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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훈계를 들으며 법을 떠나지 말라 (잠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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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계를 들으며 법을 떠나지 말라 (잠 1:7~19)


언젠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진정한 학교'가 여기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미국 뉴욕에 있는 프레드릭 더글라스 중고등학교(Frederick Douglass Academy)를 삼사 년 만에 일약 명문학교로 바꾸어 놓은 로레인 먼로(Lorraine Monroe)라는 한 여자 교장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뉴욕의 빈민가인 할렘에 위치한 그 학교는 그야말로 온갖 문제아들의 집단과 같은 것이어서 남이 보기에는 학교라기보다는 무슨 '동물 우리'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1991년에 그 학교에 부임한 먼로 교장은 그 문제 학교를 개선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역 사회에서 최고의 모범학교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각오로 임했습니다.
  
그녀는 학교 이사들을 설득하여 학교 운영 방침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을 필두로, 학생들로 하여금 교복을 입게 하고 또 '절대로 타협 불가능한 12가지의 규칙'을 정해 주고 어길 경우에는 가차 없이 정학에서 퇴학까지 처벌받도록 했으며, 교사들로 하여금 학생들을 지도할 때 '고등학교를 졸업시키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그 기사가 나왔던 해에 즈음해서는 그 프레드릭 더글라스 고등학교 졸업생의 96퍼센트가 대학입학허가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그 학교의 교기에는 "명문(名門)의 전통은 영원하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고 합니다.
뉴욕 할렘가의 동물농장 같던 학교가 문자 그대로 자타가 공인할 만한 명문학교로 바뀌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참 얼마나 멋있는 일이겠습니까?
사명감에 찬 한 명의 교장과 또 그와 뜻을 같이 한 교사들의 헌신적인 교육이 그처럼 한 학교의 면모를, 아니 수백 수천 명의 학생들의 일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총회 SFC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학생신앙운동(Student For Christ)'은 우리 교단과 우리 교회에 있어서 그야말로 자랑스러운 '영적 명문의 교육기관'입니다.
  
사실 교회들마다 다 '학생회'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특별히 우리 교단 산하의 교회들은 이 '학생신앙운동'이라는 매우 특수한, 그리고 전통 깊은 교육기관을 통하여 중고등학생들을 개혁주의 신앙인으로 키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솔로몬을 감화감동시키셔서 온갖 금언(金言)들을 가득 기록하게 하신 잠언의 제일 첫 장은 그 중에서도 사람이 꼭 배워야 할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기초적인 지혜 세 가지'를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세 가지 지혜'는 바로 우리가 이 '학생신앙운동'을 통하여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교육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이 'SFC'가 왜 진정한 '신앙의 명문학교'인지를 주어진 말씀을 통하여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SFC'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신앙교육의 명문입니다. 

