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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국 교회 성장의 역사적 조명 (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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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성장의 역사적 조명 (마 28:16~20)

 
내 용 지금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의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부름을 많이 받고 한국의 목회자들이 세계 선교를 많이 오고 가는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한국 교회가 짧은 역사에 놀라운 성장을 했다는 것입니다. 미국 언론 기관이 조사 발표를 했습니다. 세계에서 교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50대 교회를 발표했는데 그 중에 25개 교회, 절반이 대한민국 교회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같이 십자가를 많이 볼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어느 나라에도 없습니다. 

일본은 기독교 역사가 우리 한국 교회보다도 훨씬 긴데도 하루 종일 다녀도 십자가 하나도 구경하기 힘든 모습을 보게 됩니다. 또 교회 활동도 우리 한국교회가 제일 활발합니다. 7월과 8월은 방학 기간이 되어서 대한민국의 청년회, 대학생들이 단기 선교 팀으로 외국에 많이 가기 때문에 인천 공항은 단기 선교팀 멤버들로 와글와글 합니다. 비행기를 타면 교회인지 비행기인지 분간을 못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또 나타내는 걸 좋아해서 허리에 띠를 찼잖아요? 무슨 팀이라고 해서 와글와글한데 이런 나라는 없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세계 각국을 많이 다녀보면서 선교 활동을 했기 때문에 자연히 한국과 다른 나라의 비교를 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서구 사회를 보면 기독교 역사가 거의 1천년에서 2천년인 나라들이 대부분입니다. 

여러분, 로마에 있는 성당을 왜 베드로 성당이라고 합니까? 베드로 무덤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벌써 2천 년 전에 이태리를 왔잖아요? 로마에서 전도하다가 죽었잖아요? 그래서 로마는 기독교 역사가 2천년입니다. 인도에 가보면 기독교를 지금도 도마교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직계 제자 도마가 인도에 와서 전도를 했기 때문에 인도에 가면 도마 기념 교회가 있습니다. 

다 2천 년 전 시대입니다. 또, 바울서신을 보면 에베소교회, 고린도교회, 데살로니가교회를 바울이 다니면서 다 복음을 전했잖아요? 그 나라들은 다 기독교 역사가 2천년입니다. 웬만한 나라들은 다 1천년이 넘었지 1천년 이하는 유럽에 하나도 없습니다. 다 그렇게 역사가 오래 되었는데 우리 대한민국은 2백년 정도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 짧은 역사에 세계 제일의 교회 성장이 이루어졌는가? 

지금 세계 선교는 두 나라에 의해서 되어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입니다. 미국에서 약 6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했고 한국이 2만 명을 파송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점점 줄어듭니다. 한국은 점점 늘어서 앞으로 20년 후에는 한국 선교사가 제일 많아집니다. 제가 몇 년 전 런던에 갔을 때 어느 영국 목사님이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일부러 찾아와서 “어떻게 당신네 나라는 선교 역사가 2백년 밖에 안 되었는데 그렇게 세계에서 제일가는 교회 성장을 가져왔는가? 

불행하게도 우리 영국은 기독교 역사가 2천년이나 되었는데도 지금 이 런던에서만 문을 닫아서 부동산에 나와 있는 교회가 7백 개입니다. 교인이 안모이니 교회가 뭐합니까?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이 교회당 건물을 사들이는 사람들이 거의 술집 주인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구조가 술집과 비슷해서 여기 강대상에다 밴드만 갖다 놓으면 금방 술집이 됩니다. 그러니 큰일입니다.” 제가 또 미국 디트로이트에 부흥회를 갔는데 미국 목사가 한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제 설교를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참석했습니다. 

끝나고 듣고 저한테 말합니다. “내가 하도 슬퍼서 이 부흥회 참석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지나간 1년 동안에 이 도시에서만 우리 미국인 교회가 24개가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문을 닫는 미국 교회를 사들이는 사람은 다 한인교회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당신네 한국 교회는 어떻게 그렇게 성장합니까? 이제는 우리가 한국 교회에게 배워야겠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또 나한테 했습니다. 

