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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역사 신앙 (약 2:19~26, 마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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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여 내시는데 있어서 두 가지의  방편을 사 용하시는데 복음과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부터는 신앙에 대해서 생각하 기 시작했습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헛된 신앙이 있다고 했 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신앙이  구원의 신앙인지 아니면 헛된 신앙인지를 객관적 으로 확인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통해서 헛된 신앙의  유형들을 살펴보면서 구원신앙의 자태를 취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역사 적인 공교회가 시대마다  도전을 받았던 여러 헛된 신앙의  유형들도 교회사적으 로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선 오늘부터는 여러  헛된 신앙의 유형들을 살펴보면서 참  구원신앙의 자태 (姿態)를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 말씀에서 보여주고 있는 헛된  신앙의 유 형을 찾아보면 역사 신앙,  일시적 신앙, 기적신앙이 있습니다. 오늘은 역사 신앙 에 대하여 말씀드리면서 참 구원신앙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코자 합니다.

                        Ⅰ.역사적 신앙

1.역사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이 신앙은 도덕적이고 영적이고 전인격적인 반응은 전혀  없이 성경 진리를 지 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은 성경의 진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성경 진리를 받아들일 때  개인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은  역사를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인 신 앙이라고 합니다. 이 신앙은 매우 전통적이고 성경적일 수 있지만 마음속에 뿌리 를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가질 수  있지만 단순히  역사적 사실의 내용을 안다고  해서 구원의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제 역사적 신앙이  갖고 있는 몇가지 특성을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 다. 

         (1)단순히 지적 신앙이요, 인격적 관계가 없는 신앙입니다.

  성경 진리들은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로 받아들일 뿐이지  자신과의 관 계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실상은 주님을 영접한 것도 아니요 진리를 받 아들인 것도 아닙니다. 단순히 지적 승인일 뿐입니다. 

               ○ 귀신들의 믿음(약2:19, 마8:29, 눅8:28) 

  오늘 본문 약2:19에 의하면  귀신들도 하나님이 유일신이시요 천지의 대주권을  가지신 분이요 자신들의 운명도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떱니다. 또 눅8:28에 의하 면 당시  누구보다도 성경을 잘 알고  있었던 유대인들도 알지  못했던 예수님의  신성과 대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신성과 대권을 잘 알고 있 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8:29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의 경륜까지도  알아서 지금은 자기들을 심판하실 시기가  아니고 앞 으로 예수님에 의해 멸망될 것이라는 구속사적 구조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하나님이 한  분이시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구 속사적 구조를 알고  있지만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없었기에  구원의 신앙은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 본문 마 8:29에서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하였던 귀신의 신앙고백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귀신은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지식적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 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 요합니다. 주님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7:22-23 말씀에서 주님과 관계없이  이런 저런 일을 한다고 할 지라도 구원의 신앙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마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 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 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 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자꾸 한다고 해서 그것이 구원의  신앙이라는 객관적 인 확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열심히 봉사도 하고 능 력도 행하고  말씀을 전하는 자로써 사역을  한다고 해서 꼭  구원의 신앙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주님과의  관계설정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 서 예수님께서는 요10:26-27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바 있습니다. 

  (요10:26-27)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 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2)행함이 없는 믿음입니다(약2:20).

  단순히 지식적인 수납이기에 실상 그 지식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없습니다. 그 런 행함없는 믿음을 오늘  본문 약2:20에서는 "헛것"이 라고 분명히 지적하고  있 습니다. 물론 행함있는 믿음만이 구원의 신앙이라고 할 때 행함의 댓가로써 구원 을 산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의  신앙이라면 "행함으로 실증되는 믿 음"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도덕적 조항을 성취하려는 자기의 노력에 서 나온 행함이 아니라 구원 얻은 자가 자신의  구원을 실증할 만한 결과들을 생 활 가운데서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 하면서도 그 믿음이 실상으로써  현재의 삶속에 나타나지 않으면 그 믿음은 헛된 것입니다.

                   (3)죽은 믿음입니다.(약2:26,계3"2,17)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함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사대 교회처럼 살 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예수님을 영 접했다고 하나 실상은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이 전혀  없습니다.(계3:20). 그리스 도적 생명의 발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적 품성이 드러나지도 않고 그리스도적인  생각과 삶이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새 생명이 없기 때문에 옛 사람의 생명을 발휘합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신앙을 갖지 못한 것이요,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2. 왜 역사 신앙이 발생할까요?

