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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주소 (창 27: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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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소 (창 27:1~45)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름을 이삭(웃음)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삭은 성품이 온순했고 농업에 종사하며 전형적인 유목민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40세에 종형 브두엘의 딸 리브가를 아내로 취하여 60세 되던 해에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게 되었습니다. 태에서 먼저 나온 에서는 성격이 용맹하고 사냥을 좋아했습니다. 반대로 야곱은 지혜가 예민하고 집에서 양치기를 좋아했습니다. 
야곱은 어느날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올 때에 주린 기색을 살피고 붉은 팥죽 한 그릇으로 형으로부터 장자의 명분을 샀습니다(창 25:27-34). 

이삭이 108세의 일기로 헤브론에서 그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을 때입니다. 이삭이 장남 에서를 불러서 네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오면 먹고 축복하여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때 그의 모친 리브가가 듣고 야곱으로 에서의 모양을 꾸미고 야곱과 함께 진미를 만들어 가지고 이삭에게로 갔습니다. 이들 모자는 사냥나간 큰 아들 에서가 돌아오기 전에 먼저 들어가서 눈이 어두워서 잘 보지 못하는 부친을 속여 형 에서가 받을 축복을 몽땅 받고 말았습니다. 

사냥에서 돌아온 에서가 들어왔을 때는 이미 야곱에게 축복한 후였습니다. 에서가 동생에게 빼앗긴 축복이 원통해서 방성대곡하며 말하기를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뿐입니까? 하고 소리치며 통곡했습니다. 이때 아버지 이삭이 입을 열어 야곱과는 정반대되는 에서의 장래를 선언했습니다. 이삭은 에서의 장래를 너의 주소라고 했습니다. 

이 주소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장소적인 개념뿐만 아니라 다분히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즉 에서와 야곱의 미래를 선언한 것입니다. 
축복은 인간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리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축복 자체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의 모든 생활에 미친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신 28:1-6). 이처럼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에게만 있는데도 인간이 축복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원하는 사람이 인간의 축복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과 간절히 찾는 자에게 복 주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노아가 셈에게 축복한 것(창 9:26)이나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것이 바로 그것(창 27:27-29)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요셉과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한 것(창 48:15-16)과 아론의 축복기원(민 6:24-26)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을 기원하는 일은 확실히 제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족장 시대에는 족장이나 가족의 대표자가 했습니다. 출애굽 이후부터는 가족 대표자 및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 그 일을 전담한 것으로 여겨집니다(레 9:2; 신 10:8; 역대하 30:27). 또한 축복은 신적 권위를 가졌기 때문에 한번 선포되면 결코 취소될 수 없었습니다(창 27:30-38). 

신약시대에 와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행해졌습니다. 회당에서 식사 전 후에 꼭 기원하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서신서에서는 서두와 말미에 사도들이 꼭 축복을 기원했습니다. 이삭은 그의 장남 에서의 미래적 삶을 주소라고 했습니다. 에서의 미래는 암담했습니다. 반대로 야곱의 미래는 화려했습니다. 
축복 받은 장래와 그렇지 못한 미래는 에서와 야곱의 좋은 예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서의 주소가 있고, 야곱의 주소가 있고, 나의 주소가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나의 주소에 있습니다. 곧 나의 미래적 삶에 있는 것입니다. 

Ⅰ. 축복의 기회를 빼앗긴 에서의 주소입 니다. 

본문 27장 39절에 『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 주소 』(모샤베카)는 야사브 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명사입니다. 야사브는 '앉다', '∼에 있다', '거주하다', '살다'라는 의미로 고대 근동에서 널리 속용된 동사입니다. 이 말은 '일정한 장소에 거주하여 살다' 라는 문자적 의미와 거주의 지속성과 보편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여호와는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시편 2편 4절에 『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시편 29편 10절에 『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라고 했습니다. 

1) 땅의 기름짐에서 뜬다고 했습니다. 

본문 27장 39절에 『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 땅의 기름짐에서 뜬다 』(미쉬만네 하아레츠)라는 말을 직역하면 '그 땅의 기름짐으로부터 떠나'라는 뜻입니다. 
마침내 이 예언대로 에서와 그의 후손인 에돔 족속들이 거했던 세일 산지는 가장 척박한 산악지대였습니다(창 32:3; 신 2:5). 

2) 하늘 이슬에서 뜬다고 했습니다. 

본문 27장 39절에 『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여기 『 이슬 』(탈)은 가는 가랑비 같은 것을 말합니다. 이슬은 맑은 밤에 소리 없이 대지를 적시는 것입니다(민 11:9). 따뜻한 공기 중에 수증기가 나뭇가지에 내립니다(욥 29:19). 여기 이슬은 기드온의 양털과 지면에 내린 것입니다(삿 6:38; 출 16:14). 
이삭은 에서의 주소가 땅의 기름짐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에서의 삶의 환경은 척박한 땅이 될 것이라는 예언적 선언을 했습니다. 

