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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이 청결한 자는 행복하다 (마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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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청결한 자는 행복하다 (마 5:8)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돈이 얼마나 있어야 행복할까? 존 록펠러는 ‘사람이 행복하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불후의 명답을 남겼다. “그저 조금만 더 있으면 됩니다.” 

돈은 아무리 많아도 ‘조금 더’를 원하는 마음 때문에, 행복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주님은 돈 많은 자가 행복하다고 하지 않으시고, 마음이 청결한 자가 행복하다고 하셨다. 마음은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는 마음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말한다. 마음 = 감정 + 생각 + 의지를 말한다. 

마음은 행복의 원천이기에, 행복하려면 마음을 지켜야 한다. (잠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 복에는, 눈에 보이는 복이 있고, 보이지 않는 복이 있다. 

눈에 보이는 복은, 소유할 수 있는, 이 세상의 복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은, 신령하며 인격적인 복이다. 눈에 보이는 복은, 세상에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복은, 믿음으로 받는다. 이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은 행복하다. 

보통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볼 수 있는 것에 관심이 많다. 마음은 볼 수 없기에 사람들이 외면한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변화가 없이는, 생각의 변화나 행동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깨끗하고, 거룩하게 보였다. 외적제도(주일성수, 십일조, 등등)만 잘 지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탐욕과 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들을 향해, (눅11:39)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라고 했다. 

그리고 (마23: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하셨다. 안이 먼저 깨끗해져야, 겉이 깨끗해진다. 우리는 입으로 ‘주여! 주여!’ 하지만, 마음이 얼마나 영적으로 더러운가? 그래서 예수님은, 더러워진 인간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려고 오셨다. 

하나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의 마음을 보시므로, 마음이 청결해야 행복하다. 청결하다는 말은, 淸(맑을 청, 潔(깨끗할 결)이다. 헬라어로 카다로스(καθαρός)인데, 더러움을 씻어, 맑고 깨끗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파생된 말이, 우리가 잘 아는 ‘카타르시스’(정화)다. 

카타르시스는 상처와 분노, 그리고 미움으로 가득 찬 마음이, 치유된 상태를 말한다. 우리 식으로 하면, 정직하고, 거룩한 모습을 말한다. 만일 예수님께서 자연 그대로의 깨끗한 마음을 강조하셨다면 도덕적인 깨끗한 이란 단어, άγνός(하그노스)를 쓰셨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께 “저는 태어날 때부터,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게 태어났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본문은 더러움과 불결에서 깨끗해진 καθαρός라는 단어이다. 따라서 더럽혀진 우리도, 깨끗해질 수 있다. 희망을 갖고, 더러움을 씻고 깨끗해지자! 

1. 왜 우리의 마음은 청결해야만 하는가? 

(1) 우리 마음이 불결하기 때문이다(렘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라고 했다. 

예수님은 (마15:19-20)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고 하셨다.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이방인들의 영적 상태를 묘사하였다. 다른 일에는 명석해도, 하나님께 나와 영적인 사건에 부딪히면, 어리석어진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다. 하나님은 깨끗한 마음을 좋아하신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지성소로 삼으시고 거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을 보시니, 심히 부패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더럽기에,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 간절함이 있다. 보지는 못해도, 그분의 음성만이라도 듣고 싶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해야 하나님을 본다고 했는데, 우리 마음이 더러워져서,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주님은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마음의 정결함을 중요시하신다. 

(2)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에, 더러운 죄악과 어울릴 수 없는 정결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교제하려는 사람들에게, 청결함을 요구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사람은 이 세상을 살면서, 무엇인가를 보면서 산다. 그 대상이 물질적일 수도 있고, 정신적일 수도 있고, 영적일 수도 있다. 사업하시는 분들은, 눈을 감으나 뜨나, 돈을 보고 뛴다. 정치하는 분들은, 권력과 명예를 항상 눈앞에 두고 산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 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평생 무엇을 보면서 살았는가를 놓고,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 성도들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자신의 목표를 보며 살아간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3:3).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신다. 예수님은 무섭게 사람을 꿰뚫어보신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이미 살인한 자요(마5:22), 마음에 음욕을 품은 자가, 이미 간음한 자(마5:27)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이 변해야 한다. 

사람은 겉만 번듯하고 깨끗하면 속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지 않는다. (히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보기 원하고, 교제를 원하기 원한다면, 청결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3)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절대적 조건이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은,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다. 천국은 청결한 사람이, 들어가는 나라이다. 따라서 청결함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절대적인 요구다. 

만일 우리가 불결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천국에 들어간다면, 우리가 들어가는 천국은 더러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깨끗할 것을 요구하신다.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했다. 

(벧전1:15-16)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이처럼 청결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요구이며, 하나님의 뜻이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고 했다. (고전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였다. 

따라서 천국을 구하는 자는, 불결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또한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적합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 더욱 거룩함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해지려면, 율법으로는 될 수 없다. 

(요일1: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오직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는다. 주님께 용서를 받아야 한다. 용서받는 길은 믿음뿐이다.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야 깨끗하게 된다. 