        (1)성경 말씀을 역사적 사실로 지식적으로만 받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에 기록된 역사적인 스토리를  지식적으로 수납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역사적인 사건들이 자기와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를 생각지 않습니다. 자기와 생 명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받지를 않습니다. 이를테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 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역사상에  있었던 사실정도로 지식적으로 수납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자기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를 생각지 않습니 다. 단순히 역사적으로 있었던 사실이라고 지식적으로만 받을 뿐 그 사건으로 인 하여 자기에게 어떠한 공효를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국사나  세계사 책에 나오는  역사적인 기록들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수납하는 것이지 그것이 나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그 사건이 내게 미친 영향 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 사건이 주는 역사적인  교훈을 받을 수는 있는 것이지만 그 사건 때문에  지금 내게 직접적인 어떠한 영 향이 미쳤는가를 생각하거나 그 사건의 효력이 자기에게  까지 미쳤다고 받을 수 는 없는 것입니다. 그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실 로 여러  기록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지식적으로  수납하는 정도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역사적인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건으로 인하 여 오늘 내가 어떠한 구속적 효과를 덧입게  되었는가를 받아들이는 신앙과는 본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들을 특히 그 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단순히 역사적으로 있었던 사건 정도로  수납하는 역사 적인 신앙은 아닌지 잘 살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단순히 지식적으로 수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계시된 하나 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고  점점 더 깊어져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내용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 는 정도에서 그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 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역사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 주일학교 교육에서 유념해야 할 점

  특히 어린이들이 주일학교  6년 동안 열심히 다니다 보면 성경의  스토리를 쭉  끼게 됩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공과 시간에 서두를  끄집어 내면 벌써 어떻게  전개되어 어떻게 끝날  것이라는 것을 훤하게 알기 때문에 6학년쯤  되면 시건방 져서 잘 들으려고 하지 않고 딴전을 피우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정작 그 이야기 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는 알지 못하고  단순히 스토리를 자주 들어서  알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도 수 없이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왜 죽으셔야만 했고 나는 왜 예수님을 믿 어야만 하는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어떠한 은덕을 입게 되는지 하는  것들을 생 각하려고 하지 않고 그 사실을 자기와 관련해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래서 역사적인 하나의 사건정도로  알고 그렇게 인정하는데 머물게 됩니다. 그래 서 역사적 신앙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맡은  반의 주일  학생들이 성경의 스토리를 다  알고 있다고 그것으로  만족해 하거나  대단한 신앙으로 속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사역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자꾸 확인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 니다. 단순히 성경 지식을 전하려  하지 말고 성경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신 하나 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래야만 단순히 역사적 으로 있었던 사건에 대한  지식적인 수납정도의 역사적 신앙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점을 각별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이야기들을 전할  때에 단순히 아이들의 흥미를  위해서 "들을꺼리 "로  각색하여 전하려 하지말아야  합니다. 또 "도덕적인 교훈" 몇가지를 주려는  정도 의 생각에서 성경 이야기들을  전하여도 안됩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고 어떻게 일하시고 계시는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의 구원사역과 관련된 사건들을 전할 때는 그  사건이 어린아이들과 어떠한 관련 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자꾸  설명하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린이들로 하여금  성경의 이야기들을 지식적으로 "스토리만"기억하도록  하지 말고 그 스토리가 갖 는 "의미"를 자꾸 생각하도록  해야 합니다. 역사적인 그 사건이 갖는 의미는  없 어져 버리고 이야기의 줄거리(스토리)만  지식적으로 남아있을 때에 역사적 신앙 이 발생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지  그 '의미'를 자꾸 설명해  주어서 그 의미를 바르게 깨닫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와 관련해서 생각하도 록 해야 합니다.  그 사건이 갖는 '의미'는  사라져 버리고 줄거리만 알고 있다면  역사적 신앙이 된다는 사실을 새겨 들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 속에서나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으로 보여지고 있는 지를 자꾸 생각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더 욱 알아가게 해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심정을 갖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 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법을  터득하게 해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가는데 실패하고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들이 줄거리로만 남아 있 을 때에도 역시 역사적 신앙이 발생합니다. 

  ○사도신경의 암송과 세례시 신앙고백을 할 때 유의할 점.

