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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루살렘 회의, 베드로의 변론 (행 1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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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회의, 베드로의 변론 (행 15:6~11)


예루살렘 회의(베드로의 변론)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6)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7)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8)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9)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10)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행15:1-11)

예루살렘 회의

교회 역사상 최초의 종교 회의가 열렸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일어난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가 공개 질의를 했고,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회의 형식은 온 교회가 모이는 공개 형식이었습니다.  발언은 사도와 장로들이 주로 했습니다.  평신도들이 참여하여 방청을 했습니다.(12,22절)  평신도들이 함께 한 이유는 문제의 핵심을 모든 교인들이 알아야 하고, 또한 그 논의 과정의 정당성도 보여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형태의 회의는 오늘날 교단 총회의 기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논의하고 합의한 사안을 존중해 주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8-19)
  
회의의 진행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의제를 확인하기 위한 질의응답 식 토론이 있었습니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7)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변론”(zhvthsi")이란 말은 “zhtevw”(seek)란 의미의 말입니다. 영문 성경에는 “questioning, debate, discussion” 등으로 번역합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났는지?  묻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제기된 의제는 “예수를 믿는 것 한 가지를 통해서 완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 하는 내용입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예수 믿어도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이 의제가 확정된 후에는 몇 명의 대표자 발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온 교회가 결의하고 승인했습니다.  결의된 내용은 즉시 모든 교회에 알리고 따르도록 했습니다.  
  
대표 발언자는 셋입니다.  첫째는 베드로 사도입니다.(7-11절)  둘째는 바울과 바나바입니다.(12절)  셋째는 야고보입니다.(13-21절)  베드로는 사도의 대표자요 최초 교회의 대표자이기도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 전도의 최전선에 섰던 사람으로 문제를 제기한 장본인들입니다.  야고보는 주님의 동생으로 예루살렘 교회회의가 개최될 당시 상당히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고 이 회의의 의장 격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주제 발언을 했고, 바울과 바나바는 실증을 했고, 야고보는 의장 격으로 결의문을 도출해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주제 발언

오늘은 첫 번째 발언자인 베드로의 발언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베드로가 첫 번째 대표 발언자로 나선 것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사도들의 수장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따르는 일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이고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베드로를 대표자로 만든 것은 주님의 위임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16:18-19)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내 어린 양을 먹이라...내 양을 치라...내 양을 먹이라.”(요21:15-17)  연령적으로나, 열심으로나, 주님이 인정하신 측면에서나, 베드로는 확실한 수장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둘째로, 그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항상 앞장서서 발언하였습니다.(행1:15, 2:14, 3:12, 4:8,19, 5:29)  그리고 그의 발언은 곧 중요한 방향타요 지침이 되었습니다.  
  
셋째로, 베드로 사도는 본문에 논의되는 바로 이 주제에 관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받은바 있습니다.(행10장, 11장)  바로 고넬료 집에 복음을 전한 사건입니다.  이 점은 베드로가 확신 있게 발언하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제 베드로가 발언한 내용이 무엇인지 함께 보겠습니다.  

베드로 발언의 요지

첫째로, 자신이 사도로 택함을 받은 목적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들려주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즉, 복음의 목표는 유대인(할례자들)이 아니라 이방인(무할례자들)이라는 뜻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7)  하나님의 목표는 유대인 구원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의 구원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가히 폭탄선언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은 철저하게 유대인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대인만이 선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구원받는다면 그것은 이방인이 유대 사회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구원관 자체도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즉, 메시아가 오시면 유대 국가를 회복하고 유대인 중심의 세계 국가를 만드는 것이 중요 골자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에게 예수는 유대 국가를 회복하는 예수였습니다.  이방인이 예수를 믿는다면 유대 국가에 편입되는 것이니까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는 겁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전혀 다른 소리를 합니다.  본래 하나님의 목표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고, 그래서 베드로 자신을 사도로 택하셨다고 합니다.  
  
유대인 사도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놀랍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타가 공인하는 유대인의 사도입니다.  바울은 베드로의 사도직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갈2:8)  사도행전을 크게 둘로 나누면 1장에서 12장까지의 전반부와 13장 이후의 후반부입니다.  전반부는 베드로 사도의 사역이 중심이 되고 있고, 후반부는 바울 사도의 사역이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 사역의 주요 무대는 유대 땅입니다.  주요 대상자들도 유대인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베드로는 자신을 이방인을 위해 불렀다고 말할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의 문을 열도록 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의미합니다.  즉, 고넬료 전도 사건입니다.  당시만 해도 베드로는 이방인의 집에서 식사하는 것조차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유대인으로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부정한 짐승을 먹으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거부할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정하다고 한 것을 네가 감히 부정하다고 할 수 있느냐?  이 환상은 하나의 상징이었습니다.  부정한 짐승은 곧 부정한 이방인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환상과 함께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초대되었고, 고넬료 가족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그들을 구원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깨달았습니다.  아하!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실 목적이 있으시구나!  
  