2. 청결한 마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나누어짐이 없는, 진실한 마음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청결한 마음은 ‘나누어짐이 없는 한 마음, 온전한 마음’이다. 일편단심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며, 세상에 살고 있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돈과 명예가 목적이 되면, 두 마음을 품은 것이다. 

한 남편과 살면서,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다면, 두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따라서 청결한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한 마음을 말한다. (시119:2)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했다. 여기 ‘전심으로’는 ב󰗝 ל󰗏(콜 레브)로 “나누어지지 않은 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온전한 마음”이다. 

주님을 따르는 온전한 마음은,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선다. 이것이 청결한 마음의 본질을 말한다. 이런 마음에 간사가 있을 수 없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온전히 주님만을 좇는 마음을 가진” 청결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할 때, 인간적인 실수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한 마음(전심)으로, 사실을 인정하고 주님을 찾았다. 주님은 인간적인 실수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한 마음을 가진 청결한 사람인 것을 보셨다. 청결한 자는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직면한다. 니고데모는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다.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3:2) 하였다. 그때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주님이 말씀하시자, 

내가 이렇게 늙었는데,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서, 나오느냐고 말한다. 우리는 몰라도 아는 척 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거듭남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셨다. (요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고 하셨다. 

결국 니고데모는, 하나님 되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보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내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주님께 문제를 들고, 솔직하게 나가야 한다. 이런 마음이 청결한 마음이다. 자신의 못난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나가가는 마음이 청결한 마음이다. 

누가복음에 보면, 바리새인과 비교해서, 세리와 죄인들 기도하는 모습이 나온다. 세리가 기도할 때 감히 고개를 못 들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렇게 기도하였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들고 나온다. 이런 마음이 청결한 마음이다. 반면 바리새인은, 나는 이렇게 한다며 기도했다. 

(2) 주님의 마음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닮는 생활이다. 어떻게 닮을 수 있나? 많은 사람들은 모방한다. 그러나 모방으로는 불가능하다. 예수님의 마음을 이식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일 때, 성령님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 속에 주님 자신의 모습을 심어주신다. 기독교는 마음을 개량한다고 않는다. 이것이 도덕이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더러운 마음을 토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주님께서는 우리 속에 새로운 마음, 예수님의 마음을 주신다. (겔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부부가 오랫동안 살면, 서로 닮아간다. 얼굴만 아니라, 성격도 닮아가는 경향이 있다. 늘 함께하며 서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한편 미운 사람을 생각하면, 우리 마음까지 미워진다. 이것이 바라봄의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깨끗한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이다. 주님을 묵상하면, 닮아가게 된다. 

(3)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다. 
어두움은 빛을 미워하고, 빛은 어두움을 미워한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다. 이렇듯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는, 청결한 마음을 소유해야 한다. 

청결한 마음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신을 살피는, 자기성찰 속에 이루어져 가는 마음이다. (시119:104)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시119:163) “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라고 하였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하나님을 섬겼다(단1:8). 뜻을 정했다는 말은, 죄를 안 짓기로 작정했다는 말이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도전하고 거스르는, 문화와 풍속을 가진 이방나라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죄를 안 짓기로 장적하였다. 이것이 청결한 마음이다. 

3. 그러면 어떻게, 청결한 마음을 얻을 수 있는가? 

도덕도 청결한 마음을 말하고, 많은 위인도 청결을 말한다. 그러나 어느 것도, 그 누구도 “어떻게?”라는 물음에 답을 주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청결한 마음을 가질 수 있나?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1)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는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이요, 어느 것 하나 깨끗한 마음이 없다. 양심이 바르다고 말하지만, 그 양심이 깨끗하지 못하다. 다 썩은 마음이다. 

예수님은 더러워진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려고 오셨다. (요일1: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였으며,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했다. 

(히9:14)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죄는 더러운 것이고, 더러운 마음은, 죄를 지은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의 죄는, 예수님의 피로써 정결케 할 수 있다. 

(2) 말씀과 기도이다(딤전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주님은 말씀과 함께,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말씀은 거울이다.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더러운 부분을 씻어야 한다. 

(벧전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이렇게 말씀에 순종할 때 청결하게 된다.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 가장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생사를 걸고 기도했다. 그날 밤 기도를 통해, 새사람이 되었다. 

결론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요” 여기서 본다는 말은, 육신의 눈으로, 그 형체를 본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기에,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주님의 나라를 위해, 살게 된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핍박자로 살았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아나니아에게 안수 받을 때, 눈에서 비늘 같은 것들이 벗겨져, 다시 보게 되었다. 성한 눈으로 고쳐주셨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은혜가 있기를 원한다. 

(2) 하나님과의 가까운 교제를 갖게 된다. 현세와 내세에서, 성도가 누리는 지위와 교제를 갖는다. 대통령을 본다는 말은, 그 만한 지위와 교제를 갖는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지위와 교제를 갖는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주님과 상의할 수 있는, 지위와 교제를 가지기 바란다. 

(3)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 (욥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이런 확실한 경험이 있어, 진정으로 행복한 자가 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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