까? 권세와 향락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그분 앞에서 죄악을 비워야 인생에 행복해집니다. 왜냐하면 그때 비로소 영혼에 참 만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죄악과 욕망을 부둥켜 않고 사는 한 인간은 결코 만족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뉴질랜드 50대 남자가 죽게 됐는데, 임종직전 부인에게 이렇게 유언했답니다. “여보, 내가 42년 전 유조 트럭에서 휘발유(40달러 상당)를 빼내 내 자동차에 넣었는데 마음이 걸려서 도저히 눈을 못 감겠어. 찾아가서 꼭 갚아줘요. 약속하지?” 얼마나 죄악의 고통이 컸으면 이런 유언을 하고 죽었겠습니까? 세상에서 별의 별 것을 다 가지고 누려도 죄에서 자유를 얻지 못하면 마음에 평안이 없고 행복할 수 없는 겁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 하나님과 친밀하게 살았다는 것은 그의 인생 가운데 죄 문제를 해결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므로 죄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비로소 인생이 행복해집니다. 이게 인생의 비밀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던 에녹이 천국에 올라갔습니다. 모든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바구니에서 죄를 비우지 않으면 인간의 어떤 조건으로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죄인입장금지’이기 때문입니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천국에는 죄인은 들어갈 수 없고, 오직 어린 양 예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린 양 예수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누구입니까? 계22:14~15 보면 그 설명이 나옵니다. “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두루마기를 빠는 자만이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습니다. 두루마기를 빨았다는 것은 예수 십자가 피로 죄 씻음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오직 예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권세를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요즘 컴퓨터를 사용하다 보면 별의별 편리한 기능이 있죠. 사진을 찍은 후 ‘포샵’(사진 성형외과)에 들어가면 사진을 아름답게 수정할 수 있어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바로 그런 겁니다. 십자가 앞에 나오십시오! 그리고 모든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회개하고 십자가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인생에 채울 것 : 사랑

인생의 바구니에서 죄악을 비우게 되면, 이제는 영원히 남는 것을 위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게 뭐죠? 사랑입니다. 인생의 바구니에 사랑을 담아야 합니다.

여러분, 한번 살펴보십시오.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너나 할 것 없이 분주하게 삽니다. 그러나 정말 영원한 가치를 위해 삽니까? 솔로몬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솔로몬은 인생의 3관왕이에요. 재물, 권세, 그리고 향락에서 최고를 달렸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막 본인은 뭐라고 고백합니까? 시127: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 ”

전도서를 보면 더욱 처절한 고백이 등장합니다. 전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meaningless)” 얼마나 인생의 허무를 느꼈으면 다섯 번이나 반복합니까? 전2: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열심히 산다고 살아도 세상만사가 다 헛되다는 겁니다. 여기서 ‘헛되다’는 단어가 의미심장합니다. 히브리 성경 원어로 ‘헤벨’(lb,h;)인데, 이 단어는 본래 ‘입김’(breath)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은 입김처럼 금세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사라지고, 오직 사랑만이 영원합니다.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그러므로 사랑을 채우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① 하나님 사랑 :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눅10:38~42 보면 유명한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 나오죠. 그들은 자매였죠. 하루는 예수님이 그 집을 방문합니다. 마르다는 너무 좋아서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교제합니다. 

마르다가 삐쳐서 예수님께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마르다의 불평은 정당하죠.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눅10:41~42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일보다 중요한 게 신령한 교제라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일을 하더라도 그 가운데 하나님과 교제가 없으면 헛되다는 겁니다. 우리가 누리는 영생의 본질이 바로 이겁니다. 요17:3 보면, 예수님께서 영생이 무엇인지 그 정의를 내려주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여기서 ‘안다’는 단어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깊은 교제와 체험을 가리킵니다. 마치 부부가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주님과 내가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누려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럴 때 갈수록 사랑이 깊어지고 갈수록 행복이 풍성해 집니다.

그런데 한 통계 조사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이 평균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거기서 온갖 문제가 발생합니다. 영적으로 고갈되고, 세상을 이길 힘을 상실합니다. 평균 수명을 하루 24시간으로 환산할 때, 보통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은 0.2시간(12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부디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 자신에게도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줄로 믿습니다. 

② 인간 사랑 : 

다음으로, 인간 사랑으로 인생의 바구니를 채워야 합니다. 진정한 인간 사랑은 하나님 사랑을 나누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인간을 가리켜 ‘청지기’라 부르죠. 주인(owner)이 아니라, 관리인(manager)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맡은 모든 재화(물질, 시간, 재능 등)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이런 저런 선행이죠. 