본래부터 복음은 유대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 모든 이방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1:16)  모든 믿는 자!  즉, 세계 만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신 선민은 혈통적인 아브라함 자손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영적인 선민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2-3)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창 18: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창 22:1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3:28-29)  천하 만민이 구원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오늘 한국 민족이 복음을 듣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복음은 유대인의 것이 아니라 천하 만민의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할례 받기 전에 이미 성령을 주셨다고 합니다.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8)  물론 이 말씀은 고넬료 가족에게 성령을 내리신 사건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임하십니다.  잠깐 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거주하십니다.  

조금 힘든 말로 內住라고 합니다.  성령이 임하신 것은 그들이 영원불변의 하나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던 고넬료 집안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44-46)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행10:44-48)  고넬료 가족이 성령을 받았다면 그들은 이미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여기서 성령을 받은 시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령이 언제 임하셨습니까?  고넬료 집안 사람들이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습니다.  세례 받은 후가 아닙니다.  세례 받기 전입니다.  교인으로 등록하기도 전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고백하기도 전입니다.  그런데도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고넬료와 가족들은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을 들으면서 마음에 깨달았습니다.  아하 내가 죄인이구나!  이대로 있으면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구나!  예수님이 나의 구주시다.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내가 믿습니다.  예수님 이제 내가 주님을 영접합니다.  내 마음에 오셔서 영원히 내 구주가 되소서!  마음으로 주님을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고넬료와 가족들의 마음을 사람들은 몰랐지만 주님은 아셨습니다.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성령을 주어 증언하셨다”(8절)  그래서 성령이 오셨습니다.  
  
세례를 받거나 공식적인 고백을 하기 전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구원은 외형적인 의전에 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명부에 올리고 예배 출석하는 일이 일어나기 이전에, 모세의 율법을 지키기 이전에, 오직 예수님을 믿는 것 한 가지 때문에 성령이 먼저 임하십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주님의 인정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 자녀가 되기 위해 굳이 외형적 의전인 할례를 받거나 탈무드 식으로 정한 음식을 가려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가려 먹지 않습니다.  할례를 받지 않습니다.  절기에 매이지 않습니다.  오직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기 때문에 성령이 내 안에 와 계십니다.  가장 확실한 인정입니다.  오늘 여러분!  성령이 내 안에 와 계십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것 자체가 바로 성령이 임하여 계신 증거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고전12:3)  성령이 임하여 계시다면 외형적 의전이 구원의 조건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셋째로, 예수를 믿음으로써 마음이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9)  깨끗하다는 것은 단순히 청결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만큼 완전무결하게 무죄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머리터럭 만큼도 죄를 용납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100% 거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깨끗하다는 것은 어떤 죄목으로든지 우리를 정죄할 수 없고, 지옥에 보낼 수 없는 순도 100%의 의로운 자라는 뜻입니다.  천국 갈 자격이 100% 있습니다.  9절 말씀은 두 가지 교리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칭의적 의미요, 둘째는 성화적 의미입니다.  
  