잠언의 본론이 시작되는 7절은 "7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세상의 그 어느 교과서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내용, 세상의 그 어떤 선생도 가르치지 않을 정의, 세상의 그 어떤 시험지에도 결코 출제되지 않을 명제를, '지혜'라는 주제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잠언의 첫머리에서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여기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란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믿는 것'(fear of God)을 뜻합니다.
일견 '두려워하다'라는 것은 무슨 지식의 내용이라기보다는 그저 하나의 자세 혹은 태도의 문제에 해당되는 것처럼만 보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라고 하면 훨씬 더 말이 잘 맞을 것 같은데, 솔로몬은 그렇게 말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 사람의 가장 기초적인 지식이다.'라고 참으로 범상치 않은 표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솔로몬은 여기서 '지혜'라는 단어조차 쓰지 않고 '지식'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지식'이란 '사물을 아는 마음의 작용' 혹은 '알고 있는 내용' 혹은 '알려진 일'을 뜻하는 반면에, '지혜'란 '사리를 밝게 다스리는 재능'이나 '사리나 말의 내용을 깨닫는 재주'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사람으로서는 가장 지혜로운 일이다. 즉 사람이 하나님 경외할 줄 알아야 다른 사리를 밝게 깨달을 수 있다.'라고 하면 훨씬 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솔로몬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사람이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지식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은 여기서 두 번이나 일견 이상하게 단어를 선택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식이다.'라고 하지 않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이다.'라고 했으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다.'라고 하지 않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의 말씀입니까?
이 말은 사람이 '두뇌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작용'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의식'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머리가 달린 사람이라면 그 머릿속에서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뇌의 활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두뇌 속에 다른 그 어떤 지각 작용, 감정 작용, 이성 작용보다도 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아는 지각,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 앞에 벌벌 떨 줄 아는 감정, 하나님의 절대주권자 되심을 고백할 줄 아는 이성 작용이 제일 먼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머리가 '제대로 된 머리'고 그래야 그 두뇌가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발휘하는 두뇌'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 학생들의 머리에는 어떤 다른 정보가 들어가고 어떤 많은 지식이 쌓이기 전에 먼저 '하나님에 대한 바른 태도와 자세'부터 바로 잡혀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쉽게 비교하자면 이 세상 사회에서만 보아도, 기본적 품성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그 머리에 다른 것들만 가득 채워지는 사람은 결국 교만방자하거나 위험하거나 괴짜가 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정말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정말 다른 동물과는 비교도 안 될 우수한 두뇌를 제대로 가진 만물의 영장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영적 품성, 즉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이 기본자세부터 갖추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 그 머리에 지식만 가득 채워지는 사람은 그 자기의 똑똑함 때문에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탄의 대변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경외함은 없이 그 머리에 사상만 집어넣는 사람은 공산주의자들처럼 교회를 박해하고 성도를 죽이는 무신론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 두려워하는 마음은 없이 그저 그 머리에 감성만 자꾸 자라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선'이라는 우물 안에 빠지든지 아니면 감상주의자나 비관론자가 될 뿐인 것입니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이 하루하루를 지낼 때마다 그 머릿속에 무엇이 점점 더 가득 자리를 잡게 되는지를 생각해 보면 실로 '충격과 경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많은 10대 소년소녀들의 기본적인 두뇌 구조는 컴퓨터의 키보드와 직결되어 있으며 이들의 지정의(知情意)의 작용은 순전히 자기중심, 그것도 '자신의 육체에 대한 근심이나 자랑'에 집착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 'SFC'는 성장하는 우리 자녀들의 머리를 이처럼 기계적이며 세속적으로 세팅시키려 하는 사탄의 역사를 물리치고, 사람다운 사람으로서의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영적 품성,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느낄 줄 알고 위대하신 주권자를 겸손히 경외할 줄 아는 법을 주입시켜 주는, 진짜 일류의 교육기관임을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SFC'는 '성경 말씀을 순종하는 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신앙교육의 명문입니다.

8절과 9절에 기록하기를 "8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9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비의 훈계와 어미의 법"이란 바로 부모가 성경을 가지고 자녀에게 신앙의 진리를 가르쳐 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성경 말씀을 표현하는 말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본문에서는 그것들 중에서도 특히 "훈계"와 "법"이라는 단어를 선택하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먼저 '법'이란 이미 '정해져 있는 규칙'을 가리킵니다.
거기에는 그것을 배우는 쪽에서 무슨 자기 의사를 반영한다든지 자신의 연구를 가미한다든지 혹은 그 법을 고친다든지 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요지부동으로 확정되어져 있는 바른 길, 옳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으로 교육하는 것'은 바로 이처럼 '일방적인 동시에 절대적인 교육'입니다.
성경 말씀이야말로 이미 확정되어 있는 무오류의 진리, 그 어떤 가감이 필요도 없고 또 용납될 수도 없는 '신앙과 행위의 유일무이한 규범', 즉 '절대적인 법'인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훈계'란 바로 그 '법'을 기준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교육, 즉 '법을 지키게 하며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고치게 만드는' 교육입니다.
아무리 완벽한 법도를 가르친다고 해도 그것을 배우는 쪽이 순종하지 않는다면 전혀 헛수고가 될 뿐이며, 그런 까닭에 "어미"는 부드러운 말로써 바른 "법"을 가르쳐 주고 "아비"는 엄한 "훈계"로써 그 법을 지키게 할 때에 비로소 완벽한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소위 '열린 교육' 혹은 '자율 학습'이라는 개념이 많이 도입되어 있습니다만, 이것은 정말 '빛 좋은 개살구'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가만히 '자율적으로' 놓아두면 누가 열심히 공부하려고 하겠습니까?
이것은 '법'이라고 가르쳐 주지 않고 이것을 어기면 이런 벌을 받게 된다고 '훈계'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떤 학생이 자기 혼자서 공중도덕을 지키며 어른 앞에서 공손해지려 하겠습니까?
  
