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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은 나의 그리스도 (마 16: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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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의 그리스도 (마 16:13~16)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이다.

어느 날 저녁,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거센 바람이 일더니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선생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돌보시지 않습니까?”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하여 “고요하고 잠잠해져라!”하고 호령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람은 그치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대체 이분은 누구인데 바람과 바다까지 복종할까?”하며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그 말씀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대부분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제자들인지라 이런 풍랑을 자주 보았지만 이를 잔잔케 하신 분은 전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대하여 이 분이 정말 어떤 분이신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은 당신에게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은 오늘 나에게 누구이십니까? 

I. 그리스도

16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6a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예수님과 제자들은 빌립보 가이사랴라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이곳은 오래 전부터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바알을 숭배하고 목축의 신이라는 판을 섬기던 곳입니다. 헤롯 대왕의 아들 빌립이 이곳을 다스리면서 섬겨야 할 신도 바뀌었습니다. 빌립이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하여 이곳의 이름을 가이사랴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진정으로 섬겨야 할 분이 누구인가를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너희는 나를 진정으로 섬겨야 할 분으로 알고 있느냐?’는 뜻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바로 당신이, 바알이나 가이사나 빌립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 그리스도이십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라는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흔히 예수님을 믿는 것을 종교적으로 기독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독(基督)이라는 말에는 아무런 뜻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을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소리에 가깝게 ‘지리스뚜’(基利斯督)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길다고 줄여 ‘지뚜’(基督)라고 하였습니다. ‘지뚜’를 우리말로 읽으니 ‘기독’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줄여서 ‘그도’라고 읽는 꼴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독이 그리스도라는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으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리스, 헬라 말입니다. 다른 나라 말로 ‘메시아’라고 하는데 메시아는 이스라엘, 히브리 말입니다. 구약의 말로 하면 메시아, 신약의 말로 하면 그리스도입니다. 그 뜻은 모두 ‘기름부음 받은 자’입니다. 
   
그러면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누구입니까?
   
구약에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은 대략 세 종류입니다. 그들은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입니다. 그들을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제사장, 선지자, 왕이 메시아, 기름 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바로 제사장이시자, 선지자이시자,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것에는 베드로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엄청난 영적 사실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1. 예수님은 제사장이십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은 사람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제사장은 죄를 지은 사람을 위하여 양이나 소를 잡아 그 피를 흘려 죄를 씻어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제사장이라는 말은 인간의 죄를 씻어 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 위해서는 우리의 깊은 죄성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독일의 히틀러 정권에서 유대인 학살 집행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독일 패전 후 아르헨티나에서 숨어 지내다가 1960년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붙잡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 때, 한 유대인이 증인으로 나왔습니다. 재판관이 그에게 피고가 아이히만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습니다. 피고를 자세히 쳐다보고 있던 증인은 그 자리에서 졸도하고 말았습니다. 한 참 후 깨어난 증인에게 재판관이 물었습니다.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났습니까?”
   
그런데 증인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라는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나도 아이히만이 될 수 있고 내 속에도 아이히만이 살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이 재판의 전말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으로 기록한 유대계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도 “악이 저토록 평범하다니…”라고 탄식했습니다.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도 지나고 보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인간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주 평범한 인간이 매우 끔찍한 일을 저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라고 하였습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저 자신도 자신을 깊이 살펴보면 볼수록 형편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탄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히 2:17)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십자가 위에서 죄 없으신 피를 흘려 사람들의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 이름을 믿는 자는 죄 씻음을 받습니다(골 1:14). 
   
예수님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제사장,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신의 죄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2. 예수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것으로 이것을 성경은 죄라고 말합니다. 죄의 결과는 하나님을 떠난 죽음입니다. 죄의 증상은 방황입니다. 환경이 파괴 되어 길 찾는 능력을 잃은 철새들이 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된 인간은 길을 잃고 헤매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방황하는 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길 잃은 백성들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길이 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서울에서 광주로 가기 위하여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는 경부고속도를 시원하게 달렸습니다. 늦은 시간인지라 승객들은 피곤한지 대부분 깊은 잠에 빠져있었습니다. 고속버스는 천안을 못 미쳐 휴게소에서 잠깐 쉬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단잠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참 시간 흐른 뒤 버스에서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내리실 목적지 대구, 대구에 도착하셨습니다. 내리실 때는 잃어버린 물건이 없이…”
   
광주에 가려고 버스에 탔던 승객은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가 광주로 가는 버스를 탄 줄 알았는데 대구로 가는 버스를 탄 모양이었습니다. 이런 낭패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버스에 타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눈을 비비며 난리가 났습니다. 알고 보니 버스 기사가 버스를 잘못 탄 것이었습니다. 대구로 가는 버스를 운전 할 기사가 광주로 가야 할 버스를 몰고 대구로 간 것입니다.
   
