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겸손한 마음이 믿음입니다 (빌 2:1~11)

  • 잡초 잡초
  • 351
  • 0

첨부 1


겸손한 마음이 믿음입니다 (빌 2:1~11)


우리나라 교회역사에 길이 남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만식장로님]과[주기철 목사님]에 관한 일화입니다. [조만식 장로님]이 오산학교의 교장으로 있을 때에 [주기철 목사님]은 그 학교의 학생이었고 나중에 [주기철 목사님]이<평양 산정현교회>에서 목회할 때에 [조만식 장로님]은 그 교회의 장로로 시무했습니다. 두 분의 관계를 정리해보게 되면 스승과 제자의 관계이면서 장로와 목사의 관계라는 특별한 관계입니다. 

어느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려는 [조만식장로님]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조만식장로님]은 손님과 얘기하다 그만 예배 시간에 늦고 말았습니다. 설교하던 목사님이 늦게 들어오는 장로님께“장로님, 오늘은 의자에 앉지 말고 서서 예배를 드리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옛 스승인 장로님에게 너무나 가혹한 처사였습니다. 그러나 [조만식장로님]은 온 교우들이 보는 앞에서 그대로 선채로 순종합니다. 

설교를 마친 [주기철 목사님]이 [조만식장로님]께 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그때에 [조만식 장로님]이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애국 운동한다고 사람을 만나다가 하나님 만나는 예배 시간에 늦었습니다. 목사님이 얼마나 마음 아프시면 설교하다 말고 이토록 책망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종을 마음 아프게 한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은혜로운 설교를 듣던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 것을 방해한 죄도 용서하여 주옵소서.”하며 눈물로 기도하자 목사님과 온 교우들이 함께 울음바다가 되었답니다. 이 일을 두고 사람들은“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요, 그 목사에 그 장로”라며 칭송하며 더욱 두 분을 존경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참 겸손이라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진정한 진실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자기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평가하겠습니까?“나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다.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나는 죄인의 괴수요, 모든 사람이 나보다 훌륭하며 나보다 선하다. 나는 정말 용서받을 수 없는 더러운 것이 가득한 사람이다.”이렇게 자기의 본래성, 자기 존재의 정체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겸손한 마음의 출발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리고 또 하나 내게 오늘이 있다면 오늘의 이것은 오직 은혜로 있는 것입니다. 내가 더 큰 죄를 지을 수도 있는데 여기서 멈출 수 있었다는 것이 은혜요, 내가 더 나빠질 수 있는 사람인데 요만큼에 멈춘 것도 은혜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자신의 나됨으로써는 이만큼의 의, 이만큼의 거룩함이 있을 수 없는 사람인데 나에게 주어진 이 현실 자체가 은혜중의 은혜요, 그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이만큼의 오늘 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이 겸손한 믿음입니다. 

어느 날 천사로 둔갑한 사탄이 사막에서 수도를 하고 있는 거룩한 교부 한사람을 시험하기 위해서“나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보낸 가브리엘 천사입니다.”하고 인사를 했더니 그 교부가 펄쩍 뛰면서 하는 말이“다시 잘 생각해 보세요. 아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보냄 받았을 겁니다. 나는 천사의 방문을 받을 만큼 거룩한 사람이 못 됩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다른 사람에게 보냄을 받았을 겁니다.”하더랍니다. 이 말을 들은 사탄은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정말 겸손한 사람은 사탄도 유혹하지 못합니다. 시험의 꺼리가 있어야 사탄도 시험을 합니다. 교만이 마음속에 있는 사람을 그래서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혹시 무엇이 있습니까? 무엇이 있든지 이 모든 것의 가장원인이 되는 것은 교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그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나 자신 앞에 겸손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설 수 있다면 아무 문제도 없는 것들입니다. 내가 겸손하지 못해서 나에게 문제가 되는 것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소위 사도바울의 기독론이라고 부르는 유명한 본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교본적인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예수그리스도의 겸손에 대한 말씀인데 그 겸손의 단계를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단계가 비웠다는 말씀입니다. 본문7절 상반 절입니다.“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그랬습니다. 비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비웠습니다. 본질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비웠다는 말인데 이것은 자기비하를 말하는 것입니다.‘나는 아무 것도 아니요, 나라는 존재는 없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실제로는 하나님과 동등 될 수 있는 분이신데 그것마저도 다 비우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스스로 비웠습니다. 어쩔 수 없이 비워져서 비우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부득이해서 낮아지거나 겸손해지는 것은 진정한 겸손이 아닙니다. 사실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혹은 망하고 나서 낮아지는 것을 겸손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부득이하게 조용해진 것이지 이게 어디 겸손입니까? 그건 겸손이 아닙니다. 진정한 겸손은 스스로 낮아지는 것, 스스로 비우는 것이 겸손입니다. 이게 예수님의 겸손이라는 말입니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 적으로 비우는 것입니다. 

