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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의 삶 (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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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삶 (마 5:13~16)


올해 ‘세우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주제, “제자를 세우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누구입니까?  일반적으로 믿는 우리들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좀 더 정확히 규정해 주고 있습니다.  

마5:1-2에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 앉으셨고, “제자”들이 나왔으며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여 가르치셨다고 했습니다.  너희는 바로 “제자”들입니다.  제자의 삶은 소금이 되어야 하고 빛이 되어야 합니다. 

소금이 맛을 내려고 한다면 녹아져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신앙을 저버리고 살다가 회개하고 다시 돌아 온 이들은 이런 의식을 치른답니다.  교회 문 앞에서 땅에 엎드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밟고 지나가게 하면서 소리 지르기를 “소금이 맛을 잃으면 이렇게 버려져 밟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말씀대로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영적 교훈을 강력한 주고 있는 것입니다.  

소금의 역할을 다 하려면 녹아져야 합니다.  녹아지되 자신은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소금을 물에 넣었을 때, 만약 소금이 보이면 그 물은 아직 소금물이 아닙니다.  소금은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없어지듯 죽어야 합니다.  제자의 삶은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이들을 변화시키는 삶입니다.  여러분,  이것보다 더 강력한 어디에 있겠습니까?  보이지 않지만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죽을지언정 주변을 변화시킵니다.  죽기를 각오한 사람이 제일 무섭습니다.  제일 영향력을 나타냅니다. 

김장 때, 첫 번째로 하는 것은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는 일입니다.  대체로 이틀에 걸쳐 김장을 하지요, 첫날은 배추를 절이고 둘째 날은 양념을 준비해서 절인 배추에 버무립니다.  그런데 푸득푸득한 배추가 소금물에 절여 지면 풀이 죽습니다. 아직 푸득푸득하다면 소금물에 덜 절여진 것입니다.  푸득푸득한 것이 죽었을 때, 절여졌다고 합니다.  죽어야 삽니다.  죽어야 맛있는 김장 김치가 됩니다.  

주님이 내 안에 살아 영향력을 나타나기 위해서 나는 죽고 그리스도는 살아야 합니다.  잘 죽어야 잘 삽니다.  제자는 잘 죽는 사람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은 “아직 내가 살아 있으면 제자가 아직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19세기말 캐나다의 죤 맥켄지라는 젊은 신학도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비참한 한반도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지, 저 불쌍한 민족에게 찾아가 예수님을 전해야지. 캐나다 장로교회에 가서 한국교회 선교사로 가겠다고 신청을 했으나 아직까지 캐나다 장로교회에서는 한국 선교사 파송계획이 전혀 없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맥켄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마다 찾아다니며 한국의 상황을 알렸습니다. 한반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시급한 것인지를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 저 교회에서 약간의 여비를 모금하여 1893년 한국 땅을 찾아옵니다.

낯설고 물설은 한국 땅. 이 백성을 구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한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한국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캐나다 사람이 한국 사람으로 녹아내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옷을 한국 사람처럼 입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빵과 버터와 치즈만 먹고 살았던 이가 한국 사람이 되기 위해서 된장과 고추장만 먹었습니다. 위장은 불이 나는 것만 같았고 얼마가지 않아 위장에 큰 탈이 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태양이 작렬하는 여름날 밭에나 가서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한국 사람들과 똑같이 일하다가 일사병으로 고생을 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서울의 언더우드가 크리스마스 날 케익과 치즈, 우유와 설탕을 보냅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젊은 맥켄지는 통곡을 합니다. 부모님이 보고 싶고 캐나다로 돌아가고 싶어 엉엉 울었습니다. 그러나 이것 먹고 나면 더 이상 한국 땅에 복음을 전할 수 없겠다 싶어서 케익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유와 설탕을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은 더 많은 된장과 고추장을 먹었습니다. 일사병으로 고열이 하늘을 찔렀고 정신착란 증상까지 시달렸습니다. 외로움과 고독에 시달리다가 소금이 녹아내려 형체가 없듯 이름 없이 황해도 솔내 마을에서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캐나다 장로교회는 황해도에 선교사를 보냈고 이곳 황해도 솔내에 교회를 세우고 함경도 원산에도 교회를 세웠고 캐나다 장로교회에서 보낸 많은 선교사들이 이 땅에 복음을 곳곳에 전하게 되었습니다. 

빛은 순종함으로 비춰집니다. 