그러면 왜 서구 교회는 쇠퇴하여 갔는가?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세미나 때 많이 가서 하는 내용을 소개하려 합니다. 제가 그래도 열심을 다해서 연구한 내용입니다. 서구 교회는 신학 의존도가 너무 심합니다. 유명한 신학자가 무슨 말을 하면 거기에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그대로 하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이 일어나서 말하면 거기에 따라가고 하는 신학 의존도가 너무 강한데 우리 한국은 복음주의 성격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신학자가 무슨 발표를 해도 큰 영향을 안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한 복음서를 중심으로 바울 서신도 보고 구약도 바라보는 복음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초가 흔들리지 않고 튼튼합니다. 슈바이처 박사를 온 세계가 다 존경하지요? 독일 신학교에서 신학교 교수가 강의하다가 슈바이처 박사의 “예수전 연구사”를 비판했다가 그만 학생들이 데모를 일으켜서 학교를 안 나옵니다. “그렇게 훌륭한 신학자를 왜 비판했느냐?” 

사실 우리 한국 교회 목사들 중에 슈바이처 박사의 “예수전 연구사”를 사람보다 안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저도 안 받아들이는 입장에 서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신학 의존도가 너무 강한 것이 서구 교회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몸담아 있던 미국 PCUSA 총회 총무 일을 담당하는 분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교단 안에서 제가 목회하는 교회가 많이 성장하고 그래서 그 교단 잡지에 내려고 인터뷰 하러 와서 “당신네 교회가 무엇을 잘해서 어떻게 이렇게 교회가 성장했느냐?” 물어보기도 하고 그랬으니까 자연히 저를 알 것 아닙니까? 저와 마주 앉아서 물었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선교사를 보냈는데 한국 교회는 그렇게 성장하고 미국 교회는 나날이 쇠퇴하는데 한국 교회가 그렇게 성장하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뭐라고 간단히 설명해 주어야 맞는 말이 될까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러면 한번 내 입을 자세히 보고 나를 따라서 해보세요. 잘 듣고 따라해 보십시오.” “하겠습니다.” 내가 뭐라고 했냐면 “믿씁니다! 해보세요.” 그랬습니다. “한국 교회 성장은 이겁니다. 예수님도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셨으니까 믿는다는데 하나님이 어떡합니까? 이것으로 한국은 성장했습니다.” 

또 서구의 많은 나라들이 문명과 문화의 발달로 풍요한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신앙의 나태함을 가져왔습니다. GNP 1만 달러 될 때까지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2만 달러 될 때까지 현상 유지 했습니다. 2만 달러에서부터 계속 내리막길을 걷는 것이 지금까지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지금 그 시점에 와 있다는 겁니다. 똑같은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교회도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지나간 10년 동안 대한민국 개신교회 교인 7퍼센트 줄었습니다. 

여러분, 7퍼센트가 성장해도 만족치 않은데 7퍼센트가 줄었습니다. 개 교회 중에 성장하는 교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교인들이 줄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주일학교는 지나간 5년 동안 29.5퍼센트가 줄었습니다.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우리 교육부 열심히 하잖아요? 그런데 서구 사회가 GNP 2만 달러 된 것은 삶이 풍부해 지니까 교회 나와서 기도하고 “하나님 아버지!” 이런 것을 하기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교인이 줄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별히 서구 교회들은 예배의 모범에 있어서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로고스,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설교 중심의 예배가 아니라 의식 중심의 예배가 되어서 교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말로 몇 마디 하는 것으로 설교를 대신하고 무슨 복잡한 의식이 그렇게 많은지 의식 중심이 되었는데 심지어는 평신도들이 성경 읽는 것조차 금지했습니다. 모스크바 박물관에 가보세요. 그렇게 아름답고 큰 성경을 자물쇠로 잠가놨잖아요? 아무도 보지 말라고, 성직자만 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직접 교인들이 대하는 시간을 줄여버리면서부터 교인이 줄기 시작했습니다. 서구 기독교의 권력과 현상은 절대 다수 민초들에게 버림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가 서구 사회에서 얼마나 권력이 커졌는지 나라의 왕도 성직자들이 왕관을 씌어 주어야만 왕입니다. 여러분, 파리에 가시면 박물관에 나폴레옹의 왕관 쓸 때의 그림을 보세요. 성직자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전부다 팔짱 끼고 비꼬듯 나폴레옹을 쳐다봅니다. 아무도 나가서 왕관을 나폴레옹에게 씌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자기가 자기 손으로 갖다가 자기 머리에 왕관을 쓴 사람입니다. 그리고 벗어서 자기 아내 조세핀에게 씌어줌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성직자들이 인정을 안 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절대 권력, 그리고 국가 재산보다 교회 재산이 더 많은 그런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교인이 줄기 시작했습니다. 모스크바 박물관에 이번에도 제가 다녀왔지만 가보세요. 

