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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살리라 (롬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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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살리라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는 길이 오직 믿음 뿐이라는 사실을 못 박는 듯 하박국서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이해가 안되도 하나님을 믿는 의인은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하며 살아가야 할 것을 말하며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한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이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 함으로도 이해한다.

믿음은 우러러 보는 것이며  우러러 보는 믿음으로 살게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민 21:8-9)

그런데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4)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5) 고 했다.
  
구리 뱀은 장대 위에 세우신 예수님을 상징하며 십자가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구리 뱀의 경우는 육신의 눈이 그것을 바라 볼 때에 구원을 얻었다. 십자가의 경우는 영혼이 그 십자가를 바라보므로 구원을 얻는 것이다.

여기에 신앙의 3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믿음이 대상을 바라보는 지각(지성적인 요소) 바라 보려는 집중력(의지적 요소) 바라보므로 산다는 확신(감정적 요소)이 있는 것이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 45:22)
  
  믿음은 받아 드리는 영접이며 영접하는 믿음으로  살게 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라 하시고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5:40)라고 하시므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주님께로 와야 함을 가르쳐 준다.
  
가난으로 고생하는 한 부인에게 그 집을 찾아가서 몇 번이고 문을 두드렸으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와 그 후에 다시 만나서 그 때의 이야기를 했더니 "아 선생님이었어요. 참 미안합니다. 나는 집주인이 집세 받으려 온 줄 알고 때 마침 돈이 없기에 대답을 꺼리고 있었지요"라고 하더란다. 문을 열지 아니하는 그는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감옥에 들어간 청년이 특사를 거절하고 외친 말이 있다. "여러분 나는 죄를 지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특사를 거절해서 죽습니다." 하나님의 특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생명이요 거절하면 죽음이다.
받아드리는 것은 의심하지 않고 영접하는 것 곧 승인하는 것이다.  

  믿음은 온전히 맡기는 것이며 맡기는 믿음으로 살게 된다.

[눅 23:42-43]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나이야가라 폭포의 외줄 타기 선수와 아들이 아버지를 신뢰하고 자신을 맡김과 같다.
  
페튼(John G Paten) 이란 분이 신약 성경을 자기 나라 말로 번역하면서 "믿는다"의 "믿음"이란 말을 자기 나라 말로 찾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 나라의 선생님이 오셨는데 먼 길을 와서 피로하셔서 의자 위에 자기 몸을 맡기면서 "나의 모든 무게를 여기에 맡기고 싶다"고 하셨다. 이 말은 페튼에게는 매우 필요한 말이었다. 믿음이란 인생의 모든 무게를 다 풀어놓고 쉬는 행동과 같은 것이다. 

헤추어(William E Hateher)  박사는 어릴 때 자기가 출석하는 마운트 허문 (Maunt Hermon) 교회에서 부흥 집회에 참석하게 됐다. 그러나 구원에 대해서 막연하기만 하였다. 다음 날 혼자서 길을 가고 있을 때 친척이 다가와서 너 자신을 주님 보시기에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 때에 이 소년은 죄인이라고 생각하며 고통하고 있으나 어떻게 할 줄을 모르겠다고 하자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가지라고 격려했지만 어떻게 흘 줄을 몰랐다. 그 때 친척이 참 나무의 큰 가지를 가리키며 너가 저 위에 올라가 안자 있다가 뛰어 내리면 무섭겠느냐 하니 그렇다고 하자 내가 너를 받아 줄 테니 뛰어 내릴 수 있느냐고 하여 못하겠다고 했다. 왜냐고 하여 나를 받아 줄 수 있는 힘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 만약 주님께서 그 나무아래 팔을 벌리고 너를 부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니 뛰어 내리겠습니다. 주님은 나를 붙들어 주실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자 이것이 바로 믿음이란다. 라고 그 친척이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그는 예배에 참석해서 내 자신을 예수님께 드려야지 하고 자신을 맡겼다 한다.
  
