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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믿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삼하 9: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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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삼하 9:6~13)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은 세상을 살 때 다르게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모두 먹고 입고 자고 무엇이 다르냐 라고 말합니다.  우리
는 우리의 삶의 목적이 다릅니다. 우리의 하는 모든 행동은 목적에 맞추어 살기 때문에 모두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삶, 구원받은 삶은 무엇을 먹어도 먹는 목적이 다르고 입어도 입는 목적이 다르고 일을 해도 일하는 목적이 다릅니다. 목사와 조폭은 같은 점이 많다고 합니다. 첫째, 목사와 조폭은 모두 검은 양복을 입고 다닙니다. 두 번째는 떼를 지어 다닌다. 목사도 심방할 때 항상 데리고 다니고 조폭도 늘 데리고 다닙니다. 세 번째는 검은 차를 좋아한다. 네 번째는 밥값을 절대로 내지 않는다. 조폭도 밥값을 안내고 주의 종도 밥값을 안 냅니다. 다섯 번째는 출퇴근이 일정치 않다. 

자기 멋대로 퇴근하는 조폭하고, 주의 종도 심방하고 이런 일 저런 일 때문에 밤도 낮도 새벽도 없습니다. 그래서 출퇴근이 일정치 않습니다. 겉만 보면 같은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릅니다.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조폭은 칼을 차고 다니지만 주의 종은 복음, 말씀을 들고 다닙니다.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러 다닙니다. 또 조폭은 상처를 내고 사람을 해치지만 주의 종들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싸매어주고 위로해주고 힘을 주고 말씀으로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갑니다. 또 조폭
들은 끼리끼리 육신의 패싸움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주의 종들은 그런 패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패를 만
들지 않습니다. 주의 종은 영적 싸움을 싸웁니다. 마귀와 싸웁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는 악한 마귀와 싸
워 악한 자의 화전을 소멸하기 위해서 주의 종들이 있습니다. 조폭은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다
닙니다. 

모두 육체의 힘과 조직의 힘을 세상의 영광과 행복과 만족을 얻기 위해서 모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의 종들은 하늘의 소망, 천국의 소망,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칩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주의 종과 세상의 사람들이 각 분야마다 비슷한 점이 보여도 콘텐츠, 내용, 목적, 의도하는 바가 다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을 볼 때에도 다르게 봅니다. 모두가 할 수 없는 일을 감당하기도 하고 모두가 의
심하는 일을 믿음으로, 모두가 절망할 때도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일하고 모든 사람이 참지 못하는 일도 
참을 수 있고 모든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것도 감당하고 미워하는 것도 화해하고 손잡고 나가는 것은 바
로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구원 얻은 자의 삶을 살기 때문에 세상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과 다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함께하시고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는 눈도 더 깊이 보고 멀리 보고 더 자세히 봅니다. 신앙의 눈으로 영적인 눈으로 보기 때문에 세상 사람이 좋아하는 것도 좋지 않게 봅니다. 많은 사람이 넓은 길로 가지만 좁은 길로 갑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들도 영적인 눈으로 보면 거기에는 죄악이 있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진노가 있기 때문에 따라가지 않습니다. 참는 것도 오래 참습니다. 

예수님이 참는 것을 본받아서 오래 참습니다. 참는 것은 모든 것의 열매를 맺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세상 만가지가 참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참는 것도 참는 정성, 고비를 넘겨야 됩니다. 대체로 산 중턱까지는 모두 참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거기까지는 모두 참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신앙을 가진 자만이 정상까지, 마지막까지 참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도 “사랑은 오래 참고 오래 견딘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끝까지 참아서 승리했습니다. 다니엘이 끝까지 참고 바울이 끝까지 참고 사무엘이 끝까지 참고 요셉이 끝까지 참아서 모두 성공했습니다. 산 중턱에서 포기하지 않습니다. 광산을 개발하는 사람이 마지막 10미터를 놔두고 못 참고 포기한다고 합니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되는데. 지하로 내려갈 때 1000미터까지는 내려갔는데 10미터를 못 참아서 포기하고 버립니다. 오늘 우리 가정의 어려움도 조금만 더 참으면 이겨낼 수 있고 오늘 우리 사업의 어려움도 조금만 더 참으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면 좋은 날이 오게되어있습니다. 