눅10:25~37 보면,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가 나오죠.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서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납니다. 그런데 제사장, 레위인 등이 모두 지나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여관에 데려다 씻기고 치료해 주고 여관 주인에게 비용을 맡겨 부탁합니다. 그 이야기를 마치면서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눅10: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렇게 선행을 베풀며 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선행은 복음 전도입니다. 에녹의 기록을 보면 분명합니다. 유14~15 “14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에녹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심판을 예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 겁니다. 

그의 신앙과 삶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가 아들을 낳고 이름을 지은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므두셀라! 무슨 뜻인가요?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오리라!”는 뜻입니다. 므두셀라가 죽으면 심판이 있을 테니까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외친 겁니다. 요즘 말로 하면 전도했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잘 연구해 보면, 정말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노아 홍수 심판이 있었습니다. 에녹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미리 계시를 받고 일평생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이를 기뻐하신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스타가 되기를 열망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스타는 쉬이 사라집니다. 천국의 스타만이 영원히 빛납니다. 그러면 누가 천국의 스타입니까? 단12:3 “ ...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shine ... like the stars for ever and ever)” 복음 전도로 많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바구니에 선행과 전도로 인간 사랑을 가득 담아야 합니다. 

여러분, 저는 창세기 5장을 읽으면서 공동묘지를 보았습니다. 묘소 하나마다 이런 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낳고 살다가 죽었더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단 한번뿐인 인생을 이렇게 마쳐서야 되겠습니까? 좀 특이한 묘비명을 남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따금 특이한 묘비명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큽니다. “그냥 왔다 간다”(중광스님)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버나드 쇼우) “웃기고 자빠졌네”(개그우먼 김미화 미리 정해 둠)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떤 묘비명을 남기고 싶습니까? 아무쪼록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다 천국에 올라갔노라!” 이렇게 기록되기를 소원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건강장수를 희구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간혹 “그만 살고 싶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는 게 고달프고 괴롭다는 푸념일 뿐입니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산정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죠. “9988234!” 무슨 말인가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죽자!” 그런데 최근에 수정된 새 버전이 나왔습니다. “9988238!” 무슨 말일까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2~3일 앓고 다시 일어나 팔팔하게 살자!” 우리의 심리를 잘 표현한 신조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것은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러므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죽음’입니다. 죽음은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곧 나 자신에게 닥쳐올 ‘나의 이야기’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은 인생을 왜곡되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변치 않는 사실은 평범한 것 같지만 가장 중요한 인생의 진리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도 그런 엄연한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창세기 5장은 인류의 시조 아담부터 노아까지의 계보 기록입니다. 그 당시는 ‘장수 시대’였습니다. 평균 수명이 912세였으니 대단하죠.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을까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과학자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해가 갑니다. 그 중 하나는 이런 겁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는 하늘 위에 물층(water canopy)이 존재했다는 겁니다. 

이로 인해 인체에 해로운 유해광선은 차단되고 인체에 유익한 광선만 투과되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지구 전체가 마치 비닐하우스와 같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최적의 기후 조건에서 장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아 홍수로 물층이 사라지면서 유해광선이 마구 비춰지고 환경이 악화되어 수명이 급감하게 됐다는 겁니다. 

그러면 본문을 통해 당시 인간들이 얼마나 오래 살았으며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기록을 살펴보시죠. 먼저 15절~17절을 봅니다. “15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16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7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마할랄렐이 895세를 살았는데, 어떻게 살았다고요? “낳고 살다가 죽었더라”입니다. 또 18절~20절을 보시죠. “18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19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0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야렛은 962세를 살았는데 역시 “낳고 살다가 죽었더라”입니다. 이렇게 죽 읽어가다 보면, 인류 역사상 최장수 인생을 만나게 됩니다. 누구죠? 므두셀라입니다. 27절에 의하면, 그는 969세를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 기록이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역시 “낳고 살다가 죽었더라”입니다. 

그들은 정말 오래 오래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록은 단순히 “낳고 살다가 죽었더라” 이게 전부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인생은 아무리 길게 사는 것 같아도 결국은 죽고, 그 인생은 영원의 시간에 비하면 마치 점(點)과 같이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일찍 죽은 사람은 작은 점, 오래 살다 죽은 사람은 큰 점으로 모든 인생이 점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하루하루 동분서주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지만, 지나놓고 보면 별게 아닙니다. 한 마디로 인생무상입니다. 

