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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배우는 자 (마 11: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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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배우는 자 (마 11:25~30)


작가[에릭 에론슨(Eric Aronson)]이라는 사람이<대시(DASH)>라고 하는 재미있는 책을 썼습니다. 이 DASH라는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면 그 뜻은"돌진한다."는 뜻입니다. 무언가 우직하고 무식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목적만을 향하여 죽기 살기로 나아가는 것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이런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흔히 하는 말 가운데<밀어붙이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뒤 생각을 접어두고 원하는 결과만을 위하여 과정도 없이 그 목적만을 향해서 돌진하는 경우를 말합니다만[에릭 에론슨]이 말하는 대시는 단순히 이런 의미의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단어가 인생을 뒤집는 성공의 법칙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왜 이것이 인생을 뒤집을 수 있는 성공의 법칙이 되느냐를 대시(DASH)라는 단어를 분석해서 하나하나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렇게 설명합니다. 

먼저, D는 Determination이라고 말합니다. 이 단어는<결심>혹은<결단>입니다. 성공의 기본은 결심과 결단이라는 것입니다. 결심이 무엇입니까? 여러 갈래로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정하는 것입니다. 결단이 무엇입니까? 소망 없는 과거를 버리고 희망이 있는 미래로 향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정말 어려운 것 중에 하난데 때로는 단호한 거절이 필요합니다. 거절할 것을 딱 거절하고 취할 것을 취하는 의지적 결단과 그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결단이 분명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 A는 Attitude라는 단어입니다. 뜻은<마음가짐>입니다. 이것 역시 성공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흔히 모든 것이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어떤 환경이나 처지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의 자세가 문제라는 것이지요. 아무리 부유한 환경에 살고 많은 것을 누리며 산다할지라도 그 마음이 놀부 심보라면 존경받지 못합니다. 반면에 그 처지가 보잘 것 없는 형편이라 할지라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면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나 혹은 예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 어린아이와 같은 자세를 가장 좋아하십니다. 이런 순수하고도 깨끗한 마음이 성공을 한다는 것이고 또 마땅히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성공해야 됩니다.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고 따뜻하지 못한 사람들이 소위 성공했다고 합니다만 세상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이거 안 되는 것이거든요. 

자, DASH 의 세 번째는 S인데 잘 아는 단어입니다. Success 즉, 성공입니다. 곧 DASH란 성공 지향적인 습관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적극적인 마인드를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 중에는 성공이라는 것을 생각도 안하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게 보는 사람들은 이것을 욕심이 없이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만 이것은 욕심이 없는 차원과는 다른 것입니다. 의욕 없이 사는 것입니다. 욕심이 없다는 말과 의욕이 없다는 말은 천양지차입니다. 의욕이 없다는 것을 말하자면 되는 대로 사는 겁니다. 뭐 인생이 별거 있나 먹고 마시자하면서 하루살이 인생처럼 날마다 포장마차에 앉아있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성공이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성공에 대한 꿈을 버리면 안 됩니다. 성공 지향적인 습관을 가져야 됩니다. 흔히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의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는 성공에 대해서 너무 거창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멀리 내다보고 있습니다. 까맣게 보이는 결과만을 놓고 성공의 여부를 결정하려고 하는데 그 실패의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성공의 공식 하나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루의 성공을 생각하고, 일주일의 성공을 생각하고, 한 달의 성공을 생각하고, 일 년의 성공을 생각하면 그것이 곧 인생의 성공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루의 성공도 없이 일 년을 성공하겠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성공의 정말 중요한 문제는 의욕이요, 적극적 사고라는 말입니다. 보세요. 성공하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보통사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납니다.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말은 다른 사람보다 하루에 한 시간을 더 사는 겁니다. 이런 자기만의 삶의 스타일이 곧 성공 지향적인 습관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H는 Happiness 곧 행복입니다. 인생이란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도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적어도 일하며 행복하고, 생각하며 행복하고, 나는 행복하다고 신앙적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하고, 지금 내게 주어진 이 현실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최상의 복이며, 최상의 은사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행복감을 만끽하면서 살아갈 때에 결국 그가 인생을 뒤집는 성공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고로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공적인 인생을 위하여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무언가를 배워야하고, 그 일을 위하여 자기만의 습관을 만들어가는 인생이 되어야하겠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성경에서 배워야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하여 배워야합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야합니다. 그래서 신앙적으로 성숙할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단호한 결단과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면서도 긍정적인 마음자세로 성공을 향한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가는 가운데 행복을 만들어가고 행복을 향하여 적극적으로 DASH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가 내 것이 됩니다. 

오늘 말씀을 잘 보시면 하나님나라의 비밀과 진리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을 보면“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도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에서“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이란 구체적으로는 유대교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고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이지만 그 잘난 자기들의 지혜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실제로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반면에“어린아이들”은 천진스럽고 순수하고 잡다한 지식에 때 묻지 않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곧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보세요. 바로 이것입니다. 잡다한 것으로 가득차서 세상 적으로는 자랑할 것이 많으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하지만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어야겠다는 것이지요.

