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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위해 준비하시는 하나님 (창 2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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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준비하시는 하나님 (창 22:1~19)

 
사람은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사람의 도움도 중요하고, 나라의 도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도움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전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잘 믿던 못 믿던 실개천 같은 믿음이라도 이 시간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모하십시오.  제가 목회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진실한 믿음은 틀림없이 하늘의 보좌를 움직이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오늘이 그 날이요, 이 시간이 그 시간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삶의 실망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진실로 사모해 보십시오.  우리는 한 생애를 살면서 수많은 실망과 염려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들 중에도 지난 한 주간 동안 수많은 실망과 염려 가운데 살아오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한 주간을 어떻게 살아왔던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입니다.  이 시간 하늘로부터 주시는 능력으로 나를 짓누르고 있는 모든 실망과 염려들을 다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무서운 것은 우리의 삶에서 이런 실망과 염려들이 마음속에 가득하게 차 오르면 분노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분노는 한탄을 낳고 한탄은 신세타령을 낳습니다.  이런 낙심과 실망은 자신을 황폐한 광야의 한 가운데로 몰아냅니다.  그리고 우울증과 무기력으로 자신을 한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병자 아닌 병자 같은 삶을 살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앞에 시시각각으로 밀려오는 환경적인 실망이 자신을 삼키지 못하도록 믿음으로 떡 버텨야 합니다.  믿음이란 환경적인 실망이 자신을 삼키지 못하도록 하늘의 능력으로 버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힘으로나 능으로 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만 된다고 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권능의 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환경적인 실망 앞에 쉽게 넘어지면 안됩니다.  환경적인 실망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의 열정을 빼앗아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사람들 속에는 실망과 분노가 파도처럼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환경적인 실망이 자신의 삶을 강하게 짓누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내 눈으로 이해할 수 없고 내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을 때에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계시는 하나님의 믿음의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럴 때일수록 더 믿음을 붙들어야 됩니다.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운 때일수록 더욱 내 영혼에 생기를 채워야 됩니다.  성령을 채워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그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한 마디로 말해서 모든 삶의 미완성을 수용하는 능력입니다.  내 눈으로 이해할 수 없고, 내 이성으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모든 일들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에게는 이 믿음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종교놀이와 가식을 다 벗어버리십시오.  인생이라는 것이 내 눈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들만 펼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건들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내 믿음의 열정과 삶의 환경이 반비례해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믿음으로 살아보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내 삶의 형편은 오히려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주를 위해 살겠노라고 내 안의 믿음의 열정은 뜨거워지는데 내가 처한 삶의 환경은 자꾸만 더 힘들고 어렵게 꼬여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에라도 여러분은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그 모든 삶의 환경을 수용할 수 있습니까?  내 눈으로 이해할 수 없고 내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전개될 때 그 모든 것들을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믿음입니다.  오늘 저는 우리 모두가 이 믿음을 붙잡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지금 현재의 상황을 놓고 너무 쉽게 판단하거나 결정을 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어떤 사람의 길은 다른 사람의 길보다 훨씬 더 험난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의심하거나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걸어가는 삶의 길을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길을 향해 걷게 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각 다른 길을 향해 걸어가게 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목적은 같습니다.  한 목적지를 향하여 제각기 다른 길을 걷게 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길은 때로 다른 사람의 길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갑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험난한 길을 서로 감당하고, 서로 위로하고 붙들어 주면서 역경에 부딪쳐서도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아름다운 생명을 살려나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인 요셉의 생애를 보십시오.  누가 실망한다고 해도 요셉보다 더 실망한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누가 배척을 당한다고 해도 요셉보다 더 배척을 당한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누가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간다고 해도 요셉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간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친형제가 자신을 종으로 팔아먹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형제 때문에 하루아침에 신세를 망친 사람입니다.  자기가 충성하고 헌신했던 그 집에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씌워서 지하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도대체 이런 실망스러운 삶이 어디에 있습니까?
 
17살 청년의 나이에 종으로 팔려가서 13년간의 기나긴 세월동안 실망과 절망, 배신의 날들을 보냈습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실망스러운 일들만 만납니다.  바르게 살면 살수록 실망스러운 일들이 다가옵니다.  정직하게 살면 살수록 실망스러운 일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요셉은 환경적인 실망이 자신을 생포하지 못하도록 그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었습니다.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요셉이 형제들에게 실망하고, 보디발의 가정에서 분노하고 신세타령만 했더라면 그는 정신분열자가 됐든지 아니면 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자신이 걸어가야 하는 인생길을 비판하고 원망하고 한탄만 했더라면 그는 자포자기해서 후세에 전할 메시지는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왜 기도를 합니까?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우리가 왜 기도를 합니까?  세상의 힘을 얻고자 함입니까?  세상의 잔꾀를 얻으려고요?  아닙니다.  나의 생명을 내신 여호와께서 나로 넉넉히 이기게 하시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사는 것은 언제나 뒤죽박죽 울퉁불퉁 엉망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은 현실의 환경을 바라보면 안됩니다.  먼 곳을 바라보면서 그 미래를 앞당겨 오늘의 문제를 풀어 갈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뒤죽박죽 뒤엉킨 현재의 환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현재의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그 날을 바라보면서 오늘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환경적인 실망이 자신을 삼키지 못하도록 그때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십시오.
 