성경책 겉표지에 다이아몬드를 얼마나 많이 박아놨는지, 또 성직자들이 입는 가운에다 다이아몬드를 얼마나 많이 붙였는지 제가 이렇게 보다가 ‘저 성경책 하나만 들고 뛰면 팔자 고치겠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사치했습니다. 그러니까 민중들에게 버림을 당했습니다. “예수는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데 교회는 이게 뭐냐?” 그러면서 안 갔단 말입니다. 그러면서 교인이 심하게 줄어드는 현상이 왔습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교회 성장 이유는 뭐냐? 몇 가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선교사들의 훌륭한 선교사역이 대한민국을 구원했습니다. 미국에서 특별히 온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지금 한국 선교사들이 외국에 가서 그렇게 하는 선교사 하나도 없습니다. 보세요. 언더우드는 4대 때까지 여기서 살았습니다. 이런 사람 대한민국 선교사는 없습니다. 

아직 세월이 그렇게 안 갔지요. 없잖아요? 지난해 언더우드의 4대 후손이 이 땅에서 가방을 들고 떠나면서 남긴 말 “이제는 우리 가족이 한국 교회를 위해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떠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God bless Korea!” 하면서 떠났잖아요? 이것이 보통 일입니까? 선교사들이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해 얼마나 훌륭하게 사역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더 훌륭한 사역은 복음만 전한 것이 아니라 두 가지를 아주 훌륭하게 했습니다. 

하나는 학교를 세워서 교육에서, 무지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었습니다. 1985년 8월 3일 최초 선교사 중의 하나인 아펜젤러가 정동에 집 한 채를 구입해서 교실을 만들어서 학생 모집을 했는데 4명이 왔습니다. 이겸라, 고영필, 이종은, 이인탁! 그래서 그 사람들을 놓고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신문화 교육을 시켰으니 그것이 곧 배재학교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이화여대, 연세대학교 할 것 없이 우리나라에 신문화교육의 학교들이 생겨서 무지에서의 구원, 그래서 대한민국이 지금 이렇게 교육 나라로 변하는데 선교사들이 와서 해주었기 때문에 최초의 학교의 세워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수 잘 믿어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제일 대학이 많아진 축복을 받았는데 시작은 선교사들이 다 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병원을 세워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질병에서 구원을 입었습니다. 

갑신정변 때 수구파, 개혁파 싸움에서 민영익이 칼을 맞고 피 흘리며 죽어갈 때 장안에 있는 용한 한의사 다 불러와도 안 되었잖아요? 그런데 알렌이라고 하는 의료 선교사가 들어와서 금방 지혈제를 놓고 붕대를 감아버리니까 피가 멎어서 살아났습니다. 민영익은 명성왕후의 조카입니다. 이 일을 고맙게 여긴 고종이 그때 기독교를 핍박하지 말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복음의 확산이 이루어졌고 10만 냥의 돈을 알렌에게 주어서 그런 기술의 보급을 이 땅에서도 해달라고 해서 세워진 최초의 병원이 광혜원, 지금의 세브란스 병원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교육과 과학, 의료 이것은 다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서 이 땅에 시작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사역입니까? 우리는 그분들의 사역에 대해서 고마움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사역 때문에 복음의 확산이 이 땅에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다음에는 당시에 한국에 정치적인 조건이 있었습니다. 우리 한반도는 수난의 땅이잖아요? 어쩌다가 우리 한반도 주변에는 세계 4대 강국 가운데 세 나라가 둘러싸여 있습니다. 일본, 중국, 러시아입니다. 그래서 이 세 나라가 번갈아 한반도를 집어 삼키려고 침략해 왔기 때문에 날마다 얻어터지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그때부터 어떻게 해야 이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것인가를 생각하다 친일파가 생겼고 친러시아파가 생겼고 친중국파가 생겼고 이 파벌싸움을 극심하게 한 것이 지금까지 내려와서 우리나라 정책에 계속 파벌 싸움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그 당시 사람들은 서구 사회에 대한 동경이 생겼습니다. 서구 사람들이 이 나라를 찾아오면 우리가 구원을 받지 않을까, 좀 잘 살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밀사를 보내서 이곳저곳을 다녔던 것을 우리가 역사에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판국의 정치적 조건 속에서 서구인들이 복음을 들고 오니까, 와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사역만 하니까 복음의 확산이 잘 이루어진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과거 정부로부터의 실망감! 고려 500년은 불교 영향을 미쳤잖아요? 그런데 민중들은 불교가 싫어졌습니다. 왜? 불교가 실제 민중들에게 어떤 유익을 주지 않으니까요. 불교의 세력은 정부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결국은 고려 말년에는 신돈이라는 스님이 나라를 자기 마음대로 하다가 나라가 망해버렸습니다. ‘그러면 그 종교는 과연 우리 민족에게 희망인가?’ 민중들이 실망했습니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후 불교는 약간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에 있는 수많은 절들이 그때 불타 없어지고 유교 문화가 팽창하는, 종교의 일종의 전환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유교와 민중은 어떤가? 이조 5백년은 더 추악한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양반, 상놈 계급화로 인권이 무수히 말살됨으로 민중은 유교에 있으면서도 유교에 대해서 회의를 갖게 되는 겁니다. ‘종교란 과연 민중의 희망인가? 이런 거 없이 사는 게 훨씬 낫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특별히, 500년 동안 여성차별화 문제는 여성의 인권을 말살시켰습니다. 