그런 '열린 교육'의 선구자 격인 미국의 공립 중고등학교들이 지금 학생들의 '학력저하와 품성악화'라는 설상가상에 빠져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신앙교육은 더욱 그러합니다.
'주일성수'를 반드시 지켜야 할 '법'으로 가르치지 않고 "네가 잘 생각해서 결정해 보아라."고 하든지, 첫 월급 받을 때부터 '십일조'를 반드시 바쳐야 한다고 '훈계'하지 않고 "네 형편대로 알아서 해라."라고 '자율'에 맡긴다면 우리 주일학교의 자녀들 중에 과연 몇 명이나 그 '신앙생활의 양대 기본수칙'을 지키겠습니까?
  
'삼위일체', '예수님의 신인성', '성경의 무오성'을 가르치면서, "너 스스로도 한번 연구해서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해 보고나서 믿어라."라고 가르친다면, 우리 SFC의 중고등학생들 중에 과연 몇 명이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를 제대로 믿게 될 것 같습니까?
저는 '단 한 명'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경향교회의 어린이와 학생들도, 내 아들과 내 딸들도 다 아담을 따라서 '완전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 악한 죄의 본성이 '자율화'되도록 방임 교육을 시키면 그 결과는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이 성경 말씀을 아무 선택의 여지가 조금도 없는 '법'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무조건 지켜야 하며, 만약에 어기면 큰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훈계'로써 가르쳐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성경 말씀을 '연구대상'이 아니라 '절대적인 법'으로 배우게 될 때, 그리고 그 말씀을 '선택사양'이 아니라 '반드시 순종해야 할 훈계'로 실천하게 될 때에, 그것은 그 자녀의 평생에 실로 "머리의 아름다운 관"과 "목의 금사슬" 같은 '미(美)와 부(富)와 명예'의 축복이 됩니다.
  
말씀을 순종함으로써 예수님을 점점 더 닮아가는 성화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게 되는 신앙의 청소년을 세상의 그 어떤 '성형수술 미인'이 근처에라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성경의 계명대로 엿새 동안에 열심히 공부하고 주일은 꼭 예배에 참석하면서 대입을 준비하며, 성경의 가르침대로 비록 아르바이트 해서 번 적은 월급이라도 반드시 십일조를 바치며 장학금 전액을 특별헌금으로 기쁘게 바치는 우리 학생신앙운동원이 받게 될 축복을 세상의 그 어떤 수재나 재벌2세가 누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 자녀들의 사춘기가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지 않도록 '성경의 법'으로 올바르게 통제하며 이들이 가지고 있는 '십대의 자유분방함'이 방종이나 타락으로 빠져 들어가지 않도록 '말씀의 훈계'로써 엄히 바로잡는 이 경향 SFC를 더욱 귀중히 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SFC'는 '교회를 중심으로 거룩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는 신앙교육의 명문입니다.

10절 이하 19절에 기록하기를 "10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 11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12음부 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게 통으로 삼키자 13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에 채우리니 

14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지라도 15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16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 17무릇 새가 그물 치는 것을 보면 헛일이겠거늘 18그들의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19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악한 일을 행치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어린아이 시절을 벗어나서 이제 말귀를 알아들을 줄 알게 되고 스스로 판단과 결정이란 것을 하기 시작할 때에 이들의 자의식을 제일 먼저 공략해 오는 것이 바로 '악의 유혹'들입니다.
  
