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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적 신앙(Miracle faith) (마 7:119~23, 요 6:2,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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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앙의 여러 그릇된 양태를 살피고 있습니다. 어떤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승인한다고 해서 구원의 신앙이 되는 것이 아니며 종교적 열심을 가지고 신속하게 기독교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참여하였다고 해서 구원의 신앙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한가지 더 첨가한다면 기적 신앙의 경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의 마지막 부분에서 ‘기적신앙’을 가진 자들에 대해서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22절에 보시며 주님과 관계를 맺지 않고도 주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1. 기적신앙이란?

(1)기적신앙이란 기적을 믿는 신앙과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기적을 믿습니다. 우리 사람이 상식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는 차원을 벗어난 특별한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만약 성경에 나타난 기적들을 믿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자유주의 신앙입니다. 초자연적인 것들은 모두 거부해 버리는 이성주의요 자유주의 입니다. 예수님 당시 사두개인들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사두개인의 전통을 이어받은 자유주의 자들은 초자연적인 역사들을 믿지 않고 비신화(非神話)화하려고 합니다. 천사의 존재도 믿지 않고 부활도 믿지 않고 초자연적인 기적들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신앙은 성경에 나타난 기적들을 다 믿습니다. 

(2)기적신앙이란 기적만을 추구하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기적신앙이 구원의 신앙과 다른 점은 기적만을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많은 기적들을 보면서 그러한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기대하는 신앙입니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기적 때문에 신앙을 취하는 경우입니다. 기적(奇蹟)이란 기이한 행적이요, 이적(異蹟)이란  이상한 행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이하고 이상한 행적만을 추구하는 신앙입니다. 기적이 일상적이고 ‘다반사로’일어나기를 기대하는 신앙입니다. 극히 사소하고 적은 일까지도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를 기대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대부분이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이점을 요한 사도께서 오늘 본문에서 잘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님께서 벳새다 광야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장정만 헤아려 5천명을 먹이고 도 열두 광주리나 남기신 표적을 보고 사람들이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면서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뿌리치고 혼자서 산으로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디베랴를 건너 가버나움에 도착하시기도 전에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아서 미리 와 있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무리들을 보시고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요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이렇게 표적을 기대하고서 혹시는 떡을 얻어먹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이 기적신앙입니다. ‘표적’만을 기대하면서 단지 ‘표적’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이 기적신앙입니다.

○ 기적 신앙이 발생하는 원인은?

기적이 표(表)하고 있는바 내용을 보지 못하고 기적 자체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기적신앙이 발생하게 됩니다. 성경의 기적들은 단순히 기이한 행적(奇蹟)이나 이상한 행적(異蹟)이 아니라, 표적(表積)으로써 성격이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나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실 때는 그 기적을 통해서 어떤 사실을 표(表)하고자 해서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적이 표하고자 하는 사실은 보지를 못하고 단순히 기이한 행적으로만 받아 버리기 때문에 기적신앙이 발생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러한 기적이 일어난다는 식으로만 믿는 것이지 그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표하고 자 하신 사실은 보지 못합니다. 

(3) 따라서 주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속에서 맺어내는 삶의 열매가 없습니다.

기이하고 이상한 기적이나 추구하지 일상적인 삶속에서 주님과 정상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 없습니다. 따라서 구원의 신앙으로써 마땅히 맺어야 할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구원의 신앙임을 실증할 만한 열매가 없습니다. 그저 기이하고 이상한 행적(行蹟)만을 추구하고 돌아다니기에 굉장한 가시적인 역사들이 나타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구원의 신앙이라고 실증할 만한 객관적인 열매들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점을 오늘 우리가 읽은 또 다른 본문인 마7:19-23에서 밝히 가르치셨습니다. 기적신앙의 특징 중의 하나는 외적인 기적만을 추구하기에 주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일상적으로 맺어내는 삶의 열매가 없습니다. 구원의 신앙이라고 실증할 만한 열매가 일상적인 삶속에서 없습니다. 주님과 아무런 관련도 없이 그저 주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기적적인 현상들만을 연출해 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기적신앙의 특성을 지적하시면서 이러한 기적신앙의 특성을 지적하시면서 참 구원의 신앙은 좋은 열매로 실증되어진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구원의 신앙은 ‘표적’을 행하느냐 하는 것으로 실증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열매를 맺느냐로 실증되어 진다고 하셨습니다.

2. 기적신앙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읽은 두 본문에서 기적신앙에 빠지지 말라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적신앙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 모두가 주께서 주신 교훈을 깊이 새겨 들어야 하겠습니다. 크게 두 가지 입니다.

