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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쉬어야 산다 (막 6: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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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야 산다 (막 6:30~32)

        
<바쁘고 피곤한 세상> 

요즈음 세상에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맞벌이 부부로 일하다 보니까 젊은 분들은 더더욱 바쁩니다. 어른들이 바쁜 것은 그렇지만 어린 아이들도 보통 바쁜 것이 아닙니다. 학교 공부 하나만 해내는 것도 힘들 텐데 방과 후에 여러 학원들을 왔다 갔다 해야 하기에 밤 9시,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영어 학원, 피아노 학원, 태권도 학원, 컴퓨터 학원, 학원에 다니는 일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렇게 바쁘다보니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피곤합니다. 일하고 공부하고 사람 만나고, 이렇게 바쁘게 지내는 일이 거저 쉽게 되지 않습니다.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힘듭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바쁘게 지내다가 집에 돌아온 사람들은 다 눈이 토끼처럼 빨갛고 어깨가 파김치처럼 축 늘어지고 몹시 피곤해 보입니다. 출세하고 성공하고 부자가 되려고 하다 보니 바쁘지 않을 수가 없지요. 바쁘게 생활하다보니 심신이 다 지쳐 피곤합니다. 

이렇게 바쁘고 피곤하다보니 사람들은 교회에도 잘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바쁘고 피곤해서 주일 예배에 참석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속회 예배에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출석률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합니다. 1970년대나 80년대처럼 예배당을 꽉 채우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탄식합니다. 오늘도 참 바쁘고 피곤하실 터인데 여기 교회에 오신 분들께 참 감사합니다. 의지를 굳게 하고 용기를 내서 다른 바쁜 일들을 다 내팽개치고 피곤한 심신을 이끌고 여기에 오신 줄로 압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바쁜데도 행복하지 않다> 

첫째로, 여러분들이 그토록 바쁘게 지내는데 과연 행복하냐는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돈 벌고 성공하고 출세하려면 당연히 바쁘게 살아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놀 것 다 놀고 쉴 것 다 쉬고 언제 돈을 모으고 어떻게 남보다 앞서 갈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성공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해가 뜨는지 달이 뜨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과연 우리는 성공했습니까? 

여러분, 성공이 무엇입니까? 돈 많이 벌어서 부자 되는 것이 성공입니까? 좋은 집 사고 좋은 차 타고 다니는 것이 성공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외적인 것의 성취가 성공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먼저 우리 맘속에 기쁨과 만족과 감사가 충만해야 그게 진짜 성공인데 돈이든 명예든 가지면 가질수록 더 허전해지고 더 욕심이 생깁니다. 누구말대로 돈이나 명예는 바닷물과 같이 짜서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심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간다는 생각은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운전할 때도 그렇지 않습니까? 정신없이 앞만 보고 가다가는 십중팔구 사고가 납니다. 때로 속도를 줄여야 할 때도 있고 차선을 바꿔야 할 때도 있고 백미러를 봐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요. 성공하고 출세하기 위하여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는 일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는 속도도 중요하지만 방향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운동 경기를 생각해보세요. 거의 모든 운동이 속도도 중요하지만 방향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축구를 할 때 아무리 볼을 세게 찬다고 할지라도 정확하게 골문의 빈틈을 향해서 차야지만 골을 넣을 수가 있습니다. 탁구도 테니스도 배구도 농구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볼을 칠 때에만 점수를 올릴 수가 있습니다. 골프도 그렇지요. 아무리 멀리 날려 보내는 장타력이 좋다고 할지라도 방향을 정확하게 맞추어서 보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속도를 내서 바쁘게 사는 것, 참 중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바쁜지, 그 방향을 정확하게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 27)고 주문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인생 방향이 바로 되었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바쁘기는 한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바쁜지 반성해보십시오. 

<바쁘고 피곤하니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제 두 번째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바쁘고 피곤하게 지낼 때 여러분은 말을 더 많이 하십니까? 듣기를 더 많이 하십니까? 대개 말을 더 많이 하지요. 이상하게도 바쁘고 피곤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말이 귀에 잘 들려오지 않습니다. 하물며 내가 바쁘고 피곤한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갓난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은 먼저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정확하게 들어야지만 그대로 따라 합니다. 그래서 말을 많이 듣고 자라난 아이는 말을 빨리 배우고 적게 듣고 자라난 아이는 말을 빨리 배우지 못합니다. 농아가 말을 못하는 이유는 구강 구조에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귀에 이상이 있어서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외국어를 잘하기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듣는 훈련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야고보서 기자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약 1: 19)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을 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훈련이 말을 잘 듣는 일인데 내가 바쁘고 피곤하면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물론 귀가 뚫려 있으니 윙윙거리는 소리는 들리겠지만 말의 뜻이 내 마음까지 파고들어오지는 못한다는 말입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흔히 기도하면 우리가 구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나님께 아뢰는 것만이 기도의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가 하나님과 나 사이의 인격적인 대화라고 할 때 훨씬 더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입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내 양심을 때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는 것이 진짜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바쁘고 피곤하면 아무리 큰소리로 통성기도를 뜨겁게 한다고 할지라도 허공을 칠 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귀에 들려오지 않는다면 아무리 육신의 귀가 멀쩡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영적 귀머거리에 불과합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요지는 우리의 삶이 바쁘면 바쁠수록 우리의 심신이 피곤해지고 피곤해지면 피곤해질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영적 귀머거리가 되기 쉽습니다. 

