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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 받을 자격이 없는 자 (계 21: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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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받을 자격이 없는 자 (계 21:18~27)
  

명절을 타국에서 보내는 것은 참 쓸쓸한 일입니다.
선교사로 사역했던 이집트에는 고국을 떠나온 교민들이 많았습니다.
평소에는 고국을 그리워할 틈도 없이 바삐 살던 교민들은 명절이 되면 대사관에 함께 모여파티를 하곤 했습니다. 
모임이 끝날 때쯤 부르는 노래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고향의 봄”이었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이쯤 되면 벌써 모두들의 눈은 벌겋게 충혈이 되었습니다.
“고향의 봄”을 여기서 부르는 것과, 타국에서 부르는 것은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해외에서 생활하는 사람 가운데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언젠가는 고국에 돌아가리라.’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여기서 뿌리박고 살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현지인들과 결혼한 분들은 대부분 ‘그냥 여기서 뿌리박고 살겠다.’고 하지요.
그런데 고국에 돌아가겠다고 생각하며 생활하는 사람들은 생활하는 태도가 좀 다릅니다. 
아이들이 혹 한국말을 잊어버리면 큰일 날 듯이 한국말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혹 여유 자금이 생기면 외국에서 부동산을 사는 대신, 본국에서 작은 집이라도 마련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렇게 준비한 사람들은 언젠가는 고국에 와서 노후를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준비해 놓지 못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고국이 그리워 미칠 것 같으면서도 돌아올 수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인생살이를 나그네라고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천국을 향하여 가는 나그네들입니다. 
이곳이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닙니다. 
이곳은 잠시 지나는 여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까요?

1. 천국의 실재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첫 번째 관심은 ‘나는 과연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천국은 ‘공원’이 아닙니다.
공원은 가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갈 수는 곳이지만 천국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엔 어떤 사람이 들어갑니까?
착한 사람, 돈 많은 사람, 공부 많이 한 사람이 들어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착하든 악하든, 돈이 많든 적든, 공부를 많이 했든 적게 했든, 그것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갑니다.

이라크의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갑작스럽게 외국인 소개 작전을 했습니다.
비행기가 와서 소개 작전을 하는데, 미국 헌병들이 탑승허가를 했습니다. 
누구에게 탑승허가를 했을까요?
인물 잘 생긴 사람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고, 옷 잘 입은 사람도 아니고,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니고.......
뭐겠어요?
미국 여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미국 여권만 가지면 백인이든, 흑인이든, 황인이든 다 타라고 했습니다.
그 외의 사람들은 난민이 되어 요르단 광야에서 몇 달 동안 생고생을 해가며 텐트 속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2.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가 갖춰야할 자격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본문 계21:27절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지금도 소중한 이름입니다만 그날에는 지금 느끼는 것보다도 몇 천배 몇 만 배 더 소중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죄에 뒤범벅이 될지라도, 실패의 수렁에 허우적거릴지라도, 바위보다 더 무거운 허무감에 짓눌린다할지라도-예수 그리스도를 포기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천국을 포기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 우리는 죄인입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사장님도 죄인이고, 부장님도 죄인이고, 과장님도 죄인입니다.
남편도 죄인이고, 아내도 죄인입니다.

할아버지도 죄인이고, 간난 아기도 죄인입니다.
“에이! 그런 소리 하지 마!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저 분은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분이신데 저 분을 죄인이라고 한다면 말이 안 되지........”
그러나 그 분도 죄인입니다.
“아니, 내가 남의 물건을 훔치길 했나, 남의 팔을 분질렀나, 왜 나를 죄인이라고 하는가?”
그래도 죄인입니다.

조금만 관찰해보면,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친구와 사이좋게 놀아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잠시를 못 참고 토닥토닥 싸웁니다. 
선한 것은 가르치지만 잘 못해요.

반면 “얘야,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욕심을 부려야 한다.”라고 한 번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클 때를 보면 가르치지 않은 욕심이 얼마나 사나운지 몰라요. 
아이들이 둘러앉아 함께 과자를 먹다가 접시에 하나만 남으면 어떻게 하는지 보세요.
손에 든 것을 얼른 입에 넣고 남은 하나를 덥석 잡습니다.
악한 것을 가르치지 않아도 잘 해요.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것은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죄로 기우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 하나 예외가 없습니다. 
이 죄 때문에 삶이 혼란스럽습니다.
이 죄 때문에 삶이 공허합니다.
이 죄 때문에 우울합니다.

이 죄 때문에 근심 걱정을 하게 됩니다.
이 죄 때문에 이웃과 불화하게 됩니다. 
이 죄 때문에 죽음이 왔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 6:23)

2)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롬5:8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의 사랑을 나타내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은 진리를 확인합니다.

①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 
② ‘그 죽음을 해결하려면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
③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심으로 내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한 구원의 길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행4:12)
구원받는 길은 이 길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이치를 요3장에서는 구약성경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갈 때, 길이 험하다고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건져준 큰 사랑을 망각하고 길이 험하다고 불평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불뱀을 보내셨습니다. 

불뱀에 물려서 죽게 되었을 때 그들은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겨 살 수 있는 방책을 내려주셨습니다.
그 방책이란,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 끝에 높이 달고, 뱀에게 물린 자들은 고개를 들어 놋뱀을 바라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놋뱀을 바라보는 자는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하나님의 호의였습니다.