칭의란 법적인 자격입니다.  사람이 자녀를 낳으면 먼저 법적 절차를 밟습니다.  일단 호적에 등재 되면 모든 법적인 자녀의 특권을 가지게 됩니다.  이 자격은 불변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한 가지 때문에 영적으로 새로운 출생자가 되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하나님 자녀로 법적으로 입양되었습니다.  모든 자녀로서의 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천국 상속 권, 영생, 하나님과의 교제, 축복된 삶 등등.  이런 특권 중에 가장 큰 특권은 바로 정죄를 당하지 않는 특권입니다.  과거든지, 현재든지, 미래든지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심판 당하고 지옥에 가거나 하나님 자녀의 자격이 상실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칭의란 죄를 죄로 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따라서 아무 죄나 지어도 괜찮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만, 정죄를 면한다는 뜻입니다.  즉, 내가 지은 어떤 죄든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사면에 포함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죄를 짓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의인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사면해 주시기 때문에 의인 취급을 받는 겁니다.  행위로 의롭다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대속으로 사면을 받았기 때문에 의로운 겁니다.  우리는 다만 예수를 믿고 의지할 뿐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법적인 사면을 받았습니다.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9)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
이 법적인 칭의 아래 진행되는 것이 바로 성화입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하나님은 이미 나를 법적인 자녀로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면 실제적 상황은 어떻습니까?  실제 상황은 법적인 것과는 달리 더디게 진행됩니다.  어느 집에 입양되었다고 당장 그 부모를 닮을 수 있습니까?  서서히 닮아갑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집니다.  생각, 가치관, 성격, 인품, 언행, 행동이 다 하나님 자녀답게 변화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인간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노력한다 해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거룩에는 절대로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완전한 의인으로 천국 생활을 할 수 있나요?  그것은 바로 성령님이 보증을 서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신원보증인입니다.  성령님이 책임지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 거룩하게 만드시겠다는 뜻입니다.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1:22)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1:13)  성령님은 적어도 내가 이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나를 하나님 자녀답게 변하도록 책임을 지시고 단련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필경은 완전무결한 하나님 자녀로 만들어 주십니다.  
이제 베드로 발언을 요약해 봅시다.  첫째로, 자신이 사도로 택함을 받은 목적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들려주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할례 받기 전에 이미 성령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셋째로, 예수를 믿음으로써 마음이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즉, 하나님 자녀로서의 조건을 완벽하게 구비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기 위해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

베드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마지막 결론을 내립니다.  첫째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  즉,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11절)  구원은 행함의 결과가 아니라 은혜의 결과로 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결과,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결과로 거저 주신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3-5, 8-9)  
  
하나님께서 어떤 대가를 받지 않으시고 거저 은혜로 구원하신 이유가 뭘까요?  은혜가 아니면 인간에게 절대로 구원의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존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들을 보세요.  가장 중요한 치명적인 것들은 거저 주십니다.  대가를 받지 않으십니다.  인간 생명을 거저 주십니다.  생명 값을 받는다면 도대체 얼마를 받아야 됩니까?  숨쉬는 공기, 햇빛을 거저 주십니다.  하늘의 비를 거저 주십니다.  

인간의 거주지인 지구를 거저 주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거저가 아니면 도저히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 값을 받지 않으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갚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가장 비싼 생명의 대가를 이미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한 가지로 충분히 구원받습니다.  더할 것도 없고 덜 할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 십자가로 완전히 구원받습니다.  
  
둘째로, 그러므로 다른 멍에를 메거나 메울 필요가 없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10)  율법은 멍에입니다.  너무나 힘든 멍에입니다.  멍에가 뭡니까?  무거운 짐을 올려놓기 위해 소나 말의 목에 얹어놓는 물건입니다.  율법은 인간을 짓누르는 멍에입니다.  

그 누구라도 도저히 질 수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유대인들의 조상을 거론합니다.  성경 역사를 보세요.  언제 유대인들이 단 한 번이라도 율법을 제대로 지킨 적이 있습니까?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 지켰습니까?  광야 시절에 지켰나요?  지키기는커녕 밤낮 하나님을 원망 불평만 했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서 내려오기도 전에 우상숭배로 계명을 어겼습니다.  

광야 40년 간 할례를 제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정착 직후 사사 시대 300년 간 어땠습니까?  한 번도 하나님 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라는 지리멸렬되고 밤낮 외적에게 시달렸습니다.  사울 시대에 제대로 했나요?  다윗 왕국 시대가 열렸지만 결국은 하나님 법을 지키지 않아 나라가 망하지 않았습니까?  
  
랍비들도 이런 과거를 알고 있었습니다.  주후 70 년경 이후로 보수적 바리새파였던 샴마이파가 쇠퇴하고 보다 온건한 힐렐파가 등장했습니다.  주후 100년 경 랍비 아키바 이후로 율법을 지키는 문제에 보다 관대해졌습니다. 예를 들면 “율법의 51%만 지켜도 천국으로 가는 길을 여는 데 충분하다”든지, “의무의 4분의 3만 이행하면 나쁜 사람으로 볼 수 없다”는 식의 교훈을 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뭐라고 했습니까?  모든 율법을 지키다가 단 한 가지만 위반해도 죄인으로 드러난다!(약2:10)  그것이 정통 율법의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질 수 없는 멍에입니다.  
  
그런 멍에를 왜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이미 된 사람에게 씌우려고 합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니 그 외에는 어떤 율법의 짐도 구원의 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할례도 필요 없습니다.  식사법이 필요 없습니다.  절기가 필요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만 의지하면 됩니다.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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