옛날에 여자는 자식을 못 낳으면 그냥 내쫓았습니다. 여자의 재산권은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때리면 얻어맞고 여성의 인권이라고 하는 것은 이조 500년 동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하도 두드려 팼기 때문에 지금 남자들이 당하는 겁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와서 여성 인권을 회복시켰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여자 교인들이 많은 겁니다. “우리가 살 길은 여기다. 여성의 희망은 기독교 밖에 없다.” 이런 의식이 자연히 생겨서 저는 45년 목회하면서 그렇게 많이 설교를 하고 그렇게 많이 돌아다니고 했지만 제가 설교할 때 남자가 더 많이 모인 교회는 군인교회 밖에는 없었습니다. 

안방에 있는 여자들을 사회로 이끌어 낸 것이 기독교입니다. YWCA를 만들어서 여성 지도자 양성시켰잖아요? 그래서 그때부터 여자들이 사회에 나오기 시작하는데 김활란 총장, 임영신 총장이 다 거기서 나왔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도 YWCA 출신입니다. 여성 지도자를 키워낸 것이 기독교입니다. 여성해방운동입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우리의 살 길과 희망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여자 교육이 많아진 것입니다. 안방에 있던 여인들이 다 사회로 나오고 교회로 나와서 그 실력을 발휘하니까 한국 교회가 부흥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 다음에는 한국인의 종교성입니다. 한국인들은 기독교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도 하나님 사상이 있었습니다. 절대 하나님이 계셔서 하나님이 비를 내려 주시고 잘 먹고 살게 해주시는 것이라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들이 와서 “그 하나님이 이 하나님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가르쳐줄 때 거부감 없이 “아! 그 하나님이 이 하나님이구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한국의 종교성은 이미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성경에 나타난 특성입니다. 한국인의 특성과 같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우리 한국 사람들은 복을 좋아하잖아요? 복을 추구하는 국민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복 달라고 얼마나 “복(福)”을 많이 써 붙이는지 모릅니다. 봄이 되면 우선 대문간에 큰 “복(福)”자를 하나 써 붙이던가 아니면 등에다 “복(福)”을 써서 매달던가 요즘엔 많이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아주 흔했습니다. 요즘 시집가는 신부들은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신부가 시집갈 때 보세요. 혼수감이 다 “복(福)”이 아니면 안했습니다. 덮고 자는 이불에도 크게 “복(福)”을 씁니다. 또, 세숫대야에도 중앙에 “복(福)”을 써서 세수할 때도 복 받으라고 했습니다. 밥그릇에도 주발 뚜껑 맨 가운데는 “복(福)”자가 쓰여 있습니다. 숟가락에도 “복(福)”자가 쓰여 있습니다. 옷에도 동정 끝에도 “복(福)”이고, 소매 끝에도 “복(福)”이고, 웃거름 끝에도 “복(福)”이고 다 “복(福)”입니다. 