"지렁이 같은 너 인생아!"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우리들보다 더 잘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41장 14절에서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그렇습니다.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가 누구를 두려워할 것이며, 무엇을 염려할 것입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고 이 험하고 어려운 길을 지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왜 이곳에 왔습니까?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습니까?  우리는 어떤 도덕군자가 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장난을 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자 여기에 왔습니다.  우리는 지금 지극히 연약한 모습으로 왔습니다.  넘어지고 깨어지고 실망한 모습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참으로 내가 너를 도우리라!"
오늘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 영혼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충만해지기를 축복합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100세에 낳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모리아 땅으로 가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립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 엄청난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축복을 얻습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은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새롭게 아브라함에게 다가오십니다.  여호와 이레,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이레"  이 말은 원래 "하나님이 보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성경은 보고 계시는 하나님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성경에서는 공급하시는 하나님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개역개정판에서는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신다.  하나님께서 눈을 떼지 않고 우리를 지켜보신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그분은 우리의 아픔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문제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갈망하는지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구경만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준비하시고 채워주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본문 8절에 보면, 번제할 나무를 어깨에 메고 산을 오르던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에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지금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손에 불과 칼을 들고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아들을 죽여서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절대절명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는 지금 가장 험악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도저히 자신의 눈으로 이해할 수 없고,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삶의 현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환경 앞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백은 그냥 우연히 내뱉어지는 말이 아닙니다.  고백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의 삶에서 경험되고 체험되어진 자신의 내면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분이시다.  아브라함의 이 고백은 자신의 삶의 여정에서 나온 신앙고백입니다.

여호와 이레, 준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천지창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만드시는데 인자한 아버지가 사랑스러운 자녀를 위하여 준비하듯이 자녀를 위해 첫째날, 둘째날, 셋째날 계속 준비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을 짓기 전에 먼저 빛을 준비하셨습니다.  코를 짓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맑은 공기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발을 만들어 놓으시기 전에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는 땅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리의 입을 만들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름다운 음식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때에 최고의 신앙은 바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준비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흘러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본토를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땅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친척을 떠나라고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새로운 가족을 준비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할 때에 나의 진정한 아버지는 하나님 그분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아버지가 됨을 아브라함은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지 못하면서도 길을 떠납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위해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고 제일 편하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삶인 줄 알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제일 평안한 삶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지시하는 그 땅으로 가라.  그곳이 어디입니까?  말씀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고 계시는 그곳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이 가장 편안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C.S. 루이스는 제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불안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어떻게 평안히 살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에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만 붙들고 사는 것이다."
 
