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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와 나눔의 잔치 (신 16: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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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나눔의 잔치 (신 16:9~17)

    
추석 명절에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하는 추수감사주일이 하나님께는 감사, 가족과 이웃들에게는 축복의 날이 되길 바랍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키던 세 가지 축제가 있는데 유월절, 칠칠절 그리고 수장절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으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감사축제라고 한다면, 칠칠절과 수장절은 땅에서 난 식물들을 거둔 후 풍성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축제였습니다.    칠칠절과 수장절은 비슷한 부분도 있고 각각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칠칠절은 유월절 축제가 끝난 다음 날부터 49일을 계산하여 50일째가 되는 날 드리는 축제였습니다.    보리와 밀 등 그 해의 첫 곡식에 낫을 댄 날부터 칠 주간이 지난 50일이 되는 날에 하나님 앞에 모여 감사제사를 드렸습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예식을 행하라’고 하신 말씀처럼  옛날 조상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때 고생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오늘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감사하는 축제였습니다.  

수장절은 한 해의 모든 추수를 마치고 농산물을 창고에 저장한 후 열린 축제라는 점에서 칠칠절과 시기가 다릅니다. 이때 사람들은 집 밖에 풀과 나뭇가지 등으로 천막을 지은 후 거기서 7일 동안 생활했는데 옛날 조상들이 광야를 여행할 때 천막을 치고 살았던 시절을 기념하는 축제였습니다. 유월절이 애굽으로부터의 해방 기념이었던 것처럼 칠칠절과 수장절 역시 애굽에서 나온 조상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자유와 풍요를 누리게 됨을 감사하는 축제라는 점에서 세 절기들이 서로 연결이 됩니다.    

애굽으로부터의 자유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자유 회복이었고 가난과 인권 말살과 정치적 억압으로부터의 자유함이었습니다. 이 모든 복이 자신들의 노력이나 수고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히브리 백성들로서는 도무지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잊지 않도록 세 가지 축제를 정하여 주시고 이스라엘이 자손대대로 이 날들을 감사함으로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의 아픔, 수치스러움 등 나쁜 기억은 할 수 있으면 속히 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어려울 때 나와 함께 하시고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마저 함께 잊어버리는 것이 사람들의 연약함이고 뻔뻔함입니다. 오늘 내가 있는 것은 나 혼자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감사하는 사람이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망각하는 습관이 있음을 잘 아시기에 옛날을 기억하고 오늘을 감사함으로 살면서 보다 나은 내일을 준비하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세 가지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칠칠절과 수장절은 서로 다른 축제였지만 지키는 방식에서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생각해보고 내 힘껏 자원하는 예물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뿐 아니라 온 가족이 한데 모여 감사예배를 드리는데 거기에는 직계 가족뿐 아니라 그 집에서 일하는 종들과 그 도시에 살고 있는 레위인들 그리고 나그네들과 고아와 과부들을 청하여 함께 즐거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내 밭에서 내가 수고하여 거둔 곡식들이지만 그것은 나와 내 식구만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땅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이웃들과 나누며 살라고 주신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애굽에서 종살이 할때 내 손으로 지은 곡식을 내 맘대로 먹지 못하였던 어려운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주신 것을 활짝 열어 이웃과 나누며 잔치함으로 진정한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나는 하나님이 맡기신 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칠칠절의 축제는 그 해의 첫 곡식을 거둔 후 복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잔치라고 한다면 수장절은 한 해의 모든 농사를 마감하고 긴 겨울 동안 먹을 양식을 곡간에 저장하고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한 해 동안 복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림과 동시에 또 내년에도 우리의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바라고 믿음으로 맡겨드리는 즐거운 잔치였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하시고 이 모든 것들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앞으로 주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고 감사 고백하던 이 잔치들은 오늘날 우리들이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는 정신과 동일합니다.     

쌀을 의미하는 한자 ‘米’는 쌀 한톨을 얻기 위해 농부가 씨뿌리고 거두기까지 농부의 손이 88회 거쳐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지요. 그만큼 힘들여 지은 농사이며 소중한 양식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사람의 수고만 담겨있을까요?  씨를 뿌렸지만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아 싹을 내지 못하여 시작부터 실패하거나, 한 여름 가뭄으로 식물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새까맣게 말라죽는 광경을 지켜봐야 하는 농부들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눈물겨운 수고를 했지만 추수 전에 불어닥친 태풍과 홍수로 모든 것을 잃고 통곡하는 농부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하늘의 도움을 바라며 추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 졸이고 그날을 기다립니다. 사람이 수고하였지만 하늘의 도움이 아니면 열매를 얻을 수 없음을 아는 농부의 겸손한 마음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는 추석의 덕담이 있듯 추석이 되면 농촌 마을들은 활기가 넘칩니다. 황금색 들판에 알알이 영글어 고개 숙인 곡식들이 농부의 낫을 기다리고 있으며 사과나무, 감나무, 밤나무 가지마다 잘 익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이때쯤이면 황금빛 물결 치는 논에는 허수아비가 세워져 있고 농부들은 논둑 사이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쓰러진 볏단을 일으켜 세우고 한 톨의 쌀이라도 더 얻으려고 마지막 손질에 쉴틈이 없습니다.  하루종일 허리가 휘도록 일하느라 온 몸이 저리고 아프지만 잘 익은 곡식을 바라보는 농부들의 마음은 잘 자란 자식들을 바라보듯 만족감에 젖어있습니다. 이렇듯 가을 농부의 훈훈한 마음은 농촌 마을을 넘어 우리에게까지 그 온기가 전해집니다. 