심지어는 요강 단지에도 “복(福)”이라고 씁니다. 먹어도 싸도 다 복입니다. 한국의 문화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똑같잖아요? “들어가도 복이요 나가도 복이요 떡 반죽 그릇에도 복이요 광주리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우양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이 복을 받을 것이며 천하 만민보다 네가 더 복을 받을 것이다.” 다 복입니다. 그 복과 이 복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이 “이게 웬 복이냐?” 하고 금방 복을 받아들입니다. 

더 신나는 일은 성경에 하나님은 산에서 다 역사하셨습니다. 고산시대의 신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는 에덴동산에서 시작이 되었죠? 십계명은 시내산에서 받았죠?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기도했죠? 갈멜산, 겟세마네 동산, 팔복산 다 산입니다. 산이 아닌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는 다 산에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도 산신령이라는 것이 있어서 다 고산지대 신 개념으로 신을 만나려면 산으로 가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절대 거부감이 없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들이 대한민국 선교에 절대 도움을 주었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한국 교회가 실제로 다른 나라 교회들보다 잘 한 것은 뭔가? 있습니다. 한국 교회 목사들은 개척교회를 열심히 합니다. 여러분, 보세요. 우리 주변의 세계적인 교회들 역사를 보세요. 다 그 교회 담임 목사가 처음에 개척한 교회입니다. 산비탈에서 어떤 사랑방으로 시작했습니다. 다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개척 교회로 미국 교단에서 일했던 사람입니다. 

서구의 목사는 개척교회 못합니다. 우리는 하잖아요? 무엇으로 하느냐? “믿씁니다!”로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 한명도 없는 데 가서 결국 교회를 해내는 사람이 한국 목사입니다. 저도 목사 안수 받고 29살에 개척교회를 하러 갔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5명이라도 있어야 그들을 붙잡고 예배를 보든가 말든가 하지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주일이 돌아오면 목사가 교인이 없다고 주일예배를 묵도로 끝나고 말 수도 없잖아요? 공식적으로 헌금도 하고 설교도 하고 찬송도 부르고 공식적으로 예배를 드려야지요. 동네 공회당 빌려서 예배드리는데 교인이라고는 제 아내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뭐라고 설교를 해요? 우리 설교자가 제일 힘든 것이 자기 마누라 앉혀놓고 설교하는 게 제일 힘듭니다. 뭐라고 설교를 합니까? 교인 한명 앉혀놓고 설교자 한 사람, 교인 한 사람인데 “회개하라!” 이럴 수도 없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 안쳐다보는 예배만 드렸습니다. 난 날마다 허공만 바라보며 설교했습니다. 

“예수를 믿으시오.” 듣는 교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땅만 쳐다보고 “짧게나 하슈!” 그런데 해냈잖아요? 그런데도 기어코 교회를 만들어 냈잖아요? 거기 주일학교 출신 가운데 5명이나 목사가 되었다니까요. 이것이 한국교회입니다. 서구의 교회들은 못하잖아요? 그런데 한국 교회들은 다 합니다. 누구든지 다 합니다. 저는 지금도 개척교회만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좋아했고 다 효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후임자가 된 것은 갈보리교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한국 목사들은 심방을 열심히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사역입니다. 외국 목사들은 한국 같이 심방 안합니다. 우리는 대심방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집의 사정이 어떻든 “이따가 갈 테니 그런 줄 아세요.” 하면 거기 있어야 합니다. 강제 심방을 하는 겁니다. 집사님이 어쩌다 교회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외국 사람들은 ‘아! 그 사람이 무슨 사정이 있겠지.’ 그러고 관여 안합니다. 생각도 안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는 집사님 한분이 어쩌다 교회 안 나오면 가만 둡니까? 권찰님이 전화해서 “왜 안 나왔어?” 이건 마치 경찰이 도둑놈 잡아내듯이 합니다. 그러면 이 집사님은 벌벌 떨면서 “아, 바빠서 어쩌고저쩌고….” “바쁘다고 교회를 안 나와요?” 막 야단을 칩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구역장이 똑같은 일을 하고 교구장이라는 사람이 똑같이 하고 나중에는 교구 목사님, 담임 목사까지 교회 한번 안 나온 거 가지고 막 혼냅니다. 나오는 게 훨씬 낫습니다. 안 나왔다가는 더 괴롭습니다. 

