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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백부장의 큰 믿음 (마 8: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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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의 큰 믿음  (마 8:5~13)
   

어제는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서는 지난 9월 30일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는데, ‘풀라우 아이아’ 라는 마을에서는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 400명이 순식간에 생매장되는 참사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가뭄 피해나 태풍 피해 한 번 없는 대풍년 가운데, 추석 명절을 맞이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우리 모두 깊은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성경에는 믿음이 적으므로 예수님께 책망을 들은 사람과, 믿음이 큼으로 칭찬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1)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두려워할 때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는 책망을 들었고, 2)베드로는 주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자기도 바다 위로 걷게 해달라고 하였다가 주님의 허락을 받고 물 위를 걷는 중, 바다와 물결을 보고 무서워 빠져들어 가게 되었는데, 그 때 주님께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은,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주님께 나왔다가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 백부장은 복음서에 나오는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어떻게 믿는 믿음이 좋은 믿음인가를 묻기도 하고,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이 물음에 대한 정확한 답변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주님께서 인정하시고 칭찬할 수 있는 믿음일 것입니다. 히 12:2에 보면 우리 주님은 믿음의 주시라고 했는데, 믿음의 주되시는 바로 그 주님께서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믿음은, 분명히 좋은 믿음이요 큰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에는 주님께 칭찬을 들었던 백부장의 큰 믿음을 상고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1. 백부장의 신분과 그의 인격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장교 계급입니다. (사진 1-로마군단병 전신)로마 군대는 한 군단이 6000 명인데, 이것을 100 명씩 60 단위 부대로 하여 그 지휘권이 백부장에게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장기복무자이며 그 지위가 대단했습니다. 부자였고 세도가 높았습니다. 그 당시 가버나움은 분봉왕 헤롯의 관할 지역이었기 때문에, 그는 헤롯왕의 용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그가 유대인이 아니었음은 분명합니다. 눅 7:5에 보면 유대인들이 이 가버나움의 백부장을 가리켜 “저가 우리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고 했습니다. 로마인은 유대인을 경멸하고, 유대인은 로마인을 증오하며, 서로 적대감을 품고 살아가던 그 당시에 이 백부장만은 달랐습니다. 그는 유대인을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적대 관계에 있던 유대 민족을  사랑하게 되었습니까?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는 로마인이었지만, 유대나라에 와서 지내는 동안 본래 천품이 선하고 구도심이 강한 사람인지라 유대교로 개종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옛말에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을 한다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그 사랑이 유대인을 사랑하기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그 증거로 이 백부장은 유대인들을 위해 회당도 지어주었습니다. 이러한 백부장인지라 유대인들도 자연히 그를 흠모하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존경을 받는 것은 최고의 인격적인 대접입니다. 존귀한 성도가 되었으면 모두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중앙 교회 성도들도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거리가 되고, 교회의 트러블 메이커가 되고, 목사의 속이나 썩히는 그러한 사람이 되지 말고, 누구에게나 존경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백부장의 믿음 

1)간구하는 신앙이었습니다. 

5절에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간구라는 말은 어떤 목적이 성취될 때까지 간절하게 요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땀과 눈물을 흘려가면서 간절히 매어 달리는 것을 말합니다. 백부장은 고급 장교였지만, 나사렛 예수 앞에 나아와 주여, 주여 겸손히 부르짖으며 간구 했습니다. 간구하는 기도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약 5:16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2)사랑을 겸전한 믿음이었습니다. 