참지 않고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열매는 참는 자에게 돌아갑니다. 목사님들은 월요낚시를 즐깁니다. 왜냐하면 주말이 제일 바쁩니다. 그런데 고기는 월요일에 제일 잘 잡힌다고 합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주말에 모든 낚시꾼들이 가서 낚싯밥을 던지지만 고기들이 그 날은 하루에 알려지
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전 연못에 알려지려면 며칠 지나야 되는데 고기들이 잠깐 주변만 왔다가 간다고 
합니다. 못 잡습니다. 

그래서 참다가 다음 주말에 싸고 돌아오는데 월요일이 되면 정보가 전 연못에 퍼져서 내일은 우리 모두 같이 가자, 사촌 형제 집안 고모 이모들 모두 부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월요일이 되면 못 잡는 사람도 던지면 고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마지막은 모두 참는 자에게로 돌아갑니다. 성도들은 세상을 살 때 모두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똑같은 일에도 우리는 더 끝까지 갈 수 있고 더 감당할 수 있고 더 지혜를 주시고 더 기도하는 마음으로 믿음으로 나아가서 성도들이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승리하는 줄로 믿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왕입니다. 기도하는 왕입니다. 신앙을 가진 왕은 다른 왕과 
다릅니다. 사울 왕과 다릅니다. 신앙이 있기 때문에 다윗은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왕이
라고 하는 것은 위대한 일을 해서 위대한 왕은 아닙니다. 다윗이 굉장히 큰 일을 했지만 그것은 성경이 
크게 다루지 않습니다. 

다윗이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서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이 세계적인 축복의 거룩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모두 그렇게 기억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그렇게 예찬하지 않습니다. 국토를 넓혔습니다. 전쟁을 모두 멈추었습니다. 블레셋을 물리쳤습니다. 정치 안정이 왔습니다. 경제적인 부강이 왔습니다. 레바논에서부터 이집트까지, 지중해에서부터 유브라데스 강까지 세계의 국토를 넓혔지만 성경은 그런 것을 한 절로 다룹니다. 별로 그렇게 크게 다루지 않습니다. 

다윗은 위대한 것이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 국토를 넓히고 국가를 발전시키는 것은 국력으로 능력 있는 왕들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예루살렘을 수도로 옮기는 것은 간단하게 기록했지만 한 장 전체를 므비보셋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
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 위대하게 된 가장 중요한 결정적인 일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크게 두 가지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므비보셋같은 우리를 사랑하
시는 주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므비보셋은 사울 왕의 손자입니다. 임금님의 손자입니다. 천하를 다 호
령하는 왕이었지만 그는 너무 교만하였습니다. 우상숭배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정적을 만들어서 끝까지 죽이려고 괴롭힌 왕이었습니다. 잔인한 왕이었습니다. 사람을 많이 죽였습니
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렸습니다. 그의 아들 요나단도 버렸습니다. 사울 왕은 자기도 평생을 자
손만대의 왕이 되리라고 준비했지만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버림을 받았습니다. 여러
분이 영원히 행복하고 영원히 복 받으려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고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살아야 할 줄
로 믿습니다. 

내가 든든하게 쌓아놓고 내가 철저하게 준비한 것은 모두 헛된 데로 돌아갑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미래를 준비하였지만 그대로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데 사울 왕은 그것을 못 했습니다. 다윗은 미래를 하나도 준비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다윗의 촛불이 꺼지지 않게 하시고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시고 그의 후손을 메시아까지 보내어 주시면서 온 인류의 최대의 영광스러운 왕이 되게 했습니다. 

이 땅에 수많은 왕들이 지났지만 다윗이 최고의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권력을 가지고 돈을 가지면 두 가지가 영원히 있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항상 부자로 살 것이다, 항상이 자리의 권력을 누릴 것이다. 