또, 사람이 어쩌다가 다른 교회로 옮겨갈 수도 있지요. 그런데 미국 사람들 같으면 미국 목사는 “OK! Bey bey! God bless you!” 그러면 그만입니다. 한국 교회는 “가기는 어딜 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그냥 그 집에 가서 철야 기도를 하니까 가지도 못합니다. 무식한 것 같아도 관심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안 건드려주면 답답합니다. 어린아이 감기만 들어도 좇아가서 기도해 주어야지요. 이런 곳이 한국 교회입니다. 서구 사람들은 그렇게 안합니다. 

“한국 교인들에게 배워라. 어렵지도 않은 일인데….” 보세요. 우리 갈보리교인들이 담임목사 심방오라고 할 때 안 간적 있습니까? 100퍼센트 갔습니다. 항상 찾아오도록 문을 열어놓고 항상 만나고 항상 갔습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 목사들이 일하는 분량을 보면 제가 미국 교단에서 27년이나 일했는데 미국 목사들의 3배 정도의 일을 해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어떻게 합니까? 복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에 인천공항 생기기 전에 김포 공항 최고 책임자가 한국 교회 협의회 회장에게 공문을 보냈습니다. “한국 교인들 제발 김포 공항에 와서 예배드리지 마십시오.” 왜 그러느냐 하면 이민을 좀 많이 갔습니까? 그러니까 집사님이 이민 한번 가시면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5번 불러야 합니다. 왜? 집사님이니까 제직회에서 와서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찬양 했지요? 그 다음에 이민 가는 집사님이 여전도회 회장 아닙니까? 

그러니까 여전도회 회원들끼리 모여서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찬양했죠? 어제 만났는데 오늘 또 만나서 다시 만나자고 하지요? 또 남편은 남전도회 회원이입니다. 남전도회 회원들이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찬양했죠? 또 성가대원입니다. 성가대원이 와서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찬양하죠? 맨 마지막에 담임 목사까지, 그래서 최소한 5번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불러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서 끝나야 합니다. 김포공항까지 따라갑니다. 그래서 그 많은 교인이 이민 가는데 이쪽에서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저쪽에서 더 큰 소리로 통성기도를 하고…. 교회인지 김포공항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서 아무쪼록 성공해서 잘 살라고, 그러나 십일조는 우리 교회로 보내라고 하면서 난리를 치니까 이렇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괜찮습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이 한국 교회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계 모든 교회가 하지 않는 영성 훈련이 있다는 겁니다. “영적 능력이다.” 그게 뭐냐? 새벽기도입니다. 미국은 새벽기도를 안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하잖아요? 지금 휴스톤에 제가 처음 가서 그 시절에 한국 사람들이 100리 밖에 한 사람씩 살던 시절인데 다 운전해 다니면서 “제가 휴스톤 중앙교회 새로 개척교회 했습니다. 나오십시오.” 전도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듭니까? 100리 밖에 한 사람씩 한국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 새벽기도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미국 교회를 빌려서 하니까 그 교회 담임목사 존 크레이그 목사한테 요청을 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새벽기도를 하니까 새벽에 당신들이 하나도 안 쓰니까 이 교회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물었더니 그 교회 담임 목사인 존 크레이그 목사가 나더러 “이 친구가 미국에 와서 영어를 잘 못해서 당신이 지금 오후 5시라고 말했습니까, 새벽 5시라고 말했습니까?” “새벽 5시입니다.” “그러면 당신이 새벽 4시에 일어나야 되는데 매일 나와서 설교를 할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러다 죽으면 어떡하려고요?” “안 죽습니다. 괜찮습니다.” 나중에 당회 서기인 장로가 사용해도 좋다고 계약서를 가지고 와서 하신 말을 지금도 잊지 않습니다. 

“새벽 5시에는 하나님도 주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로 깨우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맨 처음에는 두 사람이 나왔습니다. 열심히 해서 6개월이 지났는데 교인이 152명이 되었습니다. “이야!” 그 교회 담임 목사가 깜짝 놀라고 충격 받았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새벽기도해서 그렇습니다.” “이야! 한국 사람이 이 지역에 0.1퍼센트도 안 사는데 우리 교회는 교인이 날마다 주는데…. 한국 교회에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가보세요. 