일년 내내 이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추수의 계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이런 마음 아니겠습니까? 위로는 창조주 전능자 하나님을 기억하고 주위를 돌아볼 때는 함께 어울려 사는 가족과 이웃들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은 감사와 나눔의 잔치가 열리는 날입니다.  넉넉한 마음에서 풍성한 나눔이 나옵니다.  이 넉넉한 마음은 내 손에 들린 풍성한 열매를 바라보는 즐거움에서 나옵니다. 내 마음을 채우고도 넘치는 넉넉함이 이웃을 돌아볼 여유를 가져다 줍니다.     

감사절 축제의 나눔은 우리의 기쁨을 배나 더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제물로 드리는 곡식단이나 짐승의 기름으로 배불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그 은혜를 이웃과 나눔으로 모든 것의 주인은 내가 아닌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그 제사를 즐거이 받으십니다. 이 나눔의 제사가 하나님께는 즐거운 드림이 되고 이웃 사람에게는 사랑의 실천이 됩니다. 받는 즐거움이 크지만 내가 가진 것으로 이웃과 나눔에서 더 큰 즐거움을 얻는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많이 가진 사람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으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진정 부요한 사람입니다. 우선 나의 필요를 채운 다음에, 내 가족 먼저 넉넉히 챙긴 다음에 그래도 남은 힘이 있으면 그때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과 나누겠다는 생각으로는 평생 단 한번도 나눔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게 됩니다. 마지막 남은 기름과 밀가루로 작은 떡을 만들어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먼저 공궤하였던 사르밧 여인은 그것 때문에 생애 최후의 식사를 빼앗긴 어리석은 여인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궁핍과 구차함 중에도 기꺼이 나눔으로 가뭄이 끝날 때까지 그 집에 양식이 마르지 않는 하나님의 복을 누렸습니다.      

때를 따라 일용할 양식으로 먹이시고 사랑하는 자녀들의 쓸 것을 아시고 적절한 순간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으로 살고 계십니까? 오늘 추수감사절 그리고 추석 명절을 맞이한 믿음의 가족들 모두 하늘을 여시고 땅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들을 기쁨으로 열어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하여 땅의 소출을 얻지 못하던 레위인들과 그 땅에 나그네로 머물며 토지 소유권이 없어 농사 짓지 못하던 외국인, 그리고 종들과 가난한 고아와 과부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은 사람들의 소출을 함께 나눔으로 살았던 보살핌의 대상들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 주위에는 일하고 싶지만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여 생계를 해결하지 못하고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턱 없이 적은 수입으로 가족들의 필요를 채우지 못하여 어깨가 축 늘어진 가장들과 배고픈 어린이들이 있으며, 취업의 길이 막혀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어깨가 부서지도록 일하여 풍작을 이루었지만 농산물이 제 값을 받을 수 없어 실망한 농부들의 눈물도 있습니다.  자식처럼 정성껏 가꾸며 기른 농산물을 시장에 내다 팔 비용조차 나오지 않아 그 자리에서 갈아엎어야만 하는 농민들의 분노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번 추석이 이런 분들에게 외로움과 허망함이 아니라 넉넉한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에게는 넉넉하여 쓰고도 남는 재물을 주심은 이 땅에 쌓을 곳이 없도록 쌓아두고 곰팡이가 피도록 움켜쥐고 있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곳간 문을 열어 함께 나누어 균형을 이루라고 맡기신 사명입니다.     많이 가졌다고 누구나 즐거이 나누는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이 사랑을 받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나누고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 더 많은 은혜를 나누는 법입니다.  그래서 나눔은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와 믿음에 비례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에 성찬식을 거행합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홀로 지키려고 하늘에만 머물러계셨다면, 하늘 영광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 자리에 남아계셨다면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난하고 고단한 인간의 삶을 외면하고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거절하셨다면 이 세상의 구원은 영원히 실현되지 않았을 겁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우리 위해 내어주시고 당신의 생명을 나누셨기에 오늘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먹고 마시는 성찬식의 떡과 잔은 예수께서 주신 주님의 몸을 나눔입니다. 나와 우리를 위하여 떼어주신 주님의 몸과 흘리신 보혈이 그 피를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오는 모든 죄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물로 얻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감사는 드림과 나눔에서 고백됩니다. 하나님께 즐거이 드리는 마음으로 사람들과 즐거이 나누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마음을 나누고, 물질도 나누며, 시간을 나누고 복음을 나눕시다.기쁨과 즐거움도 나누지만 때로는 아픔과 고통도 함께 나눕시다. 해외에서 나그네 삶을 살며 학업과 생활에 대한 긴장감이 지속되고 경제적인 압박이 시시때때로 밀려올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그라들고 삭막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랄 때가 있습니다. 남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지고 오직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다가 놓쳐버리는 소중한 것들은 없는지 진지하게 살펴보는 추수감사의 절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즐거움으로 드리고,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과 나눔으로 누리는 기쁨이 오늘의 감사잔치 가운데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주의 은혜입니다.    금년 남은 시간들을 주님과 함께 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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