지난 설교 때, 제자 잘못 전한 것이 있습니다. “달 없어도 살 순 있지만, 태양 없으면 살 수 없다” 잘못된 말입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갔더니 승준이와 동준이가 “달이 없어도 살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달이 없어지면 밀물과 썰물도 없어지고 지구 자전과 공전의 힘의 균형이 깨져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곤경에 처했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있구나 생각되니 감사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하여튼 몇 번 변명을 하다가, “내가 잘못했다”고 항복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설교합니다.  “달 빛 없이는 살 수 있어도 태양 빛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달 빛이라면 하나님은 태양 빛입니다.  우리는 빛이 아닙니다. 다만 그 빛을 반사할 뿐입니다. 빛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을 낼 수 없는데 빛을 비추라 하십니다. 어떻게 빛을 비출 수 있을까요? 빛을 비출 수 있는 방법은 2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우리를 태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얼마가지도 못하고 재만 남게 됩니다. 더 이상 빛을 비출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도 없어집니다.  왕궁의 모세가 그랬습니다.  자기 힘으로 민족을 구원하려다가,  왕궁에서도, 민족에게서도 좇겨났습니다.  그러니 태우려면 끊임없는 기름의 공급이 필요합니다.  이 말은 우리 안에 성령의 기름이 공급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빛을 낼 수 없기에 우리 안에 빛이 들어와야 하는 것이지요.  

빛을 발하는 제자는 그 안에 예수님이 성령님의 모습으로 들어와 계십니다.  세상에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좌정하고 계신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곧 순종하면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광야로 도망갔던 모세는 민족 구원의 부름을 다시 받습니다.  떨기나무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빛이 납니다. 그 빛에 이끌려 모세가 거룩한 곳 하나님 앞에 신발을 벗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떨기나무는 타고 있지만, 재가 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앞에서 모세는 보냄을 다시 받습니다.  80세의 모세는, 2번째 간 모세는 이제 제힘으로 세상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오직 순종함으로 하나님 말씀을 백성에게 전했습니다.  오직 순종함으로 바로에게 하나님 말씀만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백성을 종살이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습니다. 

빛을 비출 수 있는 두 번째는 방법은 달처럼 반사하는 것입니다. 달은 거대한 거울과 같습니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지만, 태양을 마주보아 빛을 비추어 줍니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사고 나기 쉽고, 더욱 죄악이 기승을 부릴 수 있지만 달 빛 때문에 조금이라도 안전합니다.  더 안전하게 하는 빛을 비추려면 오직 태양만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들이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되려면 더욱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봄이 빛을 비추는 길이요, 순종만이 형통의 길입니다. 

요즘 세대들은 참으로 빠릅니다. 노래도 빠르고, 영상도 빠릅니다. 말도 빠르게 줄여서 잘도 씁니다. 느린 기성세대는 무슨 소린지도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특공대’라고 하면 아이들은 바로 압니다. ‘특별하게 공부도 못하면서 머리만 큰 사람’

줄이고 빠르게 요약을 잘합니다. 충청도 사람이 말을 줄여서 잘 합니다. 느린대신 줄여 빠르게 합니다. 그러고 보면 충청도가 똑똑한 겁니다.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셨습니까?’ 그럴 때 충청도 사람은 ‘갔슈, 갔슈?’   ‘콩깍지가 깐 콩깍지인가? 안깐 콩깍지인가?’ 충청도 사람은 간단하게 ‘깐겨? 안깐겨?’ 요약 잘합니다. 빠릅니다. 똑똑한 겁니다.  

요즘 세대들이 신앙생활 잘 할 수 있습니다. 요약을 잘하니까. 충청도 양반들이 신앙생활 잘 할 수 있습니다. 핵심을 빠르게 파악하고 전달하니까.  신앙생활 한 마디로 요약해서 줄이면 순종입니다.  나는 죽고 하나님 말씀만 따르고 하나님만 바라보면 소금되고 빛을 비출 수 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하나님 떠나 망하게 된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입니다. 
 
제자의 삶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요 15:7입니다. 
(요 15:7, 개정)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대기도모임을 인도하러 전철을 탔습니다. 눈을 돌리는 데마다 마음을 뺏어 갑니다.  영상 광고판이 쉼없이 돌아갑니다. 각양 스타일로 맵시를 부린 사람들이, 옷 디자인도 갖갖이요, 들고 있는 가방도 천차만별이고, 손에 들고 있는 각종 전자기기는 새로운 것도 많습니다.  다 좇아 가면 눈도 돌아가고, 열등감 자괴감에 맘도 돌아갑니다.  

여러분, 참 세상에서 믿음 지키며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세상을 짓고 또한 세상을 운행하는 원리임에 틀림이 없어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승리하게 될 것이라 했는데,  말씀이 내 안에 거하도록 주님만 바라보고 소금처럼 말씀이 녹아내리도록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정답은 아는데 어떻게 하십니까? 

저는 전철에서, 이대로 걸어가면서 계속 “주님 사랑합니다”를 속으로 말하면서 주님 생각했습니다.  지난 주간 말씀,  “거룩한 씨- 이 땅의 그루터기를 찾으러 이대에 갑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엘리야에게 주신 사명 “기름부어 왕을 삼고, 남겨두고 숨겨 놓은 7천인을 찾아 세워라”를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마다 때마다 주님께 물으며 기도하십시오.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나요?”  “주님 무슨 뜻인가요? 나에게 말씀해 주세요.”  “소금과 빛의 역할 감당하기 원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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