<주기적인 안식을 누릴 때 행복하고 귀가 들려온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별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너무 바쁘고 피곤하게 살아오다보니 귀머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하는 말도 남편이 하는 말도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말씀도 도무지 들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제 때에 잘 쉬어주어야 합니다. 쉬어야 삽니다. 주기적인 쉼이 없이 우리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정기적인 쉼이 없이 우리는 이웃의 소리도 하나님의 말씀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제 때에 충분히 잘 쉬어줄 때에만 우리는 인생의 방향을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운동 경기를 할 때 속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참된 쉼을 누릴 때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으며 우리의 잠자는 영혼의 양심이 깨어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매일 바쁘고 피곤한 인생을 사시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하나님 안에서 쉼을 누리십시오. 엄밀하게 말씀드려서 쉼에는 안식(安息)과 휴식(休息)이 있습니다. 안식은 하나님 안에서의 영적인 쉼이고, 휴식은 그냥 일손을 놓고 쉬는 상태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충분히 휴식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더 피곤할 때가 있지요. 사람들은 일을 그만두고 TV 보고 화투 치고 술 먹고 노래하고 극장구경 가고 노는 것이 휴식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뒤 더 피곤해집니다. 세상적인 휴식은 휴식이 끝난 뒤 피곤이 풀려야 할 텐데 거꾸로 더 피곤해집니다. 그러므로 그냥 논다고 해서 참된 쉼이 아닙니다. 우리의 쉼은 하나님 안에서의 안식이 되어야 합니다. 


<주기적인 쉼을 얻었던 주님을 본받아> 

그렇다면 어떤 것이 하나님 안에서의 안식입니까? 예수님의 교훈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은 보통 사람의 30년 이상으로 바쁘고도 피곤한 시간이었습니다. 항상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시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귀신 들린 사람들을 해방해주시는데 하루해는 너무 짧았습니다. 항상 피곤에 찌들었겠지요.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이 일만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바쁜 와중에도 항상 시간을 내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안식하셨습니다. 영적인 재충전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쁘고 피곤한 중에도 또 다시 새 힘을 얻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 주변으로 몰려들었던지 밥 먹을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베푸시는 권능으로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는 말이지요. 예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자"(31절).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평안히 쉬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 안에 계셨으므로 이러한 쉼은 그냥 노는 상태의 휴식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안에 있는 영적인 쉼, 즉 안식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 때마다 예수님은 피곤한 일정을 잠지 중단하시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새 능력과 새 지혜를 공급받으셨습니다. 바로 이러한 주기적인 안식을 통하여 예수님은 온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건져내는 구속 사역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거룩하고도 복된 주일입니다. 세상에 나가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다보니 심신이 다 피곤하고 지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께 모든 무거운 짐을 맡기면 하나님께서 안식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 28). 예수님 안에 참된 쉼이 있습니다. 안식이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기 위하여 여행을 할 때 짐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일단 비행기에다 맡기면 그 무거운 짐을 다 알아서 맡아주고 우리는 짐 없이 평안히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여행과도 같은 우리 인생길에 우리가 져야 할 무거운 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 그 무거운 짐들을 다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아무리 우리가 져야 할 무거운 짐들이 많다고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대신 맡아주시고 우리는 쉽게 평안히 여행할 수 있습니다. '짐 지지 않고 여행하는 것'(travel without luggage), 이것이 우리가 주님 안에서 누리는 특권인 줄로 믿습니다. 

이제 결론을 맺습니다. 저도 참 바쁘고 여러분도 참 바쁩니다. 저도 참 피곤하고 여러분도 참 피곤합니다. 참 바쁘고 참 피곤하게 사는데도 참 행복하지 않습니다. 참 바쁘고 참 피곤하게 살다보니 이웃이 하는 말이나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이제 주기적인 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안식이 필요합니다. 천하에 바쁜 일이 있어도 거룩한 주일 하루만큼은 쉬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새 힘과 새 지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재충전을 하십시오. 그리해야지만 방향을 바로 잡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해야지만 이웃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천주교의 신부님들은 1년에 몇 차례씩 피정(避靜)이라는 쉼의 시간을 갖습니다. 한 5일 동안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피정 기간 내내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해야 합니다. 휴식 시간이나 산보할 시간은 물론이고 밥을 먹을 때에도 한 마디 말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동안 말을 많이 했으니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훈련을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주기적인 피정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신부님들은 스스로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하고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할 수 있으면 하루에도 10명 이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십시오. 혼자 독처하는 것을 하나님은 좋지 않게 보십니다. 사람은 더불어 사는 존재,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과 교제하고 최선을 다하여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때로 조용한 시간에 조용한 곳을 찾아가 하나님과 고요한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 시간은 여럿과 더불어 있을 때마다 훨씬 더 소중한 은혜의 시간이며 명상의 시간이며 반성의 시간이 됩니다. 그리할 때에만 들려오지 않았던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 수 있습니다. 

너무 바쁘고 피곤해서 주일성수를 하지 못한다는 말은 좋은 핑계가 아닙니다. 너무 바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주일성수하고 더 열심히 기도해야 마땅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안에서 주기적인 안식의 시간을 누릴 때 여러분의 삶은 더욱 깊은 의미로 충만할 것입니다. 지치고 상한 몸과 맘이 새 힘을 얻어 하나님이 맡기신 일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헨리 나우엔(Henry Nowen)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제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고요한 시간을 가질 때마다] 초조감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유혹 속에서 평화를 맛보고, 여전히 불안하면서도 안전하고,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으면서도 빛의 구름에 둘러싸이고, 여전히 의심하면서도 사랑에 감싸여 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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