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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말한 그대로 (민 14: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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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말한 그대로 (민 14:26~38)

  
한 친구가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흥분하여 말했습니다.
 "여보게, 소크라테스 이럴 수가 있나? 방금 내가 밖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아나. 아마 자네도 내 이야기를 들으면 깜짝 놀랄 거야." 
 
이 때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아직 말하지 말고 잠깐만 기다리게 자네가 지금 급하게 전해주려는 말을 체로 세 번 걸렀는가?" 

그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머리를 갸우뚱거렸습니다.
 "체로 세 번 걸렀냐니? 무슨 체를 말하는 건가?" 

그 친구에게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첫 번째 체는 사실이네. 지금 말하는 내용이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나?"
"아니 그냥 거리에서 들었네." 

"두 번째 체로 걸러야겠군... 그럼 자네가 말하는 내용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선의에서 나온 말인가?" 

그러자 친구는 우물쭈물하며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세 번째 체로 걸러야겠군... 자네를 그렇게 흥분하게 만든 소식이 아주 중요한 내용인가?"   
"글쎄......" 친구는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자네가 나에게 전해 주려는 소식이 사실도 아니고, 게다가 선의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고, 더구나 중요한 내용도 아니라면 나에게 말할 필요가 없네. 그런 말은 우리의 마음만 어지럽힐 뿐이네." 
  
오늘도 우리는 말을 참 많이 하면서 삽니다. 말은 서로의 의사를 소통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아마 사람이라는 존재처럼 말을 통해서 다양하게 의사를 소통하는 생명체들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는 많은 말들을 소크라테스가 그랬던 것처럼 사실과 선의와 중요성이라고 하는 세 가지 체로 걸러 본다면... 우리가 하는 말들 중에 과연 몇 마디나 건질 수 있을까요? 
   
하지만, 꼭 이렇게만 말 할 수 없는 것이 때로는 말을 하는 것이 우리의 아픔이나 상처를 달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수다로 푼다’는 말처럼 별 의미나 생각도 없이 말을 막 하다보면 어느 샌가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시원함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아마 이런 때에 우리가 하는 말은 단지 정보나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서서 가슴 깊이 도사리고 있는 감정까지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일상생활 중에서 말처럼 중요한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무심코 하는 말이 나 자신의 운명과 일생을 판가름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이 말해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지요.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서 애굽을 빠져나온 후 광야를 지나서 가데스바네아 라는 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각 지파별로 한 사람씩 12 명의 정탐군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이 들어갈 가나안이라는 곳이 얼마나 기름지고 풍성한 곳인지를 미리 보게하시고, 그들에게 가나안을 정복할 의욕을 높이려는 뜻이 있었습니다. 
   
각 지파에서 뽑힌 열두 명의 정탐군들은 40일 동안을 가나안을 탐지하였습니다. 돌아온 정탐군들은 모세와 백성들 앞에서 자기들이 보고 온 것을 보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열 명의 정탐군과 두 명의 정탐군의 의견이 서로 갈라졌습니다. 열 사람의 의견은 대략 이런 것입니다. 그들은 그 곳에서 따온 크고 풍성한 열매를 보여주었습니다. 포도 한 송이가 두 사람이 막대기로 꿰어서 메고 다녀할 정도로 기름지고 풍성한 곳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좀 달랐습니다. ‘그 땅에는 거인족들이 살고 있고, 사람들을 삼키는 땅입니다... 우리는 도저히 그 땅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나머지 두 정탐군 중의 한 사람인 갈렙이 ‘우리는 능히 그곳을 정복할 수 있다’는 다른 의견을 피력했지만, 그들은 막무가내로 ‘우리들은 그 곳 사람들에 비하면 메뚜기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도저히 그곳을 정복할 수가 없노라...’고 완강하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렇듯 어둡고 부정적인 생각을 밝히는 열 명의 정탐군들의 말은 이스라엘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백성들은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갑자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시작했고,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하였습니다. ‘애굽땅에서 잘 지내던 우리를 끌고 나와서 광야에서 고생을 시키더니 이제는 우리들을 거인족들의 칼에 죽게 만든다...’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참다못한 정탐군들 중의 소수였던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이 자기들이 보고 느낀 것을 이스라엘 온 회중 앞에서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닌 그 곳은 참으로 아름답고 기름진...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입니다. 비록 그 곳에 거인족들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들이 섬기는 신은 이미 그들을 떠났습니다. 만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들은 우리의 밥에 불과합니다. 결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서도 백성들은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돌로 치려하였습니다. 
   
그 순간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이 애굽을 빠져나올 때부터 이제까지 여러 가지 이적을 통해서 여기까지 인도하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는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사람들에게 무시당한 느낌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은 전염병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모세를 통해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모세는 간곡히 하나님께 사정을 합니다. ‘만일 우리들의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에서 멸망시킨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능력이 모자라서 이스라엘이 목적지에는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서 죽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다시금 용서하여 주시고 새로운 기회를 주십시오...’ 하나님은 모세의 간곡한 청원을 받아들이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28) 그러면서 이 말이 가지는 의미를 부연해서 설명하십니다. 그들 중에서 20세가 넘는 성인들은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을 제외하고는 가나안 땅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광야를 전전하다가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비록 처음에 의도하셨던 것처럼 그들은 지금 당장 죽이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이제 가나안땅을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될 운명에 직면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이 무심코 했던 말 때문입니다. 

