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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려움에서 평안함으로 (행 27: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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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서 평안함으로 (행 27:18~26)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이 두려움이라고 말합니다. 어머니 모태로부터 분리되면서 두려움이 밀려들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두려움을 연구한 휴 미실딘 박사는 아기가 어머니 모태에서 나오며 처음으로 느끼는 두려움을 세 가지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는 떨어지는 두려움(Fear of falling)입니다. 모태에서 세상으로 나오며 밀려서 떨어지는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둘은 큰 소리에 대한 두려움(Fear of loud noise)입니다. 모태는 한 없이 조용했는데 세상에 나오니 각종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려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은 버려지는 두려움(Fear of being abandoned)입니다. 모태로부터 이탈되면서 의지할 것이 없어지게 되자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되어 두고두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마치 뜨거운 주전자에 데어 본 아이가 주전자 비슷하게 생긴 것만 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쉽게 두려움을 느끼고 그 두려움에 떱니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숙명처럼 평생을 두려움과 씨름하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두려움이 찾아올 때 그 두려움을 느끼는 것과 그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두려움이 몰려올 때 두려움을 느끼고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 벌벌 떱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두려움이 몰려올 때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 두려움을 떨쳐버립니다. 그래서 두려움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 그것이 문제입니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떠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찾아오는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두려움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두려움이란 무서워하는 감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무서워하는 감정을 말합니다.

성경에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말이 나오는 곳이 창 3:10입니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되면서 두려움을 느끼게 됐습니다. 원래 타락하기 전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이 때 두려움을 느껴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하나님을 피해 숨게 되면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린 꼬마가 엄마와 함께 장을 보러 나섰습니다. 엄마 손을 잡고 가면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봅니다. 지나가는 강아지도 봅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시끄럽게 다투는 모습도 봅니다. 꼬마는 그 어느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기다리라며 혼자 두고 잠시 어딘가 다니러 갔습니다.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다가오는 강아지가 무섭습니다. 경적을 울리며 다가오는 자동차도 두렵습니다. 인상 쓰며 소리 지르는 아저씨도 무섭습니다. 그래서 두려워 울어버립니다. “엄마!”

그렇습니다. 두려움의 원인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확신하면 두려움이 찾아 와도 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떨어진 채 나 혼자라 생각하면 두려움이 찾아올 때 그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그래서 두려움이란 하나님 떠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무서워하는 감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드 영(ED YOUNG)이라는 분이 [지금 나는 두렵다 ]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을 보면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느끼는 두려움이 다양하다고 설명해 놓았습니다. 우선 오늘 이 시대에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조사해 보니까 무려 645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두려움의 양상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결코 두렵지 않은 일인데도 자기만 특별하게 느끼는 두려움도 점점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특정 동물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거미공포증, 바퀴벌레 공포증, 개 공포증과 같은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장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고소 공포증, 폐쇄 공포증, 치과 공포증과 같은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장모 공포증, 상사 공포증, 심지어 아내 공포증과 같은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떠나 사는 사람들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에서 조차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종류는 점점 더 많아집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 살다 보니 이 세상은 두려움으로 가득찬 세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두려움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입니다. 두려움은 감정적으로 무섭다고 느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우리 삶이 황폐화되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평안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여러 해 전에 거문도를 간 일이 있습니다. 거문도에서 백도를 관광하기 위해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1시간 정도의 거리였는데 15분 정도를 갔을 때 파도가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파도가 거세지면서 작은 유람선을 세차게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흔들리자 멀미가 심해졌습니다. 도무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바닥에 누웠습니다. 여러 차례 구토도 했습니다.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바다에 뛰어드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배는 계속 백도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선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계속 마이크로 설명을 했습니다. “오른 쪽을 보세요 끝내 줍니다. 왼쪽을 보세요 죽여줍니다.” 그러나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저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움이 몰려오면 생존의 기반이 흔들립니다. 마치 파도가 밀려올 때 배가 심하게 요동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평안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배가 요동치자 승객들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던 것처럼 평안을 잃어버리게 되면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두려움이 찾아올 때 그 두려움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못해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버리면 평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평안을 잃어버리게 되면 우리 삶 자체가 황폐화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두려움을 이기려면

우리가 두려움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본문 이야기는 바울이 소위 4차 전도여행 도중 겪었던 한 에피소드입니다. 배를 타고 그레데 해안 근처를 항해하다 유라굴로라는 지중해에 일어나는 큰 태풍을 만났습니다. 무려 14일 동안이나 표류하다가 선원이나 승객들 모두 큰 두려움 속에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바울이 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두려움을 극복하고 평안을 되찾게 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가르쳐줍니다.

