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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귀히 쓰는 그릇 (딤후 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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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히 쓰는 그릇 (딤후 2:20~21)


     바울은 사랑하는 제자요 젊은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깨끗하게 준비된 하나님의 일군이 되라는 뜻에서 그릇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 모두 이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하나님 보시기에 나는 어떤 그릇인가 살펴봅시다.    

     요즘 우리 나라 국회에서는 나라를 위해 진실하게 일할 일군, 깨끗한 그릇을 찾느라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고 듣는대로 그 자리에 적합한 인물들을 찾기가 그렇게도 어려운가 봅니다.   신문을 통해 본 소식입니다.   부동산 투기와  위장 전입,  탈세 등 ‘탈법과 불법’으로 얼룩진 후보자들의 ‘수준 낮은’ 도덕성에 대한 지탄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지난 16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고위직 내정자들의 위장 전입에 대해 "도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위장 전입은 중대한 결격 사유라고 본다"는 의견이 46.0%로, "업무 능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위장 전입이 결정적 결격 사유는 아니라고 본다"는 의견 35.9% 보다 높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 국민들은 정부의 고위직으로 내정된 사람들의 도덕성과 자질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사람들에게 나라 살림을 맡겨도 괜찮은지 미덥지 않아 염려하고 있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고 누구에게나 사소한 실수와 부족함이 있지만 그래도 나라를 이끌어갈 고위 공직자로 쓰임 받을 사람들이기에 그만큼 국민들의 기대치와 관심이 높기 마련입니다.    나라의 일군 뽑는 일에만 이런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크고 작은 단체를 맡아 이끌어갈 인물을 선발하거나 회사의 직원을 뽑을 때도 어디든 이런 어려움은 있습니다.   

     사람은 많은데 그 자리에 꼭 맞는 인재는 찾기 어렵다는 말들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군을 찾으실 때는 어떠실까요?     오늘 본문에서 깨끗한 그릇 이야기를 하는 바울의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 그릇도 있고 나무와 질그릇도 있는데 각기 용도에 따라 귀하게 쓰이기도 하고 천하게 쓰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사용하는 그릇마다 모양과 재질이 제각기 다를 뿐 아니라 그 가치를 계산할 때 값비싼 그릇도 있고 부담없이 사용하는 평범한 그릇도 있습니다.    

     바울은 사람을 그릇에 비유하여 누가 주인의 손에 들려 즐겁게 쓰임 받을까 그 사람의 준비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큰 그릇이냐 작은 그릇이냐, 비싸고 멋진 그릇이냐 평범하고 값싼 그릇이냐 그것보다는 어떤 그릇이 주인이 필요로하는 그 시간, 그 자리에 깨끗하게 준비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주인이 온갖 좋은 일에 요긴하게 쓰는 귀하고 거룩한 그릇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의 요지입니다.

     사람들은 겉모양과 외형적 조건을 높이 평가하여 그 기준에 따라 사람을 찾습니다.   화려한 경력과 일처리 능력, 나이와 건강상태 심지어 외모를 보고 사람을 씁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 보다는 일의 능률과 생산 효과를 우선 중시합니다.    그래서 겉모양을 중시합니다.    얼마 전에 기독신문 <기독논단>에 실린 글 하나를 읽었는데 오늘 말씀과 관련이 되어 그 가운데 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1941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세 번째 임기를 수행하기 전에 선거에서 패한 윌키(Wendell Willkie) 후보자를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루즈벨트의 호의적인 초청을 받고도 윌키는 아직 패배의 분이 남아 있었던지 점잖지 못하게 “반쪽 인간(half man)인 홉킨즈를 여전히 당신의 자문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인가요?”라고 질문했다.  홉킨즈(Harry Hopkins)는 루즈벨트의 친구로 오랫동안 그의 자문 역할을 해온 사람이다. 그는 암 수술로 위의 절반이 없고 건강이 나빴다.  그러나 루즈벨트에게 홉킨즈의 건강 상태는 그리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되지 못하였다.  그는 윌키에게 “사람은 밥통의 크기로 평가할 것이 아니고 정직의 수준으로 평가해야 하오”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홉킨즈를 평가하는 루즈벨트와 윌키의 기준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루즈벨트는 홉킨즈가 그의 친구였기 때문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루즈벨트의 평가 기준은 (근본적으로) 윌키와 서로 달랐다.  가까이에서 홉킨즈의 참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윌키처럼 주관적인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했을 때에는 상대를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사람을 외모와 외형적인 행위만 보고 판단하는 이 점이 루즈벨트와 윌키의 차이이며 인간의 한계성이다.] 는 내용의 글입니다. 

