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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주님만 자랑하라 (렘 9: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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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주님만 자랑하라 (렘 9:23~24)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보면 어린 왕자는 자신이 키운 장미 한 송이를 아주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정원에 갔더니 자신이 키운 장미와 똑같은 꽃이 5000송이도 넘게 피어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린왕자는 그것을 보고 실망하여 풀밭 위에 엎드려 울었습니다. 그때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다가와서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이 말은 어린 왕자의 마음속에 새로운 것을 심어주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장미꽃 하나만으로 수천, 수만의 장미꽃을 당하고 남아. 그건 내가 물을 준 꽃이니까. 내가 고깔을 씌워주고 손으로 바람을 막아준 꽃이니까. 내가 벌레를 잡아준 것이 바로 그 꽃 이었으니까. 원망하는 소리나 자랑하는 말이나 혹은 점잖게 있는 것까지 다 들어준 것이 바로 그 꽃이었으니까. 그건 내 장미꽃이었으니까.’ 

우리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쩌면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내가 가진 것을 세상에 나가서 자랑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자랑할 때마다 어깨를 으쓱해보기도 하지만 반대로 열등감 때문에 낙담할 때가 더 많이 있습니다. 내가 번 돈을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 내 눈에 들어옵니다. 나는 지식이 많고 이만하면 괜찮은 학벌이라고 뽐내보려 하는데 나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나타납니다. 나는 힘과 능력이 있고 권력도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해보지만 나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진 사람 앞에서 다시 작아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우리 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자랑하지 않고 보이는 세계를 자랑하면 그것 때문에 우리의 삶에 고통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요사이 젊은이들이 부러워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처음에 ‘엄친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엄청 친한 아이’를 뜻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니까 그것이 아니라 ‘엄마 친구 아들을 ‘엄친아’, 엄마 친구 딸을 ‘엄친딸’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엄마가 밖에 나갔다가 친구가 자랑하는 이야기를 듣고 와서 자신의 자녀에게 말합니다. “내 친구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이런 재능도 있다더라. 너는 뭐하니?” 

이렇게 자녀를 구박하여 자녀의 기가 죽고 마음이 움츠러들게 하는 말이 ‘엄친아’입니다. 이 ‘엄친아’는 아주 반듯하고 멋지며 능력도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비교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자녀들은 부모님과 대화를 단절하고 부모들은 자녀를 보면서 분통을 터뜨립니다. 자랑 때문에 누군가 고통을 받고 누군가는 마음의 상처를 받습니다.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그 사람을 칭찬하는 말이기도 하면서 그것에 대해 부러워하고 안타깝게 자신을 되돌아보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느 누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자랑은 인간의 공통관심사입니다. 남에게 없는 것, 남과 다른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경고하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예레미야 9:23)

그런데 이게 웬 말입니까? 나의 지혜와 힘과 용맹, 권력과 부를 자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마음은 답답합니다. 인간이 지혜와 힘, 돈과 재물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데 하나님은 이것을 모르시는 것은 아닌가 묻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네 인생의 지혜와 힘과 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나도 알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에서부터 너희를 자유하게 하려고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하노라”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 (잠언 18:11) 

인간이 돈과 권력을 가지면 얼마나 자랑스러워합니까? 인간은 돈과 권력이 있으면 그것을 자기의 요새처럼 쌓아두려 합니다. 그리고 내가 쌓아놓은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서 감탄하기를 바랍니다. ‘저 사람은 능력이 많구나. 저 사람은 돈을 열심히 벌어서 부자가 됐구나. 저 사람은 권력을 차지하였구나.’ 우리 역시 이러한 감탄을 듣기 위해서 얼마나 애쓰고 있습니까? 

우리도 지난날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느낍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무시당했는가? 한 끼 먹을 것이 없어서 얼마나 굶었는가? 권력에 연결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했는가?’ 과거에 상처 났던 아픔들이 우리로 하여금 지식과 힘을 얻도록, 돈과 재물을 향해서 달려갈 수밖에 없도록 하지는 않았습니까? 세상의 사람들은 내가 가진 재산으로 나를 평가합니다. 내가 가진 신분으로 나를 평가합니다. 돈, 권력, 지식이 나의 성이요 요새입니다. 

나는 자랑스럽게 달려왔는데 어느 날 내 이웃들과 나 사이에 담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보이는 것을 자랑할 때에는 우쭐하였지만 그것은 잠시 뿐, 나보다 더 큰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울증에 빠지고 열등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있는 사람들, 없는 사람들을 향해서 가차 없이 상처를 줍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나도 거꾸로 상처를 받습니다. 

사랑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하십시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9:2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하고 싶은 자랑, 그 대상을 바꿔보지 않겠느냐? 나는 너의 자랑을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그 자랑의 우선순위가 네 재물과 권력, 지식과 지혜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된다면 나도 기쁘고 네 인생도 달라질 것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사랑을 베풀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임을 아는 것이 너를 살리는 길이다.”

