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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풍랑의 한 복판에서 (행 27: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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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의 한 복판에서 (행 27:33~44)


저의 서재에는 ‘헤럴드 쿠시너’라는 사람이 쓴 ‘왜 착한 사람이 고통을 받는가?’라는 종로 서적에서 나온 빛이 바랜 낡은 책이 있습니다. 천성적으로 착한 쿠시너는 훌륭한 유대인 랍비로서 모든 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가정에 먹구름이 드리웠습니다. 3개월 된 어린 아들이 중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아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검사 결과 아들이 ‘조로증’이란 것이었습니다.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빠르게 노화돼 10세가 되기 전에 팔순 노인처럼 늙어 버려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가슴에 끌어안고 오랜 시간을 기도하며 씨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첫 번째, 인생의 모든 고난은 나 혼자 당하는 것 아니다. 

두 번째, 이 땅에 우연한 일은 없다. 이해가 안되지만 이 고통 가운데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고 계획이 있다. 세 번째, 하나님은 땅의 문을 닫으실 때에 하늘 문을 여시고 하나의 문이 막히면, 다른 문을 열어놓고 기다려 주시는 분이시다.” 저도 많은 인생을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특별히 이런 고통의 상처를 당해보지는 않았지만, 헤럴드 쿠시너의 이 이야기에 동의를 합니다. 

사람은 인생의 길이 막혀서 죽거나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막힌 길에 대하여 절망하고 주저앉기 때문에 죽거나 망하는 것입니다. 사방팔방이 막혀 있다 하더라도 하늘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이해되는 일보다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내가 왜 이런 사람을 만나야 했는지, 왜 내 인생 가운데 이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이해가 되기 때문에 인생을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인생을 사는 자들입니다. 지금은 고난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나아가면 오늘의 고난이 유익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망망 지중해 해상에 276명을 태운 선박 한척이 로마로 향해 떠나고 있었습니다. 배안엔 로마로 호송되는 죄인들과 호송 군인들 그리고 상인들까지 가득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배가 광풍을 만나 파산 직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광풍은 대작하고(14절), 풍랑은 극심하여(18절), 살아날 가망은 거의 없는 절박한 지경이었습니다(20절). 그야말로 생과 사의 씨름, 대자연과 인간의 싸움이 전개된 것입니다. 싸움은 처절했습니다. 

풍랑은 인간이 행복으로 여겼던 모든 화물과 선박 기구들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276명은 죽음의 계곡을 여러차례 내려갔었을 뿐 아니라, 공포와 전율에 떨기를 14일간이나 계속했습니다. 이같이 처절한 생지옥 같은 고난 중에 지위 명예 부귀영화같은 세상적인 것들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고, 가치도 효험도 없었습니다. 다만 현재 목숨이 일엽편주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고 침몰 익사되지 아니하고 구사일생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고 살아남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한 조각의 마른 떡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를 제창한 히브리인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도 하나님을 찾았고, 그에게 감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떡 한 조각이란 그 질로 보나 양으로 보나 실로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잘 것 없는 한 조각의 떡을 들고 하나님께 축사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의 "축사"란 몇 가지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현대역은 "감사기도"로 번역했고, 표준역과 새번역은 "감사"로 번역했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축사란 감사 또는 감사기도입니다. 바울은 떡 한조각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린 것이지요. 그것도 한치 앞 생명을 예측할 수 없는 풍랑 속에서 말입니다.일반적인 감사란 부족한 것이 넉넉해졌을 때, 약한 것이 강해졌을 때, 잃은 것을 찾은 후에 하는 법인데 오늘 본문 18절 "그들의 재산인 화물을 다 잃은 후에" 드린 감사였습니다. 싸 가지고 나온 모든 짐을 남김없이 전부 잃은 후에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빵 한조각 외에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처지에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19절, 그들 구원의 방편인 선박 기구를 잃은 후에 감사했습니다. 선박을 움직이는 기구란 구원의 방편입니다. 구사일생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를 상실했다는 것은 살 수 있는 여망을 다 잃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구원의 방편을 잃은 후에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고난 가운데서 드려지는 이 감사! 시련속에서의 감사! 이것은 감사의 조건을 창조하는 능력입니다. 참된 감사란 잃었느냐 얻었느냐 하는 조건 때문에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드리는 감사입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감사 덩어리이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라도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일행을 보십시오. 고난 중에 감사했습니다. 어떤 고난중에 감사했는가? 20절에 보면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진" 절망적인 고난중에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23절 14일간이나 먹을 수 없을 만큼 고난이 극심한 중에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이 감사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 고난을 통해 빗어질 하나님의 선한 뜻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본문에 나타난 이 광풍은 우연히 이러난 광풍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 인간을 흔들어 깨우는 하나님의 확성기였습니다. 

