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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또 한번 기회를 (눅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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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 기회를  (눅 13:6~9) 
 
 
고대시대에는 대부분의 항구들이 수심이 낮아서 평상시 큰 배들이 항구에 접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심이 깊어지는 밀물 때 조류의 힘을 빌려서 항구로 들어갔습니다. 밀물 때가 아닌 경우 배들은 항구 근처에서 밀물 때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항구 근처에서 밀물 때를 기다리는 배를 가리키는 말이 라틴어로 '옵 포르투'(ob portu)입니다. 이 ‘옵 포르투’는 밀물 때 항구에 들어가려고 그 순간을 기다립니다. 그 때를 놓치면 또 한참을 기다려야하기 때문에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그 순간을 기다립니다. 

이 ‘옵 포르투’라는 말에서 영어의 ‘opportunity’ 즉 ‘기회’라는 말이 왔습니다. 항구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배들에게 물이 밀려드는 밀물의 그 순간은 항구에 들어갈 절호의 기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배들은 그 순간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뜻에서 이 말이 생긴 것입니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는 이런 배경 하에 “기회”에 대하여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인간사에는 간만이 있나니 만조를 타면 행운에 이르거니와 놓치면 삶의 그 모든 항해가 얕은 곳에, 불행에 매이게 된다.

그러한 만조 위에 우리는 지금 떠 있나니 물때가 맞을 때에 흐름을 타야 하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우리네 모험은 실패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회를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고, 그 기회가 찾아올 때 반드시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공하려면 이 기회를 잘 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실패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입니다. 소위 “무화과나무 비유”라 일컬어지는 말씀입니다. 요약해 보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3년 동안이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주인이 포도원지기에게 베어버리라고 명했습니다. 그 때 포도원지기가 주인에게 이렇게 청했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이번에는 더욱 정성껏 보살필 테니 내년에는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 때 베어버리겠습니다.’

우리는 이 비유 말씀 속에서 “기회”라는 주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본문을 보면 6절에서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를 포도원에 심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 포도원 주인의 속 깊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포도원은 포도나무를 심어놓은 곳입니다. 수많은 포도나무들이 오와 열을 맞춰 심겨져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물론 포도나무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무화과나무가 잘 자라기 때문에 잘만 관리해 주면 12미터까지 자랍니다.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이 그리고 넓게 퍼지겠습니까? 그리고 그 잎이 무성하기 때문에 넓은 지역에 그늘을 덮기도 합니다. 그래서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는 것은 포도농사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포도원 주인이 무화과나무를 포도원에 심은 것은 무화과나무를 위해서입니다. 잘 가꿔진 포도원에 무화과를 심어서 잘 돌보고 가꾸어 잘 자라고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포도원에 무화과가 심겨졌다는 것은 무화과나무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화과는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합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가 된 존재들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 등 돌리고 살아가고 있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들만 저지르며 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잘 가꾸고 관리해 오신 포도원에는 맞지 않은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삼으셨습니다. 무화과나무를 포도원에 심으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한 마디로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일꾼이 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뿐이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포도원에 심으셨습니다. 원래 죄인이었고 또한 이방인이었던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결코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들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던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습니다. 

시 144:3-4를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다윗이 읊은 시입니다.

다윗은 지난날을 돌아보았습니다. 자기는 들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골리앗 앞에 세우셔서 저와 싸워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수로 세우셔서 블레셋, 아말렉,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나아가 왕으로 세우셔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통치하게 하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는 보잘 것 없는 존재이고 정말 이렇게 귀한 자리에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다윗은 무화과나무 같은 자기가 이렇게 귀한 포도원에 심기운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기에게 더할 수 없는 최고의 기회였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무화과나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도원에 심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더할 수 없는 복된 기회입니다. 이점을 깨닫고 다윗처럼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여 제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제 인생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십니까?”

기회를 놓친 이스라엘

본문 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 무화과를 심어서 열매를 얻고자 했는데 3년 동안이나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원래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많이 맺는 나무입니다. 특히 무화과는 그 이름 그대로 꽃 없이 바로 열매를 맺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겨우내 앙상했던 가지에서 연한 잎이 나오면서 바로 첫 무화과나무 열매인 “파게”를 맺습니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잎사귀가 커지고 본격적인 무화과 열매인 “테에나”를 맺습니다. 그런데 여름 동안 이 테에나를 네 차례 정도 반복해서 맺습니다. 그래서 5월에서 10월까지 계속해서 무화과나무에는 열매가 맺힙니다.