그 손으로 많은 것을 붙들고 살려고 할 때에 거기에는 갈등과 번민과 고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만 붙들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많은 것을 바라보고 살아가면 우리의 초점이 흐려져서 많은 갈등과 염려와 근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맞추고 살아가면 우리의 삶이 평안해 질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이것도 붙들고 이것도 믿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만 믿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평안한 삶입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가장 확실히 살아가는 방법은 하나님만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무를 벌려놓고 이삭을 결박하여 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한 손에 불을 들고 칼을 높이 치켜드는 아브라함.  우리는 모리아 산에서 아들을 번제로 드리는 아브라함의 모습에서 갈보리 언덕에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번제로 드려야만 했던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의 번제는 갈보리 언덕에서 속죄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그림자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의 조상 아담의 범죄로 우리 인간은 모두가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우리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었습니다.  영원히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셨습니다.  도저히 모른다고 외면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님 그분을 죽이셔야만 했습니다.  내가 죽어야 하는 그 자리에, 당신이 죽어야 하는 그 자리에 우리 예수님이 대신 죽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그분이 상처를 입으므로 우리가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가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가 부요함을 얻었습니다.  그가 거절당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용납되어졌습니다.  그가 저주 덩어리가 되심으로 우리가 복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준비하신 가장 위대한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예수의 이름 앞에 귀신들은 두려워 떨게 됩니다.  지옥의 문은 닫혀지고 하늘 문이 열립니다.  수많은 마귀의 자식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으로 수많은 어둠의 자녀들이 빛의 자녀로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어린양 그가 죽으심으로 내가 살고, 당신이 살고, 우리가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참된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영원한 구세주가 되십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 영원한 양식이 되십니다.  아직도 그분을 내 마음에 인격적으로 영접하지 못하신 분이 계신다면 이 시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분을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 앞에 순수하고 깨끗한 신앙고백을 해 보지 못하신 분들은 오늘 "당신만이 나의 구세주이십니다.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뜨겁게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보셨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로 인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소홀히 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아들 이삭을 바라보는 재미에 푹 빠져서 하나님을 섬기는 영적인 일에는 등한히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본문 2절에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2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본문을 보십시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에는 지금 아브라함이 어디에 정신이 빠져 있는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사랑하고 그가 자라는 모습에 푹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를 모리아 땅에 가서 하나님이 일러 준 한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침에 일찍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갑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만약에 그가 아들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머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했다고 한다면 어쩌면 그는 전부를 잃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했더니 전부를 얻었습니다.  자신과 그 후대를 위하여 준비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고 경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이 엄청난 은혜를 체험하고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이 모리아 산 언덕이 나중에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는 자리가 됩니다.  이 모리아 산 언덕이 나중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는 골고다 언덕이 됩니다.  그리고 오늘날 여호와의 산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산 주님의 몸된 교회입니다.  이곳이 골고다 언덕입니다.  여기가 모리아 산이요, 여호와의 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일 아침에 지구상의 20억 인구가 주님 전에 달려나와 예배하고 있습니다.  왜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라처럼 두려워 떨며 불안과 근심과 염려에 떨며 집안에만 있지 마십시오.  종들처럼 산 아래만 머물고 있지 마십시오.  먼 산이나 바라보고 있지 마십시오.
 
이삭처럼 어깨에 장작을 짊어지고 이곳에 오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일마다 달려나오시길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우리를 기다려 주실 것입니다.  손에 성령의 불을 들고 말씀의 칼을 들고 이곳으로 달려나옵시오.  주께서 우리를 만나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곳에 와서 들은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본문 17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네 씨가 언젠가 대적의 문을 정복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18절에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이미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복 덩어리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를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복을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을 영접하는 자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형제 자매를 축복하십시오.  믿음의 형제 자매를 위하여 아름다운 말, 좋은 말을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그 말의 아름다운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험한 말을 하고 비평하면 여러분은 썩고 상처난 먹지 못할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에게 좋은 말을 하십시오.  은혜로운 말을 하십시오.  그를 축복하는 말을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복을 말씀하시면서 본문 16절에서 하나님 자신을 걸고 약속하십니다.  나는 아브라함에게 여호와 이레의 복, 내가 준비해 놓은 모든 복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복을 줄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나를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여호와 이레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호와 이레, 준비하시는 여호와라고 하면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구하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다 준비하시고 제공해 주시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이라도 아끼지 아니하고 드려서 순종하고자 하는 자들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시고 제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시고 제공해 주실 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준비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다 준비하시고 제공하시는 분이십니다.  반면에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경영해 가시는 역사를 거스리며 살아가는 자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시고 제공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시고 제공하실 때에는 그 사람이 자기를 희생하면서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유용하게 사용할 믿음이 있는가를 보시고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이레 되시는 하나님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이방인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분이십니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지 않고 그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여호와 이레 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준비하신다는 기대를 아예 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환경을 따라 가지 마십시오.  시시각각으로 밀려오는 환경적인 실망이 여러분을 삼키지 못하도록 믿음으로 이겨내십시오.  아브라함이 환경에 짓눌렸다고 한다면 그는 수 백 번도 더 넘어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을 향하여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이 자신을 짓누를 때마다 그는 믿음으로 이겨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이겨냈습니다.
 
환경적인 실망이 밀물처럼 여러분을 향해 밀려올 때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의 산인 이 전으로 올라오십시오.  여호와의 산인 이 전에서 믿음의 지도를 그리십시오.  그리고 환경을 붙잡지 말고 사명을 붙잡으십시오.  사명이 있는 자는 죽지 않습니다.  사명이 있는 자는 아주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경을 붙잡는 자는 결국에는 무너지고 넘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이레 되시는 하나님, 나를 위해 준비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독생자를 주었는데 무엇을 아끼겠느냐?  내 독생자가 아깝지 않았는데 무엇이 아깝겠느냐?  독생자를 너에게 주었는데 각양 좋은 은사를 너에게 왜 주지 않겠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 앞에 붙들리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신부된 교회의 영광을 보십시오.  이 교회가 아브라함입니다.  교회를 축복하는 자는 교회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선지자를 축복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 아브라함의 복을 얻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나를 위해 준비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이 모리아 산을 내려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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