C. S. Lewis 교수는 옥스퍼드 대학의 예배당에서 설교를 하고 나올 때, 한 학생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증거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째서 이런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고통을 허용하시는 겁니까?” 그 때 루이스 교수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고통이 있어도 교만한 인생인데, 만약 인생의 길에 고통마저 없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더 교만하겠습니까?” 그리고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고통이란 귀먹은 세상 사람들을 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메가폰(확성기)입니다.“그렇습니다. 우리는 평온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자녀들이 말썽 부리지 않고 잘 커갈 때, 남편이 다른 사람들보다 승승장구하며 승진을 잘 할 때, 손대는 일마다 잘 되고, 일이 잘 풀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인생 가운데 폭풍이 불고, 풍랑이 밀려올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C. S. Lewis는 우리에게 다가온 고통은 귀먹은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통에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음성에 더욱 귀 기울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고통에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가게 만드는 힘이 있는줄로 믿습니다. 사실 풍랑을 만나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들에게 들이 닥친 이 풍랑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14절에 보면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직역하면 북동풍(北東風 Northeaster)이란 뜻입니다. 거센 회오리바람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허리케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이 광풍이 일어난 이유는 교만과 욕심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1. 이 항해에 대해 바울은 미리 경고했습니다. 시기적으로 겨울철인데, 항해를 강행하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호송관인 백부장이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따르고 항해를 강행합니다. 이게 바로 인간의 교만이죠. 그 결과 그들은 큰 광풍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10-11절을 봅니다.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백부장이 무시한 것은 단순히 인간 바울의 말을 무시한 게 아닙니다. 

바울은 비록 죄수의 몸이지만,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10절에서 ‘내가 보니’라는 말은 그의 영적인 통찰력을 가리킵니다. 그에게 오랜 항해 경험도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기도하면서 느끼는 영적 감각이 있었다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만 봐도 세 번이나 파선의 위기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바울이 경고했지만 이를 무시합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무시한 셈입니다. 백부장도 승객들도 전문가 운운하며 선장과 선주의 말을 신임했지만, 그들이 만난 것은 유라굴로 광풍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욕심 때문입니다. 12절에 보면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 ” 여기서 ‘그 항구’란 ‘미항’(美港)을 가리킵니다. 사실은 미항이 겨울에 지내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자연 조건이 풍랑을 피하는 데 아주 좋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유흥 도시가 아니어서 먹고 마시고 노는 데 불편하다는 게 그들의 불만 사항이었습니다. 그래도 안전이 더 중요한데 말입니다. 

어쨌든 그런 욕심 때문에 안전을 무시하고 환락의 항구 도시인 뵈닉스를 선택했고, 그 결과 광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풍랑 앞에 어쩔 줄을 모르는 배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바울이 무엇이라고 외칩니까? 본문 21절을 보십시오!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유라굴로 광풍 앞에 모두 벌벌 떨고 있는 아수라장 가운데 누가 나섭니까? 

바울, 하나님의 사람 바울이 나섭니다! 그는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사실은 회개를 촉구한 겁니다. 세상만사가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줄을 깨닫고, 이제라도 하나님께 겸손히 무릎 꿇으라는 겁니다. 호6:1 말씀 보면, 패역한 이스라엘을 향해 호세아 선지자가 호소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만사가 해결됩니다. 회개는 유턴(U Turn)입니다. 

하나님께로 유턴하면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항상 지향할, 초점을 맞추어야 할 정북향(正北向)입니다. 방행을 몰라 방황할 때, 혼돈 가운데 있을 때 정북향을 찾으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무조건 북극성을 찾으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상황에 처하든 하나님에게로 가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유라굴로 광풍이 앞에 있습니까? 좌고우면 할 것 없습니다. 무조건 즉시 하나님께 유턴하시기 바랍니다. 2.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라고 외칩니다. 23-24절 보십시오!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는 밤새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영적인 체험을 합니다. 천사가 그의 곁에 서서 그를 위로하고 새 힘을 줍니다. 그리고 이제 용기백배하여 당당히 말합니다! 25절 보세요!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당당하게 그들을 향해 안심하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 이 절망의 환경 속에서도 이처럼 당당하게 안심하라고 외칠 수가 있습니까? 그 이유는 확신 때문입니다. 23절에 ‘내가 속한 바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란 표현입니다. ‘내가 속한 바 내가 섬기는 하나님’ 이것은 그의 확신은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확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전적으로 책임져 주신다는 겁니다. 

