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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교회로 세우기 (행 18:24~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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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교회로 세우기 (행 18:24~19:7)
  

교회의 특징은 다양성이다. 은사가 다양하듯 교회를 섬기는 지체의 역할은 다양하다. 얼굴을 보면 코와 눈, 입과 귀가 있어 그 역할이 다양하듯 다양한 것이 교회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다양성은 통일성을 이룬다. 각 지체의 역할이 다르더라도 한 몸을 이루듯 은사가 다양해도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지체들의 역할은 달라도 모두 다 한 몸을 이루는데 소중하듯 각기 다른 지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어느 한 지체를 업신여기면 통일성을 이루는데 문제가 생긴다. 

오늘 본문은 에베소에서 일어난 사역에 관한 이야기다. 몇 사람의 지도자가 등장한다. 

1. 아볼로의 사역이다. (행18:20~28)

행18:24~28에 나온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다. 알렉산드리아는 헬라 문화가 꽃핀 도시로 알렉산더의 이름을 붙혀 세워진 도시다.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였다. 아볼로는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일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아볼로의 문제에 대해 행18:25에 기록되어 있는데 요한의 세례만 알 뿐이었다. 요한의 세례란 “회개하라. 내 뒤에 오시는 이, 곧 예수를 믿으라.” 즉,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도록 가르치는 전도자였다는 말이다. 

아볼로는 초대 교회 형제들에게 성경 교사로 환영을 받았다. 행18:27을 보면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아가야로 건너갈 때 형제들이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아볼로를 영접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그 아볼로를 만나 배우므로 믿는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 즉, 말씀으로 예수는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유대인의 말을 이기는 사람이었으니 그는 말씀에 있어서 특별한 사역자였던 것이다.

2.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사역이다. (행18:1~3)

본도 출신의 아굴라는 브리스길라와 로마에서 살았다. 글라우디오 황제가 모든 유대인에게 로마를 떠나라고 할 때 고린도에 오게 되었다. 거기서 바울을 만났는데 함께 살며 천막 만드는 일을 하였다. 거기서 바울을 돕는 자가 된 이 부부는 바울이 배를 타고 수리아로 떠날 때 동행하여 이삿짐을 꾸렸다. 그런데 이 부부는 아볼로보다도 더 성경에 관한 비밀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행18:26을 보면 아볼로가 성경을 통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담대히 전파할 때 이 부부는 말씀을 듣고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쳤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말씀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었으니 말씀을 이해하는 수준, 가르치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롬16:3을 보면 바울에게 있어서 동역자로 소개되었다. 고전16:19을 보면 고린도교회에 머물 때 예배 처소로 제공된 장소가 그의 집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이 부부에게 감동을 받는다. 아볼로를 정확하게 가르친 이 부부의 성경 해석과 수준도 놀랍지만 선교 현장에서 삶의 섬김이 실천적이고 헌신적이기 때문이다. 이 부부는 실로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많이 알고 몸이 움직이는 사람이다.

3. 바울의 말씀과 성령의 사역이다. (행19:1~7)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 바울이 에베소에 왔다.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났다. 바울은 제자들에게 물었다. 행19:2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사람들은 “믿노라.”하면서도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라고 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라고 하였다. 그것이 에베소 제자들의 한계였다. 

그래서 바울이 증언한다.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 때 “내 뒤에 오시는 이 예수를 믿으라.”고 하였다. ‘예수 믿어야 한다.’고 외칠 때 저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 바울은 그러고 나서 행19:6에서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안수하므로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다. 그 은사로 받은 제자들은 모두 12명이 되었다. 

바울은 제자들의 믿는 모습 속에서 성령을 모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성령의 사람, 바울은 안수하므로 성령이 임하게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각각의 다름과 차이를 본다.

① 말씀 밖에 모르는 사람, 아볼로

② 말씀을 더 정확하게 풀어 섬김과 동역, 봉사로 헌신하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③ 말씀과 함께 성령의 사역을 하므로 은사가 나타나게 한 바울

우리는 여기서 성령의 사역을 모르면 성령을 말하지 못하며 성령의 은사인 방언과 예언은 아예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볼로에게 배운 사람들은 요한의 세례만 알게 되었다. 브리스길라, 아굴라의 도움이 있으므로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였다. 그러나 바울에게 배울 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의 세례를 받으므로 방언, 예언의 은사가 나타났다.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가르쳤다. 매일 매일 말씀 사역을 하는 바울은 능력 전도를 하였다. 행19:11~12을 보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가 떠나갔다. 이렇게 될 때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다. 

이렇게 보면 세 종류의 지도자가 있다. 그러나 제일 바람직한 것을 바울적인 사역이다. 바울적 사역이란 2년간 계속하여 말씀을 가르치는 말씀 사역과 함께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성령 사역의 균형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목회자의 목회의 기둥은 이 두 가지여야 한다고 믿는다. 