  우리 장년들의 경우에도  사도신경이나 신앙고백서를 외울 때 그것이  자기 교 회의 전범(典範)이니까, 참으로  자기의 믿음의 고백으로서 말을 하는  것인가 하 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례 문답을 하려고 할 때도 "이러이러한 것을 당신을 믿습 니까?" 하며 믿는다고  해야 당연히 세례를 받을  것이니까 "예 믿습니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참 우스운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할머니 한분이 세례를 받으려고 하는데 밤 낮 어떻게 대답해야 할  줄 모르니까 며느리가 "어머니, 목사님이 물으시거든 꼭  요렇게 하시고 저렇게 하세요.  '예수님을 믿습니까?'하며  '예 내가 믿습니다!' 이 렇게 대답하세요. '예수님이 누구 때문에 돌아가셨습니까?'  하면 '내죄 때문에 돌 아가셨습니다.' 하고 그렇게 말씀하세요." 했습니다.  이렇게 다 말을 입에서 넣어 가지고 가서, 묻는대로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예수님이 누구 ㄸ문 에 돌아가셨습니까?"  하니까, "우리 며느리가 그러는데  우리 며느리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그럽디다!" 했습니다.그런 것은 신앙고백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스운 실례이겠지만 이런 예가 똑똑한 성인(成人)에게도 다 있는 것입 니다.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아 이건 세례를 받는 것이니까 이렇게  말을 해야 한다!' 그것입니다.. 자기의 마음 가운데서 우러나 자연스럽게 '나는 이 렇게 말하지 아니 할 수 없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나는 꼭 이렇게 말하지 아니 할 수 가 없다!'는 확실한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이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 역 사적 신앙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런 실의 신앙고백을 한다면 구원의 신앙이 아 닌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신앙고백을 할 때에 그것이 분명한 자기의 신앙고백 으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2)기독교 신앙을 '전통'으로만 받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적인 문화와 전통을 가진 가정이나  국가에서 태어나서 자라난 사람들의  경우에 역사 신앙이 많이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적 전통 속에서 자라난 아 들은 기독교를 "자신과의 관계"속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전통"으로만 받아 버리 기 쉽기 때문입니다. 조상들이 지금까지 믿어 왔던 전통적인 신앙으로 인정을 하 기는 하지만 자기와 생명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과의 생명적인 관계설정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이나 미션스쿨을  다니는 학생들은  각별히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여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생명적인 관계 설정이 안되고 전통으로 받아 버릴 위험이 너무 많습니다. 주님과의 생명적인 관 계설정을 위하여 가정이나 교회에서 복음을  소개하여 주지 않는다면 기독교라는  종교적 전통에 잔류하는 인구만 늘여 놓는 결과를 빚어내고 맙니다. 그리고 스스 로 속으면서 만족해 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죤스토트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인의 확신"이라는 책에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이 되는 것과 실제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사이에  어떤 차별을 두어야 할 필요 가 있다고 지적한바 있습니다. 그렇게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 불쾌한 것이 될 수 도 있고 그것이 확실히  싫은 것이기도 하지만 성경 저자들을 따르고  있을 뿐이 라고 합니다. 진심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고 명목상으로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가능하다고 잘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죤스토트는  자기 나라(영국)의 국 민들의 경우에  명목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죤  스토트의 지적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특별히 대영제국에 해당되는 사실이다. 우리는 법률과 생활 양 식이 기독교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아오고 있는 기독교 국가에 살고 있다. 그러 나 영국 국민이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라고 기독교 교육을  받은 특권을 지녀왔을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것이 아무리  고귀한 이득이 된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인 부모들과  그리스도인  선생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 니다!"

  지금 기독교 문화권에 있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미국과 같은 나라들에는 역 사적인 신앙을 가진 이들이  많습니다. 기독교가 생명성은 잃고 문화와 전통으로 만 남아있는 실정입니다. 조상들이  물려준 전통과 문화로만 기독교를 취하고 있 는 것입니다. 특히 영국과  같은 나라는 그 심각성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죤 스토트는 그렇게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국가적인 규모로 역사적 신앙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 는 않지만 그리스도인 가정의 자녀들이나  주일학교에 출입하는 어린이들의 경우 에 특히 목회자의 자녀들 중에 역사적 신앙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인구가 비대하여  갈수록 역사적 신앙을 취하고서 기독교의  울타리에 잔 류하고 있는 이들이 많아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이 러한 역사적 신앙과 같은  헛된 신앙에 빠진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기에 자신 의 신앙을 늘 시험하여 객관적으로 확증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3. 역사 신앙이 발생하지 않게 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미 앞부분이  역사적 신앙이 왜 발생하게  되는지 그 원인을  규명하면서 그  대책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언급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한 번 정리하 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역사적 신앙이 발생하지 않게 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 그 대책이 될만한  세가지 지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세가지의 큰 원리를  염두에 두셔서 자기의  신앙이 헛된 신앙에 빠지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하겠습니 다. 여기서는 큰 원리만을 제시하겠는데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1)첫째, 성경 말씀에 기록된 사건들의 "스토리만" 기억하지 말고 그 사건이 갖 는 "의미"를 바르게 깨달아야 합니다. 
  (2)둘째,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가야 합니다. 
  (3)셋째, 기독교 신앙을 생명이 없는  "죽은 전통"으로 받아서는 안되고 자기와  관련해서 "생명"으로 받아야 합니다. 
  (4)넷째, 신앙고백이 자기의 것으로 있어야 합니다. 


                         Ⅱ.구원의 신앙

  이제 헛된  신앙중의 하나인 "역사 신앙"과  관련하여 "구원의 신앙"은 어떠한  성격이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신앙"은  어떻게 확증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1.구원의 신앙이란 어떠한 것일까요?