그러면 과연 인생에서 중요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인생의 길이가 아니라 인생의 내용입니다. 물론 장수는 분명히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보다 어떤 인생을 살았느냐 하는 내용(콘텐츠)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본문을 잘 보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기록을 남긴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누구인가요? 에녹! 그도 다른 사람처럼 자식 낳고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21절~23절.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그는 365세로 인생을 마감합니다. 당시 평균 수명에 비하면 젊은 나이에 요절한 셈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뭐가 다릅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충설명이 있습니다. 2

4절을 보십시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Enoch walked with God)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동행한다’는 단어는 ‘함께 걷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친밀한 삶을 살았다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며 살았던 겁니다. 이런 그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홀연히 그는 천국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는 육신의 죽음도 통과하지 않고 직접 하늘나라로 올라간 겁니다. 성경에 보면 인류 역사 상 딱 두 사람만 이런 특이한 경험을 했죠. 에녹과 엘리야! 그래서 창세기 5장 가운데 유독 에녹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는 겁니다. 신약 성경 히브리서를 보면, 에녹의 인생을 또 이렇게 설명합니다. 히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다시 정리하면 이런 말씀입니다. “그렇다. 인생은 얼마나 오래 사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는지로 판명된다.”(코리 텐 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까요? 과연 무엇을 남겨야 할까요? 비유해서 우리 인생의 바구니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하는 게 중요합니다.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을 남기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인생에서 제거할 것을 비워야 합니다. 

[1] 인생에서 비울 것 : 죄악 

우리는 인생의 바구니에서 죄악된 것들을 비워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후회할 것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에녹에 관한 성경 기록이 본문과 히브리서 외에 한 군데 또 있죠. 유다서입니다. 그 중에 유16절을 보면, 에녹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그들은 불만불평하고 욕망대로 행하고, 교만하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는 거짓을 밥 먹듯이 했습니다. 한 마디로,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았습니다. 

여러분, 요즘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매한가지입니다. 아니, 더욱 악해졌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죄의 노예입니다. 욕망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돈과 권세, 명예, 그리고 세상의 향락을 향해 마치 100미터 달리기 하듯 경쟁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살아서 행복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이 세상에서 승리하고 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 이겁니다. 천만의 말씀이죠. 

한번은 sbs-TV에서 ‘돈과 행복도’를 주제로 특집 방송(‘그것이 알고 싶다’의「돈 나라 사람 나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 일리노이대 심리학과 교수 에드 디너가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미국 내 400위까지 부자들의 행복도가 아프리카 케냐의 초원 지대 원주민과 비슷하다”는 겁니다. 연평균 1만불 소득 이상이 되면, 소득이 늘어나도 행복도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현상이 어디 돈뿐이겠습니까? 권세와 향락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그분 앞에서 죄악을 비워야 인생에 행복해집니다. 왜냐하면 그때 비로소 영혼에 참 만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죄악과 욕망을 부둥켜 않고 사는 한 인간은 결코 만족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뉴질랜드 50대 남자가 죽게 됐는데, 임종직전 부인에게 이렇게 유언했답니다. “여보, 내가 42년 전 유조 트럭에서 휘발유(40달러 상당)를 빼내 내 자동차에 넣었는데 마음이 걸려서 도저히 눈을 못 감겠어. 찾아가서 꼭 갚아줘요. 약속하지?” 얼마나 죄악의 고통이 컸으면 이런 유언을 하고 죽었겠습니까? 세상에서 별의 별 것을 다 가지고 누려도 죄에서 자유를 얻지 못하면 마음에 평안이 없고 행복할 수 없는 겁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 하나님과 친밀하게 살았다는 것은 그의 인생 가운데 죄 문제를 해결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므로 죄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비로소 인생이 행복해집니다. 이게 인생의 비밀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던 에녹이 천국에 올라갔습니다. 모든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바구니에서 죄를 비우지 않으면 인간의 어떤 조건으로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죄인입장금지’이기 때문입니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천국에는 죄인은 들어갈 수 없고, 오직 어린 양 예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린 양 예수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누구입니까? 계22:14~15 보면 그 설명이 나옵니다. “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두루마기를 빠는 자만이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습니다. 두루마기를 빨았다는 것은 예수 십자가 피로 죄 씻음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오직 예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권세를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요즘 컴퓨터를 사용하다 보면 별의별 편리한 기능이 있죠. 사진을 찍은 후 ‘포샵’(사진 성형외과)에 들어가면 사진을 아름답게 수정할 수 있어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바로 그런 겁니다. 십자가 앞에 나오십시오! 그리고 모든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회개하고 십자가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인생에 채울 것 : 사랑

인생의 바구니에서 죄악을 비우게 되면, 이제는 영원히 남는 것을 위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게 뭐죠? 사랑입니다. 인생의 바구니에 사랑을 담아야 합니다.