보이는 세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자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이것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시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열심이 없어서 공부를 안 한 사람을 두둔하려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식을 축적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가 없으면 그가 갖고 있는 지식과 지혜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교만하게 만들어 사람을 파괴하는 악한 지혜와 지식이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고린도전서에 이와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고린도전서 8:1)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지식은 다른 사람의 지식을 우습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식은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사람을 정죄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식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식을 많이 가진 자일수록 사랑과 함께 움직이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가 가진 지식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지식, 사람을 세우는 참된 지식이 될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하는 지식이 될 때 그 지식은 멋진 지식, 남을 세우는 지식, 사람을 살리는 지식이 됩니다.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하십시오

하나님은 두 번째로 말씀하십니다. “용사는 자기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이것은 힘이 없는 자와 병든 자에게도, 능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인생의 희망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공평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높이 올라간 교만한 자를 끌어내리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밑바닥에서 고통 받고 외로움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끌어올려 다시 세우시십니다. 힘이 있을수록, 권력을 가질수록, 무엇인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를수록 하나님의 정의로운 마음을 가져야 내가 가진 힘이 참된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낮은 자를 높이 세우시고 높은 자를 끌어내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했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를 낳지 못하여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을 위기에 처해있던 한나라는 여인입니다. 결국 그녀는 임신하여 하나님의 인물인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그때 그녀가 부른 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도 그것과 똑같은 노래를 부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였던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성령으로 잉태하면서 누가복음에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누가복음 1:51~53) 

하나님께서는 힘 있는 자의 교만을 무너뜨리시고,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을 세우시며 연약한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게 하십니다. 바울은 지식도 있고 힘도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연약하나 하나님은 강하다. 내가 부족하고 모자랄 때 하나님은 풍족하시다. 내가 죽음의 문턱에 서있을 때 하나님의 부활을 능력을 경험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자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로 말씀하십니다. “부자는 자기의 돈과 재물을 자랑하지 말라.”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의 눈물을 아시고 그들을 위해 탄식하십니다. 가난한 자에게도 기회가 있고 없는 사람들도 존귀하게 여김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새로운 공의를 우리에게 허락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 

가난 자체가 복은 아닙니다. 풍족함과 부가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그들에게는 기다림과 하나님을 향한 열린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면서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것으로 가득 찬 자, 자기의 부로 가득 찬 자, 자기의 부를 자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경고하시며 권면하십니다. “땅의 것들을 자랑하는 자들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자랑하라. 네가 갖고 있는 부를 자랑하는 자들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넉넉한 부를 가지고 계신 분이다. 세상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아, 하늘의 권력과 감히 어떻게 비교할 수가 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와 우리의 지식과 권력과 재물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공의의 역사를 이 땅에 나타내십시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대한민국은 이제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경제가 발전하였습니다. 등이 따뜻하고 식탁에 풍요로운 반찬들이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삭막해지고 있습니다. 서로의 만남 속에서 따스함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서로를 위로하고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다투기만 합니다. 사람들은 외롭고 고독한 존재가 되어 차가운 벽을 쌓아갑니다. 이 사회는 정이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교회조차도 이런 세속적인 가치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에 와도 외롭다고 말합니다. 예배를 드려도 마음속에 하늘로부터 오는 시원함이 없다고 탄식합니다. 심지어 교회를 나오는 이유도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까, 어떻게 하면 권력의 자리에 더 가까이 갈까 하는 이유 때문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억누르는 돈과 지식과 권력의 힘에서부터 우리를 훼방시켜나갑시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 땅에 쌓아놓은 요새를 깨뜨리십시오. 그리고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보이는 세계의 모든 것들을 우리가 바르게 다스려나갈 수 있습니다. 

이 땅에는 건강의 불공평, 부의 불공평, 기회의 불공평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여 축복을 주셨습니다. 지식과 지혜의 복, 힘과 권력의 복, 그리고 돈과 재물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는 멋진 지혜자, 멋진 권력자, 멋진 부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첫 번째로 한 설교가 무엇입니까?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복음 4:18~19)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병든 자들을 쓰다듬으셨습니다. 외롭고 힘든 자, 소망하는 자에게 소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베푸신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일로부터 나 자신의 개혁과 교회의 개혁, 이 나라와 사회의 개혁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은 지혜가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없어져야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돈에 관심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을 자랑하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축복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이 땅에 아직도 고통 받고 외롭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써야합니다. 그 때 그 자리에 하나님 사랑의 역사, 정의와 공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역사가 이 땅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보이는 것에 집착했고 보이는 것을 자랑하면서 우쭐댔으며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주님,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알고 먼저 하나님을 자랑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인생에 첫 번째 목표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주님의 마음으로 이 땅에 베풀어 나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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