두 가지는 한 순간에 바람에 부는 겨와 같이 날아갑니다. 돈이 있을 때 좋은 일 많이 하고 권력을 가질 때 다윗과 같이 좋은 일을 많이 할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축복받을 때 좋은 일 많이 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좋은 기회를 주십니다. 다윗은 얼마나 기회를 잘 활용했는지 모릅니다. 대체로 많은 사람은 이런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므비보셋은 사울 왕의 손자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한순간에 블레셋과의 전쟁에 죽고 나니 모든 신하들은 제 갈 길을 찾아가고 모두 죽임을 당하고 모두 사라졌습니다. 므비보셋은 유모가 환난 중에 안고 도망을 치다가 떨어뜨려서 그만 양 다리가 모두 절게 되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당합니다. 사울 왕의 모든 권력은 간 곳 없고 그가 가졌던 모든 재산은 시바라고 하는 종이 모두 차지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므비보셋도 자기 밑에놓고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이 자기에게 괴롭게 한 것은 너무 많지만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과 친하게 지낸 것을 생각하고 사울 왕의 자손이 없는지 찾아보라고 합니다. 온 나라에 찾아보니 므비보셋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므비보셋과 그를 데리고 있는 종을 불렀습니다. “네가 누구냐?” “므비보셋입니다.” 므비보셋은 벌벌 떱니다. 너무 불안합니다. 

모두 자기를 해치는 사람이고 그러니 가슴이 늘 불안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너는 오늘부터 나와 여기 같이 살자. 그래야 너를 해치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나와 같이 밥 먹자.” 그래서 원수의 아들을 자기를 평생 죽이려고 괴롭혔던 원수의 아들을 평생 동안 자기와 같이 밥 먹고 살게 했습니다. 한 상에 밥을 먹었습니다. 

여러분! 임금이 되면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한테 충성한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이런 데 손을 대기가 참 어려운 일인데 이것이 위대하고 아름답습니다. 권력이 높은 것이 아니라 하는 일이 높습니다. 임금의 면류관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름답고 위대합니다. 모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여러분이 배워야 합니다. 

오늘 많은 사람은 축복을 받으면 자기를 섭섭하게 한 사람, 괴롭힌 사람을 가슴에 품고 그걸 풀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모두 억울함이 있고 누구나다 그런 괴로움을 당한 상처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상처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무 하나도 크려고할 때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해야 크듯이 사람 한 사람이 살아갈 때 별의 별 억울한 일도 있고 어려운 일도 있고 괴로움을 당한 일이 있지만 그것을 마음에 오래 가지면 안 됩니다. 빨리 풀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사랑해야 되고 하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하신 것처럼 나도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내게도 좋고 그에게도 좋고 모두에게 좋습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다윗은 오늘 말씀에 요나단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내게 괴롭힌 것은 백 가지 이지만 그래도 요
만한 사랑 하나를 가지고 그걸 기억하면서 좋은 점을 가지고 그 집을 찾습니다. 오늘 부모님도 우리에게 
모두 잘해줄 수는 없습니다. 친구도 형제도 이웃도 모두 잘해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열 가지가 섭섭하
더라도 한 가지 감사한 일이 있으면 우리는 감사한 쪽으로 가야합니다. 

세상 사람은 열 가지가 좋아도 한 가지 나쁘면 그것 가지고 원수가 지고 틀어집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마음에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이 골로새서 3장 15절에 있는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를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주장해야 합니다. 주님의 평강이 우리를 주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 좋은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많은 일을 기억하면서 모든 일을 용서하고 풀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삶은 바로 거기에서 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은 바로 거기에서 옵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
게 베푸신 은혜는 무엇을 말합니까? 

인간적인 이걸 말하려고 기록한 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주신 사랑에 대한 우리가 감사함을 가지고 오늘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므비보셋같이 보잘것없는 나를 사랑해 주시고 자녀 삼아 주시고 죄 사해 주시고 건져주시고 함께해주신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예배드립니까? 주님의 큰 은혜 때문에 나와 예배드립니다. 

하나님이 왜 좋습니까? 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예배드립니까? 므비보셋같은 나를 이 죄인
을, 오늘 본문에도 죽은 개 같은 나를 이렇게 건져 주시고 축복해 주신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시편 103편 1절 2
절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
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합니다. 예배를 드립니
다.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립니다. 

