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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여정 (창 39: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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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여정 (창 39:19~23)


(창 39: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창 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창 39:22)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창 39:23)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교회생활을 잘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다른 교회로 옮겨야 하겠다고 하는 이들을 종종 봅니다.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교회안에서 누구 누구에게 큰 상처를 받아서 도저히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떠나간 분들 중에는 다른 교회에 정착하여 신앙생활을 잘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이 교회 저 교회 방황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그렇게 방황하다가 신앙생활을 중단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다시 돌아오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용기를 내기가 어려운가 봅니다. 
  
우리 교회에서 한 때 영적 체험도 많이 하고 전도도 잘하고 직분도 맡아 참 열심을 품고 신앙생활을 잘 했는데 그런 소식을 듣게 되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분이 그때 그 위기를 잘 극복하고 남아서 계속 교회생활을 하였으면 본인도 많이 성숙하고 좋은 열매도 많이 맺었을텐데..  그리고 교회 부흥에도 큰 기여를 했을텐데..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왜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들이 흔하게 일어나는 것일까요?  신앙의 여정에는 누구에게나 반드시 그런 시험이 찾아옵니다. 누구나 그 순간에는 견디기 힘들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은혜가 충만하다가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면 사람이 미워지고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사람들과의 갈등이 생기면 마음에 쓴물이 솟아나고 사람이 싫어지고 교회까지 싫어질 수 있습니다. 깨어진 인간관계로 인해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를 다 잊게 되고 원망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을 겪으며 성경적으로 해석하고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런 일들이 성장과정에서 만나는 시험임을 깨달으면 받은 은혜를 쉽게 쏟지 않게 됩니다. 신앙여정에서 잘 통과하면 하나님께 인정받고 축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 어리석게 교회를 옮기는 방법같은 도피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는 요셉이 감옥에 갇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셉은 무슨 큰 죄를 저지르고 들통이 나서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의 유혹을 이기고 순결하게 자신을 지켰지만 억울하게 누명을 썼습니다.  그것도 주인의 아내를 강간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강간미수범이라는 누명을 썼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용모가 잘 생기고 준수한 요셉에게 윙크를 하며 유혹했습니다. 노골적으로 동침하자고 유혹했으나 요셉은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하며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어느날 요셉이 일을 하러 집안에 들어갔는데 때마침 집에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자락을 붙잡고 동침하자고 매달렸습니다. 요셉은 그 유혹을 피하여 옷을 벗어던지고 도망쳤습니다.  여인은 도리어 요셉이 강간을 하려고 하여 소리를 치니까 옷을 버려두고 도망쳤다고 큰 소리로 떠들며 요셉의 옷을 증거물인양 보여주었습니다.  요셉의 주인인 보디발은 크게 노하여 요셉을 잡아 감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큰 죄를 저지른 것처럼 누명을 썼으니 말입니다. 그것도 정말 죄값을 받아야 할 여인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보디발과 모든 사람에게 오해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요셉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요셉의 반응입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억울하다고 팔닥 팔닥 뛰어야 하는데 요셉은 담담하게 받아 들입니다. 죄인은 바로 저 여인이라고 맞 고함을 칠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를 박박 갈면서 복수하겠노라고 소리지르지도 않습니다. 요셉은 묵묵히 상황을 받아들이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평안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요?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만약 요셉이 팔닥 팔닥 뛰며 이를 갈고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귀가 요셉을 붙잡았을 것입니다.  만약 요셉이 누명을 씌운 여인과 오해한 보디발을 미워하고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인자를 더하셨을까요?  그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묵묵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평안을 유지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니까 간수장도 요셉에게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항상 여러분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늘 풍성하게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기대합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을 은혜가 임할 그릇으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심령을 임재의 분위기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미움과 분노 그리고 원망으로 가득한 마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복수심과 원수갚으려는 마음에는 은혜가 깃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마음은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수 있는 마음은 원수까지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내하는 마음입니다. 

요셉은 그런 중요한 영적 원리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형들이 그를 노예로 팔았을때도 형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형들이 어떻게 동생인 나에게 그럴수가 있어?' 하며 배신감에 몸을 떠는 대신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일에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중에 높은 위치에 오르고 형들에게 보복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진 때에도 오히려 두려워하는 형들을 위로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들을 기르리이다.(창49:19-21)" 하며 간곡한 말로 위로했습니다.  
  
감옥에서 왕의 신하들의 꿈을 해몽하며 도움을 주었으나 왕의 신하는 요셉을 잊었습니다. 요셉이 그에게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은혜를 베풀어 바로에게 억울한 사정을 말하여 나를 건져주소서." 부탁한 것을 깨끗이 잊었습니다. 요셉의 입장에서는 '도움만 싫컷 받고는 금새 다 잊다니 완전히 나를 이용만 해 먹은 거 아냐?'하고 크게 섭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때도 그렇게 씩씩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반응을 보이게 되면 은혜를 쏟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이 소중함을 알기 때문에 감정을 잘 조절하며 위기를 넘긴 것입니다. 상처를 준 사람들을 빨리 용서하고 다 잊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용서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섭섭한 마음을 빨리 털어버리고 원망과 불평을 피하며 사는 이유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넘치도록 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며 무엇에 집중하십니까?  누구에게 집중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온 생각을 집중하며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당한 섭섭한 일에 집중하며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들만 바라보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쓴 뿌리를 자꾸만 키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불행해집니다. 
  
신앙여정에 시선을 집중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계속 성장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복을 많이 받아 누리며 살려면 오로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께 눈을 고정시키고 살아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가 잘 되는 것을 제일 싫어하기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방해합니다. 사람들의 잘못을 부각시켜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옮기게 만들려고 안간 힘을 씁니다. 어떻게든지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려고 상처를 건드리며 사람을 미워하는 일에 한눈 팔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 사단에게 속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정말 힘든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인자를 더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로 범사에 형통하게 하십니다. 이 모든 복과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임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어떤 방해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있도록 마음관리를 잘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과의 친밀함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님과의 바른 관계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을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 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 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7-10) 

어떤 사람의 눈에는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형통해봤자 뭐 별거 있느냐?'하고 대수롭지 않게 바라볼 것입니다. '그까짓 간수의 눈에 들고 간수에게 인정받는 것이 대수냐?'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고 하나님이 계속 나를 위해 일하심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큰 비전을 향해 쉬지 않고 일하심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중단하지 않으시고 일하시니 결국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에 오르고 크게 쓰임받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힘드십니까?  괴롭습니까?  무엇때문입니까?  혹 사람때문에 어렸습니까? 신앙여정에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누구나 인간관계속에서 부딪칠 수 밖에 없습니다. 상처를 주고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안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용서받은 죄인들입니다. 그리고 교회안에도 미성숙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섭섭하게 하고 실수도 하고 손해를 입히기도 잘 합니다. 상처를 주어 마음을 아프게도 잘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까지는 우리는 어느곳에 가도 불완전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갈등이 발생하고 힘든 것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말기 바랍니다. 도피하지 말기 바랍니다. 사람들의 배신이나 오해 그리고 괴롭힘을 참고 견디며 믿음으로 승화시키면 그 상처가 오히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넘치는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앞에 믿음을 인정받는 축복의 기회도 됩니다.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로 발전케되는 거름이 됩니다. 
  
여러분 모두 요셉처럼 신앙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갈등, 상처 그리고 괴롭힘을 받을 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신뢰함으로 경외하여 믿음이 더 견고해지고 형통케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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