그런데 그 유혹이 그 얼마나 교묘합니까?
"사람 하나 죽이자. 그러면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을 것이다."라고 꾈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돈 쉽게 벌고 싶으면 악한 일 한 번만 저지르면 된다.'는 말입니다.
문자 그대로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는' 대표적인 과정입니다.
또 "우리가 전대 하나만 두자."라고 꾄다고 했습니다.
그런 악한 유혹은 절대로 평생 도둑질하고 강도질하고 살인하면서 살자고 꾀지 않습니다.
항상 '그저 딱 한탕만 하고 손 씻으면 되지 않느냐?'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절대로 속지 않아야 할 것은, 일단 그런 악한 유혹에 한 번 빠지면 절대로, 절대로 '딱 한탕만'하고 끝나는 법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처럼 "불의한 이를 탐하는 자의 악한 길"은 반드시 "자기의 생명을 잃게 만드는" 자리에 이를 때까지 벗어나기 어렵게 됩니다.
  
본문에 "새가 그물 치는 것을 보면 헛일이겠거늘"이라는 말은, 새가 사냥꾼이 그물 치는 장면을 보았다면 당연히 걸려들지 않아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미끼에 끌려 그물에 걸려들고 마는 것처럼, 악한 일에 빠지는 것은 결국 자기를 죽이게 될 일인 줄 알면서도 그 '전대 하나만 두자'하는 미끼에 끌려서 자신을 망치게 되는 어리석음을 비유한 말씀입니다.

우리 SFC 학생들은 절대로 그런 바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악을 행하는 것이 곧 쉽게 잘 사는 길'이라는 이 유혹이 여러분의 시절에, 여러분의 심령에 신앙이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기 전에 먼저 침투하게 되면 마치 컴퓨터의 바이러스처럼 여러분의 사고와 행동의 시스템을 아예 근본부터 망쳐 놓게 됩니다.
  
저녁에 술집에 가서 호스티스 잠깐 해 주면 용돈 몇십만 원 쉽게 벌 수 있다는 이 '불의한 이를 탐하는' 유혹에 얼마나 많은 여고생들이 넘어가고 있으며, 일진회에 가입해서 급우들의 돈을 빼앗고 강간하는 그 '악한 길'의 재미에 적지 않은 중학생들까지도 깊이 빠져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스스로 예방을 해야 합니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는 이 경고를 가슴 깊이 새겨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악을 악이라고' 가르쳐 주지를 않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주간지들은 하이틴도 아닌 로우틴에이저들이 학교에 총기를 가지고 와서 교사들과 학생들을 쏘아 죽인 끔찍한 사건들에 대하여 평하기를 그 청소년들이 "무력감을 이기지 못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혹은 "무책임한 대중문화에 영향을 받은 탓"이라고 했습니다.
  
GP에서 잠자고 있는 동료들에게 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터뜨린 군인을 두고 우리나라의 어떤 인터넷 기사에서는 "이 사회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정말 '말 같지도 않은 말'로 비호를 해 줍니다.
즉 악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전혀 없고 그저 '심리적 진단'만 있는 사회가 되었으며, 그 결과 악행에 대한 책임은 아무에게도 없고 남는 것이라고는 그저 변명과 회피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요즘은 사탄이 일부러 '광명한 천사의 얼굴'을 하고 돌아다닐 필요도 아예 없습니다.
이리가 '양의 탈'을 쓸 필요가 없이 이리 그대로의 얼굴을 가지고 돌아다녀도 아무 문제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사탄을 보고 악하다고 하지 않으니까, 아무도 이리를 보고도 나쁘다고 하지 않으니까, 이 시대의 인생들이 얼마나 어두워지고 미쳤는지 그것을 도무지 볼 줄 모르니까, 악은 자신을 숨길 필요조차 없이 내놓고 보란 듯이 의기양양하게 더욱 기승을 부리며 설치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만 진짜로 나쁜 사람이 되는 시대가 바로 오늘 우리 학생들이 자라나고 있는 기가 막히는 시대인 것입니다.