내 영혼이 찬양을 합니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송축하라 내 영혼아 기뻐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기뻐하라. 감사하라 내 영혼아 감사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이 다 감사하라♬ 하나님은혜가 감사합니까? 찬양할 때 마음이 즐겁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너무너무 감사해서 우리가 찬양합니다. 왜 하나님 앞에 송축하느냐? 은택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를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은혜가 뭡니까? 3절에서부터 5절까지 나옵니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하나님이 우리가 왜 감사예배를 드립니까? 우리 죄를 사합니다. 

죄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죄가 우리를 따라오고 죄가 우리를 망치처럼 두르고 죄는 가시와 같이 우리를 찌르고 죄는 음식을 먹을 때 목에 걸리는 것과 체한 것과 같다고 시편은 말하고 있습니다. 죄가 우리에게 걸리면 우리는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진행할 수 없습니다. 행복이 무너집니다. 이러한 무겁고 저주받은 죄를 주님이 십자가를 지셔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용서함을 받게 되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 사함의 기쁨이 없는 사람은 예배가 참 예배가 될 수 없고 참 찬양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찬양은 속에서 나와야 하는데 속이 죄로 가득 찼는데 어떻게 찬송이 나올 수 있습니까? 찬송은 입으로 하지 않습니다. 일반 노래는 모두 입으로 할 수 있지만 찬양은 안에서 나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죄 사함 받은 기쁨이 찬양하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내 모든 병을 고치십니다. 병이라는 말은 ‘타루’라는 말인데 모든 병입니다. 육체의 병, 마음의 병. 여러분 세상 살아가는사람이 우울증도 못 고칠 병입니다. 천하에 우울증같이 무서운 병이 없습니다. 자살 일보직전이 우울증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사람의 모든 걱정, 염려, 영육의 질병을 치료하여 주십니다. 

나를 병에서 건져주시고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게 된 것 얼마나 은혜입니까? 약으로 사는 사람이 오늘도 수없이 많고 미국에 제일 많은 약 종류가 수면제입니다. 수면제가 몇 백 가지입니다. 이번에 마이클잭슨도 수면제를 안 먹고는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잠 잘 잡니까? 

교회 와서도잘 잡니다. 이거 하나님 은혜 아닙니까? 할렐루야! 감사한 겁니다. 하나님이 나를 모든 질병에서 건져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다음 세 번째, 4절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내 생명을 파멸에서 건지십니다. 파멸이란 말은 웅덩이라는 말입니다. 파멸이란 말은 사망의 음침한 저주의 골짜기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모든 세상의 수많은 웅덩이에서 멸망에서 건져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이 저 같은 사람도 웅덩이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저주의 웅덩이에서 사망의 웅덩이에서 하나님이 저를 건져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 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양합니다. 웅덩이에서 건져주시고 파멸에서 건지시고, 그것만이 아닙니다.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십니다. 임금님이 관을 씌우듯이 우리를 영화롭게 해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영광을 주시고 명예를 주시고 기쁨을 주시고 여러분의 삶이 황무지의 장미꽃같이 피어나도
록 축복해 주십니다. 그래서 찬양합니다. 그래서 예배드립니다. 그다음 마지막으로 5절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 하나님은 세상의 좋은 것을 주의 자녀
에게 주십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된 여러분들은 좋은 것으로 채워집니다. 우리의 삶에는 나쁜 것은 하나도 없이 주님이 좋은 것으로 우리의 잔이 넘치도록 채워주셨습니다. 내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습니다. 교인은 나이가 많다고 늙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안 늙습니다. 생각이 늙지 않습니다. 항상힘을 얻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힘입니다. 

세상은 계속 지치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모두 약해집니다. 점점 약해집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도 점점 약해집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앙모하는 사람은 새 힘을 얻어서 끊임없는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는 독수리같이 여호와를 앙모하는 사람은 새 힘을 얻는 줄로 믿습니다. 나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 독수리 같이 우리의 삶을 청춘을 새롭게 하듯이, 어제의 오늘이 아닙니다, 우리의 오늘은 새로운 오늘이요 내일은 새로운 내일입니다. 

