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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저가 뉘기에... (막 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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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뉘기에...  (막 4:35~41)


갈릴리 호수는 길이 20km, 폭 11km 깊이 50m로 상당히 큰 호수이며 주변은 산으로 둘려 싸여 있다. 북쪽에는 3000m에 가까운 헬몬산이 있는데 그곳의 찬 바람과 갈릴리 호수 주변 아열대성의 따뜻한 공기가 만나면 때때로 돌풍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때 호수에는 2-3m 넘는 파도가 일어난다고 한다. 

35절, ‘그날 저물 때’ 호숫가에서 천국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가르치신 후를 말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날이 저물었으나 호수는 평온했다. 한 동안 배는 순항했다. 그러나 갑자가 광풍이 불면서 배가 몹시 흔들리고 배 안에 물이 들어찼다. 배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을 것이다. 

38절, 그 때 예수께서는 배 뒤편 고물에서 깊은 잠에 빠지셨다. 그가 얼마나 피곤하셨는가를 알 수 있다. 예)운전할 때, 행군할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흔들어 깨웠다. ‘우리가 죽게 됐는데 잠만 주무십니까?’

39절, 잠에서 깨어나신 예수께서 즉시 바람을 꾸짖으셨다. 놀랍게도 바람이 멈추면서 파도도 잔잔해 졌다. 그리고 난 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믿음이 없다고 꾸짖으셨다. 왜 무서워하느냐? 왜 믿음이 없느냐? 

제자들은 넋 나간 사람처럼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저 분이 뉘신데 바람과 바다가 순종하는가?!’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과연 그 분은 어떤 분이신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목적 지향적인 분이시다(35-36)

막 4:35-36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날이 저물면 일을 멈추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쉬기 위해서 건너간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일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님의 목적 지향적 성향은 공생애 전반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막1장, 가버나움의 베드로의 집에 머무시면서 늦게까지 일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한적한 곳으로 나가서 기도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막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가셔야 할 곳과 하셔야 할 일이 분명하시다. 예수께서는 사건 당일 날도 하루 종일 말씀을 가르치셨다. 저물 때, 배가 출발하자마자 고물에 머리를 대시고 깊은 잠에 빠지셨다. 그 만큼 육체적으로 지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멈추지 않으셨다. 

이유는 목적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종종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모습이 부러울 것이다. 어쩌면 그 난리에 주무실 수 있을까?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열심히 일하셨기 때문이다.

히 2:17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십자가 상에서 외치심, ‘다 이루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골고다를 향한 쉼 없는 발걸음, 그 발걸음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쉼을 얻게 된 것이다. 예수님처럼 쉬지 말고 일하란 뜻이 아니다. 그렇게 일할 분은 예수 한 분으로 족하다. 풍랑 속에서도 깊이 잠에 빠지신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를 향한 그 분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2.자연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막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제자들은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란 사실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말씀으로 바람을 향하여,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실 때 바람이 그치고 호수가 아주 잔잔해졌다. 그들은 눈으로 보았고, 귀로 들었고, 몸으로 체험하였다. 그 강하던 바람과 사납던 파도가 이전처럼 잔잔하고 고요해졌다. 그러자 갑작스럽게 두려움이 몰려 들었다.

막 4: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제자들의 기대를 초월하는 이 엄청난 사건 앞에 넋나간 사람처럼 바라보면서, ‘저가 뉘기에...’ ‘저가 뉘기에...’ 눈 앞에 보이는 예수는 사람이었으나, 그 행하신 일은 하나님의 일이었다. 그 앞에 엎드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앞서서 그들은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는 일들을 목격하였다. 그것도 그들에겐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차원이 달랐다. 한 마디로 경악이었다.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완전한 사람이시오 동시에 자연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3.믿음 없는 제자들을 꾸짖으시는 분이시다. 

막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셨다. ‘왜 무서워하느냐? 어찌 믿음이 없느냐?’ 그들이 광풍을 무서워한 이유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믿음이 없다란 말은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무지와 불신이다. 

오늘 사건은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죽을 지경에 이를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재앙이 피해가는 것이 아니다. 믿는 자에게 어려움이 없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려움을 통해 믿음을 키우시는 분이시다. 그 때의 상황을 다시 살펴보자.