한국 교회는 다 이렇게 합니다.” 한국에서 새벽기도로 많이 모이는 교회를 가 보도록 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호텔에서 한국 교회를 몇 군데 간 겁니다. 수천 명씩 모여서 통성기도를 하는 것을 봤나 봅니다. 돌아와서 첫 주일 설교가 “미국 교회는 죽었다. 한국에 가보라. 하나님께서 관심이나 축복 안하고는 못 견딜 만큼 새벽에 교회에 나와서 무릎을 꿇고 그 아우성치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밖에 없다. 장래 세계 교회는 대한민국이 주도한다.” 

이렇게 설교하면서 통성기도 하는 표현을 “마치 버스가 뒤집힌 것 같이 하더라.” 여러분, 성경에 보세요. 큰 사건 다 새벽입니다. 홍해 새벽에 갈라졌습니다. 여리고성 새벽에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이라.” 야곱이 새벽에 이름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새벽입니다. 마리아가 새벽에 갔다가 예수님을 만났지요? 출애굽기 14장에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기둥 가운데서 애굽의 군대를 어지럽게 하셨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을 무슨 별이라고 했죠? 새벽별이라고 했습니다. 

백홍준이라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새벽기도를 제일 먼저 했다고 교회사에 나옵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복음화를 위해서, 조선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서 아침마다 일어나서 365일 기도했다고 그렇게 나와 있고, 새벽기도 공동으로 시작한 사람은 1906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길선주 목사와 박치록 장로가 둘이 만나서 “성경에 보니까 예수님도 새벽에 기도했수다래.” “그렇디.” “그러면 우리도 기도해야디요.” 그래서 목사와 장로 둘이서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집사님들이 “목사님과 장로님 둘이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신단다. 

우리 잠만 자면 되겠나? 우리도 나가자.” 그래서 장대현 교회 집사님들이 꽉 찼습니다. 그래서 막 새벽기도 하니까 한국교회는 어떤 교회가 뭐 하면 옆의 교회는 샘나서 못 견딥니다. “우리도 하자.” 그래서 1906년에 새벽기도 바람이 대한민국에 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사건이 일어났느냐 하면 1907년 대한민국 교회사에 큰 부흥의 역사가 그때부터 시작했잖아요? 그래서 100주년인 2007년에 다시 그 부흥을 일으키자고 행사를 했습니다. 마귀도 새벽을 이용할 줄 압니다. 

여러분, 하와이에 가서 진주만 박물관에 가보세요. 일본의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대장이 “새벽 6시에 우리가 공격 안하면 우리가 진다.” 그래서 함대를 출항시켜서 주일날 새벽 6시에 진주만에 정박해 있는 미국 함대를 다 묵사발을 만들었습니다. 미국 전쟁 역사에 가장 수치스러운 공격을 당한 게 그겁니다. 거기 야마모토 이소로쿠 대장의 사진과 설명이 다 있습니다. 마귀는 새벽을 이용할 줄 압니다. 여러분, 6·25 전쟁도 공산당들이 주일날 새벽에 일으켰습니다. 

사실 성공하는 사람은 새벽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박정희 대통령도 5·16을 낮 12시에 일으켰다면 실패했습니다. 수도 경비 사령부가 있는데 어떻게 넘어옵니까? 새벽 2시에 한강다리 넘었기 때문에 성공한 혁명입니다. 지금 지구가 돌아가는데 지구는 대한민국이 먼저 돌아가잖아요? 한국의 새벽 찬송 소리와 함께 지구가 아침이 밝아옵니다. 

새벽은 우리 영혼이 가장 맑지요? 그때 나와서 기도하면 하나님과 교통하는 역사가 많이 일어난다고 성경에 약속하고 있잖아요? 한국은 이러한 여러 가지 조건이 한국의 성공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온 세계를 다니면서 한국 교회의 소박한 선교 사역을 잘 해나가면 계속해서 하나님이 한국 교회를 축복하시고 21세기는 확실히 대한민국 교회가 세계를 지도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지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 축복을 주셔서 역사는 가장 짧지만 가장 큰 사역자로 쓰임 받음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21세기 계속해서 쓰임 받는 한국 교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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