이 때 선한 사람이냐 악한 사람이냐, 부자냐 가난한 사람이냐, 공부를 많이 했느냐 적게 했느냐 등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놋뱀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불뱀에 물린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불평만 한 우리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시다니!”라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뱀에 물린 사람들 중에는 “세상에 뱀에 물렸으면 약을 발라 해독을 해야지 놋뱀을 쳐다본다고 사느냐?”라는 합리주의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또 그들 중에는 “세상에 믿을 말이 따로 있지 그런 말을 누가 믿느냐?”라는 불신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이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놋뱀을 바라본 사람들은 살았고, 그 말씀을 믿지 않고 놋뱀을 바라보지 않은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만 하면 살아났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신 일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기도로 여러분의 믿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롬10: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중심에 들어오시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중심을 알고 계십니다.
이렇게 따라 기도하십시오.(이미 믿는 분들은 구원을 확증한다는 의미로, 처음 교회에 나오신 분은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로)

“주 예수님, 나는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죄 값을 담당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나는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나를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들어가야 할 천국이 어떠한 곳인지 한번 살펴봅시다. 

천국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일까요? 
한마디로 천국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답고 귀한 곳입니다.
본문, 요한계시록 21장 18-21절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둘째는 자수정이라 그 열두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계 21:18-21).

이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사도요한은 환상으로 천국을 보고 너무도 황홀하여 그 아름다움을 그가 아는 모든 보석의 이름을 들어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아무리 읽어도 그 화려함을 그려낼 수 없습니다.
팥알만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도 자랑하고 싶어서 손을 머리 위에 얹고는 “아이고 머리야…….”한다는데, 그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얼마 전 서울의 어느 지역에서 이십사억 원짜리 아파트가 분양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우와, 굉장하다.’라며 감탄했습니다.
그래봤자 시멘트와 돌로 지은 집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마련하신 천국은 보석들로 기초를 깔고, 모든 집을 보석으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본적이 없는데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뿐만 아닙니다.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열두 달 실과를 맺는 과일나무들이 줄지어 있고, 아름다운 온갖 종류의 꽃들이 은은한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찬송가 249장 주 사랑하는 자 다 찬송할 때에

1. 주 사랑하는 자 다 찬송할 때에 그 보좌 앞에 둘러서 
그 보좌 앞에 둘러서 큰 영광 돌리세 큰 영광 돌리세.

후렴: 저 밝고도 묘한 시온성 향하여 가세 내 주의 찬란한 성에 찬송하며 올라가세

2. 주 믿지 않는 자 다 찬송 못하나 하나님 자녀 된 자들 
하나님 자녀 된 자들 그 기쁨 전하세 그 기쁨 전하세.

4. 내 눈물 다 씻고 늘 찬송 부르리 저 임만누엘 주 앞에 
저 임마누엘 주 앞에 나 영광 누리리 나 영광 누리리. 

4. 비현실적인 이야기일까요? 

혹시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천국, 그거 너무 비현실적 이야기 아닙니까?”
천국은 정말 비현실적인 얘기일까요?
모리스 롤링스 박사라는 사람이 있는데, 심장병 전문 의사인 그의 저서 『사후의 세계』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임상학적으로 심장마비로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 사후세계에 갔다 온 경험을 말해주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70세가 된 한 노인은 심장마비를 일으키며 죽었다가 소생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심장의 통증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급히 옮겨가고 있었다. 그들은 심장마비라고 했다. 그 다음에 기억나는 것은 내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내 육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곳에 어떻게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나를 돌보고 있었다.…그 다음에 내가 어두운 통로를 지나가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통로를 빠져나와 넓은 들판을 마주했다. 그리고는 아주 기다랗고 큰 흰 벽을 향해 걸어 나갔다. 

벽에 난 문에 이어진 세 개의 계단을 올랐다. 계단 위에는 눈부시게 하얗고 빛나는 옷을 입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에도 광채가 났다. 그는 큰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에게서 나는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 나는 물었다. “예수님이십니까?” 그는 “아닙니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시면 예수님과 사랑하는 이들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그곳에 펼쳐진 아름다운 도시를 보았다. 도시는 마치 햇살을 반사하는 듯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금이나 보석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으며 둥근 지붕과 뾰족탑이 곱게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거리도 번쩍였는데 대리석이 아닌 이전에 본적이 없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듯 했다. 눈부신 흰 옷을 입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오갔으며 그들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공기는 신선하고, 상쾌했다. 아름답고 성스러운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그 때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나는 그들을 금방 알아보았다. 그들은 여러 해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과 아버님이었다. 생전에 어머님은 다리가 절단되었었는데 지금은 회복되어 두 다리고 걷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님과 아버님, 너무 아름다우십니다.” 그들은 내게 말했다. “너도 같은 광채를 지니고 있으며 역시 아름답단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아 함께 걸어가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이런 행복감은 전에 느껴본 적이 없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까워졌을 때 마치 누군가 내 가슴을 심하게 친 듯한 충격적인 전류가 몸속에 흐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다시 이승으로 환생된 것이었다.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리 달갑지가 않았다. 그러나 내 경험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돌려보내졌음을 알고 있었다. 주님의 명령인 것이다. 여생은 내 경험담을 사람들에게 나누며 영혼 구원하는 일에 헌신하려고 한다.”

이 천국의 소망을 가난이 빼앗아 갈 수 있겠습니까?
질병이 빼앗아 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은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어떤 것보다도 현실적인 이야기이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망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고 오늘 처음 교회에 나오신 여러분.
천국과 지옥은 실재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세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오늘 횡재한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횡재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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