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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나라의 임재 (대하 18:20~22, 눅 11: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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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임재 (대하 18:20~22, 눅 11:18~20)


어느 이방 군주가 랍비 여호수아 벤 하나니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랍비는 “그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오. 태양을 보시오”라고 했습니다. 군주는 “태양은 쳐다 볼 수가 없소”라고 했습니다. 랍비는 “태양을 볼 수 없다면 하나님의 영광도 볼 수 없는 것 아닙니까?”라고 하더랍니다. 이번에 군주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가 어디 있소?”라고 했습니다. 그 때 랍비는 유대인들이 사는 곳에 데려가 유대인들을 가리키며 “이들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는 세상에 산재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인다면 이미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결국 보이지 않는 힘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객관적인 증거들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지배를 강화시킬 뿐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완벽하게 없습니다. 
  
코르넬리우스 반틸이란 학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유신논증’의 권위자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명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증명보다 훨씬 쉽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증명은 불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섬에 새가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섬에 새 발자국 하나만 찾으면 되지만 새가 살았던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섬 전체를 샅샅이 다 뒤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온 우주를 다 뒤져야 하기에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에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손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속히 이 땅에 임재하기를 기원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는 우주는 무한한 힘의 손이 지배합니다. 이 손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칩니다. 이 손이 귀신을 쫓아내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의미하는 구약적 표현입니다. 신약에는 오늘의 본문과 같은 병행귀인 마태복음 11:28에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힘입어 사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증거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힘으로 귀신을 제어하고, 세상을 이기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증거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합시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 있는 증거는 이것뿐이 아닙니다. 비록 세상에 악이 요동합니다. 악한 세력이 발호합니다. 그러나 결국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대로 운행되고 하나님의 뜻하신 길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가고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이 보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일전 신문에는 해괴한 기사가 났습니다. 어떤 여성이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출산비가 없어서 아기를 다른 여성에게 200만원에 팔았습니다. 이 여인은 아기를 사서 다시 다른 여성에게 465만원에 되팔았습니다. 이제 아기도 웃돈 얹어서 파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산불이 이곳저것에서 거세게 나고 있습니다. 지진이 일어납니다. 기상이변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요, 하나님의 공평하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 증후군을 보세요. 신학자 하비 콕스는 1960년대에 ‘세속도시’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앞으로 탈종교화 현상이 일어나고, 기독교가 쇠퇴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그는 ‘Fire From Heaven’이란 책에서 자신이 예측을 잘 못했다고 시인하면서 기독교가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단 열정과 신비를 가지고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치고, 복음전파에 열심을 가진 오순절주의가 개신교의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하는 증거입니다.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민감하게 수용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곳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18절에는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고 합니다. 사람은 귀신에게 지배를 받으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합니다. 귀신 들린 자는 귀신을 쫓아내지 않고, 쫓아낼 힘도 없고, 오히려 귀신과 함께함을 즐기며 삽니다. 
  
얼마 전 11세 때 납치된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고 납치범과 함께 생활한지 18 년만에 구출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납치범 집에 감금되어 살았습니다. 탈출할 수 있으면서도 탈출하지 않았습니다. 성폭행을 당해 두 딸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과 두 딸은 납치범에게 강한 애정을 보였습니다. 납치범을 잡아가는 경찰을 오히려 원망하였습니다. 피해 어린이가 납치범을 부모와 같은 절대적 존재로 받아들이면 학대받는 상황조차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게 된다고 합니다. 피랍인질이 납치범에 대한 비정상적인 애정을 느끼는 현상을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납치당하고, 성폭행 당하고, 감금되어 사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즐긴다는 것입니다. 귀신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포로 되고, 귀신 들린 상태에 승복하고, 이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입니다. 심지어 귀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귀신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합니다.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나라가 되지 못합니다. 사탄을 지배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마귀는 한 번도 세상을 지배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한 사탄을 보세요. 사탄이 예수님께 천하만국을 보이며 말하기를 자기에게 절하면 천하를 다 주겠다고 합니다. 천하만국이 자기의 것입니까? 천하만국은 한 번도 사탄의 것이 된 적이 없습니다. 천하만국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기의 것도 아닌 것을 자기의 것처럼 여기는 것이 도둑이며 사기꾼입니다. 
  
니체는 강인하고 남성적이고 억압적인 대담한 지배자를 통한 민족의 융성을 꿈꾸었습니다. 니체는 인간의 능력을 숭배하였으므로 예수님의 연약함 때문에 예수님을 멸시하였습니다. 니체의 이상은 ‘위버멘쉬’ 즉 슈퍼맨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상은 어린아이였습니다. 슈퍼맨이 세상을 지배할 것 같지만 아닙니다. 약한 어린아이가 세상을 지배합니다. 
  
사탄은 힘으로 지배하고, 죽이고, 아프게 하고, 걱정하게 하고, 고민에 빠트리고, 염려하게 하고, 근심에 쌓이게 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사탄의 선물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사랑으로 살리고, 고치고, 웃게 하고, 회복하고, 감사하게 하고, 깊은 잠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순수한 사람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어린아이 같아야 가는 나라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균형 있는 목회자’라는 책에서 로마제국은 도덕적 붕괴 과정을 통해 몰락했고, 반면 교회는 도덕적인 열정과 거룩한 생활의 힘으로 지배적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교회는 선과, 진리와, 거룩으로 세상을 지배합니다. 세속적 힘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식의 방법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 방식으로 지배되는 것이 세상입니다. 
  