무디 선생님이 잘 아는 친구 집에 가서 정원을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하는 가운데 두 아이가 놀고 있는 것을 보고서 자네 아들들인가 물으니 하나는 아들이고 하나는 아니라고 하자 어느 아이가 자네 아들인가 물어 보니 자네가 맞춰 보라고 하나 알 수가 없어 모르겠다고 하니 두 아이를 오라고 부르더니 아이들을 나무 가지 위에 올려놓고 뛰어 내리라고 하니 한 아이는 뛰어 내리는데 한 아이는 뛰어 내리지 못하고 울고만 있자 친구는 이래도 모르겠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모르겠다고 하니 친구는 처음 뛰어 내린 아이는 내 아들이고 울고 있는 아이는 이웃집의 아이라고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이웃 아저씨를 믿지 못하는 아이는 뛰어 내리지 못하고 두려워 울고 있으나 아버지를 믿는 아들은 비록 높은 나무 가지라 하더라도 아버지의 품으로 자신의 몸을 완전히 내어 맡기고 뛰어 내리는 이것이 곧 믿음의 행위인 것이다 

믿음은 먹고 마심이며 먹고 마시는 믿음으로 살게 된다

믿음의 한 요소를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으로 가르쳐 주셨다.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제자적 죽음의 효능으로 사람들의 영적 영원적 생명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심으로 가르치기도 한다.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요 6:50)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요 6:51)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요 6:5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 6:53)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 6:54)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6:55)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요 6:56)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요 6:57)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요 6:58)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도 이와 같이 떡과 물을 먹고 마시듯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리를 영적으로 맛을 보며 먹고 마시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음식물을 풍성히 장만해 놓고 냉장고에 잘 보존해 놓았다고 해서 나의 몸에 힘이 생기고 건강해 지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 음식을 입에 넣어서 씹어 먹어야 한다. 병든 사람이 약이 병을 고칠 것으로 믿는다고 해서 병이 낫는 것은 아니다. 그 약을 먹을 때 그 약의 효력이 나타나 병이 낫게 되는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 7:37)고 하셨다.
  
영적 생명의 원천이신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물을 마시는 것으로 가르치셨다.
  
오래 전 불란서와 영국간에 전쟁이 있었을 때에 불란서의 고래잡이배가 먼 항해를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물이 떨어져서 목이 말라 쇠약해졌다. 영국의 포구 앞을 지나면서 고통의 신호를 보냈더니 영국 쪽에서는 전쟁은 끝났으니 포구에 들어와서 원하는 대로 마음 놓고 물을 마시라고 했다. 이 신호를 받은 불란서 고래잡이배는 이 신호만으로 목마름이 해결  될까 아니다 이 말을 사실로 받아 들여 배를 포구에 대고 물을 마셔야만 하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는 것이요 확신하는 믿음으로 살게 된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을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가게 되었다.(히 11:8) 
  
믿음은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고 증언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전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는 결단을 촉구하며 외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를 조롱 할 수 있습니다. 무관심 할 수 있습니다.  그를 반대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접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선택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고 계시겠습니까.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회개가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잘못했습니다. 고백 그것보다 더 한 것입니다. 내가 사는 방향을 바꾸겠습니다. 내 죄에서 나는 돌아서겠습니다 함이요, 그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신을 다 버리겠습니다. 주님은 나의 유일하신 하나님 유일하신 주님 유일하신 그리스도가 되셔야 하겠습니다. 나는 주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 선택이 100년 후의 위치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신뢰함이다
   
요한 웨슬레는 몸무게가 50Kg 밖에 되지 않는 왜소한 분이었지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흥사였다. 그는 아버지 위로 5대가 목사였고 어머니 위로도 5대가 목사인 신앙적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게다가 그는 영국 최고의 옥스포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강의도 했다. 

1732년, 그는 인디언 선교사로 자원해 미국 조지아 주의 인디안 원주민들을 찾았다. 그때 그에게는 광대한 신대륙에 복음을 전하겠다는 웅대한 비전이 있었고, 당당한 실력이 있었다. 또한 불타는 사명감과 인디언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처절한 실패를 맛보았다. 그처럼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큰 꿈과 이상과 사명과 열정까지 가진 사람이 실패하였다.

사람의 힘이나 능력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슥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결국 선교사역에 실패하고, 폐결핵까지 걸린 웨슬레는 패잔병처럼 영국으로 귀향하게 되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귀향하던 배가 풍랑을 만났다. 배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몸부림으로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때 웨슬레도 두려움에 젖어 있는데 어디선가 찬송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이끌려 선창으로 가니 모라비안이라 불리는 경건파 성도 몇 명이 손잡고 찬송하고 있었다.