(1)첫째는, 기적으로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따라가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사에서 이단들이나 거짓 선지자들은 대부분 이러한 기적을 행사하여서 많은 사람들을 끓어 모았습니다. 또 주로 방언이나 투시 예언의 은사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은사운동을 일으키고 다니는 이들 가운데 이러한 기적신앙이 많습니다. 그들에게서 기적이 나타나니까 안 넘어갈 장사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참으로 어리석어서 눈에 보이는 어떤 기적들이 나타나면 쉽게 넘어가 버립니다. 지식이 있는 자도 소용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앞에서는 학식이 있고 지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 해도 할 말을 잊어버립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 앞에서는 약한 것이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세의 징조를 강설하시면서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려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계하셨습니다. 

(마24:23-24)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구약경륜 하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와 비슷한 경계를 하신 바 있습니다. 신13:2이하에 보시면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보이면서 다른 신들을 좇아 섬기자고 해도 따라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신13:1-3)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그리고 사도들도 역시 표적과 거짓 기적을 행하여 멸망할 자들을 유혹한다고 경계한바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살후2:9-10에서 그리고 요한 사도는 계13:13-14에서 경계하고 있습니다. 

(살후2:9-10)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계13:13-14)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이렇듯 거짓 선지자들이나 거짓 그리스도들은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사람들을 미혹하여 모읍니다. 따라서 표적과 기사를 행사하는 사람이나 그러한 것들이  나타나는 모임들은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기사와 이적이 나타난다고 동심하여 이리 저리 따라 다니다가는 멸망하게 됩니다.

(2)두번째는, 표적을 구하기 위해서 신앙 생활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표적(表積)은 어떠한 사실을 ‘표’(表)하기위해서 행하신 행적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성경에 기록된 표적들을 단순히 기적(奇蹟)이나 이적(異蹟)정도로 생각하고서 자꾸 그러한 기이하고 이상한 행적이 오늘날에도 재현되기만을 기대하면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 거기에서 기적신앙이 발생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온갖 기적이나 이적들을 대하면서 단순히 이상하고 기이한 행적으로 보고서 오늘날도 예수 믿으면 그러한 일들이 그대로 재현될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행적들이 표하고자 하는 사실을 보아야 합니다. 표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를테면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려내시고 굶주린 자들에게 빵을 먹이시고 죄를 사하신 기이한 행적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출범하였음을 알리는 싸인(sign),혹은 표적(表積)이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와해되어 병과 굶주림과 죽음으로 가득한 세상이 되었는데 그러한 것들이 물러나기 시작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강력한 ‘표(表)’요, ‘싸인’(sing)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표적을 행하신 것도 어떠한 사실을 표하고자 하신 강한 의도에서 였습니다. 안식일에 병자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안식을 잃었다는 표(表)요, 그런데 안식일에 병자가 치료되고 있다는 것은 안식이 회복되고 있다는 강한 표(表)가 되는 것입니다. 참 안식의 나라가 예수님의 사역으로 인하여 땅에 출범하였고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그러한 표적을 통해서 강하게 표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러한 표적들을 표적으로 보지 못하고 단지 기이하고 이상한 행적정도로 보고서 그러한 것들을 자꾸만 연출하여 주실 것을 기대하고서 따랐습니다. 그러한 신앙이 기적신앙입니다. 따라서 기적신앙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표적들을 표적으로써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고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따르면 그러한 기이하고 이상한 행적들이 재현되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따른다면 기적신앙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나 사도 요한께서 표적을 본 까닭에 따르지 말라고 누차 경계하신 것입니다. 

○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의 실정은 어떠합니까?

이렇게 성경 여러 곳에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고 여러 사도들께서 마지막 때에 경계해야 할 내용으로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는데도 오늘날 한국교회안에 이러한 표적과 기사를 행한다며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거짓 선지자들을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있는 것은 어인 일입니까? 병자를 일으키고 투시를 하고 예언을 한다는 거짓 선지자들이 인도하는 집회나 교회에는 왜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지? 주님이나 사도들이 그렇게도 힘주어 경계하신 의중을 이해할 만 합니다. 이렇게도 암매(暗昧)한 한국교회의 현실을 볼 때에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기적신앙을 취하고 기독교의 울타리에 들어와 상주하고 있는 대중을 거느리면서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과시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득세하는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서는 참 구원의 도리들을 증거하여 바른 신앙의 자태를 취하고 나아가게 하는 참 선지자들에게는 사람들이 모이지를 않고 참으로 왜소(矮小)하고 무능력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신앙은  그러한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며 요란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기적신앙이 발생하게 쉽습니다!