6절에 “주여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고 했습니다. (사진-가버나움의 백부장) 중풍 병은 사실상 그렇게 대단한 진통이 있는 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부장의 눈에는 하인이 몹시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백부장은 하인의 고통을 마치 자신의 아픔처럼 느꼈던 것입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다른 사람의 관심과 동정을 얻기 위해 아이고, 아파 하면서 몹시 아프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뭘 그래, 중풍 병은 그렇게 통증이 심한 병이 아니야. 아프다고 소리친다고 낫나! 엄살 부리지 말고 참아라, 참아!” 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말이 있는 것 아십니까? “내 고뿔이 다른 사람의 염병보다 낫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감기를 다른 사람들의 염병보다 더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부장은 중풍 병을 앓고 있는 하인이 몹시 괴로워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구나 그 당시 종은 단지 말을 할 줄 아는 도구로 여겼던 시절입니다.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s)는 그의 저서 ‘윤리학’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명이 없는 물건에 대해서는 우정도 정의도 있을 수 없다. 실로 말이나 소에게도 그러하며, 노예를 향해서도 우정이나 정의는 있을 수 없다. 주인과 노예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도구가 생명이 없는 노예인 것과 꼭 같이 노예는 살아 있는 도구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예수님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노예를 물건으로 취급했습니다. 노예들의 생살여탈권이 온전히 주인에게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병든 종은 무가치한 도구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병든 종은 주인에게 아주 귀찮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주인 같으면 어서 죽기만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 백부장은 자기 노예를 지극히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능력으로 자기 노예의 질병을 고쳐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청원했습니다. 중풍이 들어 무가치한 종을 위하여 주님께 나아와 간구하는 백부장의 믿음은 이처럼 사랑을 겸한 것이었고, 그래서 그는 뛰어난 인격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재산목록에 올려놓고 물건을 취급하듯 마음대로 처리해도 좋을 종에 불과했지만, 백부장은 그를 자기와 다름없는 한 인간으로 보고, 질병으로 고통 받는 것을 차마 두고 볼 수 없는 연민을 가지고 예수님의 도움을 청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 인간을 인간으로 보고 사랑하고, 온 천하 보다 더 귀한 존재로 여기는 믿음은 실로 위대한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믿음을 겸한 사랑, 사랑을 겸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겸손한 믿음이었습니다.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는 백부장의 간청을 듣고 주님께서는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선뜻 허락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하면서 사양을 했습니다. 이것은 백부장이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가를 단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는 점령국의 장교였습니다. 그의 집은 좋은 집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군대 장교는 교만하기 쉬운데도 그는 환경과 처지와 지위의 유혹을 극복한 겸덕의 소유자였습니다. 인간은 환경과 처지에 유동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 때문에 왕으로서 겸손한 자가 많지 않고, 부자로서 방탕하지 않은 자가 별로 없으며, 군인으로서 포악하지 않은 자가 많지 않음이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위세 높은 점령국의 백부장은, 나사렛 촌에서 자란 무명의 전도자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으니, 이것은 그의 놀라운 겸손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백부장은 어떤 직업이나 환경 때문에 자신이 불손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귀감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이 나를 군인으로 세우지 않았더라면 내가 겸손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갈 천사가 가버나움의 백부장에게 대한 이야기를 기억나게 해 줄 것입니다.” 

또한 백부장의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라는 고백은 자신이 허물 많은 죄인임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과, 죄인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주님과의 관계는 가장 아름답고 놀라운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시원하게 하는 찬송의 제목이 바로 “주님,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에게 역설적입니다. 즉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의롭게 되고, “나는 의인입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죄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신앙과 겸손은 불가분리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이 백부장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리스도를 그의 집에 맞이할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동안에, 그는 그리스도를 그의 마음에 맞이할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어거스틴에게 어느 날 그를 추종하는 제자들이 찾아와서 “선생님, 인간이 가장 크고 놀랍게 변화되는 축복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그는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다는 말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산은 물을 배척하지만, 계곡은 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높은 산처럼 교만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께서 그를 대적하시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겸손한 자를 구원해 주십니다. 겸손한 자는 명예를 얻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어떤 설교가는 말하기를 “우리가 장차 천국에 가보면 거기는 죄인들뿐일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나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전적인 은혜로 여기 왔습니다.’ 라는 사람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에 가보면 거기는 자칭 의인들만 있을 것입니다.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는 지옥에 들어 올만한 죄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불공평합니다. 나는 억울합니다.’ 라는 사람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대기 같이 온 누리에 충만합니다. 다만 교만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물리치고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4)말씀만을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백부장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니다.” 라고 했습니다. 백부장은 자기 하인의 병을 의학이나 약이나 부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백부장은 주님의 말씀 한 마디면 자기 하인의 중풍 병이 나을 것을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그는 만병의 의시되신 주님과 환자인 그의 하인이 직접 만나지 않아도, 능히 주님의 말씀 한 마디면 치료가 될 줄로 믿었습니다. 