말라기 1장 2-5절에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경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너희는 목도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경 밖에서 크시다 하리라 』고 했습니다. 

로마서 9장 13절에 『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복을 놓친 사람에게도 일반 은총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5절에 『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3) 칼을 믿고 생활하겠다고 했습니다. 

본문 27장 40절에 『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너는 너의 칼로서 살아갈 것'이라는 말입니다. 에서의 후손들은 기질상 약탈 민족으로서 삶을 산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이 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에 잡은 칼을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손에 잡은 나의 칼은 의지할 대상이 못됩니다. 

4) 형이 아우를 섬기는 역리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27장 40절에 『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신약시대에 에돔인 헤롯이 이스라엘 왕으로 치리한 적이 있습니다(마 2:1). 하지만, 당시 에돔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국가였기 때문에 에돔이 이스라엘을 통치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야곱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와 그가 받은 축복을 말합니다. 

5)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린다고 했습니다. 

본문 27장 40절에 『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라 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너는 네 목으로부터 그의 멍에를 깨뜨릴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에서는 야곱의 멍에를 벗을 때까지 그를 섬겨야 했습니다. 즉 에서가 힘을 기르면 야곱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에서의 장자권이 야곱에게 넘어간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수용해야만 합니다. 
본문 27장 33절에 『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Ⅱ.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아니했던 야곱 의 주소입니다. 

1) 하나님이 내리시는 하늘의 축복입니다. 

본문 27장 28절에 『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고 했습니다. 
비가 적은 팔레스틴 지방의 이슬은 농사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땅의 기름짐은 옥토를 가리킵니다. 포도주와 곡식은 농산물 중에서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근원적인 축복입니다. 

2) 장자의 명예와 그가 받은 축복입니다. 

본문 27장 29절에 『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主)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에게 굴복하게 됨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에돔은 에서의 후손들이 사는 땅입니다. 나중에 야곱의 후손 다윗이 에돔을 정복함으로 이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사무엘하 8장 13-14절에 『 다윗이 염곡에서 에돔 사람 일만 팔천을 쳐 죽이고 돌아와서 명예을 얻으니라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고 했습니다.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은 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사실을 보게 됩니다. 
창세기 25장 23절에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고 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시대에 와서 이 말씀이 성취됩니다. 여기 형제들의 주(主)가 된다는 말은 에돔, 모압, 압몬을 지배한다는 의미입니다. 
비록 야곱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장자권을 쟁취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보아야 합니다. 

3)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축복입니다. 

본문 27장 29절에 『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말씀을 그대로 반복했습니다. 야곱의 후손 다윗의 뿌리에서 메시야가 태어남으로 이 말씀이 성취되어 졌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언약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호와 통치 가운데 있기 때문에 자유와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에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고 했습니다. 

Ⅲ. 나의 주소는 곧 야곱의 주소입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에 『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고 했습니다.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를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셨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주소가 이삭의 주소라면, 이삭의 주소가 야곱의 주소라면, 야곱의 주소가 유다의 주소라면, 유다의 주소가 오벳의 주소라면, 오벳의 주소가 이새의 주소라면, 이새의 주소가 다윗의 주소라면, 다윗의 뿌리에서 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주소는 곧 야곱의 주소입니다. 

야곱이 받은 축복은 바로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받은 축복입니다. 하늘에서 이슬이 내리고 땅이 기름져서 심은 대로 거두는 옥토가 우리의 주소입니다. 이것은 원천적 축복입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가는 곳에는 하늘에서 이슬이 내리고 땅이 기름져서 유형무형의 수확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만물은 우리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21-23절에 『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서의 주소와 야곱의 주소는 비록 형제지만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에서의 주소는 있는 것까지 사라지는 주소입니다. 야곱의 주소는 복에 복을 더하는 영원한 주소입니다. 

우리는 칼을 의지하고 살 수 없습니다. 에서에게 있어서 칼은 적어도 삶의 도구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손에 잡은 칼을 의지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칼을 믿고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손에 잡은 것, 눈에 보이는 것으로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리는 것은 유물론자들의 사고방식입니다. 칼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축복을 못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축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우리의 주소입니다. 땅을 주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주소입니다. 자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주소입니다. 너를 떠나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의 주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우리의 주소입니다. 교회에서 우리가 받은 직분이 우리의 주소입니다. 우리는 한사코 손에 잡은 것,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사는 천박하고 소망 없는 유물론자들이 아닙니다. 
이 세상 쾌락이 우리의 주소는 못됩니다. 발달한 이성주의나 합리적 사고로 인한 인간중심의 삶은 우리의 주소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시고 변함이 없으신 약속을 믿고 이 땅에서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기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주소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주소는 하늘나라입니다. 그곳은 내가 나온 본향이요, 돌아갈 나의 영원한 처소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 갈 이 땅에서의 우리의 현 주소는 하나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주님의 몸 된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이미 축복 받은 구원인들이 모여 기뻐하며 주를 찬양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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