그런데 본문의 무화과나무는 전혀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3년이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다른 무화과나무에서 보듯이 많은 열매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무려 3년이나 열매를 하나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참다못한 포도원주인이 베어버리려 했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무화과나무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뿐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열매를 찾으시지만 변변한 열매를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금년도 3/4이 지나갔습니다. 이번 주로 4/4분기가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금년에도 변변한 열매를 내놓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생활한 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 아직도 변변한 열매를 내놓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비유의 책망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왜 열매를 맺지 못했을까요? 요 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 답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삽시간에 그 소문이 온 갈릴리에 퍼져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안산인해를 이루며 몰려들었습니다. 요 6:2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몰려든 것은 표적을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깨닫고 실천하려기 보다는 표적을 통해 자기들의 욕구를 채우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몰려든 사람들에게 더 이상 표적을 보이시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저들이 실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씩 둘씩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으로 12 제자들만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베드로가 답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하나님의 백성 삼으신 뜻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를 잊고 살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백성으로 주어진 특권을 누리며 자기들의 기대를 채워가려고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곽재구라는 분이 쓴 “포구여행”이라는 글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한 어린 소년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동전을 줍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가슴이 떨리며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건 내 꺼야. 아무 고생도 하지 않고 나는 돈을 번거야." 그 날 이후로 소년은 어디를 가든지 머리를 숙이고 눈을 크게 뜬 채 바닥에 떨어져 있는 보물(寶物)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평생 동안 262개의 일 페니 동전, 48개의 오 센트 동전, 19개의 십 센트 동전, 16개의 이십오 센트 동전, 2개의 오십 센트 은화, 똘똘 뭉친 한 장의 일 달러 지폐 등 합계 십삼 달러 이십육 센트를 땅에서 주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 대신 31,369회의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노을을 볼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눈부시게 영롱한 157회의 무지개 빛, 몇 천 개의 단풍잎이 가을을 물들인 풍경, 푸른 하늘이 흰 구름으로 곱게 그려내는 몇 백 몇 천 번의 모습, 지나가는 행인(行人)들의 아름다운 미소로 삶을 빛낼 수 있는 수많은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기회를 놓칩니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포도원 안에 심겨진 채 내가 바라고 소망하는 “나의 기대”만 생각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이제 보다 긴 안목으로 멀리 내다보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포도원에 심어놓으시고 나를 향해 품으신 그 “하나님의 기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한 번의 기회를

본문 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포도원 주인이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베어버리라 명하자 포도원지기가 한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번에 한번만 더 기회를 주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더 정성을 다해서 가꾸고 돌보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가리키고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실패한 사람들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시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큰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큰 것은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하여 한 번 기회를 주실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성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실패해서 넘어지기 일쑤입니다.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기를 밥 먹듯 합니다. 그래서 우리 혼자만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참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 것은 성경에 실패자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시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경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지키지 못하여 종에게 상속하려 했었고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셔서 이삭을 통해 그 약속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에게 절함으로 첫 번째 돌비를 내 던져 깨부숴야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셔서 두 번째 돌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구약에 가득 차 있습니다.

신약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셔서 주님의 수제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원래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셔서 위대한 전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요 8장을 보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가 용서 받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한 여인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율법대로 돌로 맞아 죽어야 할 처지였습니다. 완전히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8:1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실패했지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십니다. 비록 주님을 실망시켜드렸지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가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를 더 정성껏 돌보겠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돕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시되 그냥 우리에게만 맡겨두시지 않으십니다. 더욱 정성을 다해 도와주십니다. 그냥 한 번 더 기회를 주었으니 알아서 잘 해 보라고 내버려 두시지 않으십니다. 이번에는 꼭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우리에게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본문 1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이번에 열매를 맺지 않으면 이제는 할 수 없이 찍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회가 언제까지 다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번에는 꼭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또 다시 실패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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