사43:1-2절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구속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안심해도 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지켜주십니다!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 고난 중에 감사했습니다. 그 감사는 20절에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진" 절망적인 고난 중에 감사였고 23절에 14일간이나 먹을 수 없을 만큼 고난이 극심한 중에 드려진 감사입니다. 

언젠가 소개했던 하림 주식회사를 경영하시는 김 홍국 장로님의 이야리를 다시 들려 드립니다. 그 분이 경영하는 공장인 전북 익산에 가면 회장실에 액자가 하나 있는데 그 글은 “이 풍랑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입니다. 그 분은 미성년자인 고등학교 3학년의 신분으로 사업자 등록증을 걸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김 회장은 무엇보다 시시로 변하는 닭 값이 시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인 기업이 되려면 생산 원가를 낮추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사료를 직접 만드는 통합 경영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1986년 하림 식품을 출발시켜 하림은 농장과 공장 유통을 통합하게 됩니다. 1997년 코스닥에 등록하고 뒤이어 일일 생산 능력 200톤 규모의 육가공 신축 공장을 건립하게 됩니다. 그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인데 탄탄일로로 성장하던 이 회사가 전기누전으로 연 건평 3만 m2의 내부와 시설과 건물 9,171평이 전소했고 직간접의 손실 피해액은 무려 1,000억원에 달했습니다. 

거의 재기 불능의 자리까지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잿더미 위에서 문제를 끌어안고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붙잡고 계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간증이 실린 국민일보를 보면 그 화재 사건 당시의 고백이 실려 있습니다. “모태 신앙이지만 교회를 건성으로 다니던 그에게 공장 화재는 영적인 눈이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에게 불이 난후 화학적인 변화가 생겼다. 성경을 읽다보면 다음 장이 궁금해지고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던 설교가 기다려졌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고난이 축복의 통로였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공장 화재 3개월 후 자신이 섬기던 이리 신광 교회 건물을 다시 짓는 사역에 건축 위원장으로 헌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회사 사태 수습에 아직도 여념이 없었겠지만 어쩐지 하나님 나라의 일에 헌신해야 하겠다는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가 문화적으로 탁월해야 안 믿는 이들을 전도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땅 값을 빼고 5년 동안 450억의 예산을 투입하여 아마 한국 땅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효율적인 예배당 건물을 완성하여 주께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가 새 예배당 건물을 짓는 동안 회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닭, 오리, 돼지고기 사료 부문에서 국내 점유율 제1위로 떠올랐고 모기업 하림은 지난해 3618억의 매출을 올리게 됩니다. 25개 계열사중 양돈 업체인 선진은 2108억원, 농수산 홈 쇼핑은 2108억원, 제일 사료, 제일 곡산, 천하제일 사료는 3063억원, 역시 양돈 업체인 대상 팜스코는 3537억원의 매출을 올리게 됩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과 야곱, 이삭 모두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면 고난도 축복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고생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자 계속 도전하고 모험하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익산 하림 공장 식당 벽에는 찬송가 가사의 일부를 서예 글자로 쓴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이 풍랑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찬송가 503장 ‘고요한 바다로’중의 한 대목이지요.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2)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3)내 걱정 근심을 쉬 없게 하시고 내 주여 어둔 영혼을 곧 밝게 하소서 (4)이 세상 고락 간 주 뜻을 본받고 내 몸이 의지 없을 때 큰 믿음 줍소서” 김 홍국 회장은 화재 사건이 일어난 그 을씨년스러운 현장에서 이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고 헌신하면서 재기했다고 고백합니다. 고난이 그의 인생의 새 시대를 열었고 오히려 그는 고난으로 더 큰 인생의 부흥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이 새 시대의 부흥의 마당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 원치 않는 고통을 우리가 함부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나의 실수이든,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고난이든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이 문제만 바라보다가는 모든 것을 잃습니다.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더 집중하십시오. 그분은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심지어 나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세신바 되신 분입니다. 이 시간, 우리의 작은 그 신음 마져도 응답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 앞에 나의 시선을 집중하십시오.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유라굴로 광풍이 몰려오고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신뢰하며 착실히 살아가면 나중에 분명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롬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면 성도 여러분, 우리도 김 홍국 회장처럼 오늘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인생의 주요 역사의 주이신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헌신을 결심해 보시겠습니까? 기도 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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