한국 교회의 안타까움은 오직 말씀 사역자들은 말씀이라는 틀에 갇혀 성령 사역을 외면하거나 비웃는다. 반대로 오직 성령의 사역자들은 성령의 신령한 은사에 갇혀 진리의 도를 설명하는 말씀 사역을 외면하거나 비웃는다. 이것이 한계를 지닌 지도자의 문제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분명 바울의 목회와 전도가 우리의 모델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둥이 되어야 함을 고백하자.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가 바울을 최고의 선교사, 최고의 목회자, 최고의 영성가, 최고의 전도자, 최고의 교사라는 칭호로 부를 수는 있다. 그러나 바울은 겸손하여 자기를 낮춘다. 교회에 대한 그의 이해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데 집중되어 있다. 나의 수준이 너의 수준보다 높다고 자만하지 않는다. 나의 받은 은사가 대단하다고 너의 은사를 헐뜯거나 얕보지도 않는다. 

18개월을 목회했던 고린도교회가 인물 중심, 사람 중심으로 파당을 만들었다. 사람들의 오만이 만든 결과다. 그래서 고전1:12을 보면, 아볼로파, 바울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었다. 아볼로를 따르는 사람은 성경 말씀에 능통하니 아볼로를 최고로 여겼다. 바울파는 말씀이 다가 아니다. 성령의 은혜를 경험해야 한다는 사람들이다. 말씀을 가지고는 힘과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게바파는 베드로파다. 아볼로도, 바울도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고 3년 동안 동거하지 못했다. 주님의 얼굴을 보면서 직접 말씀을 배운 베드로인 게바야 말로 진짜 사도다. 베드로의 사도권이 진짜라는 것이다. 그리스도파란 사람 중심으로 파당을 짓고 서로 분쟁할 때 사람 중심으로 사람에게 속하지 않고 그들이 섬기는 그리스도에게 속하겠다는 사람들이다. 

결국 이런 모든 분쟁과 갈등은 거룩한 교회의 몸을 깨뜨리는 육신의 일이요, 사람을 따라 행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고전3:5에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고전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이는 하나님 뿐이니라.” 바울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말씀과 성령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흥왕하게 하는 바울이지만 자기의 영성이나 믿음, 목회나 선교 열정을 내세우지 않는다. 

바울이야말로 목회자에게 최고의 모델이다. 그러나 바울은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오직 하나님만 높인다. 고전3: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바울은 사람과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신앙의 수준의 높고 낮음을 비난하지 않는다. 신앙의 역할과 신앙의 다짐에 대해서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밭이라고 말하므로 하나님의 것임을 말한다. 바울은 사람들이 자기 중심으로 당을 이루고 아볼로, 게바가 최고하고 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바울을 향해서 당신이 최고라고 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저 역할만 다를 뿐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바울은 교회의 하나됨을 이루는데 있어서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였다. 우리는 교회의 지체로서 다른 역할을 하는 다른 재능과 은사에 대해 제한해서는 안된다. 무시하거나 비난해서도 안된다. 각각 자기가 일한대로 자기의 상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나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10월 18일 주일 저녁에는 CM 축제를 연다. 준비하는 것들이 다 다르다. 그런데 그 다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건강한 교회를 세우게 될 것이다. 다르게 준비해야 한다. 개성 있게 준비해야 한다. 자기의 수준으로 꽃을 피워야 한다. 그러나 나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다. 비가 내리면 물을 머금은 푸른 꽃은 푸르게 된다. 노란 꽃은 노랗게, 하얀 꽃은 하얗게 된다. 각종 꽃들이 그 크기와 작음을 비난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색으로 화려하게 피어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우리는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의 색으로 피어나야 한다. 여러 가지 교회의 유형이 있으나 우리의 색은 말씀 사역과 성령 사역의 색이다. 우리 교회는 그렇게 사역하고 흥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 교회처럼 되라고 하지도 말고 다른 교회는 다르게 피어나도록 하라. 우리 교회가 다른 교회처럼 될 필요도 없다. 오직 예수를 위하여 목숨을 다해 천국 일하는 교회, 세계 선교를 위해 쓰임 받는 교회, CM을 중심으로 모이며 회복과 부흥의 모델이 되는 교회로 피어나야 한다. 그것이 상 받는 삶이다. 주께 칭찬받는 교회의 모습이다. 다른 교회가 해외에 선교하든, 하지 않든, 건축물을 짓든, 짓지 않든 우리가 점수를 매길 일이 아니다. 

우리는 해외에 교회를 건축해야 한다. 우리 교회는 영혼 구원의 관계 전도를 계속해야 한다. CM을 중심으로 교제하며 제단 기도를 매일 드리고 CM이 CM되는 섬김을 계속해야 한다. 말씀과 성령이 그렇게 인도하기 때문이다. 우리교회는 우리교회로 세워지게 하자. 나의 영성의 색깔이 있는 교회로 세워서 주님의 몸을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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