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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때를 따라 돕는 은혜 (히 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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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따라 돕는 은혜 (히 4:14~16)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는데 첫째는 죽음이요, 둘째는 세금이요, 셋째는 인간 갈등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인가 온갖 수단을 다 써봅니다. 좋은 약을 먹기도 하고,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가 오래 살았다고 하면 그 비법을 연구해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세금을 어떻게든 적게 내려는 자들과 세금을 제대로 받으려는 자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자주 봅니다. 그리고 갈등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어쩌면 갈등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나 자신을 이 땅의 모든 인간으로부터 격리시키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갈등이 없는 세계 속에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단절하면서 사는 것은 곧 사람의 인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두 종류의 사람을 만납니다. 하나는 만나면 만날수록 더 만나고 싶은 사람입니다. 또 하나는 만나면 만날수록 이제는 그만 만나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사람입니다. 

곰곰이 자신을 되돌아보면 우리에게도 실패할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나 자신에게 가장 결정적인 책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의 과정 가운데는 항상 어떤 사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화가 나기도하고 분노하기도 합니다. 생각만하면 가슴이 울렁거리는 일을 직장에서도 경험해보셨을 것입니다. 10명이 내편이더라도 단 한명의 적이 있으면 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 한명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독설과 거짓소문 때문에 고통과 아픔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누군가 인생에서 성공했을 때 혼자만의 힘으로 그 자리에 이른 사람은 없습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응원해준 사람, 격려해준 사람, 그리고 지원해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처럼 인생에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인간관계는 새롭게 규정됩니다. 

예수님을 뒤따라가면 사랑과 은혜의 축복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히브리서 4:14) 

우리는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이 왜 우리의 주님이십니까?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를 하늘 위로 올리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실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아담 인간형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굳이 따먹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담 인간형은 자기 자신에만 몰두합니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세속적 인간형입니다.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바벨탑을 쌓고 싶어 하는 인간형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탈취해서 자기의 명예를 채우려고 합니다. 자기 욕심이 생애 최우선이 됩니다. 이런 아담 인간형은 우리 안에도 잠재해 있어서 끊임없이 흔들고 있습니다. 

가인 인간형도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으나 하나님이 기뻐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먼저 자기 자신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생길 때 반성할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가인의 인간형입니다. 잘되는 것은 내 공로요 안 되는 것은 남의 탓을 하는 인간형입니다. 그래서 사물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남 때문에 내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저 친구만 없으면 내가 잘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인의 모습도 우리 속에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이러한 인간형이 아닌 아브라함의 인간형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네가 복의 사람이 되리라. 네가 있는 그 자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리라. 그래서 너를 축복하면 그 사람이 오히려 복을 받고, 너를 저주하면 그 사람이 저주를 받게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축복의 매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녀의 복을 받고 땅도 얻어 그 자신이 복을 받았을 뿐더러, 그를 통해서 온 인류가 복을 받는 놀라운 축복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믿음과 희망의 넉넉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복을 받기 위해 주님 앞에 나아옵니다. 

예수님의 인간형도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인간형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모습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인간형은 다른 사람이 잘되면 끌어내리려고 자기는 높아지려고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속성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본래 높은 곳에 계셨지만 우리를 위해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인간형은 자기가 낮아지심으로 남을 높이기를 원하는 인간형입니다. 자기가 고난을 당함으로 남이 치유받기를 원하는 인간형입니다. 자기가 친히 죽음의 길을 걸어감으로 다른 이를 살리는 인간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인간으로 말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이 길을 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믿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내 속에서 생명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내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내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역사입니다. 나에게 자존감을 주시고 나를 이끌어 높이 세우시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 된 특권을 허락해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너무 좋은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가까이하기 위해 주님 앞에 나아옵니다.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사랑으로 세상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사람들이 복 받기를 원하십니다. 길을 가다가도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위해 복을 빌어주십시오. 내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복을 빌어주십시오. 운전대를 잡았을 때에도 내 앞에 있는 분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내 뒤에 따라오는 분을 위해 축복을 빌어주십시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누리는 축복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예수님을 뒤따라가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곤고와 상처를 치유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4:15) 