첫째,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22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상황을 정확하게 분별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유라굴로가 자기들을 두렵게 해도 그것이 자기들을 삼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부분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지 때문입니다. 깨닫지 못하고 속아서 두려워합니다. 분명히 14일 동안 태풍 속에서 죽을 고비를 수 없이 넘겼습니다. 이 때 사탄은 우리 마음속에 속삭입니다. “너희는 다 끝났다! 저 무시무시한 파도를 봐라 이제 배는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너희는 지금 양식도 다 떨어졌고 마실 물도 없다. 이제 너희는 곧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죽을 것이다” 사람들은 태풍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들려오는 사탄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 속이는 소리를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고 폭풍우가 자기를 덮쳤으나 그것이 결코 자기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는 못할 것을 알았습니다. 가진 재물과 배는 잃게 될지라도 한 생명도 죽지 않을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이란 영어로 "FEAR"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은 “False Evidence Appearing Real”의 약자로 보아야 합니다. 즉 두려움은 “실재처럼 보이는 거짓 증거”일 뿐입니다. 

대부분 이스라엘 병사들은 골리앗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골리앗이 자기들을 죽일 것이라는 거짓 증거에 속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골리앗이 결코 하나님의 종인 자기를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골리앗이 자기를 죽이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29-30) 하찮은 참새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너희들을 하나님께서 버려두시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상황과 돌아가는 사건만 보고 그 거짓 증거에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눈동자처럼 지키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면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된 평안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둘째, 믿어야 합니다.

본문 2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바울은 어제 밤에 자기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그대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자기와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 그들을 다 구원해 내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두려움을 떨쳐버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장 많은 당부하시고 명령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은 이 말씀이 성경에 무려 365번이나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씩 그 말씀들을 묵상하며 두려움을 이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두려움을 느끼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두려움을 느낄 때 그 두려움을 극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숙명적으로 두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이 세상에 사는 한 밀려오는 두려움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그 두려움에 떨어서는 안 됩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평안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수 1:9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영도해야 할 막중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만 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큰 두려움이 밀려왔을 것입니다. 자칫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될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실을 아시고 자상하게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하나님 백성에게 찾아오셔서 늘 같은 약속을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은 그 말씀을 믿고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즐겨 암송하는 시 23편에도 다윗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함께 하시는 주님을 믿었기 때문에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두려움이 밀려오는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도 평안을 지켜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셋째, 용기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본문 26절을 보면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바울은 아직도 유라굴로 태풍이 자기들을 삼키려 하는 그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건지실 것을 믿고 용기를 북돋우고 있는 것입니다. 조만간 어느 섬에 닿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리 그 섬에 닿을 것을 준비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용기 있게 두려움이 밀려오는 상황 속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1985년 미국 콜럼비아 대학교의 졸업식 장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50세의 시각장애인이 박사학위를 받은 것입니다. 바로 한국인 전재경 박사입니다.

이분은 7살에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일어섰습니다. 요 9:3 말씀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자기도 시각장애인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 놀라운 일을 나타내려는 뜻이 숨어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붙잡고 용기를 냈습니다.

나이 30이 되던 해에 미국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그리고 20년 세월을 시각장애인으로 전철을 3번이나 갈아타면서 용기를 잃지 않고 공부에 공부를 거듭했습니다. 순간순간 밀려오는 두려움을 말씀으로 이기며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결국 20년 만에 미국의 명문 콜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학위를 받는 전날 밤 점자 성경을 읽는 도중 엡 2:10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학위 받은 후 앞으로 선한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믿고 용기 있게 앞을 향해 나아가리라 다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움이 몰려올 때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용기 있게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 속에 평안이 더욱 깊이 자리잡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떠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가 평안하여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두려움이 밀려올 때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평안을 지키며 믿음 안에 더욱 풍성한 평안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늘 평안하시고 더욱 평안 가운데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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