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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 인생 (마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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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인생 (마 10:1~4)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성도님은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서론] 

성경주석가 윌리엄 빌 클레이는 <예수님의 사상과 생애>라는 책에서 “예수님께서 필요로 하신 것은 그의 말이 그대로 인쇄된 산 교본의 구실을 할 제자였다”는 말을 했습니다. 또한 로버트 콜먼 목사는 <주님의 전도 계획>이라는 제자 훈련에 관한 책을 통해 “예수님의 방법은 사람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계실 동안 어떤 기록물이나 기념비 하나 남겨놓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남기신 유일한 유산은 당신을 따라다녔던 지극히 평범한 제자 몇 명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복음 확산을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을 향한 예수님의 계획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미 예비되어 있습니다. 제자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제자가 되겠다고 하여 되는 것도 아니고 하지 않겠다고 하여 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이 제자라는 말을 너무 어렵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것이라고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시간표를 통해 성령의 능력에 힘입게 되자 그간 훈련받았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삶을 통해 쏟아져 나오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가 나아가는 지역•민족•세계복음화에 방향을 맞추고 일심 전심 지속으로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온전히 쓰임받게 되는 제자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는 두 명의 야고보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로 구분을 합니다. 오늘 살펴볼 이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그는 베드로만큼이나 성미가 급한 인물입니다. 누가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 들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서는 예수님 일행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 사이의 역사적 적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야고보와 요한이 나서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하여 그들을 멸망케 하자”고 예수님께 청하였다가 꾸중을 듣기도 했습니다. 또 막 3:17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의 성질이 얼마나 급했던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우레의 아들’이란 의미의 ‘보아너게’란 별명을 붙이시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야고보와 요한은 불같은 성질의 소유자였습니다. 게다가 마 20:20 이후를 보면 야고보의 모친이 예수님을 찾아와 자신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주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하여 다른 제자들을 분노케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주책없게 치맛바람을 휘둘렀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이렇게 비호감형이었던 야고보에게도 한 가지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끈질기게 예수님을 따라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변형되실 때에도 함께 있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함께했습니다. 이러한 야고보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기질이나 성질에 신경 쓰지 말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끝까지 좇아가는 결단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왜 예배에 빠지지 않아야 하고 훈련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요? 야고보와 같이 지속을 해야 답이 나오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전도신학원, 선교사훈련원, 중직자대학원, 중직자학교 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만큼 확실하고 체계적으로 영적 훈련을 받을 수 있은 곳이 지구상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참 복된 현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귀한 보화를 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영적 성장을 위한 참된 보화가 여러분 손 안에 쥐어져 있음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행 12:1~2) 이는 야고보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첫째로 순교를 당하는 장면입니다.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마가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한 이후 그는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후 순교까지 약 14년 동안 그는 이국에 있는 유대인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초대교회의 기록에 따르면 야고보의 여정은 스페인에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에 초대교회 교인들은 야고보를 조가비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가 주로 해안을 다니며 어부들에게 많은 전도를 했던 까닭입니다. 어부 출신의 야고보는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어부를 상대로 전도를 했습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예수님께서 남기신 언약을 붙잡고 복음을 증거하다가 초대교회의 대표자로서 담대하게 순교했습니다. 그는 비록 호감을 주는 성격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성령 충만으로 그 기질과 습관마저도 하나님 뜻을 이루는데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타고난 성격과 기질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그 성격과 기질이 하나님 뜻을 이루는데 쓰임받게 됩니다. 성령 충만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 충만은 말씀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은 기도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은 전도 충만입니다. 말씀•기도•전도 등 영적 3박자가 맞아 떨어질 때 하나님 앞에 최고로 쓰임받는 현장 전도 제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이 이러한 제자 인생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야고보의 형제 요한

요한과 야고보는 형제 관계였습니다. 야고보가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제일 먼저 순교했던 반면 요한은 가장 오랫동안 이 땅에 있었습니다. 형제였지만 삶의 여정은 달랐던 것입니다. 
요한은 이 땅에 가장 오래 있으면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에 대한 기록, 장차 말세에 일어날 일에 대한 계시 등을 글로 남겼습니다. 그것이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입니다. 이와 더불어 요한 1, 2, 3서를 기록해 하나님께서는 사랑 그 자체이시며,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형 야고보와 함께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지만 후에 ‘사랑의 사도’라는 변모된 별칭을 갖게 됩니다. 그는 요한복음에서 다른 제자들의 이름은 언급하면서도 자신의 이름만은 기록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독특한 말로 스스로를 나타냈습니다. 요 13:23, 20:2, 21:7을 보면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제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요한은 이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풍성히 느끼며 제자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세기 3장의 인생 근본 문제인 하나님 떠난 문제, 죄 문제, 사단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생 근원 문제의 완전한 해결자가 되심을 선포하시기 위해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이 부활의 소식을 들은 제자 가운데 가장 먼저 빈 무덤을 찾아가 확인했던 이가 요한입니다. 또 어부 생활로 돌아가 물고기를 잡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을 때 가장 먼저 주님을 알아보고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말한 이가 요한이었습니다. 이를 보면 요한의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컸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제자를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 사랑을 얼마나 충만히 느끼느냐에 따라 변화의 크기, 쓰임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의 대상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하고 그것을 위해 인생의 방향을 설정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현장을 향한 눈을 열게 됩니다. 요한도 마가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한 이후 담대하게 현장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초대교회 역사의 주역이 베드로와 요한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부터는 ‘베드로와 요한’이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이렇게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밧모 섬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성령의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쓰게 된 것입니다. 

요한은 다른 제자와는 달리 순교를 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살아있는 순교자로서, 복음을 실제 현장에서 글로 전하며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교회 성도 여러분도 사도 요한과 같이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마음껏 체험하며 각자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뚝심의 사전적 정의는 ‘굳세게 버티거나 감당하여 내는 힘’입니다. 뚝심 있는 사람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내 참된 성공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영적 뚝심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참 진리를 붙잡았으면 그 복음을 위해 생명 건 헌신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이런 영적 뚝심이 있었습니다. 마가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복음 사역을 해나가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만을 강조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단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에 힘입으면 그러한 공격에 맞설 영적 뚝심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나를 넘어 다른 이를 살리는 제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이 항상 말씀의 능력,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며 현장의 축복 속으로 들어가 하늘•땅•바다•열방을 진동하는 현장 전도 제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지난주 베드로와 안드레에 이어 오늘은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도 변화되어 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자신을 넘어서는 제자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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