백부장은 어떤 느낌이나 안수나 징표를 의지하는 신앙이 아니고, 주님의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인정하여 말씀 한 마디면 공간을 초월해서, 시간을 초월해서 하인의 병이 나을 것을 확실하게 믿는 놀라운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히 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역사하는 능력이 있어서 영적인 치료, 정신적인 치료, 육체적인 치료 등 세 가지 방면으로 인간을 치료해 줍니다. 

시 19편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은 1)영혼을 소생케 하고 2)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3)마음을 기쁘게 하고 4)우리의 영안을 밝게 한다고 했습니다. 세계적 부흥사였던 무디는 말하기를 “참 믿음은 창세기 1장 1절부터 계시록 22장 21절 까지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이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과 생활과 삶의 근거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다만 두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라고 말한 백부장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고 했습니다. 백부장은 병을 주님의 종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는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내 종이 내 명령을 듣듯이, 하인 속에 있는 병을 주님의 종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명령하시면 질병이 하인에게서 즉시 떠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직속상관으로서 부하에게 명령하면 그가 순종하지만, 하인에게 있는 질병에게 명령하는 일은 자기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만 주님이 말씀으로 명령하시면 그대로 될 줄을 믿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같은 백부장의 말을 듣고 놀랍게 여기사, 따르는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고 크게 칭찬을 하셨습니다. 정작 하나님을 가장 잘 공경한다고 자부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큰 믿음을 백부장에게서 보신 주님께서는 몹시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백부장은 군사에게 명할 수 있으나 질병에게는 명령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질병에게 명할 수 있었고, 그 명령에 질병은 복종하였습니다. 이러한 권능은 주님의 메시야이심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는 단서가 붙은 명령이었으니, 만일 백부장의 믿음이 입술에 붙은 거짓 믿음이었더라면,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의 믿음은 하인의 병이 즉시 낫게 됨으로, 그의 믿음이 참된 것임을 증명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믿는 만큼 이루어진다.’는 믿음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정하십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 편의 믿음의 분량을 따라 주어집니다. 그러나 “네 소원대로 되라.”는 아닙니다. 만일 그랬던들 복음은 불의한 인간의 욕심에 오용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인간의 욕심대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화된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기왕 주님을 믿을 바엔 믿음이 좋은 사람 되기를 원하는데, 오늘은 주님께로부터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칭찬을 받은 백부장의 믿음을 상고해보았습니다. 백부장은 1)간구하는 신앙의 소유자였고 2)사랑을 겸전한 믿음의 소유자였으며 3)겸손한 신앙의 소유자였고 4)말씀만을 믿는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이렇게 백부장은 그 신앙과 인격을 겸비한 행함이 따르는 산 믿음을 소유한 훌륭한 인격자였습니다. 그의 인격은 예수님을 감동시켰고, 그의 믿음은 예수님을 놀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문제에 부딪혀 있습니까? 사업과 직장의 문제입니까? 건강의 문제입니까? 자녀의 문제입니까? 신앙의 문제입니까? 여러분은 어떠한 불가능에 직면해 있습니까? 백부장은 말씀만으로도 병든 하인이 깨끗이 나을 줄로 믿을 때에, 하인의 병이 즉시 나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백부장처럼 아름다운 인품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놀래게 한 백부장만큼 큰 믿음이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사업 문제, 직장의 문제, 건강 문제, 자녀 문제, 신앙의 문제가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라고 하시는 주님의 선언을 듣고 해결되는 축복을 다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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