막 4:37-38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배가 침몰할 위기적 상황이 되었는데 모른체 주무시는 예수님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들은 좇아가서 잡아 흔들며 ‘선생님,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않으세요!?’ 예수님께 좇아간 것은 물론 도움을 청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들 맘 속엔 불만, 원망이 들어찬 것을 느낄 수 있다. 만약 그들에게 믿음이 있었다면 그렇게 요란을 떨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깨신 후, 먼저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신 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왜 무서워 하느냐? 어찌 믿음이 없느냐?’ 이 말씀의 의미는, 내가 너희와 함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 것에 대한 책망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믿음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믿음 없는 것이 면책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예수님을 따른지 오래 됐든 아니든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두려워하고 불신하는 것은 책망의 대상이 된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자를 책망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여러 모양으로 변명할 것이다. ‘믿은지 얼마 안됐다. 너무 바쁘다, 몸이 약하다 등등.’ 왜 책망하시는가? 바로 나를 위해신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뜻하지 않은 풍량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때 믿음이 없으면 쉽게 유혹에 빠지거나 좌절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일 새벽, 한탄강 변에서 조용히 휴일을 보내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봉변을 당했다. 북한 지역에 있는 임진강 상류의 댐의 물을 통보 없이 방류하는 바람에 급류에 쓸려 6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가족들은 지금도 고통과 슬픔 속에 싸여 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남의 일이 아니다. 언제든지 나의 삶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었음에도 광풍이 인 것처럼 예수를 믿는 신자의 인생여정에도 예고 없는 광풍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해야 하는가?


1.예수님을 바라 보아야 한다.

그는 광풍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해야 한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온전한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 확실한 신앙고백이 있을 때 바라보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져야 한다.

막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예수님을 바르게 알게 된다. 제자들은 노한 풍랑을 말씀으로 잠 재우시는 능력을 눈으로 보았고, 귀로 들었고, 몸으로 체험했다. 그들은 두려워 떨었고, 그 앞에 엎드렸고, 찬양을 드렸다. 

많은 신자들이 머리로는 예수를 아는데 전인격적으로 예수를 아는 일에는 부족하다. 찬송가453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내 평생에 소원 내 평생에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전인격적으로 예수를 아는 만큼 능력이 나타난다. 예수님을 바로 알기에 힘써야 한다. 모르니까 예배도 소홀하고, 기도생활도, 섬김도 소홀해지는 것이다.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나가라. 그분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라. 인생의 풍랑을 만났을 때 그 분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실 것이다.


2.예수님을 더욱 신뢰하라.

예수를 믿겠다고 결단을 내리고 주님을 좇았는데 찾아온 것이 축복이 아니라 폭풍이라는 고난이었다. 이럴 때 의심이 생긴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늘 본문에 그 배 안에 예수님이 계셨다. 예수님이 계신데도 불구하고 풍랑은 일었다. 예수 믿는다고 고난이 피해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잠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왜 두려워 하느냐? 두려워 말라! 내 안에 주님이 계시는 한 결코 망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바람을 멈추게 하셨고, 풍랑을 잠잠케 하셨던 것처럼 나의 인생 여정에서 문제를 해결주실 분은 오직 우리의 구원자되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일이 안되고 꼬인다고 믿음의 길을 떠나서 이 사람 저 사람 도움을 청하고, 다른 종교, 점집을 찾으면 반드시 실패한다. 믿음의 항로에서 파선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주님만을 신뢰하라.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3.고난 뒤에 축복이 있음을 믿으라.

풍랑을 잔잔케 하신 사건을 통해 제자들이 얻은 유익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과 그들의 믿음이 더욱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풍랑의 순간은 죽음의 위협을 당하는 고통의 시간이었으나 그 사건을 통해 그들의 믿음에 진보가 나타났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고난을 통해 우리를 단련시키신다. 

욥 29: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내게 닥친 현실의 고통으로 인해 너무 슬퍼하거나 낙심치 말라. 성경은 고난을 통해 영광의 길로 이끄신다. 

벧전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우리 인생길에 예기치 않은 풍랑이 일 때, 두려워 하지 말라. 
말씀으로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 분을 더 알기 위해 더 가까이 나아오라. 헛된 신을 버리고 우리의 구원자도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라. 그 분을 우리 인생의 목적으로 삼으로라.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놀라운 하나님이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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