예수님은 우리의 곤고함과 상처, 연약함을 치유하시고 그것을 위로하시며 배려하고 격려해주시는 분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 어리석음에 동참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어리석음을 지혜롭게 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오히려 강하게 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유혹받을 때 우리를 돕기 위해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유혹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과 힘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귀한 역사를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이라는 것은 우리가 실수하고 실패할 때, 그것을 그대로 처벌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더 실패할 수도 있고 더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엉덩이를 땅에 붙인 채 게으름을 피우며 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더 열심히 그리고 충성스럽게 살라고 하십니다. 그러다보면 넘어질 때도 있고, 연약해서 부러질 때도 있습니다. 미혹 받아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게을러지고, 꿈이 없어지고, 내가 하는 일이 싫어졌다면 그것은 예수를 믿는 참된 모습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게 주신 이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를 알기에 더 열심히 살고, 더 부지런히 살고, 더 사랑하며 살고, 하나님이 주신 은총을 나누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역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내 속의 상처를 녹이십시오

연약함이란 쉽게 낙심하고 포기하는 모습입니다. 남의 말에 쉽게 상처받는 모습입니다. 죄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모습입니다. 쉽게 화를 내고 쉽게 분노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당하게 되면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뒤로 나자빠집니다. 그리고 상처를 쥐어짜면서 슬픔 속에 탄식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의 상처가 치유 받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에게도 커다란 상처를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남이 말하는 것 때문에 또다시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없이 살아가면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손바닥에 가시가 박혀있으면 그것을 빼야합니다. 그것을 그대로 두면 누군가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할 때 내 가시가 나를 찌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소리를 치면서 당신 때문에 아파 죽겠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 문제의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요? 내 속에 있는 아픈 상처의 가시를 빼내야 합니다. 아니, 주님의 은혜로 이것을 녹여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험담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랑하면 비난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들의 실패는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할 것이다. 자기 자신의 잘못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듯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잘못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랑이 너무 부족해서 남의 흠집이 거대한 들보처럼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내 속에 있는 들보는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내가 약해진 모습으로 너와 함께 동참하겠다고 말씀하실 때 우리의 문제는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다른 어디에도 회복의 자리는 없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인간의 깊은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분이 없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100점을 주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4:16) 

예수님은 우리에게 긍휼과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긍휼이 여기시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초청하셨습니다. 

우리는 본래 몇 점짜리 인생입니까? 하나님 앞에서면 0점짜리 인생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100점을 주시면서 만나셨습니다. 구약에서 인간은 하나님께 죄를 지어 마이너스 100점까지 내려갑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립니다. 그때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으면 이제 0점짜리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마이너스 100점짜리, 아니 0점짜리 인생을 보시면서 그 수많은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에게 100점을 주시고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네가 혹 수고 했느냐? 무거운 짐을 가졌느냐? 다 내게로 오라. 나와 함께 하자. 나와 함께 새로운 삶을 누려보자’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들을 초청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인간관계를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0점을 주고 시작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마이너스 100점을 먼저 주고 시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올바른 인간관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기로 마음속에 작정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마다 100점을 주십시오. 조금 문제가 생겨서 점수가 깎이면 80점으로 내려갈 수 있을 것입니다. 더 깎이면 70점까지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회복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주신 은혜와 긍휼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주님을 예배하며 은혜를 얻는 자리로 나아갑시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에 큰 변화를 주셨습니다. 철부지 같은 우리의 영혼에 생명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연약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위대한 믿음의 존재로 세워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갈등 속에 주저앉지 마라. 그 속에서 무너지지 마라. 다시 일어서라.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유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를 받아라. 내가 때를 따라서 네게 은혜를 주겠다! 은혜의 보좌 앞을 향해서 나오라!” 

우리가 은혜를 얻는 곳은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자리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입니다. 그때 우리 속에 상처 난 것, 찢겨진 것, 못난 것, 미련한 것, 이 모든 것이 다 녹아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나를 소중히 여기시는 말,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와 우리가 예배드릴 때 우리의 인생은 주님 앞에서 100점짜리 인생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100점짜리 인생으로 그들을 대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역사를 함께 나누길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귀한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를 좋아하셨기에 우리도 예수님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면 다른 사람도 우리를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긍휼과 은혜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때를 따라 우리에게 주시는 복된 은혜 덕분에 하나님 을 예배하면서 다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있는 그 자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있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의 축복을 함께 나누는 귀한 사람으로 세움 받기를 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사랑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셨기에 우리가 용서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자비의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주님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도 긍휼히 여길 줄 아는 믿음의 사람들로 세워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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