열 명의 정탐군들이 돌아 와서 부정적인 보고를 했을 때... 그들은 하나같이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았습니다. ‘이제는 틀렸으니 다른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갑시다...’ 이것이 그들이 그 때 한 말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들을 설득하려 하였지만, 그들은 돌을 집어 던지며 그들의 입을 막으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게 해 주겠다...’ 표준 새번역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너희가 말한 그대로... 너희가 말한 그대로 내가 해 주겠다...’ 하나님의 방법은 아주 간단명료하면서도... 분명한 데가 있습니다. 결국 그들이 말한 그대로 모든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도저히 가나안땅에는 들어 갈 수 없다고 말하던 모든 사람들은 다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을 말하던 여호수아와 갈렙만큼은 그들이 사람들 앞에서 말한 그대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요? ‘너희의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다시 말하면 ‘너희가 말한 그대로... 내가 이루어 주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우연히 했던 한 마디의 말을 하나님은 들으시고 그대로 이루어 주신다면... 그리고 그 증거가 오늘 말씀 속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면... 우리는 말 한 마디를 할 때마다 늘 생각하면서 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참 중요한 것은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하는 말이지만... 그것이 듣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말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소설가 최인호씨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의 초등학교 5학년 선생님은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고 합니다. ‘두뇌는 명석하지만 침착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붙여준 별명이 ‘서대문 까불이’였습니다. 아마 엄청나게 덜렁대는 성품이었나 봅니다. 그래도 반장을 맡아서 했었는데... 그만 학급비를 걷어놓고서는 둔 곳을 잃어버린 모양입니다. 허둥대서 찾고 있는데 선생님이 이렇게 말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인호야 없다고 생각하면서 찾지 말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찾아라...’ 그래도 허둥거리고 있자 이번에는 ‘인호야 두 다리를 땅에 꼭 붙이고 찾아라...’ 이렇게 말씀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다행히 책가방 구석에 있던 돈을 찾기도 했지만... 최인호씨는 그 때 선생님이 자기해둔 두 마디의 말... ‘있다고 생각하고 찾아라..’ ‘다리를 땅에 붙이고 찾아라...’ 이 말들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 때 그에게 이런 말을 해준 선생님은 이미 그것을 다 잊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한 말은 듣는 사람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것은 우리들 자신의 장래를 결정하기도 하고... 내가 하는 말을 듣는 사람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 중에 누구도 말을 잘 못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들 중에 누구도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인생을 그르친다거나 내가한 한 마디 말로 인해서 어떤 사람이 심하게 상처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 누구도 그날 그 자리에서 무심코 했던 불평과 불만의 말들이 그런 엄청난 결과는 낳을 것을 알았더라면 아무도 그렇게 경솔히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말을 좀 잘해보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뜻하는 대로 되지를 않는 것 같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말이란 단순히 입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가 하는 말 속에는 그의 전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내면속에 들어있는 것이 말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표현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말들은 단순한 말들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우리가 가진 성격이나 삶에 대한 철학... 신념과 생각 등... 나를 표현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의 후반부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새 옷을 입은 사람들... 자신이 가진 인생철학... 삶의 원칙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비전... 이런 것들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향 받은 사람들... 이들을 통해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그들이 하는 말이 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옷 입은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엡4:25) 