독수리 같은 새 힘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므비보셋같은 우리를 택하여 주셔서 이렇게 축복하신 주님을 만입이 있어도 늘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우리는 늘 찬송하며 감사하며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또 한 가지 다윗은 인간관계를 이렇게 품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이해하고 덮어주고 좋게 
발전시켜 나갑니다. 이것이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나쁜 것만 기억하고 나쁜 것만 생각하고 섭섭한 것만 
생각하고 괴롭던 것만 생각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좋은 것만 생각해야 됩니다. 이번에 우리나라도 DJ 
대통령께서 편찮으셔서 누우셨는데 우리가 지금 기도하지 않습니까?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는
데 기도 덕택에 지금 그날 못 넘긴다고 의사가 말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계속 안 돌아가시고 계십니다. 그런 사이에 감사한 것은 전직 대통령과 몇 십 년 만에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YS가 찾아가고 MB가 찾아가고 전두환 대통령께서도 찾아가서 전부 손을 잡았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 살면서 몇 십 년 만에 이렇게 즐거운 한주간이 없습니다. 너무 기쁩니다. 이제는 모두 풀어졌다 모두 풀었다. 저도 전에 우리가 자주 뵙고 좀 풀어라 그래도 안 푸셨습니다. 그런데 싹 푸니 너무 모양이 좋습니다. 우리는 잘 풀어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전직 대통령은 조금 편찮으신 것이 좋구나 생각했습니다. 편찮고 나니 이렇게 편한 것
이 생깁니다. 편찮음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이렇게 풀어지니 얼마나 좋은 일이냔 말입니다. 기쁘지 않습
니까? 사람은 잘 풀어야 됩니다. 부부간에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 풀어야 됩니다. 그게 중요합니
다. 성경에 보면 아침에 싸우면 저녁에 풀라고 했습니다. 저도 싸웁니다. 그러나 저는 빨리 풉니다. 여자
한테 풀어라 그러면 약한 여자가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남자가 풀어야 됩니다. 

저는 총회장이지만 집에가면 아주 형편없이 됩니다. 살살 깁니다. 그게 좋습니다. 집사람도 속상해서 기분나빠하고 밥 안 먹으려고 하면 내가 들고 “드세요 드세요,” 그래서 계란도 후라이 해가지고 “드세요, 미안합니다, Excuse me.” 그러면 싹 풀어집니다. 오늘 우리나라 풀어야 됩니다. 우리 사회 풀어야 됩니다. 

우리 가정 풀어야됩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너무너무 얽히는 걸 좋아하고 증오를 가지고 계속 문제를 가지고 또 더 큰 문제 만들고 이렇게 나아가면 사회가 건전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면 건강한 정신이어야 되고, 건강한 정신은 바로 건강한 신앙에서 나옵니다. 건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사회는 건전한 사회가 됩니다. 

건전하다는 말의 ‘be healthy’라는 말은 사상이나 사물에 대한 모든 것을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정상적이며 위태롭지 않음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화도 건전해야 되고 정치도 건전해야 되고 사회도 모든 교육도 건전해야 됩니다. 한 쪽으로 가면 안 됩니다. 기울어지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만 주여 주여 이러기를 원치 않습니다. 

오늘 본문 보면 다윗이 인간관계를 이렇게 잘하는 것을 하나님이 이렇게 귀하게 보십니다. 어떤분은 주여 주여 그러고 와서 집에 가서는 자꾸 싸움이나 하고 욕이나 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걸 원하는게 아닙니다. 잘 믿어도 그러면 안 됩니다. 주여는 덜 하더라도 집에 가서 잘 하기를 원합니다. 나가서 우리끼리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 잔인하면 안 됩니다. 

긍휼을 베풀며 살아야 됩니다. 사랑하며 살아야 됩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물론 나쁜 일입니다. 성경에 보면 도적은 와서 물질을 빼앗아 갑니다. 다른 건 못 빼앗아 갑니다. 물건을 가져가고 돈 가져갑니다. 손해는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도적과 같습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침입하지 못하도록 지키고 물리쳐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귀는 우리 마음에 와서 우리 마음에 사랑을 빼앗아갑니다. 우리 가정에 와서 평화를 빼앗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기도하는 이유가 우리를 악에서 건지시고 시험에 들지 않고 마귀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도적보다 마귀가 더 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좋은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 바로 사탄입니다. 오늘 기도해서 여러분의 가정의 평화가 주님 오시는 날까지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건전해야 됩니다. 건강해야 됩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합니다. 너무 한 쪽으로 기울어 졌습니다. 