오직 교회만이, 아니 성경대로 바로 가르치는 교회만이 '악은 악이다.'라는 이 간단하면서도 영원불변한 윤리를 여러분들에게 교육시켜 줍니다.
세상에서 온갖 공부 다 하고 석박사 학위 주렁주렁 받는 것보다도 '악한 꾀를 좇지 않는 것' 이것 하나만 제대로 배워도 진짜로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철저히 가르쳐 주는 곳은 정말이지 교회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교회를 벗어나면 그 곳은 바로 '악한 자'들이 우글거리는 소굴입니다.
여러분이 이 SFC를 통해서 '교회중심'의 생활을 숙달시키지 아니하면 여러분의 생명을 '음부와 같이 산 채로 삼키는' 온갖 악의 유혹에 '열이면 열 다' 넘어가서 결국 '자기 생명을 잃게' 되고 마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자녀들의 심령과 그들 앞에 놓인 창창한 평생을 온갖 타락과 범죄로써 유혹해 오고 있는 이 죄악이 관영한 인간사회, 이미 내려갈 데까지 내려가고 이미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진 장망성 세상을 대항하여 이들을 '교회중심'의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지켜 주는 이 경건의 도장 SFC를 더욱 아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SFC 운동원들과 성도 여러분, 신자들로 하여금 '지혜롭게 행할 일'에 대하여 가르치는 이 잠언의 말씀은, 그 서두에서 세 가지 교육, 전혀 뜻밖의 교과 내용,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리 심오하지도 그리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이 세 가지를, 가장 중요한 지식이요 훈계요 지혜요 명철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할 줄 아는 것, 말씀의 가르침을 잘 배우고 순종하는 것, 그리고 불신세상의 악한 꾀에 넘어 가지 않는 것 - 바로 이 세 가지가 '아이큐 200'의 천재보다도 더 지혜로워지고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는 것보다 더 귀한 지식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하여, 정말 신자다운 신자가 되기 위하여서' 마땅히 행해야 할 것들을 이 세상의 어느 학교에서, 세상의 어떤 훌륭한 선생이 가르치고 있습니까?
아무 데도 없습니다.
바로 우리 교회가,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바로 우리 SFC가 그런 위대한 학교이며, 여러분의 목사님들과 전도사님들과 교사님들이 바로 그런 훌륭한 스승들이신 것입니다.

뉴욕의 할렘가에 있던 한 문제 학교는 그저 '학생은 대학진학을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라는 지극히 당연한 목표와 '학생이 학교에서, 청소년이 사회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들이 있다.'는 '절대로 타협이 불가능한' 규칙만을 가지고서 일약 '명문 학교'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 두 가지는 학교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책임이며 교사라면 당연히 가르쳐야 할 사명에 불과했지만, 놀랍게도 대부분의 다른 학교들은 그냥 방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은 그 학생들의 교육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에 불과한 책임과 사명을 과연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겠습니까? 
  
'기독 학생은 그 무엇보다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라는 이 지극히 당연한 '하나님 중심'의 교육, '기독 학생은 세상의 그 어떤 다른 법도나 윤리보다도 우선 성경 말씀부터 철저히 배우고 순종해야 한다.'라는 이 '성경 중심'의 교육, '기독 학생은 불신사회의 악으로부터 자신을 성별되게 지켜야 한다.'라는 이 '교회 중심'의 교육 - 우리 SFC야말로 이 간단하면서도 필수적인 '법과 훈계'를 철저히 가르치는 '영적 명문 학교'인 줄로 깨닫고, 이 SFC를 통하여 실로 '하나님 앞에서 더욱 사랑 받는 신앙인'이 되는 경향의 학생들과 '아름다운 관과 금사슬의 축복을 받는 자녀'들을 두는 경향의 부모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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