    루즈벨트 자신 역시 소아마비를 앓아 불구의 몸으로 실의에 빠졌을 때 아내 엘레나가 ‘내가 당신의 두 다리만을 사랑했나요?   내가 사랑한 건 당신의 삶입니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고 하는 말은 감동적이고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루즈벨트 자신이 신체적 불편함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암으로 위를 절반이나 잘라낸 친구 홉킨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밥통 크기로 평가하지 않고 정직의 수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우리 시대에도 귀담아 들어야 할 귀한 조언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실 때 사람을 평가하는 하나님의 기준은 사람들의 기준과 다릅니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으로 선발된 사울 임금과 그의 뒤를 이은 다윗의 예를 비교해봅니다.    사울은 사람들이 원하여 세운 왕이었고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세움받은 점이 크게 다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울의 준수한 외모를 보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 중에 외모로 볼 때 가장 뛰어난 남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그보다 잘생긴 사람이 없고 그 키도  커서 다른 사람들이 그 곁에 서면 어깨 아래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훌쩍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눈과 사람의 눈은 달랐습니다.    얼마 가지 못해 사울 왕의 거침없는 행동은 하나님의 눈 밖에 벗어나기 시작했고 결국 버림받은 왕으로 삶을 마쳤습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사무엘 선지자마저 사울 왕에게 실망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외모로 사람을 세웠다가 실패를 맛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두번째 왕의 후보를 찾아 나선 길에 똑같은 실수를 저지를 뻔하였습니다.   

     이새의 아들들을 만난 자리에서 큰 아들 엘리압을 보는 순간 마음이 끌려 이 사람이 하나님이 정한 사람이구나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무엘을 말리셨습니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본다’(삼상 16:7)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집의 일곱 아들들을 차례로 다 만난 후에야 비로소 여덟째 막내 다윗을 보고 하나님의 허락을 따라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의 후보로 삼았습니다. 

      애굽에 종으로 팔려온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주인에게 인정을 받는 일군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끈질기게 유혹하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을 수 없다고 외치고 유혹의 자리를 뛰쳐나온 요셉은 모든 일에 자신을 깨끗하게 하였던 그릇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준비된 그릇, 깨끗한 그릇 요셉을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부친과 형제들의 가족, 애굽과 주변 백성들을 기근의 위협으로부터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들이 그 땅에서 강성한 민족으로 자랄 수 있는 기반을 준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약에 와서 베드로가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 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벧전1:17) 한 말씀을 기억합시다.    과연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과 다릅니다(사55:8).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그 말씀에 부끄러움이 없는 일군으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림에서 우리의 깨끗함을 인정받습니다.    깨끗한 일군은 망령되고 허탄한 말로 사람을 어지럽히거나 어리석고 무식한 논쟁으로 서로 다투지 않습니다.    후메내오와 빌레도라는 사람은 이런 점에서 깨끗하지 못한 본보기였습니다.    그들은 교인들에게 부활은 이미 과거에 지나간 일이라고 하였는데 이런 거짓 가르침은 독한 암처럼 퍼져나가 연약한 사람들의 믿음을 뒤엎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디모데 너는 이런 악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게 하여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가르치면 하나님께 부름 받은 일군으로서 귀하게 쓰임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가리켜 ‘네 속에 있는 거짓이 없는 믿음을 기억한다’(딤후 1:5)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디모데를 신뢰하고 그의 깨끗한 믿음과 깨끗한 삶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디모데에게 네 자신을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하라고 하는 말은 어렸을 때 뿐 아니라 지금 젊은 청년의 시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으로 살라는 당부입니다.    

     바울은 2장에 있는 말씀과 함께 디모데후서 전체에서 이와 같은 맥락으로 디모데를 권고합니다.     3장에는 말세에 이를수록 그릇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들의 사는 모양이 구체적으로 열거되고 어떤 사람들의 이름까지 언급되기도 합니다.    자신을 깨끗하게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경건의 모양은 갖추고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들이니 이런 사람들에게서 돌아서라’고 합니다.    악한 사람들과 남을 속이는 사람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지만  디모데 너는 어릴 때부터 배우고 확실히 믿는 그 믿음 안에서 살아가라 하며 그 능력은 곧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으로부터 나온다고 합니다.  

     장로 대통령이 이끄는 내각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상당수 포함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비난에 깨끗한 삶으로 당당히 맞설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드물어 더 큰 실망과 상처를 안겨줍니다.   그래도 사회에서 알아줄만큼 경력도 갖추고 간판도 든든하고 소위 대대로 맥을 이어오는 명문 가정 출신들입니다.    거기에다 교회에서는 중직에 있고 여러 대를 거쳐 예수를 믿는 기독교 집안 출신이니 이 사람 정도면 자신있게 내놓고 평가받을만하다고 기대하며 고심 끝에 등용했을 겁니다.    

     그러나 막상 도덕성이라는 기준으로 인간됨을 살펴보았을 때 사회 지도자로서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흠집들이 너무 많이 드러나곤 합니다.     개인의 수치일 뿐 아니라 가문과 교회의 부끄러움이 되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청문회에서 망신을 당하고 자존심이 상하여 ‘요즘 세상에 그 정도 흠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볼멘 소리를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을 잃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더 이상 진리되지 못하게 가로 막고 있으며 연약한 사람들의 믿음에 혼란을 더하는 후메내오와 빌레도와 그 무엇이 다를 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는 그릇은 적재적소에 필요한 그릇입니다.   화려함보다는 진실함을 요구하십니다.    교회 안에서는 물론 여러분의 연구실과 사업장과 학교와 직장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청결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되고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는 때, 필요한 일에 적합한 사람으로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이나 거짓 경건으로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고 진리를 진리되게 전하는 하나님의 일군으로 살도록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를 힘씁시다.   

     오늘을 살면서 영광스런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이들과 모든 교우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눈길이 흡족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머물면서 지력과 영력이 함께 자라가며 실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준비되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세계를 향해 귀하게 쓰임 받을 일군들이 우리 가운데서 많이 일어날 것을 바라봅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써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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