3. 기적신앙의 선례

(1) 기적신앙의 성경적 선례

그러한 기적신앙의 선례를 우선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를 많이 체험했고 혜택을 받았습니다. 열가지의 재앙을 통해서 마침내 애굽의 속박에서 구출을 받았고 또 홍해를 건너는 기적도 체험했습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을 때에 엘림의 축복을 체험하기도 했으며 먹을 것이 없을 때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받았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일련의 기적적인 은혜를 덧입어 살아왔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들은 그러한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그 표적들이 표하고자 했던 내용을 보지 못하고, 표적만을 구하는 신앙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표적을 보여 주실  대는 감사하다고 하지만, 표적을 베푸시지 않으셔서 조금만 어려움을 겪어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러한 역사가 반복되었습니다. 그러한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구원의 신앙’이라고 보기에는 거의 객관적인 실증들이 없습니다. ‘기적신앙’에 가까왔다고 보여 집니다. 물론 당시 40년동안 광야에서 배회하다가 죽어간 출애굽 1세대들 모두가 ‘기적신앙’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다수의 신앙은 ‘구원의 신앙’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 거짓 선지자들의 경우(마7:19-23)

또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경우도 기적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하에서 살아가는 일상적인 삶보다는 예수님과 관계가 없이 많은 표적과 기사만을 연출하여 내는 자들입니다. 이들과 이들을 추종하는 신도들은 다 ‘기적신앙’의 소유자들이지 ‘구원의 신앙’을 소유한 자들이 아님을 주님께서 분명히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 중풍병자를 데려 온 네 친구의 신앙

네 친구가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서 예수님께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어서 지붕을 뜯어 달아내리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죄사함을 선언하셨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네 친구의 믿음을 보셨다고 했는데 (막2:5), 그들의 믿음은 과연 어떠한 믿음이었을까요?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믿는 구원의 신앙이었을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께 가면 자기들의 친구의 중풍병을 고치는 이적을 베풀어주실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갔던 것입니다. 아직 죄사함을 받는 구원의 신앙은 갖지 못하였고 단지 병자를 고쳐 주시는 기적을 기대하는 기적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죄사함을 받는 ‘구원의 신앙’을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 마술사 시몬의 경우(행8:12-13, 18-21)

빌립 집사님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파하니까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았습니다. 그 성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전부터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백성들의 상당수가 오래 동안 그 마술에 놀라 시몬을 청종하였습니다.

그런데 빌립 집사님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함을 듣고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가 안수하니 성령님의 가시적인 역사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시몬도 돈을 드리면서 자기에게도 그런 능력을 팔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마술사 시몬의 신앙은 ‘구원의 신앙’이라기 보다는 ‘기적 신앙’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2) 기적 신앙의 교회사적 선례

기적신앙의 선례는 교회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로 은사 운동을 일으키는 자들에게서 기적신앙이 많이 발생합니다. 

○ 은사 운동의 경우

신유나 방언, 예언, 통변, 투시의 은사를 받았다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이들이나 그러한 사람들을 쫓아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기적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기적적인 역사가 다반사(茶飯事)로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감기만 걸려도 약을 먹지 않고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유만을 기대합니다.  000 목사의 베뢰아에서는 감기만 걸려도 귀신이 준 것이라면서 감기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욱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정통 보수교단이라고 자처하는 교단에 속한 교회들 안에도 이런 식의 기적 신앙을 취하고 있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는 점입니다.

○ 이단들의 경우

특히 교회사에서 이단들의 경우에 많은 이적과 기사를 일으키면서 사람들을 끊어 모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있었던 전도관의 000은 장로교의 장로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초창기에 집회를 인도하려 전국을 누비며 다니면서 이적과 기사를 많이 일으켰는데 그때 보수 교단에 있는 유명한 목사님들이 그를 청빙하기도 하고 그의 집회를 따라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그의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이렇게 거짓 선지자들이나 거짓 그리스도들이 이끄는 이단들은 이적과 기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맺는말

지금까지 구원의 신앙이 아닌 헛된 신앙의 세가지 유형을 생각하면서 구원의 신앙의 바른 자태를 살폈습니다. 역사신앙(historical faith)이나, 일시신앙, 기적신앙을 취하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잘 살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신앙을 취하고 있다는 객관적인 확증들을 자꾸 구비하여 가야 하겠습니다(고후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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