이렇게 그가 하는 말이 달라져야 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왜냐하면 말이란 그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던 초대교회가 성령을 체험하게 되었을 때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변화는 어떤 것입니까? 우선 말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은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면서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는데... 그 증거가 그들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말을 하게 된 것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말씀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열두명의 정탐군들... 그들은 모두 같은 것을 40일 동안을 보고 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보고는 정 반대였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갈라놓았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내면에 있는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이 보았던 거인족들... 열 명은 ‘그들 앞에 서면 우리들은 마치 메뚜기 같을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이미 우리들의 밥이다..’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들의 내면의 문제인 것이지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믿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항상 희망적이고 긍정적입니다. 어려움이나 고비가 찾아와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내면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항상 흔들릴 수밖에는 없는 것이고... 염려와 불안함과 불평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에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들의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TV에 나와서 사람들을 웃기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개그맨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는 사람들의 귀에 확 들어오는 튀는 말이나 행동으로써 사람을 사로잡기도 하고 인기를 끌기도 하지만,.. 곧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꾸준하게 인기를 유지하는 사람들... 그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자면 많은 독서라든지 삶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잘 가꾸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과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참 중요한 것입니다. 말 한마디가 우리의 내일을 결정짓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을 좀 근사하게 하고 싶은데... 그것이 뜻대로 잘 되지를 않습니다. 목사들이 설교를 하면서 가지는 강박관념 중에 하나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웃길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이미 이 방면에서는 마음을 비운지가 참 오래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점에 가보면 웃기를 예화들을 담아 놓은 책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웃기를 예화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고 해서... 그것이 사람을 웃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그 맘속에 얼마나 많은 기쁨을 담고 있나...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말을 잘하기 위해서 본을 받아야 할 스승이 있다면...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서를 보면 어느 누구도 말로써 예수를 당해낸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때에는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조용한 침묵 속에서... 어떤 때에는 아주 재치 있는 한 마디 말로써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시고... 자신을 향하여 시비를 거는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시고는 하였습니다. 그가 하는 말은 병든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패하고 어둠 속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 예수가 하는 말을 통해서 커다란 용기와 희망을 발견하기도 하였습니다.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를 가리켜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요한1:14)이라고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예수의 사역을 일컬어서 ‘말씀사건’이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예수의 사역은 곧 말씀 사역이라는 것이지요. 말씀을 통해서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죽은 이들을 살리기도 하고... 바다를 잔잔케 하기도 하였고, 병든 이들을 고치시기도 하였습니다. 죄인들을 용서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가 하시는 말들이 이렇게 힘이 있었던 까닭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그의 내면이 다른 이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나는 하나님이 특별한 사명을 부여하셔서 세상에 보낸 사람이다...’ 이러한 자의식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주신다는 사랑받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가 그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이런 내적인 확신과 믿음이 말씀을 통해서 표출 되었을 때... 바로 그 말씀이 세상과 사람들을 치유하기도 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해야 할 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십시오...’(엡4:29) 적절한 때에 적절한 말을 해야 하고... 특별히 그 말이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참 어려운 대목입니다. 어떤 때가 말을 해야 할 때이고... 어떤 말이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것인지... 우리는 이것을 판단하기가 쉽지를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는 말 속에 듣는 사람을 향한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가 하는 말이 힘이 있었던 것은 그 속에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의 진실한 사랑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가 자기들에게 무슨 말을 하시든지... 그 속에서 예수가 자기들을 얼마나 살아하고 있는지...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은 듣는 이들에게 공감을 일으키기도 하고... 삶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지요. 
  
장미란 이라는 여자 역도선수를 잘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도 선수의 랭킹에서 3년 연속으로 세계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TV에서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역도가 아니면 무슨 일을 했을까...’ 그럴 정도로 외모가 크고 독특합니다. 아마 그녀도 자신의 외모에 대하여 콤플렉스도 많고... 운동을 하면서 고비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녀에게 힘을 주신 분이 계신데... 그 분은 다름 아닌 그녀의 어머니였습니다. 

한 번은 올림픽을 앞두고 부상을 당해서 올림픽은 물론이고 운동을 계속 할 수 있을지의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장선수의 어머니는 이렇게 그녀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 너는 많이 힘들고 고통스럽겠지... 하지만, 지금의 고통이 너를 더 강하게 하는 훈련이라 생각하렴... 조금만 참고 이겨내면 더 큰 축복이 따를 거야...’ 그야말로 믿음을 가진... 기도하는 어머니다운...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 배어있는 말이었고... 이 말이 장선수가 고통을 이기고 다시 일어서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랑의 힘이지요. 단지 말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이 그녀를 위로하고 다시금 일어서게 하는 것입니다. 
  
말을 잘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상대방이 어떤가... 상대방의 형편과 사정을 잘 헤아려 주고... 거기에 적절하게 물론 사랑을 담아서 해주는 말이라면... 그것이 듣는 사람에게는 은혜가 되고... 기쁨이 되고 희망을 발견하는 말이 될 수가 있는 것이지요. 꼭 멋있고 어려운 말일 필요도 없습니다. 

두 주 전에 저는 형제간의 우애 있는 관계를 언급하면서 ‘괜찮아...’ 라는 말을 좀 많이 사용하도록 권면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좀 사용해 보셨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참 좋은 말이 ‘괜찮아...’ 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좋아 하시는 이해인 수녀도 제 말에 동감을 하고 나섰습니다. 

‘나를 위로하는 날’이라는 시를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 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은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생각해보면 참 좋은 말이지요. 자기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자주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평범하면서도 참 좋은 말들이 많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비서 역할을 했던 고도원씨는 책을 많이 읽기로 유명한 분이신데... 우리가 자주 할 몇 마디의 말을 우리에게 소개하였습니다. 

미안해... 마음을 넓고 깊게 해 주는 말
고마워... 겸손한 인격의 탑을 쌓는 말
사랑해... 날마다 새롭고 감미로운 말
잘했어... 사람을 사람답게 자리 잡아 주는 말
내가 잘못 했어...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말
우리는... 모든 것 덮어 하나 되게 해주는 말
친구여...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배스런 말
네 생각은 어때... 봄비처럼 사람을 쑥쑥 키워주는 말
 
평범한 듯하지만, 새기고 보면 참 좋은 뜻을 담고 있는 말들이지요. 그 외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좋은 말들은 참 많다고 생각합니다. 
멋있는 명언을 하기는 힘들어도 때를 따라 적절하게 이런 말들을 사용한다면...      이 말들이 듣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커다란 위로가 되기도 하고 기쁨과 희망을 주는 말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향한 사랑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들 속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담아서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과 희망을 주는 말을 할 수 있는 우리들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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