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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행한 것 같이 (요 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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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한 것 같이 (요 13:12~17)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는 일본을 대표하는 기독교 인물입니다. 그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은 나가노(長野)목사였습니다. 북쪽의 카나자와 지역에 천막을 치고 교회를 개척하던 나가노 목사에게 폐병환자가 찾아왔는데 바로 가가와 도요히코였습니다. 그는 식사를 하던 중 각혈을 하며 피를 밥상에 쏟아 놓았습니다. 그러나 나가노 목사는 손으로 핏덩이를 치우고 다시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 순간 가가와는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은 살아 계셨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그를 괴롭게 했던 폐병이 나았습니다. 신학교에 다시 들어간 그는 평생 병들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사역을 하였습니다. 생을 고베와 도쿄에서 빈민들을 위해 섬김과 봉사의 삶으로 내어놓았습니다. 빈민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변비라고 합니다. 항문에 변이 차돌같이 굳어 있어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장갑을 끼고 손으로 후벼 냅니다. 가가와 도요히꼬가 빈민들의 항문을 손가락으로 후벼 주었지만 잘 안되었습니다. 그러자 빈민의 항문에 입을 대고 차돌같이 굳어 있는 변을 침으로 녹여 빨아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된 기자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는 대답합니다. "나는 배운 대로 합니다. 제 선생님은 저의 각혈한 핏덩이도 닦아 주셨습니다. 

그 분이 하신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중국으로 건너간 가가와 도요히코는 중국의 빈민들을 위해서도 똑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당시 장개석 총통의 부인 송미령 여사는 그에게 감동을 받고 성경공부를 통해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1945년에 일본이 패망할 당시 일본군대와 함께 일본인들이 철수하였지만 단 한 사람도 중국인에게 테러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장개석 총통이 철수하는 일본인들에게 해를 가하는 자는 중형에 처한다는 포고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 배후에는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의 사역에 대한 감동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한 것 같이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행동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배운 것이며 예수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최후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행동은 제자들을 당황케 하였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는 식사를 하기 전에 발을 씻는 관습이 있었는데 발을 씻겨 주는 일은 종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저녁을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느닷없이 겉옷을 벗으시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종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누가 제일 큰 자인가에 대한 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종의 일을 하신 예수의 행동은 예리하게 제자들의 심중을 찔렀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예수께서는 "내가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행한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겸손하라 

아프리카에서 일생을 바쳐 선교하던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박사가 선교비 모금을 위해 고향으로 귀국하였습니다. 그를 환영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두 슈바이처가 당연히 1등 칸에서 내릴 줄 알고 그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기차가 도착하자 슈바이처는 3등 칸에서 내립니다. 사람들이 놀라며 물었습니다. "박사님, 왜 3등 칸을 타고 오셨습니까?”그러자 슈바이처는 대답합니다. "4등 칸이 있어야 말이죠. 그래서 할 수 없이 3등 칸을 탔습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하면 사탄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겸손이었습니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도리어 섬기러 왔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섬김은 자기를 낮추어야 가능합니다. 높아진 상태에서는 섬길 수가 없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겸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그렇게 하기는 실로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스승이신 예수께서는 낮아지신 겸손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교만한 생각이 쳐들 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를 생각해야 합니다. 겸손하려면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우리 속에 겸손하기보다 대접을 받으려는 성향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높아지려는 교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종의 자세로 낮아져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입니다. 서로 발을 씻기기 원하는 겸손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천국입니다. 섬기려면 먼저 발을 씻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고 교훈하였습니다. 

여기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는 말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의 모습을 연상하면서 한 말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 겸손이기에 주님이 행하신 것처럼 겸손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섬기라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국민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장정들을 태운 기차는 주로 밤늦게 떠났습니다. 워싱턴에도 밤마다 유니온 기차 정거장에 수백 명의 장정들이 몰려들었고 시민들이 그들의 편의를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민들 가운데 밤늦게까지 다리를 절면서 코코아 잔을 쟁반에 들고 봉사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임시로 마련된 주방에서 코코아를 끓이기도 했습니다. 한 장정이 그를 자세히 보니 대통령이었습니다. 