                     (1)인격적 관계가 있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얘기들을 단순히 역사적으로  있었던 사건으로 지식적으로만 수 용하는 것은 역사 신앙일 뿐입니다. 참 구원의 신앙은 역사상에서 예수님께서 하 신 일에 대한 확연한  인식과 더불어 그 예수님을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여 구 주로써의 인격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이런  구원의 신앙을  위해서는 우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해야 하며(요 1:12), 정말 영접한 자라면"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 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신앙고백적 삶 이 있게 됩니다(갈2:20). 또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계셔서 나와 더불어 먹는 삶" 이 있게 됩니다(계3:20). 이것이 구원의 신앙입니다. 

               (2)행함으로 실증되는 믿음입니다.(약2:21-25) 

  참 구원의  신앙은 구원받은 실증이 있는  믿음입니다. 생활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증되는 것이어야 구원의 신앙이요,  그것이 없으면 종교의 형태를 취한 역사적  신앙에 불과한 것이요 헛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마땅한 삶의 내용을 가지 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위에  실현해 나아가는 구체적인 사회적  자위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창15:6-7에서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의로 여기 셨다!"고 했고 창22:12에서는 "이삭을 바치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경우에  행함으로 믿음 이 온전케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행함으로 실증된 것입니다. 

  기생 라합의 경우에도 역시 적군이었지만  하나님 나라의 정탐꾼을 숨겨줌으로  참 구원의 신앙이 있음을  실증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지어가시는 역 사에 자신을 헌신하는 삶의 자태를 보이므로 그녀의  안에 구원의 신앙이 있음을  실증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의 신앙은 행함으로 실증하였던  것입니다. 역 사 신앙은 그 안에 구원의 신앙이 있다는 사실을 실증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3)생명의 역사가 있는 믿음입니다.

  새 생명을 가진 자에게는 그 "새 생명의 발휘"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  사람 안 에 있는 생명이 역사하여 능력을 발휘하고 품성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 스도적인 생명의 능력을  발휘하여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지어가게 됩니다.  그 리스도적인 품성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았기에 그리스도적 인 생명을 발휘하고 그리스도적 품성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 신앙에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적인 생명 을 발휘할 수 없기에 "반신국적인 역사"를 지어가게 됩니다. 비록  그가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종교적인 활동과 봉사를  많이 한다고 할지라도 "불법"일 수 있고  "반진행에 유조한 활동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진행을 가로막는  활동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지어서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친 히 하신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자꾸 인용하면 듣기 싫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중요하게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말씀이기에 항상 우리의  심중에서  들려져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되어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마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 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 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 라!"  

  ①「겨자씨」같은 믿음만 있어도 생명의 역사는 나타납니다.

  겨자씨는 아주 적고 보잘것  없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생명이  있기에 역사하 는 힘이 있습니다. 참 구원의 신앙은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생명의 역사가 있습 니다. 그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기에 그의 생활과 인격 가운데서 적으면 적 은대로 그리스도의 품성이 자연스럽게 면면히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식다운 모습이 적으면 적은대로라도 생활 속에 면면히 흘러나옵니다. 

  ②「데살로니가」교회(살전1:3,8, 살후1:3)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로  소문이 났습니다. 여기서 '믿음 의 역사'는 어떤  놀라운 '기적'과 관련된 역사가 아니라 "품성"과  관련된 역사입 니다.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 회에는 고난중에도  인내와 사랑으로 견디는 믿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로 소문난 교회였습니다. 이렇게 구원의 신앙은 다른 사 람이나 주님께 과연'구원의 신앙이구나!'하는  실증을 보일만한 믿음의 역사가 나 타나는 것입니다.

2.구원의 신앙은  어떻게 실증되어지는 것일까요?(요일 1:7,3:14)

  여기에 대해서 사도 요한께서 몇가지로 중요하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1)동질의 생명을 가진 자들과의 생명적인 교제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자는 동질의 생명을 가진 자들과  생명적인 교제를  갖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구원의 신앙은 그리스도와 교제가 있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공유하고 있는  다른 지체들과도 "생명적인 교제"가  있느냐 하는 것으로  실증됩니다.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이고 생명적인 교제가 없다면 그는 구원의 신앙 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요일1:3) 

        (2)그리스도의 품성을 발휘하느냐 하는 것입니다.(요일1:6-7) 

  구원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발휘하느냐로 실증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 을 소유한  자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발휘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발휘할 때에 그리스도적  품성을 드러내며 살게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 리스도적인 품성을 발휘하느냐 하는  것으로 구원의 신앙이 실증이 됩니다. 그리 스도는 빛이요, 사랑이시게 빛과 사랑 가운데 거하고 있느냐 하는 것으로 구원의  신앙이 실증이 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 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요일1:6-7)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요일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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