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 (막 10:17~31)

  • 잡초 잡초
  • 331
  • 0

첨부 1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 (막 10:17~31)
  

시작하는 말

어느 날 길을 가시는 예수님에게 한 사람이 가까이 와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계명을 알지 않느냐?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선생님, 이런 것들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몸 말

여러분, 예수님을 찾아 왔던 그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까? 나쁜 사람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에게 호의를 가지고, ‘선한 선생님’이라 부르며 접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영생을 얻겠다는 바른 신앙적 열망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으로서 지켜야 할 십계명을 어려서부터 지켜 왔다고 당당하게 대답할 정도로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적어도 할 도리는 다 한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교인으로서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기본적 도리를 다하고 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대부분 이 교회의 교인입니다. 감리교의 교리와 장정에 보면 ‘교인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교인은 다음 각항의 의무를 성실하게 준행해야 한다. 

1.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사람들에게 증거한다.

2. 매일 성경을 읽으며 기도한다.

3. 예배, 기도회, 속회, 교회학교, 사경회, 부흥회, 그 밖의 모든 은혜 받는 집회에 참석한다. 

4. 감리회의 교리와 장정을 공부하고 지킨다. 

5. 교회에 헌금과 교회 사업에 대한 의무금을 낸다.

6. 교회의 임원이나 직무를 맡았을 때에는 충실하게 이를 수행한다.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 볼 때, 도리를 다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나오는 이 사람은 도리를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해야 할 일을 충실히 이행한 사람이었습니다. 맡겨진 일을 회피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런 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도리를 다 하는 삶을 절대시 하게 될 때 우리 신앙은 율법종교, 형식주의에 빠진 신앙인들이 되고 맙니다. 주님께서도 이 점을 매우 잘 아셨기에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사람에게 충격적인 요구를 하고 계십니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십니다. 

영생을 얻고자 하는 자는 최선의 살을 살되 그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도리를 다 했다는 그 선을 넘어서는 또 다른 시도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도리를 다 했다는 것은 칭찬 받을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감동을 주는 행위가 없습니다. 도리를 다 했다고 말하는 순간, 그 도리의 선을 넘어가는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이야 말로 영생을 얻는 바른 길입니다. 

이런 모습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을 감동 시킵니다. 그것은 ‘희생’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도리를 넘어 희생의 단계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도리와 희생은 같지 않습니다. 도리와 희생을 구분하는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도리는 그 일을 행한 후에도 내게 큰 어려움과 불편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희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희생을 한 후 내게는 어려움과 불편이 느껴집니다. 

오늘 주님이 자기에게 찾아온 한 사람에게 부탁하신 말씀의 의미가 이것입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영생을 얻는 곳에 거의 다다랐지만 완전히 이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님의 이 말씀에 포기해야 할 재산이 많은 고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당신 같으면 어땠을 것 같습니까? 나라도 슬픈 기색으로 발걸음을 돌이켰을 것입니다. 

슬픈 기색을 하고 머리를 푹 숙이고 돌아가는 사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옆에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하십니다. 몹시 놀라는 제자들을 보시며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애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하십니다. 

부자들이 대단히 난감해 하는 성경 말씀입니다. 굳이 부자가 아니라도 먹고 살만큼 안정된 사람들로는 듣기 거북한 말씀입니다. 말씀대로라면 뭔가를 가진 우리 모두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난감할 수밖에요. 말씀을 설명한다면, 예루살렘 성에는 ‘바늘문’이라 불리는 작은 문이 있었는데, 그리로 들어오려면 낙타를 타고 광야를 지나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짐을 내리고, 고개를 숙이고, 다리를 굽혀 겨우 통과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토록 어렵게 통과한다는 의미입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참 많은 애를 써왔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유산을 대를 이어 물려주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일해 온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일을 하고 또 해도 가난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더니, 하나님의 은혜가 이 땅에 임한 이 후 놀랍게도 가난을 벗었습니다. 아직도 절대빈곤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있지만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 강국의 대열에 접어든 것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의 문제는 많은 소유를 얻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일이 문제로 떠오른 시대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재물에 의지하고 세상 재미가 붙어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 때문에 이 세상은 싸우고, 원수가 되고, 등진 채 갈려 살게 됩니다. 날마다 사기 수법이 개발되고, 거짓말이 기승을 부립니다. 보이스 피싱,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말인데 이런 사기 전화를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런 일이 극성입니다. 공직자 후보를 불러 펼치는 청문회에서 부정한 재물 취득 의혹을 받는 이가 대부분입니다.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가 되면 그 나라의 신앙자세가 변질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고통스럽던 성장의 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던 눈물의 기도와 감격의 신앙이 희미해지고, 이제 좀 여유가 있다는 시대가 열리자 교회의 성장이 딱 멈추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틀린 것입니까? 약대가 바늘귀로 어떻게 지나간다는 말입니까. 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26절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의 말씀에 놀란 제자들이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고 우리 대신에 묻고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도리를 다하며 살았던 사람에게, 너에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희생이었습니다. 아까도 말했습니다만 희생은 내게 큰 어려움과 불편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희생을 감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소유를 버리는 희생은 약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할 수 있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희생하여 영생을 얻는자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바라며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첨가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29절 이하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이렇게 내세가 아닌 금세의 백배의 보상과 영생을 보장하시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 희생을 이루며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아프리카 원주민을 위해서 그의 삶을 희생했던 슈바이처 박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를 향해 갈 때 그의 희생의 각오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처음 아프리카에 갈 때, 세 가지의 희생을 각오하였다. 오르간 예술을 체념하는 것, 애착이 깊은 대학 교수 활동을 포기하는 것, 그리고 경제적 독립을 포기하고 앞으로 생계를 친구들의 원조에 의뢰하는 것 등이었다.’ 이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 곧 ‘희생의 삶’입니다. 

오늘 주님이 자기에게 찾아온 한 사람에게 부탁하신 말씀의 의미가 이것입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영생을 얻는 곳에 거의 다다랐지만 완전히 이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님의 이 말씀에 포기해야 할 재산이 많은 고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여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슈바이처 박사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주님이 원하셨던 그 희생을 기꺼이 해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슈바이처는 ‘나의 생활과 사상’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계속하여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희생하려 했을 때의 아브라함과 같은 운명이 나에게 베풀어졌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도 희생을 면제 받은 것이다. 우선 파리의 바하 협회로부터 페달 달린 피아노를 선물 받았으며, 열대 기후에서도 건강을 잘 유지하여 나는 오르간 연주 기술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교수로서의 활동은 체념했었지만 그 대신 많은 대학의 강단에서 특별 강의를 하게 되어 그 보상은 충분했다. 경제적 독립 또한 잠시 어려웠으나 지금은 오르간 연주와 저술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미 한 번 버린 삼중의 희생을 모두 면제 받은 사실은 나에게 있어서 실로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감동이었다.’ 여러분, 희생을 감수하고자 할 때 하나님은 오히려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그 희생을 면제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믿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 한 가지는 ‘도리를 다하는 삶’이 아니라 ‘도리를 넘어 희생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기본적인 도리를 다하는 것은 말할 것 없거니와 한 걸음 더 나아가 희생하는 삶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백배의 보상과 영생을 얻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시 정리한다면, 말씀 앞에서 나는 도리를 다하고 있는 사람인가? 교인인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고 산다는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하시며 희생하기를 바라십니다. 나는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무엇을 희생하였는가? 내가 무엇을 희생할 수 있나 생각하며 결단하시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무엇인가 희생하면 금세에 백배의 보상을 약속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경험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