"각하,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니십니까?" 루즈벨트(Frankiln D. Roosevelt) 대통령은 육체의 불편을 무릅쓰고 밤마다 정거장에 나와 청년들에게 뜨거운 코코아를 들고 다니며 봉사한 것입니다. 대통령이 친히 정거장에 나와 따라주는 코코아를 마신 청년들의 사기는 대단했습니다. 섬기는 일에는 위아래가 없는 법입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발을 씻기는 것은 종이 주인을,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크고자 하는 욕망으로 남을 섬기지 아니하고 도리어 무시하였습니다. 섬김은 신앙의 꽃이며 완성입니다. 섬김 속에 사랑이 있고, 섬김 속에 겸손이 있고, 섬김 속에 온유함이 있습니다. 섬기는 삶을 살아가면 복이 있습니다. 본문 17절입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섬기는 것이야 말로 예수께서 가르치신 축복의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로 통치되는 곳이기에 누구나 하나님의 권위 앞에서 잠잠해야 합니다. 자기를 내세우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성도들은 서로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직분을 맡은 사람일수록 더욱 몸을 낮추고 섬겨야 합니다. 직분은 그 어느 것 하나, 대접받기 위한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섬기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섬길 마음이 없으면 직분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어두울수록 빛의 존재가 드러나듯, 섬김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빛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섬길 때 비로소 교회는 더욱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가 될 줄로 믿습니다. 부디 섬김의 삶을 실천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일에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본을 보이라

스페인에 많은 관광객이 찾아가는 한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의 기둥에는 희미한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십자가가 새겨진 사연인 즉 아랍이 스페인을 점령했을 때 기독교도인 청년이 아랍인들의 신전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둥에 결박되어 사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회회교 신전에 이교도의 출입이 금지되어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음을 기다리던 이 청년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밤, 낮 손톱으로 대리석 기둥에 십자가를 조각했습니다. 

사람들이 발견했을 때 청년의 열 손가락 손톱은 하나도 없이 다 닳아 없어졌습니다. 손톱으로 단단한 대리석 기둥에 십자가를 긁고 또 긁었으니 손톱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청년은 기둥에 결박된 채 사형을 기다리면서도 열 손가락이 다 닳도록 십자가를 새기며 그의 믿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먼 훗날 아랍인이 물러가고 기독교 국가가 된 스페인은 이 회회교 성전을 그대로 교회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때 열 손가락이 다 닳도록 십자가를 새기며 죽어간 그 청년의 믿음을 통하여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 십자가를 보고 감동을 받는다 합니다. 우리도 신앙의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즉 본을 보여야 합니다. 

본문 15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은 교훈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저녁 잡수시기 전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발을 씻기시는 행동은 당시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최고의 섬김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발 닦는 일은 제일 낮은 하인이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 역사상 한번도 스승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고 주인이 하인의 발을 씻어준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스승이요 상전이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신분이나 위치는 생각하지 않고 오직 섬김만 생각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행하며 본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자신을 의식하며 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아무리 대단한들 만왕의 왕이신 예수만 하겠습니까? 예수처럼 섬김만 생각하면 무슨 일이든 못하며 누구인들 어울리지 못하겠습니까?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 말했습니다. 복된 삶이 되려면 예수를 위한 흔적이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의 마음처럼, 예수의 생각처럼 행하며 본을 보여야 합니다. 

콜롬비아 신학교 스티븐 올포드(Stephen F. Olford) 박사에게 학생들이 물었습니다. "저희들에게 크리스천 리더십의 비결을 말해 주십시오!" 올포드 박사는 대답합니다. "비결이요? 무릎을 꿇으십시오. 눈에 눈물이 흐르게 하십시오. 그리고 심장이 깨어져도 참으십시오. 다른 사람을 섬기십시오!" 그리스도인의 리더십은 섬김에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부디 예수께서 행하신 것처럼 더욱 낮아져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것처럼 서로 섬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의식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하는 모습으로 행하여 누구에게나 본이 되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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