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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관심의 죄 (고전 1: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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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의 죄 (고전 1:18~28)
  

언젠가 벽제 화장장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아마도 남편 상을 당한 것 같은데, 삼십 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뒤에서 울면서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쪽도 화로에 시신을 넣고 다 타기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앞에서는 승려가 염불을 외우면서 목탁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바닥에 앉아서 계속 무엇인가 말을 하며 울부짖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니까 “가지마, 자기야. 가지마, 안 돼. 못 가게 해!”라며 울부짖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기운이 빠지니까 “자기야, 집에 가자, 집에 가자.”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아내가 ‘가지마’라고 울부짖지만, 남편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고. 그 종착점은 지옥입니다.

불신자들, 타종교인들, 그들은 나름대로 그것이 바른 길이라 믿고 갔겠지만 그 마지막은 지옥입니다.
이 말은 너무 배타적이어서 저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바른 길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전도’라고 합니다.

전도 잘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본문 고전 1장 21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전도를 통해서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믿은 우리가 입을 꼭 다물고 있으면 하나님은 더 이상 사람을 구원하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세상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망입니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전도는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 건물이 웅장한 교회가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전도 잘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요,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전도 잘하는 교회, 건강한 교회, 교회다운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불신자들의 운명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십시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습니다. 
이것이 불신자들의 운명입니다.

지난 주일에 지옥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지요?

㉠ 지옥은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당하는 형벌의 장소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0절에 지옥에 대한 묘사가 나옵니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이세상의 어떤 고통도 죽으면 끝이 납니다. 
그래서 “죽으면 끝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지옥의 형벌은 끝이 없습니다. 
지옥의 고민은 죽지 않는데 있습니다.
너무 괴로워 죽고 싶은데 죽지 않아요.

㉡ 지옥은 너무나 끔찍한 곳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가복음 9장 47-4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한 눈을 빼내고서라도 피해야할 곳이 지옥입니다.
그곳은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입니다.
그곳은 고통을 더하기 위하여 소금을 치는 곳입니다.
어떻게 더 이상 지옥의 끔찍함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문학 작품이 그 끔찍함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 지옥은 한 번 가면 다시 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눅 16:26절에 보면,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일단 지옥에 빠지면 거기서 다시는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운명의 변화가 불가능합니다. 
지옥에 들어간 이후에는 더 이상 회개의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아있을 때, 죽기 전에 지옥을 피할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창립자인 김용기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이분이 살아계실 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에서는 닭을 오백 마리 기르고, 모피용 앙고라토끼를 이백 마리 기르고 있었습니다. 

겨울에 너무 추워서 양계장에 연탄난로를 피워 놓았는데 너무 과열이 되었는지 그만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모피용 앙고라에 불이 붙었으니 얼마나 잘 타겠습니까?
토끼가 새빨갛게 불덩어리가 되어 이리저리 뛰어다니니까, 야간에 포탄 날아가는 것 같고, 닭들이 죽겠다고 소리를 지르니까 그야말로 생지옥이 되었습니다. 
가족들이 깜짝 놀라서 내복 바람으로 뛰어나왔고, 훈련생들도 나와 함께 불을 꺼보려고 했지만 불길이 워낙 세어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때 김용기 장로님이 “여러분 조용히 앉아서 저 광경을 바라보면서 산교육을 받으십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불구덩이 속에서 살려고 몸부림치는 닭과 토끼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육신의 정욕을 좇아가는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당하게 되면 지옥불 속에서 저렇게 고통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참 후에 불은 꺼지고 모든 짐승들이 다 죽었습니다. 
새까맣게 재가 되었습니다.
김용기 장로는 훈련생들 모두를 이끌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다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 갑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너무 직설적이어서, 표현이 너무 투박해서 죄송하지만 그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전도에 있어서 우리의 문제는 불신자들의 운명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눅10장에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있습니다. 
그 얘기에 나오는 레위인, 제사장은 강도를 만난 자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데도 그냥 지나쳤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무관심했습니다. 

주님이 책망하신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무관심이 문제이고, 무관심이 죄입니다.
엘리 위즐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교육의 반대는 무지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아름다움의 반대는 추함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삶과 죽음 모두에 대한 무관심이다.”