자, 오늘 분문을 보면 우리가 예수님을 배우되 무엇을 배워야할지를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분석해 보면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28절에“다 내게로 오라.”는 말씀과 29절에“내게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순종하여 예수님께 나와서 배우면“마음은 쉼을 얻게 하겠고, 짐은 가볍게 하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쉼이라는 말은 안식을 말합니다. 우리가 주일에 예배하는 것은 안식의 행위입니다. 진정한 안식의 의미는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마냥 쉰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다는 안식은 예배입니다. 단순히 주일 하루 장사하지 않고 쉬는 것을 안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쉼은 예배이어야 하고 그 예배는 곧 안식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안식일을 범한다고 하는 진정한 의미는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하시는 약속은“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는 약속입니다. 쉽다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이 말은 단어 그대로 쉽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어려운 일도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쉬워야 됩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어떤 일이라도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고 쉽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 열쇠는“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입니다. 얼마나 단순합니까? 이게 예수 안 믿는 사람하고의 생각의 차이입니다. 때로는 의외로 단순한 생각에 답이 있는 겁니다. 

교회학교 공과공부시간에 선생님과 아이들이 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욥이라는 사람의 진실한 삶과 고통을 다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이런 말을 합니다.“그런데 참 이상한 게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시험을 통해서 욥의 자식과 모든 재산을 다 잃게 했는데 욥의 아내만은 그냥 두셨어요.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하고 의문을 재기하자 가장 앞자리에서 진지하게 듣고 있던 아이가 손을 들고“저요” 하더니 말합니다.“에이 선생님 그것도 모르세요? 하나님께서는 욥이 시험을 이기자 두 배로 복을 주셨잖아요. 만약에 아내를 잃게 하셔서 아내를 두 배로 주셔야했다면 하나님 입장이 곤란하시지 않았겠어요?”하더랍니다. 이게 얼마나 단순한 진리입니까? 예수님 앞에 서서 그 진리를 배우면 무거운 짐이라도 가벼워지는 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예수님을 배운다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우선 교육학적으로 배운다는 뜻을 몇 가지의 의미로 나누어 봅니다. 먼저는 교과과정입니다. 뭘 배우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육 과정입니다. 어떻게 배워 나갈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교육표본입니다. 즉 모델이 뭐냐 하는 것입니다. 표본이 좋으면 학습효과가 생깁니다. 선생님이 좋고 교과과정이 좋으면 공부가 재미있습니다. 공부에 재미가 끊어지면 끝입니다. 그것은 억지로 안 됩니다. 공부는 재미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선생님의 과목은 재미가 있고, 그 과목은 잘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선생님들이 몇 분계십니다만 아마 실감하실 것입니다. 특히 여학교 총각 선생님들은 그야말로 인기가 상한가입니다. 그 선생님이 음악하면 음악에 빠지고, 그림을 그리면 그림에 푹 빠져서 금방이라도 화가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배우는 입장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정말로 큰 복입니다. 모든 게 쉬워지고 재미있고 학습효과가 생기고 또 촉진효과도 생깁니다. 

여러분, 따라하는 것이 쉽습니까?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쉽습니까?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모방하거나 따라하는 것은 쉽습니다. 보통 아이들을 둘 이상 키워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첫째 아이는 말을 가르치고 숫자공부를 시키는데 정성을 다합니다. 가르쳐도 빨리 못하는 같고 답답합니다. 그런데 작은 아이는 같은 나이에 가르치지 않은 것도 합니다. 오빠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운 겁니다. 모방하는 것처럼 쉬운 게 없거든요. 그냥 따라하면 됩니다. 그래서 빨리 배울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행동촉진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즉 표본을 잘 만나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생님 중에 가장 큰 선생님이 어떤 선생님입니까? 책임지는 선생님입니다.“내가 하라는 대로 따라와라. 내가 책임진다.”그 책임지는 것을 믿고 내가 나를 맡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고로 오늘 본문을 잘 보면 예수님은 최고의 선생님이십니다.“내게 오라. 내게 배우라. 내가 책임지고 쉽고 가볍게 해 주겠다.”믿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정말 해 줄 수 있겠습니까?”하면 못 따라가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 더 생각해봅시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시는 이“내게 배우라”는 말은 헬라 원문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냥 배우라는 말이 아니고“제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제자는 운명을 같이하는 사람입니다. 전적으로 믿고 따라가고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어야 하는 제자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이 부르시는 조건을 보면“네 있는 처지에서 떠나서 내게로 오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행동의지를 말하고 결단을 말합니다. 즉 제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자부한다면 이런 결단이 포함 되어 있음을 알아야하겠습니다. 늘 배우는 자의 입장에서 제자로서의 겸손과 제자로서의 자세, 마음가짐이 우리에게 있어야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노자]는<도덕경>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바다가 온갖 시냇물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낮추기 때문이다.”여러분, 바다는 모든 물을 다 수용할 만큼 넓고 위대합니다. 그런데 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까? 바다는 가장 낮기 때문입니다. 바다가 강보다 높으면 강물을 수용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낮은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 중에 주의 할 것이“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그냥 배우는 게 아니라 멍에를 메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멍에란 소가 밭을 갈 때 쟁기를 끌기 위해서 목에 메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를 전적으로 묶어 메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탈하지 못하게 합니다. 한 목적을 가지고 끝까지 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의 말씀은 나를 주장하지 말고 예수님 하시는 대로, 예수님의 가슴에 있었던 뜻대로 예수님의 목적대로 발을 맞추어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예수님을 배우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는 자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제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오늘 우리들에게 맡기십니다. 예수님을 배우는 자들로 서서 겸손히 배우고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다음 주에는 우리교회가 그런 일꾼들을 세우려고 합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배우는 자세가 되어 있는 자들이 교회 일꾼들로 세워져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만들어 가는 일에 앞장서는 제자들이 되게 하기를 위해 기도하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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