그때 웨슬레가 물었다. “당신들은 두렵지 않습니까?” 그들은 대답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서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선생님도 예수를 믿어보세요.” 그 말은 목사였던 웨슬리의 신앙양심을 무섭게 때렸다. “내가 이러고도 선교사를 자처했나?” 귀향 후, 런던에서 투병하다가 웨슬레는 1738년 5월 24일, 우연히 모라비안 성도들의 작은 밤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 한 청년이 오늘 본문을 낭독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평소에 잘 알던 말씀이었지만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이 그날따라 그의 가슴을 치며 뜨거운 믿음의 불꽃이 점화되었다.

그는 어렸을 때 화재로 타죽기 일보 직전에 살아났다. 그래서 그는 ‘타다 남은 숯’이란 별명을 지녔다. 그 숯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이다. 그는 투병하면서 자기 묘비에 새길 기도문을 적었다. “하나님! 이 무익한 종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타다 남은 웨슬레가 여기 누웠습니다.” 그 마지막 기도문을 써 놓고 35세를 일기로 죽음을 기다리다가 그때 은혜를 체험했다. 그리고 몸도 치유되었다. 그 뒤 그는 88세까지 장수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가 말을 타고 지구를 열 두 바퀴 돌며 복음을 전했고, 일생 4만 2천 4백 번의 설교를 했고, 200권이 넘는 신앙서적을 남겼다.
  
소련이 공산 국가가 되기 전의 이야기다. 한 무신론자가 성도를 비난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외쳤다. 한 번은 많은 사람 앞에서 하나님이 있다면 이 자리에 나타나 보이라 만일 나타내 보이기만 한다면 나는 이 주먹으로 맹렬히 공격하겠노라 고 핏대를 올려 허공을 지른다 그러나 신이신 하나님이 형상으로 나타 날리 만무하다. 그러자 그는 더욱 기고 만장하여 보시오 하나님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하나님이 낮잠 자고 있지 않습니까 이때 군중들은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청중 가운데서 조용히 듣고 있던 한 농사꾼 부인이 겸손한 태도로 강단 앞에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여인을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만 한 마디 하겠습니다. 저는 선생님처럼 철두철미한 무신론에 이론적으로 대답할 지식이 없으나 한 마디 묻겠습니다. 저는 수 십 년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왔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저를 구원하신 일을 감사하며 살아왔습니다. 그의 의뢰는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쁨입니다. 그런데 제가 죽게 될 때에 가령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 구원은 없고 천국도 없다는 것을 모두 알게 되었다면... 저에게 대답해 주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남을 사랑 할 것과 옳고 착한 일등 조금도 죄 짖지 말 것을 가르쳤고 또 그 자신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몸소 참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믿고 살아온 내가 생활의 무슨 손해가 있습니까 선생님의 지혜로 대답해 주십시오. 청중들은 조용해졌습니다. 

그 강사는 말이 떨리기 시작했고 아무 것도 손해나는 것이 없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이 부인은 계속해서 말을 한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면 한 마디만 더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께서 죽게 될 때에 운명하는 자리에서 만일 성경이 참 진리라는 것 분명히 지옥과 천국이 있다는 것 그리하여 조물주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의 죄 대로 심판하여 선생님을 지옥으로 넣어 버린 다면 ... 내게 대답해 주십시오. 선생님은 어떤 손해가 있겠습니까? 

장내는 더욱 조용해졌습니다. 무신론 강사의 청산유수 같은 말문은 막혀 버리고 말 한마디 못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저 뒤에서 옳다 하나님은 분명히 계시다. 하는 소리가 들리자. 이번에는 여기저기서 큰 소리로 저 무신론자를 쫓아내라 하는 외침이 높아졌다. 장내는 금방 아우성치듯 들끓었다. 쥐구멍을 찾아가듯 삽십 육계 줄행랑을 치는 무신론자였고 환희에 넘쳤으나 역시 조용히 서 있는 농사꾼의 부인의 얼굴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우러러 보는 믿음 영접하는 믿음맡기는 믿음 먹고 마시는 믿음 말씀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살게 된다. 이러한  믿음으로 영광돌리며 사명 감당하는 모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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