실제 이런 일이 일어 날리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도자가 잘못되면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단체로 엉뚱한 곳에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길을 가리켜 주는 사람이 잘못 가리키면 그 공동체는 가지 말아야 할 곳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다면 돌이키면 됩니다. 버스를 잘못 탔으면 내려서 갈아타면 됩니다. 내비게이션이 잘못되어 엉뚱한 곳으로 안내했다고 신경질을 내 필요는 없습니다. 잘못 가 보았자 한반도 남쪽 땅덩어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내비게이션이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경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고 하였습니다.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 이름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인간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분, 인간을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길이 되신 그리스도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길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선지자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왔습니다. 예수 그 이름으로 날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또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3.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짓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의 배후에는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부추기고, 방황하는 인간을 바라보며 즐기는 존재입니다. 이를 성경은 ‘사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그 존재를 분명히 말하고 있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많이 쫓아내신 사역의 대상이었던 악한 영적 존재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성경의 일부를 찢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너무 자주 귀신 이야기를 한다든지 모든 것을 귀신 탓으로 돌리는 것은 위험한 신앙입니다. 우리는 사탄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을 훼방하고 대적하는 악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저의 목회 초기의 이야기입니다. 안동에 사는 하 아무개라는 청년이 그의 형님 집에 왔다가 형수의 권유로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정신 질환자로 청량리 뇌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재발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 주간을 작정을 하고 권사님들과 저녁 마다 그 청년을 위하여 기도하기로 하였습니다.
   
며칠째 기도하던 중 목요일쯤인가 함께 기도하며 찬송하는데 정작 이 청년은 조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를 깨우기 위하여 그의 어깨에 제 손을 올려놓자 그는 ‘으- 으-’하고 신음하였습니다. 손을 떼면 가만히 있고, 손을 데면 신음하기를 몇 번 반복하였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이름을 물었더니 다른 사람의 이름을 말합니다. 사는 곳을 물으니 역시 다른 주소를 말합니다. 왜 들어갔느냐고 물으니 시장에서 물건을 훔칠 때 따라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순간 제 머리카락이 비쭉 솟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기도하는 권사님들에게 저를 위해서만 기도해 주기를 부탁하고 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탄아 물러가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저는 오직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명령하였습니다. 그 후 그 청년은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이름이 권세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제 손에는 아무런 영향력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직 예수님의 이름이 권세 있다는 것을 지금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지배하고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사탄의 권세를 꺾으시는 ‘왕 중 왕’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b)고 하셨습니다. 사단을 멸하시는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히 2:14b-15)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승리하신 생명이시기에 이 분을 믿음으로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의 권세에서 놓여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누르고 왕 노릇하고 있는 사단의 권세를 꺾어야만 인간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왕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떠나, 죄와 허물을 가졌기에, 사단에게 눌려 사는 것입니다. 이 모든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믿습니다. 선지자이기만 하거나, 제사장이기만 하거나, 왕이기만 한 분이 아니라 선지자이시며, 제사장이시며, 왕이신 분이 진정한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쯤 되어야 진짜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이십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분이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로 어떻게 믿을 수 있게 되는 지에 대한 말씀은 다음 시간에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제사장이요, 인생의 방황 문제를 해결하는 선지자요, 인간을 억압하는 사탄의 문제를 해결하는 왕이신 그리스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어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아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의 고백은 또 다른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II. 하나님의 아들

   16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16b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최초의 걸림돌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참 사람이시지만 또한 참 하나님이십니다.
   
1. 예수님은 동등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머리로 다 헤아려 알 수는 없지만 신약과 구약의 성경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창세기에서 인간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 1:26)고 말씀하신 기록을 읽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하여야 할 것은 ‘우리’라는 말입니다. 혼자서는 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최소한 둘 이상이 되어야 우리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구이십니까?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골 1:16).

그런데 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표현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요즘도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이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교인들을 공격하는 ‘여호와 증인’이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지 않느냐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과 하나님을 같은 분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신앙을 공격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생각대로 성경을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안식일에도 병든 자를 고치는 일을 하시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박해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였다고 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 5:18)
   
유대인들의 생각에 아버지와 아들은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보이는 모습은 달라도 본질적으로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아들입니다. 자신을 누구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그 분과 동등하다는 주장입니다. 동양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고 할 때 ‘친’(親)은 친밀함을 넘어 ‘친히 하다’, ‘몸소 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아들을 보면서 ‘자네를 보니 돌아가신 자네 선친을 뵙는 것 같다’고 인사하는 것과 통합니다. 여기서 아들은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2. 예수님은 보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고 하였고, 또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골 1:15)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보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풍요롭기만 한 사람은 부자일 수는 있지만 하늘의 부를 가져다 주는 그리스도는 아닙니다. 권력을 추구하기만 하는 사람은 권세가는 될 수 있지만 죽음도 이기에 하는 그리스도는 아닙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힘이 있는 사람은 황제는 될 수 있지만 영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리스도는 아닙니다. 이 땅에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이 모든 인간의 죄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제사장이 되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선지자가 되십니다. 인간을 사로잡고 있는 강력한 영적 세력인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는 왕이 되십니다. 참 사람이시며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제사장이자 선지자와 왕의 역할을 동시에 하신 유일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간단한 말 속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신앙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방황과 사탄의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여러분, 여러분 자신의 죄의 문제와 방황의 문제와 사탄의 문제가 예수님 안에서 해결된 것을 확신하시기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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