여러분, 한번 살펴보십시오.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너나 할 것 없이 분주하게 삽니다. 그러나 정말 영원한 가치를 위해 삽니까? 솔로몬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솔로몬은 인생의 3관왕이에요. 재물, 권세, 그리고 향락에서 최고를 달렸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막 본인은 뭐라고 고백합니까? 시127: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 ”

전도서를 보면 더욱 처절한 고백이 등장합니다. 전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meaningless)” 얼마나 인생의 허무를 느꼈으면 다섯 번이나 반복합니까? 전2: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열심히 산다고 살아도 세상만사가 다 헛되다는 겁니다. 여기서 ‘헛되다’는 단어가 의미심장합니다. 히브리 성경 원어로 ‘헤벨’(lb,h;)인데, 이 단어는 본래 ‘입김’(breath)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은 입김처럼 금세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사라지고, 오직 사랑만이 영원합니다.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그러므로 사랑을 채우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① 하나님 사랑 :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눅10:38~42 보면 유명한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 나오죠. 그들은 자매였죠. 하루는 예수님이 그 집을 방문합니다. 마르다는 너무 좋아서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교제합니다. 마르다가 삐쳐서 예수님께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마르다의 불평은 정당하죠.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눅10:41~42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일보다 중요한 게 신령한 교제라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일을 하더라도 그 가운데 하나님과 교제가 없으면 헛되다는 겁니다. 우리가 누리는 영생의 본질이 바로 이겁니다. 

요17:3 보면, 예수님께서 영생이 무엇인지 그 정의를 내려주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여기서 ‘안다’는 단어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깊은 교제와 체험을 가리킵니다. 마치 부부가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주님과 내가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누려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럴 때 갈수록 사랑이 깊어지고 갈수록 행복이 풍성해 집니다.

그런데 한 통계 조사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이 평균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거기서 온갖 문제가 발생합니다. 영적으로 고갈되고, 세상을 이길 힘을 상실합니다. 평균 수명을 하루 24시간으로 환산할 때, 보통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은 0.2시간(12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부디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 자신에게도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줄로 믿습니다. 

② 인간 사랑 : 

다음으로, 인간 사랑으로 인생의 바구니를 채워야 합니다. 진정한 인간 사랑은 하나님 사랑을 나누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인간을 가리켜 ‘청지기’라 부르죠. 주인(owner)이 아니라, 관리인(manager)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맡은 모든 재화(물질, 시간, 재능 등)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이런 저런 선행이죠. 

눅10:25~37 보면,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가 나오죠.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서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납니다. 그런데 제사장, 레위인 등이 모두 지나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여관에 데려다 씻기고 치료해 주고 여관 주인에게 비용을 맡겨 부탁합니다. 그 이야기를 마치면서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눅10: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렇게 선행을 베풀며 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선행은 복음 전도입니다. 에녹의 기록을 보면 분명합니다. 유14~15 “14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에녹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심판을 예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 겁니다. 

이러한 그의 신앙과 삶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가 아들을 낳고 이름을 지은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므두셀라! 무슨 뜻인가요?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오리라!”는 뜻입니다. 므두셀라가 죽으면 심판이 있을 테니까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외친 겁니다. 요즘 말로 하면 전도했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잘 연구해 보면, 정말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노아 홍수 심판이 있었습니다. 에녹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미리 계시를 받고 일평생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이를 기뻐하신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스타가 되기를 열망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스타는 쉬이 사라집니다. 천국의 스타만이 영원히 빛납니다. 그러면 누가 천국의 스타입니까? 단12:3 “ ...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shine ... like the stars for ever and ever)” 복음 전도로 많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바구니에 선행과 전도로 인간 사랑을 가득 담아야 합니다. 

여러분, 저는 창세기 5장을 읽으면서 공동묘지를 보았습니다. 묘소 하나마다 이런 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낳고 살다가 죽었더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단 한번뿐인 인생을 이렇게 마쳐서야 되겠습니까? 좀 특이한 묘비명을 남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따금 특이한 묘비명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큽니다. “그냥 왔다 간다”(중광스님)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버나드 쇼우) “웃기고 자빠졌네”(개그우먼 김미화 미리 정해 둠)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떤 묘비명을 남기고 싶습니까? 아무쪼록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다 천국에 올라갔노라!” 이렇게 기록되기를 소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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