누구를 뜨겁게 사랑해 보면 어느 사이에 내가 없어지고 맙니다. 온통 그 사람뿐입니다. 그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라는 존재는 없어지고 맙니다. 좌우간 남편 앞에 고집 부리는 사람은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부인을 무시하는 사람은 부인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나라고 하는 존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고, 내 자존심이 아직 그렇게 소중하기에 사랑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존심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 앞에서는 다 녹아 없어지는 것입니다. 명예고 욕심이고...아무것도 아닙니다. 다 녹아 없어지는 그것이 겸손이요,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 노래 중에“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하는데 작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없어져야합니다. 그건 억지로 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되어져야하는 것입니다. 사랑, 그 자체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비어버립니다. 사랑에 빠지면 머리도 텅텅 비고 마음도 비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이에는 남이야 뭐라고 하든 말든 부끄러움도 모르고 정신없는 사람처럼 하고 다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되어버리고 알지만 모르게 되어버립니다. 모르는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몰라지고 맙니다. 유능하지만 무능해지고 맙니다. 할 수 있는 일인데 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한 마디로 바보가 되는 거지요.“Love is blind”라는 말이 있지요. 사랑하면 이렇게 맹인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기에 바로 겸손이 있는 것이요, 그것이 사랑이더란 말입니다. 

두 번째 단계가 사람과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시 7절입니다.“사람들과 같이 되셨고...”그저 마음만 비우고 만 것이 아니라 나를 비워서 또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먼저 신분적인 면으로 생각해 봅시다. 우리와 같아질 수 없는 주님이 우리와 같아졌다는 말씀입니다. 신성을 가지신 주님이 순전히 인간냄새만 나는 우리와 같을 수가 없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우리와 같아졌다는 사실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지금 보다 나은 대접 받기를 원하고, 하찮다 생각하는 아랫사람 상대하기 보다는 윗사람을 상대하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들의 심리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것을 마다하시고 스스로 낮아지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높은 위치의 사람이 낮은 위치의 사람에게 가지 않는 게 보통 상식입니다. 아랫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는 법이지 윗사람이 먼저 가는 법은 없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세상의 처세로 알고 있고, 예의이며 체면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본문의 주님 모습을 보세요. 주님은 기다린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돌아오면 돌아오는 자를 영접하고 용서한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무엇을 준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이것 저 것 생각했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저 사람과 같이 죄인의 모습으로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비록 너무 죄인과 가깝게 되어 죄인의 친구라는 불명예스러운 소리를 들어야 했고, 세속주의자라는 말과 심지어는 먹고 마시기를 즐기는 자라고 하는 좋지 못한 이름도 가지게 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럴 줄 아시면서도 죄인인 사람의 모습으로 되는 길을 스스로 택하셔서 그것을 명예로 여기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불명예라고 생각하는 바를 오히려 명예롭다고 생각하시는 주님의 이 모습 앞에 진정한 겸손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랑이란 구제 보따리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세상 돈이면 다 된다고 하는데 돈 몇 푼 가지고 선한일 했다고 생각 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주님에게서 배워야 할 겸손이란 나 스스로를 비워서 내가 사랑하는 자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바로 겸손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겸손의 세 번째 단계가 무엇입니까? 본문말씀대로 죽기까지 복종하셨는데 그 결정이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8절입니다.“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잘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물리치지 못하시고 죽으신 것이 겉으로 볼 때는 사람의 종이 된 것 같으나 내용으로는 하나님께 복종한 것입니다. 이 복종은 사람에게 떠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종이 되셨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종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자유도 없이 오로지 섬기는 자일뿐입니다. 그리고 한번 노예가 되면 계속 노예입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종이 되시고 낮추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 앞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복종하지 아니할 수 있는 분이 복종하셨습니다. 거기에 겸손의 극치가 있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순종적으로 살고 있습니까? 죽기까지 복종하며 살고 있습니까? 이런 마음만이라도 가지고 살아야하겠습니다. 그래야 믿음 있다 할 수 있겠지요. 

자 이제 마지막 단계를 보면 하나님께서 주님을 높이십니다. 9절부터 11절까지입니다.“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말씀합니다.“이것이 너희 안에 품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라.”

어릴 적 시골에는 동네 우물이 있었습니다. 끼니때가 되면 아낙네들이 물통을 들고 와서는 우물에서 물을 길러 제각기 머리에 이고 돌아가곤 하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그런데 물을 길러올 때는 반드시 빈 물통에 바가지 하나씩을 꼭 가지고 옵니다. 깊은 우물에 두레박을 넣어야만 길러지는 물인데 왜 바가지를 들고 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는 반드시 바가지를 물통의 물속에 엎어서 가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아무리 물통을 가득 채워서 가도 바가지를 엎어가지 않으면 출렁거려서 집에 도착할 때쯤에는 물이 절반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득 찬 물통에 바가지를 엎어 가면 온전히 가득 찬 물통을 이고갈 수 있습니다. 옛날 아낙네들의 지혜입니다. 찰랑거리는 물통처럼 하루에도 수십 번씩 흔들리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두려움으로 흔들리고, 고통으로 흔들리고, 절망으로 심하게 요동합니다. 그런가하면 때때로 시기와 질투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은 풍랑만난 듯 흔들립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그 마음을 덮고 있으면 요동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이 내속을 덮고 있으면 평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겸손한 마음이 곧 믿음입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그 사람을 먼저 생각해 줄줄 아는 마음속에 겸손이 있고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우리 또한 믿음의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믿음 있다 하는 자의 모범을 몸소 보여 줄 수 있는 부끄럽지 않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