사람 사는데 우리에게 이상을 심어주고 용기를 심어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야 되는데 문화적으로 너무 기울어졌습니다. 
 
이번에 ‘똥파리’라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물밀듯이 모두 밀려가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진
짜 똥파리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그걸 봅니다. 연속극들이 너무 한 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너
무 퇴폐적인 걸 보여줍니다. 가정이 어떻게 그렇게 모두 퇴폐적으로 가야됩니까?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건전한 가정을 만들어줘야 될 텐데 방송국들이 돈 벌려고 시청률 높이려고 그런 짓들을 합니다. 건
전하지 못합니다. 

우리 정치가 건전하지 못합니다.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생명 걸고 싸우는 것은 건전하지 못합니다. 옛날에 애들 보는데서 우리가 조심하는데 온 국민이 보는데 모두 건전하게 살아야 될 것 아닙니까? 성경에 보면 참 재미있는 말씀들이 많이 나옵니다. 신명기 24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남의 집에 갈 때에 돈을 받을 일이 있어 빚 받으러 갈 때에는 방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너 돈 받을 거 있다고 그 집에 가서 모두 가져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문 밖에 서서 그분이 주는 대로 받아오라고 했습니다. 받아 오더라도 옷은 받아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 옷 벗고 자면 빚이 져서 마음도 아프고 부끄러운데 옷마저 벗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져오지 말아라. 맷돌 가져오지말아라. 갈아서 먹어야 되는데 맷돌까지 가져오면 그 집이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먹어야 갚을 거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돈 받을 것이 있다고 비인격적으로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비겁한 짓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돈이 있어도 비겁한 짓 하면 안 됩니다. 비열한 짓 하지 말고 점잖게 살고Gentlemanship을 가지고 건전한 인간관계를 맺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돈 못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성경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옷을 안 가져가고 옷은 입으세요. 하고 돌려주면 
그 집 식구들이 옷을 입고 자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참 주인을 잘 만나서 빚쟁이를 잘 만나서 착한 분
이 옷을 돌려주어서 옷을 입고 자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도를 듣고 너에
게 복을 준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옷을 모두 가져가버리고 발가벗고 온 식구들이 울고 부르짖으면 내가 네 집 발가벗기겠다. 내가 너 가만히 안 둔다는 게 나옵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장애인에 대한 것도 참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너는 벙어리와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돈 없고 가난하고 고아들이나 입을 못 여는 분들이 억울하게 말을 못하면 네가 대신 말해서 무죄를 너희가 가져오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못 본 척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신명기에 또 한 가지 우리가 참고할 말씀이 있습니다. 결혼을 했는데 부인이 둘인데 한 부인은 사랑을 받
고 한 부인은 사랑을 못 받습니다. 사랑을 못 받는 부인이 아들을 먼저 낳았습니다. 그러면 그게 장자입
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들을 늦게 낳았으면 그걸 네가 바꾸지 말라고 비신사적으로 그러지 말라고 했
습니다. 설령 여자가 사랑을 못 받아도 여자가 낳은 아들이 먼저입니다. 

오늘 우리가 신사적이어야 됩니다. 감정적으로 치우치면 안 됩니다. 오늘 사회를 건전한 사회로 만들고 다윗과 같이 이렇게 좋은 이런것이 오고갈 때 이게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이지 빌딩 높다고 좋은 나라 되는 게 아닙니다. 잘 산다고 좋은나라가 아닙니다. 오늘 다윗이 행한 아름다운 마음이 마음의 꽃입니다. 영혼의 면류관입니다. 교인이 교인답게 살아야 나라가 좋은 나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거룩한 주의 날입니다. 만 가지 은혜를 받은 저희들이 하나님 앞에 나
와 예배드리며 우리의 삶 속에서 이 믿음 하나 때문에 우리의 생각이 다르고 인간관계가 다르고 우리가 
사업을 하던 무엇을 하던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
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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