전도에 대해 설교하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 너무 부담스럽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부담스러워야 합니다.
자식들이 “엄마,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회초리로 때려서라도 데리고 갔어야지.”라고 원망할 텐데 어떻게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남편이 “여보,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멱살잡이를 해서라도 데리고 갔어야지.”라고 원망할 텐데 어떻게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친척들이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데 부담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부담이 되어야 합니다. 
이 부담이 간절히 부르짖게 만들고, 이 부르짖음이 응답받을 때 전도가 가능해집니다.
그러므로 전도를 하려면 그들의 영혼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2. 믿고 있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십시오.

전도란 ‘도(道)를 전한다’는 뜻입니다. 
무슨 길입니까?
영생의 길, 천국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똑바로 알지 못하면 사람에게 제대로 전해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롬3:10절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도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사람들끼리 서로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의로운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 앞에는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다 도토리 키 재기이고, 똥 묻은 개 재 묻은 개 나무라는 격입니다.
다 죄인입니다.

㉡ 그런데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는 우리가 망각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롬6: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생명과 기쁨과 행복의 원천인 하나님께로부터 단절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사망이라고 표현한 것인데 지옥을 말합니다.

죄의 결과는 지옥입니다. 
우리가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누군가가 우리기 지은 죄에 대하여 대신 벌을 받고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위해 대신 벌을 받아야 할 분은 죄가 없는 분이어야 합니다. 
자기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죄인이 다른 사람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요.
그런데 이 세상에는 그런 의로운 사람이 없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셔서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벌을 받으셨기에 우리의 모든 죄는 다 용서 받았습니다.
지옥은 죄를 지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죄를 용서받지 못해서 가는 곳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道)입니다. 

이것이 전해야할 복음의 내용입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기도 하고, 믿기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제시하신 구원의 도입니다.

철길 옆에 있는 마을에 삼 대 독자를 둔 집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한참 방에서 다듬이질을 하느라 아이가 방에서 나가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때 기차의 기적소리가 울렸고, 정신이 번쩍 들어 아이를 불러보니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마당에도 아이가 없자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밖으로 뛰쳐나가 보니 아이가 철길 위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저쪽에서 기차가 다가옵니다.
어머니는 미친 듯이 아이를 향해 달려가 아이를 철길에서 밀쳐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미처 기차를 피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몇 해 전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건에서 아이가 살아나는 데에 아이의 공로는 몇 퍼센트라고 생각합니까?
제로 퍼센트이지요? 
백 퍼센트 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어머니의 희생 때문에 이 아이는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용서받고 구원받은 것은 백 퍼센트 예수님의 희생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위는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구원은 백 퍼센트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전해야할 십자가의 도입니다.

3. 전도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임을 믿으십시오.

본문 21절 하반절을 다시 읽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전도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도구에 불과합니다.
사도행전에도 동일한 말씀이 나옵니다.
행2:47절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여기서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주께서!’
주께서 구원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전도에 부담을 갖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한다고 생각하면 답답합니다.
아는 것도 변변치 않습니다.
경험도 부족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드러낼 만큼 착하게 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전도를 합니까?
그러나 전도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하는 사람들로부터 ‘준비된 영혼을 만났다.’라는 간증을 많이 듣습니다.

우리는 마치 ‘스위치’와 같습니다. 
스위치가 올라가면 불이 켜집니다.
스위치가 내려가면 불이 꺼집니다.
스위치는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 스위치에는 전기가 연결되어 있어, 그것이 올라가느냐 내려가느냐에 따라 불이 켜지기도 하고 꺼지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는데 ‘전도’라는 스위치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올리라고 하실 때 올리고, 내리라고 하실 때 내리면 되는 것입니다. 
전하라고 하실 때 믿고 전하면 놀라운 결과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냥 순종하면 됩니다. 

홍 집사님이란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매주 목요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친구들이 모여서 지금까지 네 명이 세례를 받았답니다.
홍집사님의 얘기를 들어보세요.

“목사님 제가 요즘 전도에 재미가 붙었습니다. 삼십 년 동안 예수 믿으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으니까 친구가 한 명도 예수를 안 믿었는데 제가 입을 열어서 예수에 대해 전하니까 지금 네 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너무너무 기뻐서 요즘 ‘하나님 저 빨리 데려가지 마세요, 전도해야 되니까 조금 더 오래 살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단지 쓰임 받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냥 입을 열어 예수님을 소개하면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전도를 못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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