미국은 종교가 사회와 정치를 지배한다고 합니다. 미국국민 60%가 종교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영향을 주고, 복음이 사회와 정치를 지배해야 정상입니다. 사탄의 문화, 사탄의 방법이 세상을 지배하면 세상은 망합니다. 교회는 힘을 가지고 하나님의 힘으로 세상에 영향을 주고 복음이 지배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흔히 “저 사람 귀신같다”는 말을 합니다. 귀신을 봤어야 귀신같다고 하는데 귀신같다는 말은 좀 혼란한 모습을 볼 때 하는 말입니다. 또 “귀신 봤다”고도 합니다. 저는 귀신을 못 봤습니다. 왜냐하면 귀신이 내게 얼씬도 못 하기 때문입니다. 귀신을 보지 말고 귀신을 지배하고 살아야 합니다. 시간을 관리할 것이 아니라 시간을 지배해야 합니다. 인간은 시간을 지배하든 지배 받든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귀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귀신을 지배하든, 귀신에게 지배받든 둘 중의 하나입니다. 
  
‘주님’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아도나이’입니다. 이 말은 일종의 ‘윗사람’(superior)을 뜻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주인, 지배자, 군주, 지도자 등 모든 부류 주인(lord)을 나타내는 말로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지배자가 되셔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둘째, 미래적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모든 악을 지배합니다. 

20절에는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악한 세력을, 귀신의 세력을 완전히 제압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악한 세력을 지배하는 곳입니다. 
  
역사학자 찰스 베어드는 “하나님의 공의의 맷돌은 아주 천천히 도는 것 같지만 모든 악을 보드랍게 빠짐없이 갈아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얼핏 볼 때에 세상은 너무 오래 악이 지배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최후의 승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세상은 일시적으로 악에게 지배받지만 종래 하나님이 승리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급에서 종살이하면서 고통스러워합니다. 죽겠다고 소리칩니다. 이 때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더디지만 반드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의 은총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마귀가 승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좀 더 두고 봐야 압니다. 예수님은 다시 사셔서 마귀가 승리한 것이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찬송가의 가사처럼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 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입니다. 우리의 시합은 경기종료 호각이 울려봐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실 때에 사탄에게 이끌리어 성전 꼭대기까지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이끌리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성전 꼭대기까지는 끌려가지만 마지막까지 끌려 다니지는 않습니다. 뛰어내리지는 않으셨습니다. 사탄은 일시적 순간적으로 사람을 지배합니다. 사람만 아니라 예수님도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악이 제어되고, 인간의 고통이 사라지고, 사망이나 아픔이 종결됩니다. 
  
요한계시록 20:2-3에는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고 합니다. 마지막 심판 때가 되어야 사탄은 완전히 갇히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됩니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이 땅입니다. 현재도 마찬가지로 귀신이 쫓겨나고 병이 나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되어지는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라는 말의 손은 ‘다크튈로스’로 손가락입니다. 손이란 단어는 ‘케이라’라는 단어가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란 하나님 자신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면 귀신은 못 쫓아냅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명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약한 자를 돌보시고,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는 것이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입니다. 또한 이 일은 예수님께서 제자에게 주신 사명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10:1에는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합니다. 귀신 쫓아내는 것은 단순한 기적의 현상이 기적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목적입니다. 
  
예전에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부활절 다음날에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부활절은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물을 먹인 날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사탄은 승리했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의 부활로 사탄에게 결정타를 날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주일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하면 웃음이 있고 기쁨이 넘칩니다. 사탄의 일은 언제나 웃음을 빼앗는 일입니다. 적정하게 하고, 근심하게 하고, 염려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고, 좌절하게 합니다. 이런 사탄의 일은 웃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미치다’란 말의 헬라어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마니아’라는 말과 ‘맬랑콜리아’란 말입니다. ‘마니아’는 흔히 말하는 광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맬랑콜리아’는 우울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둘 다 웃음은 없습니다. 이 둘 다가 귀신이 들린 것을 말합니다. 사탄의 장난입니다. 절대로 미치지 마세요. 웃음을 빼앗기지 마세요. 
  
한 은둔자가 다른 은둔자에게 “나는 세상에 대해 죽었소”라고 말했습니다. “정말로 죽기 전까지는 그렇게 확신하지 마시오. 당신은 세상에 대해 죽었을지 몰라도 사탄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시오”라고 다른 은둔자가 말했답니다. 사탄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사탄도 계속해서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8에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합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 같습니다. 굶주린 사자 같습니다. 삼킬 자를 끊임없이 찾습니다. 사자의 밥이 되지 마세요. 예수님을 잘 믿는 자라도 삼키려고 합니다. 사탄을 쫓아내세요. 물리치세요. 웃음을 잃지 마세요. 마음에 항상 하나님의 나라를 간직하세요. 


결론 

유진 오닐의 연극 ‘나사로 웃다’에서 살아난 나사로에게 사람들이 묻습니다. “저 세상에 무엇이 있던가?” 나사로가 대답합니다. “그곳에는 오직 생명이 있었죠. 예수님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그 웃음소리가 제 마음에 들렸답니다. 저는 사랑과 생명으로 거듭나서 ‘맞아요’라고 외치며 주님과 함께 웃고 있었죠.” 하나님의 나라에는 온통 웃음이 있습니다. 사탄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웃음과 기쁨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습니다. 우리가 웃으며, 기뻐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임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할 때 웃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사탄의 권세가 물러가고, 웃음이 회복되고, 기쁨이 넘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합니다. 우리의 기쁨과 웃음을 빼앗기지 말고, ‘맬랑콜리’하게 만드는 귀신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임재하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오게 하는 주기도문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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